6. 2화 삶은 훈련의 연속이다. (2)
주변에 학생들이 많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갑자기 화면이 뜨는 바람에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션을 통해 필요한 능력을 키워 준다고?
단순히 다른 차원과 소통하는 통로 역할만 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능이 다양한 모양이다. 그런데 화면 모양이 어째 이전과는 다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윽…….’
정체불명의 문구를 보며 골똘히 생각하던 중 격렬한 두통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영혼 깊숙한 곳에 저장되었던 전생 기억들의 편린이 저절로 떠올랐다.
기억에 의하면 아르마이스에게는 남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능력들이 있었다.
‘방금 무슨 의지가 발동됐다고 했는데?’
아르마이스의 능력 중 가장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능력.
신이 허락하신 축복.
그것은 바로 ‘아르마이스의 의지’였다.
능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르마이스가 목표를 설정하거나 특정 욕망이 발현되면
신이 내려 준 특별한 의지는 미션을 부여하고 스탯 경험치를 보상으로 수여하여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전생에 강했던 이유를 이제 알겠어.’
카산트 대륙의 시골 마을에서 자란 아르마이스가 제대로 된 스승이 없이도 최강의 용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신이 주신 축복 덕분이었다. 마왕이 강림한 후, 카산트 대륙에는 명분보단 힘의 논리가 강세를 띠기 시작했다. 아르마이스는 이런 사회적 기류의 영향으로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발현됐고 이를 인지한 시스템은 다양한 미션을 나에게 부과했다.
이후, 전생의 나는 다양한 미션을 소화하며 스탯이 대폭 향상됐고 결국 그랜드 마스터와 대마법사를 제압할 수 있는 실력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다른 차원의 존재들과 접촉한 후로 전생의 기억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 같아. 만약 숨겨진 기억을 모두 찾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러다가 아르마이스처럼 세상을 지배할 힘을 갖게 되는 거 아니야?’
전생의 능력을 되찾을 생각에 혼자 히죽대고 있던 그때, 재웅은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진우야, 진우야! 너 왜 그러는 거야?”
“어, 어 재웅아.”
“아까는 오만상을 쓰며 힘들어하던 놈이 왜 지금은 실실 웃는 거야?”
“회지에 넣을 단편 소설을 구상하려니까 갑자기 두통이 몰려오더라고. 하지만 다행히도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한시름 덜었어. 휴우,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니 좀 살 거 같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재웅은 의뭉스러운 눈빛을 거둬들이고 대화를 이어 갔다.
“싱겁긴, 누가 보면 너 혼자 소설 쓰는 줄 알겠다. 그건 그렇고 학교 끝나면 오랜만에 PC방이나 가자. 너 최근에 나랑 게임 안 해 봤지? 이래 봐도 내 티어가…….”
“미안, 오늘 말고 다음에 가자.”
같이 게임 할 생각에 들뜬 재웅이에게는 미안했지만, 나이트 아린의 수업이 훨씬 중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가장 급선무는 김준석 패거리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는 거였고 그러려면 일단 강해져야 했다.
“에엣!? 네가 게임을 거부한다고?”
“누가 들으면 게임에 환장한 놈인 줄 알겠네. 당분간은 조금 바쁠 거 같으니까, 나중에 여유 생기면 가자.”
재웅은 게임비를 대 준다며 거듭 설득했지만, 내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 * *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잠시 후면 나이트 아린의 수업이 시작된다.
나는 강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애써 다스리며 차분히 그녀를 기다렸다.
치익-치익
[저기, 아 아르마이스 님? 아르마이스 님?]
“네……. 듣고 있습니다.”
나에게 불만이라도 있나? 이전에 느낀 석연찮은 느낌이 맞았던 모양이다.
나이트 아린은 약속했던 시각보다 한 시간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짜증이 몰려왔지만, 아쉬운 입장이었기에 참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통신 상태가 불량해서 약간 늦었습니다.]
“아, 네. 사정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트 아린은 본인이 정한 약속에 늦었음에도 미안해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과 다른 딱딱한 태도에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그러려니 넘기기로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현재, 아르마이스 님은 기초 근력과 체력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이십니다. 제가 가르쳐 드릴 투기술은 12가지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일견 단순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과 아르마이스 님의 신체 상태를 고려했을 때, 연마가 가능한지 의문이 듭니다.]
“기초 체력에 관한 부분은 어떻게든 보완할 테니, 마음 편히 수업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흐흠, 네 알겠습니다. 일단 아르마이스식 투기술의 가장 기초적인 자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잠깐만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깜짝 놀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아르마이스식 투기술이라니, 그녀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아르마이식 투기술은 아르마이스 님 본인이 창안하신 것으로 이르젠 제국의 기사들이라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무술입니다.]
“그렇군요…….”
[아르마이스 님에게 아르마이식 투기술을 가르쳐야 한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네요. 자, 어쨌든 제가 취하는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해 보시길 바랍니다.]
신기했다.
내가 고안한 무술을 배운다니…….
전생에 만든 격기술로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면 속 나이트 아린이 취한 자세를 따라 해 봤다.
비스듬히 선 자세로 오른 주먹은 턱을 가리고 왼 주먹으로 견제타를 날리는 자세를 취한 그녀의 모습에 아르마이식 투기술과 복싱이 많이 닮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먼저, 아르마이스식 1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가볍게 스텝을 밟아 준 다음, 왼 주먹과 오른 주먹을 교차로 뻗어 보세요.]
나이트 아린은 복싱의 원투 자세와 유사한 초식을 여러 번 반복한 후, 내가 충분히 익혔다고 판단되면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헉, 헉…….”
