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27화 (27/122)

27. 7화 소설 공모전 (2)

“아까는 신나게 떠들더니, 왜들 이렇게 죽상이야?”

김호준은 나와 엄재웅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웹소설 작가가 됨과 동시에 우리를 멀리한 비열한 녀석과 친하게 지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나는 어깨에 올라간 팔을 밀어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날도 더운데 팔 좀 내리고 이야기해라.”

“어라? 진우 너 키가 좀 큰 것 같다.”

김호준은 상대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내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매력 상승으로 인해 키가 커진 나를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보면 볼수록 참 이상해.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네가 먼저 우리를 개무시하더니 요즘 들어 다시 말을 거는 이유가 뭐냐?”

엄재웅은 그가 친한 척하는 게 역한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질문했다.

“야, 옛날 일 가지고 아직도 꽁해 있는 거야? 알았어, 미안하다 미안해. 그것보다 소설들은 잘 썼어? 아까 들어 보니까 이번 공모전에 둘 다 작품을 제출할 것 같던데?”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네 작품에 집중하는 게 어때?”

“오, 먼저 말을 꺼내 줘서 고마워. 마침 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참이었거든. 최근에 웹소설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작가님이 있는데…….”

김호준은 우리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엄재웅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그 형님이 우리 업계에서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야.”

“후, 그래서?”

대답을 하는 내 얼굴에는 듣기 싫은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형님 덕분에 이번 소설 작업을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어. 게다가 기성 작가님들을 몇 분 소개해 주셔서 추가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고. 너희들에겐 미안하지만, 1등은 내 차지니까 욕심을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아, 윤채원이 변수라서 2등으로 밀릴 수도 있겠다.”

“가자, 재웅아.”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재웅이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갔다.

“쯧쯧, 왜 저렇게 융통성이 없을까? 나한테 조금만 잘 보이면 형님들을 소개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실력이 없으면 자존심이라도 버려야 하는데 참 안타깝다.”

김호준은 반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애들아, 다들 잘 지냈지? 오늘은 예고했던 대로 회지에 실을 소설을 제출하는 날이야. 소설을 쓴 친구들은 준비해 온 원고를 여기 탁상 위에 올려줄래?”

문학부 동아리를 이끄는 김지아 부장은 부원들이 모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예상보다 제출한 사람이 많네. 흠, 애들아 너희도 알겠지만, 회지에 넣을 수 있는 소설 수는 한정되어 있어. 분량을 고려했을 때 아마 일곱 작품 정도만 출간이 가능할 거야. 비록 단편이라지만, 열심히 썼을 텐데 이런 공지를 하게 돼서 미안하다.”

그녀는 책상에 수북이 쌓인 원고들을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다.

성문고등학교는 옛날부터 문필가들이 많이 나오는 학교로 유명했고 출신 작가님들 중에 문학부 동아리를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프로 작가의 꿈을 가진 학생들 사이에서는 성문고등학교 문학부 동아리라면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가입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동아리 내부 공모전이 입상하면 글쓰기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고 이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소설을 모두 제출한 상태였다.

“부장님, 질문 있습니다.”

“응, 이야기해 봐.”

힘들게 쓴 작품이 회지에 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침울해진 학생들 사이에서 김호준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하려 했다.

“3등 안에 든 부원에겐 추가적인 혜택이 있을까요? 단순히 출판만 되는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요.”

그의 눈치 없는 말에 반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몇몇 아이들은 김호준을 노려보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김지아 부장의 답변만 기다렸다.

“휴, 좀 있다가 알려 주려고 했는데, 기왕 질문이 나왔으니 알려줄게. 문학 공모전에 입상한 3명은 학교에서 주는 상장을 받게 될 거야. 비록 교내 입상이라 대외 수상보다는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우리 동아리는 대학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만큼 입시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야.”

김지아는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에 한숨을 크게 내쉬며 대답했다.

“음,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네요.”

소정의 상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김호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헛물켰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우리 학교에는 총 6개의 동아리가 있지만, 자체 공모전으로 교내 입상할 수 있는 곳은 우리 문학부 동아리밖에 없어. 호준이 너는 이미 웹소설 작가가 돼서 별거 아니게 느껴질 수 있지만, 부원들 대부분은 자신의 작품을 책으로 간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거야.”

“제가 다른 친구들 입장은 생각 못 했네요.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이야기해야겠어요.”

김호준은 그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웹소설 작가라는 게 언급되자 거만하게 굴었다.

“하여간, 저 자식은 보면 볼수록 재수가 없다니까.”

“냅둬. 하루 이틀 저러는 거 아니잖아.”

이 광경을 본 엄재웅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에게 속삭였다.

“아, 그리고 이번 심사에 특별히 이규석 선배님이 참여하시기로 했어. 참고로 회지의 인쇄를 맡은 출판사가 선배님네 회사야. 너희들 감성 출판사 한 번쯤은 들어 봤지?”

감성 출판사는 생긴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실력 있는 신예 작가들을 발굴하는 곳으로 유명한 회사였다.

이규석은 우리나라 최대 일간지인 대한일보에서 문학 칼럼을 썼고 재직 중에 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쌓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글을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고 이는 실력 있는 작가들을 영입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감성 출판사면 요즘 완전 핫한 데잖아.”

“우리 선배님들 중에 그런 멋진 분이 계셨다니, 진짜 대박이다.”

김지아 부장의 말에 조용했던 교실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훗,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이야기할 걸 그랬네. 참고로 3등 안에 든 부원들은 선배님이 밥을 사 준다고 하니까 참고해 애들아.”

