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7화 (7/122)

7. 2화 삶은 훈련의 연속이다. (3)

아침 6시 50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지만, 지각할 염려는 없는 시간이다.

침대에서 나와야 하지만, 온몸에서 느껴질 고통이 걱정스러워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니까 참아야겠지?

…….

“엉?”

예상했던 거보다 몸이 너무 개운하다.

어젯밤만 해도 하체부터 시작해서 복부, 팔까지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아픈 곳이 없었다.

‘훗, 나에게 이런 회복력이 있었다니, 나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한 건가?’

나는 간밤에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된 것도 모르고 혼자 히죽거리며 등교 준비를 했다.

* * *

“야, 강진우! 다음 편 소설 써 왔어?”

교실에 막 들어와 가방에서 책을 꺼내고 있는데, 이석호가 다가와 야한 소설을 달라며 윽박을 질렀다.

“응, 여기.”

“오, 빠릿빠릿해서 좋은데? 다음 편도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이석호는 평소하던 대로 비아냥거리며 소설을 건네받았다.

“알겠어, 다음 편도 열심히 잘 써 볼게.”

“어? 그래. 알았다.”

나는 훈련을 통해 성장하기 전까진 일진 무리들과의 마찰을 피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에는 야한 소설을 쓰기 싫어 하루, 이틀 늦게 줄 때도 있었지만, 쓸데없는 충돌을 막고 훈련에 열중하기 위해 당분간은 고분고분하기로 한 것이다.

“저 새끼 뭔가 이상한데?”

김준석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보며 말했다.

“누구? 강진우? 난 잘 모르겠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이석호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준석에게 반문했다.

“우리 눈도 똑바로 못 쳐다보던 놈이 너무 차분해졌단 말이지. 너희가 보기에도 조금 이상하지 않아?”

“그런가? 하긴 찐따처럼 벌벌 떨면서 말하던 놈치고는 오늘은 좀 침착하긴 했어.”

무리 중 하나가 준석의 말에 동의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석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제깟 놈이 꿍꿍이가 있다고 우리에게 뭘 할 수 있겠어. 준석아, 것보다 이번 주말에 미팅 있는데, 나와 줄 수 있지? 여자애들이 너 보고 싶다고 난리란 말이야.”

“당연하지, 시간이랑 장소 찍어서 보내 줘. 아, 그리고…….”

김준석으로 인해 무거워졌던 분위기는 이호석의 미팅 이야기에 금세 풀어지고 말았다.

‘우두머리라 그런가 확실히 딴 놈들하고 다르네. 눈썰미가 매서운 녀석이야.’

나는 책을 펴고 공부하는 척을 하며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조용히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강해져서 김준석 패거리가 씌워 놓은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효율적인 훈련을 위해 등교 전에 팔 굽혀 펴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모두 끝내 놓았다.

결심한 대로, 오늘부터는 모든 시간을 훈련과 미션을 위해서만 사용할 것이다.

시간은 흘러 수업은 끝이 났고 나는 짐을 싸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그때, 우리 반 담임이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담임인 박우철은 평소 학생들에 관심이 크지 않았는데, 이는 귀찮은 것을 피하고 싶어 하는 그의 성정과 맞닿아 있었다.

“진우야, 잠깐 나 좀 따라와라.”

“네? 갑자기요?”

“그래, 긴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가방 챙겨서 상담실로 와라.”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는 터라 담임에 눈에 띈 적이 없는 나로서는 담임의 호출이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담임을 발견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다.

“그래, 진우야. 상담을 위해 잠시 네 인적 사항을 살펴봤다. 보니까 부모님도 번듯하시고 성적도 상위권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보통 이상은 하더구나.”

40대 중반인 담임은 벌써 머리가 빠져 정수리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내 정보가 적힌 종이를 천천히 훑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무슨 일이지?

중학교 때부터 선생님들과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싸해진다.

담임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았는지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

“아, 찾았다. 그래, 장래 희망이 웹소설 작가라면서?”

“네, 맞습니다.”

“보니까 문학부 활동도 하고 있는 걸 보면 제법 진지한 것 같은데…….”

“부족하지만, 사이트에 글도 올리고 있고 나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끝이 흐려지는 게 내심 걸리긴 했지만, 웹소설 작가로서의 꿈이 숨길 일은 아니었기에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항간에 네가 부적절한 글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것도 웹소설 작가가 되기 위해서냐?”

“네, ……네?!!”

기계처럼 대답을 하던 나는 크게 당황하여 언성이 높아졌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최근 며칠 새 여학생들로부터 네가 질 나쁜 글을 쓴다는 제보가 들어왔어. 다행히도 여학생들이 그 내용을 보지 못했고 증거가 없기에 널 혼낼 명분이 부족하긴 하지만, 허튼짓을 하고 있다면 당장 그만둬라.”

“…….”

“말이 없는 걸 보니까 사실인가 보네. 네가 쓴 글이 나에게 입수되는 순간, 곧바로 징계 위원회를 열 생각이니까 긴장하는 게 좋을 거다. 우리 학교 교칙에 따르면 풍기 문란은 최소 정학이다. 위원회에 부모님이 오시는 건 당연하고.”

이런 씨발.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지? 김준석 패거리 때문에 억지로 글을 쓴 것일 뿐인데, 선생부터 애들까지 모두 나를 범인처럼 여기고 있다.

마음 같아선 저놈들이 한 만행을 고발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비참한 학교생활이 지옥처럼 돼 버리겠지…….