[오늘은 3형까지만 배우는 것으로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느끼시겠지만, 아르마이스 님의 기초 체력은 실전은커녕 초식을 연습하는 데도 버거울 정도입니다. 그쪽 차원에서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틈나는 대로 수련하실 것을 권장드립니다.]
“가, 가 감사합니다…….”
자세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같은 동작을 반복한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하지만, 까칠하게만 느껴졌던 그녀에게서 생각보다 자상한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이트 아린은 가벼운 실수도 결코 넘어가는 법이 없었고 완벽한 형태의 격기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가르쳤다. 수업을 마친 그녀가 목례를 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럼, 이만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 저 혹시 세이라 씨를 만날 수 있을까요? 긴히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네, 아르마이스 님 말씀하세요!]
내가 세이라 씨의 행방을 묻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면에 나타났다.
“언제부터 계셨던 거예요?”
[훗, 아르마이스 님께서 열심히 훈련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서 아까부터 내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셨어요?”
그녀가 어설픈 내 동작을 지켜봤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나 세이라 씨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어 갔다.
[부탁드릴 게 있다고 하셨는데,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저희 이르젠 제국은 아르마이스 님을 돕기 위해서라면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황녀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세이라 씨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자 훈련으로 인해 발생한 긴장감이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름이 아니라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요.”
아르마이스의 의지에 의해 생성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회지에 제출될 소설들 사이에서 3위 안에 들어야 했는데 지금의 필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글쓰기라…… 아! 미르헨 총장님이라고 다이스 아카데미 총장님이 계시는데, 그분한테 배우면 좋을 것 같아요.]
세이라씨는 내 글쓰기를 가르칠 적임자로 미르헨 총장을 추천했다.
그는 학식이 깊을 뿐만 아니라 달필가로 명성이 자자하여 이르젠 제국을 넘어 카산트 대륙 전체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지는 학자였다.
스승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한시가 급했던 나는 추가 질문을 던졌다.
“감사합니다, 황녀님. 저 그럼, 언제부터 뵐 수 있을까요? 길어도 2주 안에는 글쓰기 능력을 높여야 하거든요.”
[대화가 끝나는 대로 총장님을 찾아 봬서 요청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르헨 총장님도 우리처럼 아르마이스 님에 대한 존경심이 강하신 분이셔서 당장 내일부터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세이라 씨의 시원스런 답변에 내 얼굴은 금세 환해졌다.
[그럼, 내일부터는 나이트 아린의 격기술 훈련과 미르헨 총장님의 글쓰기 수업을 병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신경 써 주신 만큼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희가 아르마이스 님한테 받은 은혜에 비하면 이런 것들은 새 발의 피도 안 됩니다. 부담 갖지 마시고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이후, 논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기분 좋게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좋았어, 내일부터 훈련에만 계속 매진하는 거야. 아니지 지금 당장 배운 걸 복습하면서 최대한 빨리 실력을 올리자.’
조력자들의 도움에 한껏 고무된 나는 스텝을 밟으며 오늘 배웠던 초식들을 시연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오늘 오후에 봤던 미션 창이 허공에 생성되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목표치를 설정합니다.>
<보상이 설정됩니다.>
<목표: 2주간 팔 굽혀 펴기 100개, 윗몸 일으키기 100개, 달리기 10km>
<보상: 근력과 체력 +30%.>
“또?”
나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미션 창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하루 사이에 2개의 미션이라니,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해야 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적지 않게 부담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러운 감정이 들었지만, 이윽고 머리를 흔들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아니야, 오히려 잘됐어.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번 해 보자.’
미션 창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푸쉬 업을 하기 시작했다.
“끙…….”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던 탓에 팔 굽혀 펴기를 완료하는 데 20분이 소요됐다. 초반 10개까지는 그럭저럭했지만, 이후부터는 인내의 연속이었다. 중간중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강해져야 한다는 집념으로 기어이 100개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자 미션 창은 오늘치 목표를 달성했음을 알려 왔다.
<팔 굽혀 펴기 100개가 완료되었습니다.>
‘좋았어, 이 기세로 계속 해 보는 거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훔친 뒤 운동화를 꺾어 신고 밖으로 나갔다. 집 밖 천변에는 러닝 코스가 있었고 중간중간 윗몸 일으키기와 철봉을 할 수 있는 기구들이 배치되어 있어 미션을 수행하기에 제격이었다.
“헉…… 헉…….”
윗몸 일으키기까지는 악으로 깡으로 해낼 수 있었지만, 문제는 달리기였다. 2km를 채 달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숨은 이미 턱 끝까지 차올랐고 오늘 먹은 저녁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마음속에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가득 들어서려는 찰나, 문득 김준석 패거리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씨발, 토를 하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하자.”
폐가 찢어질 듯이 아팠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학교에서 당하는 굴욕보다는 견딜 만했다. 나는 이를 부서져라, 악문 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된 끝에 달리기를 완주할 수 있었다.
“애가, 어딜 다녀와서 땀을 그렇게 흘려?”
“헉…… 헉…… 밖에서 운동 좀 하다 왔어요. 쉬세요.”
밤 11시가 돼서야 집에 도착한 나는 엄마의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그대로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 이 짓을 매일 할 수 있을까? 온몸이 쑤시는 게 이러다가 몸살이라도 날 거 같아.’
악으로 깡으로 오늘치 미션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평소 운동을 게을리했던 내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일부터는 더 바빠질 거야. 일단 자자.’
복잡한 생각을 미뤄 두고 깊은 잠에 막 빠져들 때쯤, 시스템이 자동으로 활성화되었다.
<미션 수행 중 발생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회복 시스템 자동 발동>
<회복률 7%>
<회복률 23%>
허공에는 어느새 창이 하나 생성되어 있었고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기운은 내 몸을 감싸 안은 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