“선배님이랑 같이 식사하다가 마음에라도 들면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럴 줄 알았으면 좀만 더 열심히 쓸 걸 그랬어. 너무 아쉽다.”

유명 출판사 사장과 식사를 할 수 있다는 말에 내부 공모전의 격은 한층 더 높아진 듯했다.

“이만하면 공지도 끝났으니까 이제 동아리 활동 시작하자. 오늘은 여름과 청춘이라는 주제로 시를 써 볼 거야. 지금부터 딱 30분의 시간을 줄 건데, 너무 잘 쓰려고 하면 진도가 안 나가니까 떠오르는 시구가 있으면 그대로 옮겨 적는 걸 추천할게. 그리고…….”

김지원 부장은 시 쓰는 팁에 대해 짧게 설명했고 부원들은 이를 토대로 시를 적어 나갔다.

30분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학생들은 자신의 쓴 시를 저마다 소개한 뒤 서로 논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애들아, 내가 쓴 시 죽이지 않냐? 상록수의 변하지 않은 푸르름을 나의 열정과 빗대 봤어. 어때?”

“그래, 잘 썼네.”

“어, 최고다 네가.”

김호준은 본인이 쓴 시를 손수 들고 와서 소개했지만, 재웅이와 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가만 보면 다른 때는 우리 곁에 오지도 않는데, 문학부 활동 때만 치근덕댔다.

이유는 아주 명확했다. 동아리 부원들이 거만한 김호준에게 말을 붙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이 꽤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태도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고 웬만한 우리에게 말을 걸며 애써 쾌활한 척하는 중이었다.

“진우야, 안녕?”

“어, 채원아. 김지아 선배가 바로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인사할 틈이 없었어.”

윤채원은 문학부 동아리 단짝인 이미나를 대동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얘가 왜 이러지?’

남몰래 이미나를 좋아하고 있던 엄재웅은 얼굴이 빨개졌고 나는 그런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사야 먼저 본 사람이 하면 되는 거지 뭐. 이번에 열심히 해서 우리 작품이 모두 출판됐으면 좋겠다.”

“채원이 너야 당연히 실리겠지만, 재웅이랑 나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 어쨌든 좋은 말 해 줘서 고마워.”

나는 덕담을 건네는 그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푸하핫, 미안하지만 진우랑 재웅이 소설이 회지에 실릴 일은 없을 거야.”

김호준은 별안간 웃음을 터트리며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그러자 윤채원은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진우랑 재웅이가 쓴 소설을 읽어는 보고 말하는 거야?”

“내가 중학교 때부터 잘 알고 지내서 하는 말이야.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얘네한테 글 쓰는 재능은 아예 없다고 보면 돼.”

“소설을 읽은 적도 없으면서 뭘 그렇게 단정하는 거지? 그리고 말을 해도 되는지 고민이 될 때는 입을 다무는 게 낫지 않을까?”

윤채원은 몰상식한 그의 말을 냉정하게 맞받아쳤다.

“쳇, 작가로 등단도 못 한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서 뭐가 좋다고 편을 드는 거야?”

“채원아, 됐어. 저 녀석이랑 이야기 그만하고 이쪽으로 와.”

“응 알았어.”

김호준과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나는 채원이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이미나와 함께 짐을 챙긴 뒤 우리가 있는 쪽에 와서 앉았다.

“정말 이상한 애야. 웹소설 작가로 데뷔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봐.”

“하루 이틀 저러는 게 아니라서 우리는 아예 무시하고 있어.”

이미나가 자리에 앉으며 한마디 하자 엄재웅은 맞장구를 치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나랑 겸상도 못 할 병신 같은 놈들이 감히…….’

면박을 당한 김호준은 분노로 인해 몸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쟤도 참 피곤하게 산다. 어떻게 보면 딱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여 나름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김호준은 결코 무시 받을 위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부족한 인성이 그의 성취를 모두 가리고 있었고 급기야 문학부 동아리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 처지였다.

“아까 썼던 시를 돌아가면서 읽어 보는 건 어떨까?”

“그래, 좋아.”

김호준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나는 재웅이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그와 있었던 불쾌한 일은 잊은 채 남은 시간 동안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 * *

평화롭던 주말은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나는 토요일부터 격기술 수업을 재개했고 정선 체육관에 나가 복싱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백성철 관장은 나에게 복싱을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이 있냐며 질문을 퍼부었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터라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한 상태였다.

‘조만간 결정을 내려야겠어. 계속 시간을 끄는 건 관장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후, 그것보다 공모전 결과가 어떻게 나왔으려나…….’

이날은 심사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고 문학부 사람들은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실에 모이기로 돼 있었다.

“와, 떨린다.”

“후, 제발 7명 안에만 들었으면 좋겠다.”

심사 결과를 듣기 위해 부원들이 하나둘 동아리실로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평소처럼 재웅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진우야, 설마 공모전 입상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 너랑 재웅이는 회지에 실리기만 해도 감지덕지니까 일찌감치 꿈 깨는 게 좋을 거야.”

김호준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와 도발성 멘트를 날렸다.

“우리가 입상하든 못 하든 너랑 무슨 상관이야? 후, 너가 자꾸 이러는 것도 진짜 지겹다 지겨워.”

엄재웅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풋, 쿨한 척하기는. 중학교 때 잠깐 놀아 줬다고 나랑 동급인 줄 아나 본데 너희는 내 상대가 아니야.”

김호준은 태생이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존심을 높이는 스타일로 우리들의 냉담한 반응에도 끝까지 정신 승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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