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28화 (28/122)

28. 7화 소설 공모전 (3)

“훗, 다들 결과가 엄청 궁금했던 모양이네?”

김지아 부장은 북적이는 교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공모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들은 그녀의 등장에 모두 자리로 돌아갔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발표를 기다렸다.

“선배님하고 식사는 언제 하는 건가요? 일정을 미리 알아야 시간을 조율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김호준은 이미 입상이라도 한 것 마냥 당당하게 질문했다.

“에휴, 안 그래도 입상자를 알려 주려던 참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이전에 공지했다시피 3등 안에 든 부원에게는 상장이 수여될 예정이야. 오늘 아침에 명단을 드렸으니까 아마 지금쯤이면 상장 제작이 완료되지 않았을까 싶네.”

드르륵.

“헉헉, 많이 늦었지? 여기 상장을 갖고 왔어.”

문학 동아리의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유선미 선배가 숨을 헐떡이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니야, 마침 딱 발표를 하려던 참이었거든. 자, 그럼 여러분들이 그토록 기다렸던 수상자를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지아는 상장이 들어 있는 케이스를 손에 들고 수상자를 호명할 준비를 했다.

“성문고등학교 문학 동아리 자체 공모전에서 3등을 한 사람은 바로 김호준 부원입니다. 선미야, 혹시 괜찮으면 시상자들 사진을 찍어 줄 수 있어?”

“응, 알았어.”

유선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김호준은 소태 씹은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호준아, 축하해. 앞으로도 문학부 동아리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해 주길 바랄게.”

“네…….”

그는 힘없이 상장을 건네받은 뒤, 억지 미소를 지었다.

“좀 웃어 봐. 스마일.”

“하하, 네…….”

윤채원을 제하면 경쟁 상대가 없다고 생각했던 김호준은 입상하는 것은 당연하고 최소한 2등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동상을 차지한 그는 부원들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짧게 소감 한마디 말해 봐.”

김호준의 속마음을 모르는 김지아 부장은 활짝 웃으며 수상 코멘트를 부탁했다.

“비록 기대했던 상은 아니지만, 전통이 살아 있는 성문고등학교 문학부 동아리에서 인정을 받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현재 받은 이 상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수상 소감을 밝힌 뒤, 자리로 돌아갔다.

‘윤채원 말고 2학년, 3학년 선배들 중에 내가 모르는 실력자들이 있을 수 있어. 혹시 알아? 1학년에서는 내가 유일한 수상자일지 말이야.’

김호준은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김지아 선배가 은상 수상자를 호명하는 순간, 힘들게 유지하던 평정심이 무너지고 말았다.

“다음은 은상을 수상하게 될 사람을 호명하겠습니다. 강진우 부원은 앞으로 나와 주시길 바랍니다.”

“와, 축하해 진우야. 네가 2등이래.”

발표를 들은 엄재웅은 자신의 일처럼 좋아했다.

“고마워, 재웅아.”

나는 재웅이를 보며 미소를 지은 뒤 단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만요. 물어볼 게 있습니다.”

“호준아, 질문은 시상식이 끝나고 하면 안 될까?”

김지아 선배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호준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심사가 잘못 이루어진 게 틀림없습니다. 물론 진우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건 맞지만, 뭔가 이상하다고요.”

“무슨 소리야, 호준아. 설마 나랑 선배들이 부정 심사를 했다는 이야기야?”

“그 그건 아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요. 개인적으로 진우의 글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합니다. 글을 아주 못 쓰는 건 아니지만, 특색이 없고 문장력이 부족해서 입상은커녕 회지에 실리기도 어렵다고 생각했거든요.”

“야, 김호준.”

단상 앞에 서서 상장을 받을 준비를 하던 나는 계속되는 모욕에 참지 못하고 그를 노려봤다.

“네가 웹소설 작가고 공모전 동상을 탈 정도로 실력이 출중하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무슨 근거로 나를 함부로 판단하는 거야?”

“애들아, 일단 진정하고…….”

“됐어, 그냥 지켜보자.”

유선미는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김지아는 오히려 이야기를 계속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녀는 예전부터 사사건건 헛소리를 하는 김호준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꾹 참았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직언을 내뱉자 막혀있던 체증이 가시는 듯했고 이 기회를 통해 김호준의 거만한 태도가 고쳐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근거? 쓰는 글마다 독자들이 외면하고 웹소설 유료 연재도 못 해 본 네가 나한테 근거를 운운할 자격이 있어? 양심이 있으면 자아 성찰 좀 해라. 상식적으로 네가 나보다 더 낫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성을 잃은 김호준은 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선배님들이 심사숙고해서 선정한 수상자를 네가 뭔데 함부로 평가해? 그리고 부원들 있는 데에서 창피하지도 않아? 선배님이 시상식 진행하고 있는데 왜 눈치 없이 끼어드냐고.”

“흥, 이번만큼은 선배님들이 잘 못 판단하신 걸 거야. 난 내 안목을 믿어.”

“그래. 포털에 웹소설도 연재하고 다른 작가님들과 친해지니까 눈에 뵈는 게 없을 수도 있어. 그런데 있잖아. 인정은 구걸하는 게 아니야.”

“뭐? 구걸!? 너 따위가 뭐라고 나한테 감히…….”

화가 난 김호준은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들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며 언성을 높였다.

“네가 정말 그렇게 대단하면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알아봐 주기 마련이야. 그리고 사실, 동아리 내에서 널 인정하는 사람들도 꽤 있을 거고. 하지만 거만이라는 거만은 다 떨면서 툭 하면 분위기를 흐리는데 누가 널 좋아하겠어?”

“닥쳐, 임마. 네가 뭘 안다고…….”