터질 것 같은 분노를 간신히 다스리며 이성을 되찾을 때쯤, 담임은 무심하게 말을 내뱉었다.

“알아들었으면 나가 봐.”

“네…….”

인사를 꾸벅하고 상담실을 나가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담임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생긴 건 샌님처럼 생겨 가지고 꼴깝을 떨어요 아주. 저런 놈들이 알고 보면 더 음흉하다니까? 어휴, 3학년 담임에서 1학년으로 내려와 편하게 지낼 줄 알았는데, 아주 똥 밟았네, 똥 밟았어.”

으드득.

당장이라도 담임에게 돌아가 강력하게 항변하고 싶었지만,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 *

상담을 마친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고, 어느덧 나이트 아린과의 수업 시간이 되었다.

[땀을 많이 흘리셨네요? 보아하니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나 보군요.]

“헉, 헉. 수업 전에 복습을 해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쌓인 울분을 격기술 연습으로 풀어냈다. 나이트 아린은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엷은 미소가 띠었다.

[괜찮으시다면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녀의 요청에 난 곧장 자세를 잡은 뒤 아르마이스식 격기술 1식부터 3식까지 연달아 시연했다.

[아직 손봐야 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제에 비해서 많이 나아지셨네요.]

“아, 그래요? 혹시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해야 할지 알려 주실 수 있을까요?”

[훗, 우선 어깨에 힘을 조금 더 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 제가 가르쳐 준 것을 잘 이행하고 계시긴 하지만, 동작 간의 자연스러운 연계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 내가 잘못 본 건가?

처음으로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쳤다.

나이트 아린은 기대했던 것보다 격기술 훈련에 진지하게 임하는 내 모습에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제보다 더 열성적으로 가르침에 임했다.

[오늘은 이것으로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한 가지 초식밖에 배우지 못했다.

김준석 패거리를 상대하려면 최대한 빨리 강해져야 할 텐데…….

초조해진 내 기분을 읽었는지, 나이트 아린은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아직 수업 이틀째라 확언할 수는 없지만, 격기술에 관한 아르마이스 님의 재능은 카산트 대륙에서도 통할 정도입니다. 4형부터는 이전 초식들에 비해 동작이 복잡하기에 진도를 빼는데 적어도 3일이 걸릴 줄 알았지만, 아르마이스 님은 한 번의 수업만으로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도 열심히 수련하시길 바랍니다.]

“가, 감사합니다. 스승님의 기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그녀의 격려에 감동을 받은 나는 상기된 얼굴로 더 열심히 할 것을 다짐했다.

[크흠, 스승님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아무튼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나이트 아린은 스승이라는 말이 부끄러웠는지 볼에 홍조가 가득한 채로 황급히 자리를 떴다.

[허허, 마력도 없는 환경에서 나이트 아린에게 인정을 받다니요. 과연 아르마이스 님이십니다.]

그녀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누구십니까?”

[저는 오늘부터 아르마이스 님의 글쓰기 수업을 맡게 된 미르헨이라고 합니다.]

“네, 세이라 황녀님께 말씀은 들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총장님.”

노인의 정체를 알게 된 나는 곧장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그렇게 예를 갖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는 편하게 미르헨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 아닙니다. 저는 총장님이라고 하는 게 더 편합니다.”

미르헨 총장이 손을 모으고 맞인사를 하자, 나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는 의사를 보였다.

[아르마이스 님이 편하시다면 그게 맞는 거겠죠. 자 그럼 인사도 서로 나누었으니 슬슬 수업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 총장님. 혹시 수업에 앞서 준비할 게 있을까요? 필기구와 노트를 가져오긴 했는데, 더 필요한 게 있나 해서요.”

[실례가 안 된다면 아르마이스 님이 최근에 쓴 글을 볼 수 있을까요?]

“제 글을요?”

웹소설 사이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내 글을 카산트 대륙에서 제일가는 문필가에게 보여 줘야 한다니…….

최근에 연재를 시작한 이 글은 단짝 친구인 재웅이에게도 선뜻 보여주지 못했던 작품이다.

아, 어떡하지?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찾기 위해 궁리를 하던 그때, 미르헨 총장의 따뜻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통상적인 글쓰기 수업이라 하면 교재를 통한 정석적인 방식도 있긴 하지만, 세이라 황녀님의 말씀으로는 하루빨리 실력을 키우셔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필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긴 하지만, 가장 빠른 건 상대에게 적합한 맞춤 처방을 내려야 하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프린트해 오겠습니다.”

분명 2주 안으로 필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던 건 나였기에 미르헨 총장의 말에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컴퓨터를 켠 뒤 최근에 집필했던 웹소설을 모두 프린트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이 제가 쓴 소설입니다. 잘 보이십니까?”

[저, 아르마이스 님. 죄송하지만, 화면을 통해서 상호 간의 언어가 통역될 수는 있으나 문자 번역은 아직 무리인 듯싶습니다.]

“네?”

[수업이 끝나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도록 세이라 황녀님께 건의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수업 동안은 송구스럽지만, 아르마이스 님께서 직접 작품을 낭독해 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미르헨 총장은 난처해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 어르신께서 저렇게 정중하게 말씀하시는데,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그리고 다른 차원에 계신 분께 내 글을 읽어 드리는 건데 부끄러울 게 뭐 있겠어?

글을 낭독하기로 마음을 먹은 나는 종이를 들고 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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