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33화 (33/122)

33. 9화 각성 (3)

“제가 나름대로 계약서를 작성해서 가져와 봤습니다. 내용을 한 번 검토하시고 이야기를 진행하도록 합시다.”

“네,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선배님으로부터 계약서를 받은 나는 내용을 꼼꼼히 검토했다.

‘생각보다 조건이 괜찮잖아?’

통상적인 웹소설 작가의 경우 플랫폼과 회사에 수익의 50%를 떼 주고 남은 절반을 가져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계약서에 의하면 내가 가져가는 수익은 6할에 달했다.

“아직 신입작가에 불과한데, 조건이 너무 파격적인 거 같습니다.”

“훗, 사실 회사 내부에서도 반발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통상적인 상식보단 제 안목을 믿는 편이라서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어 주신 만큼, 열심히 집필 활동을 하겠습니다.”

나는 선배님의 호의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계약 내용이 마음에 드시면 서명란에 사인을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웹소설이 흥행할 시 웹툰과 드라마 론칭도 검토할 예정이니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규석 선배는 대한일보에 오래 재직했던 만큼, 대형 포털과 방송사에 광범위한 인맥이 형성되어 있었고 나를 필두로 웹소설 시장에 정착한 뒤 유망 작가들을 대거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혹시 연재는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웬만한 웹소설 플랫폼들과는 협의를 모두 마친 상태라 작가님만 준비되시면 당장이라도 원고 제출이 가능합니다. 웹소설 사업부가 자리를 아직 못 잡은 게 옥에 티긴 하지만, 그 부분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즉, 작가님만 준비되면 연재는 문제없다는 이야기지요.”

웹소설 사업부 최근에 론칭한 탓에 내부적으로 조금 어수선한 건 사실이었지만, 나를 전담할 직원까지 모두 내정해 놓은 상태라 당장 연재를 한다고 그래도 거리낄 게 없었다.

“한 달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 푸른닷컴과 같은 회사는 연재를 위해서 분량을 비축해 둬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푸른닷컴은 웹소설 플랫폼 시장에 진출한 지 1년밖에 안 되는 후발 주자였지만, 국내 최대의 포털 사이트라는 이점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였다.

“한 달이 아니라 더 여유 있게 쓰셔도 괜찮으니 편할 때 연락을 주세요. 아, 그리고 웹소설 외에도 일반 소설 작품을 쓰셔도 되니까 끌리시는 대로 집필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께서 내 잠재력을 높게 평가 해 주셨다고는 하나 신입 작가라는 것을 감안하면 과분한 대우임이 틀림없었다.

“저, 괜찮으시면 간략하게 제 집필 계획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우선 공모전에 썼던 작품을 활용해 볼 계획입니다. 이 외에도 트렌드를 분석하여…….”

선배님의 계속된 배려에 긴장이 풀린 나는 총장님과 논의했던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았다.

“동시 연재를 하면 우리 회사로서는 좋지만, 학교생활과 병행하면서 하기에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내 계획을 들은 이규석 선배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어차피 곧 있으면 방학이고 학교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어서 학교에 있는 게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 그리고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아직 미성년자셔서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맺고 수익 활동을 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여기 제가 미리 준비한 동의서가 있으니 부모님께 사인을 받아 오시면 됩니다.”

이규석 선배는 동의서가 들은 서류 봉투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봉투 안에 계약서 제본도 함께 넣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는 부모님께서 계약의 내용을 검토할 수 있게 안배를 해 두었다.

“동의서에 사인을 받고 편하실 때 우리 회사에 오시면 됩니다. 1층에 안내 데스크가 있는데 그곳에 있는 직원에게 건네주면 저희가 적절히 처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이후 소설에 관한 간단한 대화가 이어졌고 용건을 마친 우리는 커피를 마신 뒤 헤어졌다.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진행을 하려고 했는데, 조금 아쉽다.’

그동안 커 오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린 적이 거의 없는 나는 소설과 복싱으로 크게 성공한 뒤에 모든 것을 공개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요일이니까 다들 집에 계시겠지?’

나는 지하철을 타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 * *

내 부모님은 마인드넷이라는 포털 회사에서 일하고 계신다.

마인드넷은 푸른닷컴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포털 사이트였는데, 부모님께서는 공교롭게도 웹툰과 웹소설을 취급하는 부서에서 근무하셨다.

여태껏, 웹소설 쓰는 것을 말씀드린 적이 없었으나 관련 부서에서 일하시는 만큼 대화가 잘 통할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아빠, 엄마.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집에 도착한 나는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계시는 부모님께 말을 걸었다.

“아들이 할 말이 있다는 데 한번 들어 봐야지. 진우야, 여기 앉아.”

아버지는 티비를 끄고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요즘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바쁜 것 같은데 무슨 사고라도 친 건 아니지?”

“훗,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이야기 좀 나눠요.”

엄마가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우울한 나날을 보낸 탓에 부모님께 먼저 말을 건 적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엄마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우선 이걸 좀 봐 주실래요?”

나는 서류 봉투를 아버지에게 건넸다.

“이게 뭐냐?”

“열어 보시면 알 거예요.”

“흠…….”

아버지는 봉투를 연 다음 계약서와 동의서를 꺼내 읽으셨다.

10분 쯤 지났을까, 아버지는 들고 있던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천천히 입을 여셨다.

“허구한 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서 뭐 하나 싶었는데, 게임이 아니라 소설을 쓰고 있었구나. 감성 출판사는 최근에 우리 회사와도 MOU를 맺어서 잘 아는 회사야. 웹소설 시장에는 이제 막 진입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나 견실한 출판사지.”

