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16화 (16/122)

16. 4화 전생의 나를 찾아서 (3)

미르헨 총장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남성을 나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다이스 아카데미에서 마법 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션 다이스 교수님입니다. 다이스 아카데미가 개교한 이래 최연소로 교수가 되셨고 저명한 논문을 기술하셨을 뿐만 아니라 각종 마법 도구를 발명하시어 카산트 대륙에서 천재 공학자로 유명하신 분이지요.]

[과찬이십니다. 총장님께서 학계에 공헌하신 것을 따라가려면 전 아직 멀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야기로만 듣던 아르마이스 님을 이렇게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션 교수는 부끄러웠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것보다 다이스라는 성을 갖고 계시던데 혹, 아카데미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겁니까?”

나는 아카데미와 션 교수와 연결 고리가 있음을 직감했다.

[역시, 명석하십니다. 맞습니다, 다이스 아카데미는 아르마이스 님의 동료셨던 카인 다이스 공작님이 설립한 학교입니다. 그리고 션 교수님은 그분의 후손이고요.]

“제 옛 동료들이 이르젠 제국에 많은 흔적들을 남겼군요.”

마왕 토벌 이후, 살아남은 동료들 중 대부분은 아미라 이르젠을 따라 제국 재건에 힘을 보탰고 그 과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공작과 같은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공을 모두 합해도 아르마이스 님이 세운 공적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만하면 서로 인사도 된 것 같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교수님, 브리핑을 시작해 주세요.]

[넵, 현재 저는 세이라 황녀님의 지시로 차원 연결 장치 수리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워낙 복잡하고 정교한 데다 오랜 세월 가동하지 않은 탓에 진척이 더디지만, 다행히도 작게나마 성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션 교수는 이야기를 하면서 미르헨 총장이 선정한 책들을 기괴한 문양이 그려진 금속 박스에 집어 넣었다.

[여기 호스가 보이시지요? 지금, 이 상자는 수리중인 차원 연결 장치와 결합이 된 상태입니다. 이 박스의 역할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하자면…….]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차원 연결 장치를 아직 고치지 못하여 보석이나 사람과 같은 물질을 다른 차원에 전송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문자나 그림과 같은 기호 정보는 전달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조금 더 풀이해서 설명하면 카산트 대륙 공용어로 쓰인 텍스트들을 박스에 넣으면 문양 안에 깃든 마력이 차원 연결 장치의 기능을 발동시킨다.

이후, 정보에 대한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고 이후, 내가 사는 세상으로 전송된다고 한다.

이론적인 이해는 마쳤지만,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지 못한 나는 의구심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들을 믿고 기다려 보는 수밖에…….

[지금 책 하나를 아르마이스 님께 보내고 있습니다.]

션 교수의 말이 있고 나서 얼마있지 않아 책 모양의 홀로그램이 내 앞에 떠올랐다.

“대박이네요. 이게 진짜로 가능하다니…….”

[하하, 그럼 저희가 거짓말이라도 하는 줄 아셨던 겁니까? 사실, 어떻게든 기계를 고쳐 작은 부피의 물건은 보낼 수 있게 해 보려고 했지만, 물질을 다른 차원에 보낸다는 건 쉽지 않더군요.]

“아닙니다. 현재로서는 이것도 저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홀로그램을 바라보다가 손으로 넘겨 보려 했다. 하지만, 3d 영상으로 이루어진 책은 내 신체를 그대로 통과시켰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책 안의 정보만 전달됐을 뿐, 물질이 아니기에 사용법을 숙지하셔야 됩니다. 현재 우리와 소통할 때 쓰는 화면 안에 아카이브라 불리는 시스템을 추가했습니다. 앞으로 책을 읽으시려면 아카이브 시스템을 작동시킨 다음, 손가락으로 누르시면서 페이지를 넘기면 됩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의 설명이 이루어졌고 작동법을 숙지한 나는 매뉴얼대로 시스템을 실행시켰다.

“와, 신기하네요. 말씀하신 대로 했더니 정말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누르며 책의 내용을 확인한 난 입을 떡 벌린 채 감탄했다.

[후후, 총장님과 상의해서 아르마이스 님께 도움이 될 만한 서적들을 틈틈이 아카이브에 넣어 둘 참이니 요긴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아르마이스 님께서 만족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필요하신 책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이르젠 제국이 아니라 카산트 대륙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구하겠습니다.]

미르헨 총장과 션 교수는 기뻐하는 내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전생에 대한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탬이 된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바쁘실 텐데, 저희가 너무 오래 붙잡았군요. 저희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여러모로 저에게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르마이스 님, 오늘 뵙게 돼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편안한 하루 되십시오.]

용건을 마친 이들은 꾸벅 인사를 한 뒤 화면을 빠져나갔다.

‘훗, 수업 중에 뜻밖의 수확을 얻었어. 이 아카이브 기능으로 카산트 대륙의 지식을 열람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짜릿한데?’

독서에 딱히 취미가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차원에서 쓰인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띠딩!

눈앞의 책을 클릭하려던 그때, 화면 우측에 있는 아카이브 항목에 느낌표가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느낌표를 터치한 나는 미르헨 총장과 션 교수가 책들을 업데이트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목록에 항목들이 계속 추가되고 있어. 다들 날 도와주시는데 오늘부턴 더 열심히 해야겠다.’