“야, 그만하자. 선배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김호준을 외면하고 김지아 선배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괜찮아, 진우야. 이야기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자 그럼 다시 시상식을 진행할 테니까 호준이 너도 그만 자리에 앉아.”

“아, 아니 그게…….”

“아이 씨, 그만해라 진짜.”

“추하다, 추해. 김호준, 적당히 하고 앉어.”

화가 풀리지 않은 그는 대화를 이어 가려 했지만,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입을 꽉 다문 채 자리에 앉았다.

“진우야, 너도 짧게 소감 한마디 해.”

“네, 예상치도 못한 큰 상을 받게 돼서 영광입니다. 처음 문학부 동아리에 들어왔을 땐, 글쓰기에 문외한이었지만 선배님들의 지도와 친구들의 도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는 성심성의껏 수상 소감을 이야기했고 뒤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공교롭게도 금상을 수상하게 될 부원도 1학년이네? 이번 공모전은 파란의 연속인 것 같아.”

김지아 부장은 실력이 출중한 후배들의 등장에 뿌듯해하며 말했다.

“여러분들도 예상하셨겠지만, 공모전 금상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사람은 바로 윤채원 부원입니다. 모두 박수로 수상자를 맞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역시, 윤채원은 우리랑 달라.”

“서점에서 채원이가 쓴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고등학생의 필력이 아니더라고.”

학생들은 윤채원의 수상을 당연시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후, 그녀는 차가운 이미지에 걸맞게 감사하다는 짧은 코멘트를 남겼고 이로써 공모전 시상식은 마무리되었다.

“이규석 선배님께서 수요일 저녁 6시로 레스토랑을 예약하셨다고 하니까 입상자들은 별일 없으면 참석해 줬으면 좋겠어.”

“네. 선배님.”

“네.”

“…….”

나와 윤채원은 곧바로 대답했지만, 김호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후, 중학교 때는 안 그랬는데, 어쩌다가 저렇게 됐을까?’

그는 소설에 관심이 많던 나와 엄재웅에게 접근했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소설가로서의 꿈을 함께 키워 나갔다.

중학교 졸업 전까지만 해도 김호준은 무료 연재란에 올린 소설이 잘되길 빌며 전전긍긍했고 불안할 때면 우리에게 연락하여 하소연을 하는 등 많은 의지를 했다.

하지만, 작품이 점점 독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급기야 출판사로부터 계약 제의까지 들어오자 우리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툭 하면 계약서를 꺼내며 회사 자랑을 일삼았고 웹소설 사이트에 올라간 우리의 글을 혹평하며 자존심을 건드렸다.

‘안쓰럽긴 하지만, 다 자업자득이야.’

시상식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갈 때까지도 김호준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꽉 깨문 채 허공을 응시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수요일이 되었다.

수업을 마친 나는 채원이와 함께 레스토랑이 있는 강남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선배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까 조금 떨리네.”

“재능 있는 작가에게는 누구보다 호의적인 분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녀는 여느 때처럼 차분한 태도로 나를 안심시켰다.

“선배님을 본 적이 있어?”

“응, 할아버지랑 친분이 있어서 가끔 가족들끼리 식사를 하거든.”

“하긴, 이사장님이라면 동문 선배들하고 연락하는 게 어렵진 않겠다.”

채원이의 설명에 금세 납득이 되었다.

“대화하면서 가니까 금방 도착하네.”

지하철은 어느새 강남역에 도달했고 우리는 약속 장소로 천천히 걸어갔다.

“애들아 여기야.”

김지아 선배는 동아리 부장 자격으로 회식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녀는 계단을 올라오는 우리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맨날 학교에서만 보다가 밖에서 만나니까 색다르고 좋다. 내가 알아봤는데 선배님이 예약한 식당이 엄청 고급스러운 데더라고. 선배님께서 오늘 다 쏘신다고 했으니까 기분 전환 제대로 해 보자.”

김지아 선배는 두 손을 꼭 모으며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다.

“레스토랑은 어디에 있어요?”

“저쪽으로 2분만 걸어가면 레스토랑이야. 호준이도 다 왔다고 하니까 잠깐만 기다리다가 함께 출발하자.”

“네, 선배님.”

김호준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선배님들이 참석하는 자리인 만큼 불편한 티를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응, 그래. 시간 맞춰서 잘 왔네?”

“이규석 선배님과 첫 만남인데 당연히 그래야지요.”

김호준은 김지아 선배가 말을 걸자 무뚝뚝한 반응을 보였다.

보아하니 시상식 때 일로 아직도 꽁한 듯 보였다.

“호준아, 오늘은 선배님도 계시니까 화기애애한 모습만 보여 주자. 알았지?”

“자리가 자리인 만큼 호준이도 저도 공과 사를 구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쳇, 알겠습니다.”

내가 의식적으로 녀석을 거론하자 김호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대답했다.

일부로 시비를 걸 생각은 없었지만, 툭 하면 돌발 행동을 하는 그에게 일종의 경고를 보낸 셈이었다.

“그래, 그래. 서로 배려하면서 지내면 싸울 일이 뭐 있겠어?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선배님 기다리실 테니까 빨리 이동하자.”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김지아 선배는 우리를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규석 사장님으로 예약했는데요.”

“네, 사장님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시죠.”

레스토랑에 도착한 우리는 웨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특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전에 인사드렸던 김지아라고 합니다.”

“하하, 반갑습니다. 뒤에 계신 후배님들이 이번 공모전에 입상하신 분들이지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안녕하십니까? 김호준이라고 합니다.”

“오, 이번에 동상을 탄 후배님이시지요? 작품 인상 깊게 잘 읽었습니다.”

“어엇,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김호준은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격했다는 태도를 보였다.

문학부 동아리에서는 안하무인이었던 그는 유명 출판사 사장인 이규석 앞에서는 아부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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