“저희 선배님께서 운영하는 회사라 운 좋게 연결이 됐어요.”

“그래, 사람 일이라는 게 다 인연 따라가는 거더라. 아무튼 여기에 사인을 하면 되는 거지?”

옛날부터 자녀의 진로에 대해서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줘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던 아버지는 선선히 펜을 들고 사인을 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묵묵히 있던 엄마가 대화에 참여했다.

“진우야, 나도 일단 허락은 하겠지만 작가로 성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마인드넷에서도 현재 웹소설과 웹툰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데, 연재에 도전하려는 작가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하고 그중에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해.”

“얼핏 들은 이야기로 지망생을 포함해서 웹소설을 쓰는 사람만 20만 명이라고 들었어요. 하지만 어느 곳이든 최고가 되는 건 똑같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고작 그 정도 이유로 포기할 거였으면 애당초 말을 꺼내지 않았을 거다.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 대화를 이어 갔다.

“저는 작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지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포기한 건 아니지?”

“진우 엄마, 남에게 죄짓는 일만 아니면 자식들이 하는 일을 지원해 주기로 했잖아. 지연이 때는 군말 없이 동의했었으면서 진우한테는 왜 그래.”

아버지는 못마땅해하는 엄마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지연이야 재능이 있으니까…… 후, 아니다. 그래, 진우야. 아빠 말처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한번 최선을 다해서 해 봐라.”

엄마는 대형 기획사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지연이와 내가 같냐고 말하려 했지만, 자식 간의 비교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말을 아끼기로 했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서 실망하시는 일이 없도록 할게요.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원래는 대화한 김에 복싱에 대해서도 논의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의 반응을 보니 복싱 이야기는 뒤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허락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나는 부모님의 사인이 들어간 동의서를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후, 막상 시작하려니까 할 게 산더미 같네. 당분간은 글하고 복싱에만 전념해야겠어.’

나는 미션 수행을 위해 컴퓨터 전원을 켠 뒤 바로 옆에 아카이브를 실행했다.

평소 웹소설을 쓰며 내공을 쌓은 터라 타자를 빨리 칠 자신이 있었다.

적막한 내 방에는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 가득했고 난 빠른 속도로 카산트 대륙의 베스트셀러를 옮겨 적는 데 집중했다.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분석하면서 필사하자. 미션 수행을 통해 스탯이 오른다고 해도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활용하기 편할 거야.’

속기사처럼 빠르게 적는 데에만 치중하면 배움의 의미가 퇴색될 확률이 높았다.

저자의 서술 방식과 단어 선택, 그리고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어떻게 조성하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야 미션 수행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함에 따라 신경 소모가 적지 않았지만, 이전 미션을 통해 정신력이 향상된 터라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필사는 일단 여기까지만 하자.’

2시간가량 미션을 진행한 나는 ‘플레임’의 내용이 저장된 파일을 실행시킨 후, 웹소설화 작업에 돌입했다.

똑똑

“네.”

“진우야, 소설 쓰고 있어?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하려고 하는데, 같이 안 갈래?”

“저는 집에서 대충 때울게요. 지연이랑 잘 다녀오세요.”

“그래, 알겠어. 아침에 끓여 놓은 국 있으니까 잘 데워 먹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던 엄마는 막상 열심히 하는 내 모습에 안도했다.

그녀는 작업에 열중하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가족들을 데리고 외식하러 나갔다.

‘조금 있다가 새 소설 구상도 해야겠어.’

월요일부터 백성철 관장님과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기 때문에 1분 1초가 아깝게 느껴졌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플레임을 웹소설화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연재를 위해서는 이후 에피소드도 고민해야 했고 새로운 소설도 슬슬 써야 할 시점이었다.

다행인 점은 하루에 3시간에서 4시간의 수면만을 취하고도 몸이 개운해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내 체력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

시스템에는 사용자가 숙면에 들 때면 자동으로 회복을 시켜 주는 기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공식은 대충 아니까 대중성을 최대한 살려 보자.’

밤은 깊어 자정에 이르렀지만, 작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새 소설의 제목을 ‘천마회귀’라 정하고 대략적인 스토리를 고민했다.

오늘 오후부터 새벽까지 끼니를 때우거나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 소설 쓰기에 열중했다. 하지만 피곤하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내 밝은 미래의 시금석이 될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 *

주말은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난 나는 가방을 짊어지고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운동에 필요한 도구들은 체육관에 갖다 놓은 상태였고 야외 훈련 때는 관장님께서 손수 챙겨 주시겠다고 한 덕분에 가방 안에는 교과서와 간단한 필기구만 들어 있었다.

“진우냐?”

“네, 관장님.”

아직 동이 트지 않아 길거리는 어두웠지만, 체육관 내부는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백성철 관장은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선 나를 보며 스트레칭을 지시했다.

“접수 서류는 내가 대충 작성해 놨어. 아, 학교장 확인서는 어떻게 됐어?”

그는 몸을 풀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 중에 받을 것 같아요.”

채원이가 할아버지에게 내 일을 언급해 준 덕분에 추천장부터 확인서까지 손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다.

참고로 설명하면 학교장 확인서는 접수를 위해 필요한 서류 중 하나였다.

“접수 기간까지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돼. 어차피 웬만한 건 내가 다 준비해 놨거든.”

“감사합니다, 관장님.”

백성철 관장님은 필요한 정보를 일찌감치 나에게 물어봤기에 서류 작성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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