미르헨 총장과 션 교수의 지원에 자극받은 난 읽을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르마이스의 수기? 한마디로 내가 쓴 일기 같은 거잖아.’

목록들을 살펴보던 중 눈에 띄는 제목을 발견했다.

영혼 동기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전생의 행적을 정확하게 기록한 책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따라서 내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책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했다.

‘마을 사람들이 오크 무리에 학살당한 것을 목격한 난 분노에 사로잡혀 닥치는 대로 몬스터들을 사냥했다.

장시간의 전투 끝에 대장으로 보이는 자를 포획하는 데 성공한 나는 곧바로 심문에 들어갔다.

그 결과 카산트 대륙에 마왕이 강림했고 깊은 산이나 숲속에서 조용히 지내던 몬스터들을 호출하여 자신이 대륙의 새 주인임을 선언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자연에서 안빈낙도하며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추구했지만…….’

아르마이스의 수기의 첫 페이지에는 마왕과의 전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외에도 전생에서 내가 즐기던 취미, 좋아하는 음식 등도 적혀 있어 책을 읽을수록 흥미는 점점 더 커져 갔다.

‘옛날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구나.’

개인이 경험한 것을 적는 수기 형태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이나 문장력 자체가 워낙 뛰어났기에 독자를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엄청났다.

난 앉은 자리에서 무려 4시간을 꿈쩍하지 않고 수기를 읽었다.

‘동료들이 왜 그렇게 날 아꼈는지 이해가 되네. 이제 보니까 못하는 게 없는 만능캐였잖아.’

홀로 마왕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지녔지만,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몬스터 군단을 처리하려면 함께할 동료가 필요했다.

카산트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모으던 나는 내 곁에 설 자격이 있는 6명의 동료를 찾는 데 성공한다.

이후, 동료들을 데리고 카산트 대륙 남단에 있는 실버 마운틴에 들어가 3개월간의 훈련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즉, 아르마이스라는 사람이 단순히 전투에만 능했던 것이 아니라 마법, 공학, 전술 등 전 분야에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자였고 개개인이 보완해야 할 점들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음을 의미했다.

수기를 한참 읽다가 눈이 피곤해짐을 느낀 난 침대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창 하나가 불쑥 내 시야에 들어왔다.

<전생과의 인연이 강화되었습니다. 전생의 능력을 일부 되찾았습니다.>

<아르마이스의 능력 중 현자의 눈을 발동할 수 있게 됩니다.>

예상대로 아르마이스의 수기는 영혼 동기화를 촉진시키는 데 성공했다.

‘현자의 눈?’

영혼 동기화가 이루어진 기쁨도 잠시, 새로운 능력이 발현되었다는 이야기에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르마이스의 의지처럼 스스로 작동하는 능력일까?

궁금하다. 새로 부여된 능력이 과연 나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현자의 눈을 두고 고민을 하던 중,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르마이스 님의 고유 스킬인 현자의 눈이 뜨이게 되면 사물이나 사람을 분석, 파악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새롭게 생긴 능력으로는 스탯 확인이 있는데, 영혼 동기화가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완전한 활용은 아직 어려운 상태입니다.>

시스템은 내 마음을 읽고 적절한 답변을 제시했다.

‘게임처럼 스탯 확인이 가능하다고? 이런 게 가능하다면 김준석 패거리와 붙기 전에 승패를 예측할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

<안타깝게도, 현재 상태에서는 사용자님의 스탯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대신, 직감이 비약적으로 발달되셨기 때문에 전투 승산 유무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는 원하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영혼 동기화가 더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기에 실망스러운 감정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영혼 동기화를 위한 책들은 차고 넘쳤고 천천히 진행해도 크게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발동 조건이 뭐야?’

<본인의 스탯 확인을 위해서는 마음속으로 생각하시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단, 현재 살고 계신 곳은 필요한 스탯의 개수가 상당히 많아서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두고 현자의 눈을 발동시켜야 합니다.>

시스템의 설명을 단숨에 이해한 나는 글쓰기에 필요한 스탯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네모난 화면이 켜지더니 관련 스탯을 쭉 열거했다.

『필력- LV 2

체력- LV 3

상상력- LV 3

지능- LV 2

...

...』

중학교 때부터 글을 써 왔는데, 필력이 고작 LV 2라니…….

나름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지만, 예상보다 낮은 스탯은 날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체력과 근력을 높인 것처럼 필력도 금방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주눅 들 이유는 없었다.

<미션 수행만큼 큰 폭으로 스탯을 향상시키지는 못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하시는 수련으로도 스탯을 올릴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미르헨 총장님에게 배우기 전에는 필력이 더 낮았던 거야?’

<이전에도 사용자님의 필력은 똑같이 LV 2였지만, 수업 후, 필력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LV이라도 경험치에 따라 수준 차이가 있으니까요.>

‘경험치가 얼마나 채워졌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어? 그리고…….’

현자의 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세부적인 기능이 또 있는지 물었지만, 영혼 동기화율을 높여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후에도 난 아르마이스의 의지와 현자의 눈을 두고 대화를 나누었고 사용법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됐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오늘은 인간 샌드백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벽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한 나는 화면을 종료한 뒤 나갈 채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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