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41화 (41/122)

41. 11화 능력 개안 (1)

“훗, 작가님께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이규석 선배는 상기된 얼굴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제가 그만 호들갑을 떨었네요.”

“호들갑을 떨면 어떻습니까? 본격적인 작가 생활이 시작된 날이지 않습니까?”

뿌듯했다.

감성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을 때 이미 작가 대우를 받고 있었지만, 웹소설 사이트에 연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를 작가로 소개하기에는 민망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누굴 만나든 작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직원들과 작가님의 소설을 두고 회의를 했는데,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처음 보내 준 원고들도 나쁘지 않았지만, 제출용으로 보낸 최종 원고에서 직원들이 큰 인상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좋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하네요.”

‘역시, 내가 봐도 수정 후의 글이 훨씬 나았어.’

지난 필사 미션 후 필력이 상승한 나는 회사에 제출할 원고를 한 번 더 수정했다.

스텟이 오른 뒤에 글을 쓰니 전보다 질적으로 훨씬 나아진 건 물론이고 직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

“글을 잘 쓰셔서 그런지, 데뷔작인데도 상당히 좋은 플모를 약속 받았습니다.”

“제가 잘 써서라기보다는 감성 출판사에서 푸른닷컴과 협의를 잘해 준 덕분인 것 같습니다.”

선배님의 칭찬에 난 손을 저으며 공을 회사로 돌렸다.

푸른닷컴을 비롯한 웹소설 플랫폼은 프로모션을 진행함에 있어 인기, 글의 완성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데, 이런 요소들 사이에서도 플랫폼 관계자들과 잘 협의할 수 있는 회사의 능력이 무척 중요하게 작용했다.

따라서 마냥 내 글이 잘나서 프로모션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푸른닷컴 측에서 작가님께 제의할 게 하나 있다고 하더군요.”

내내 웃음을 띠며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 가던 이규석은 손깍지를 낀 채 진지하게 말했다.

“어떤 제의가 들어왔나요?”

“두 작품 다 심사를 통과해서 비슷한 시기에 작품을 출간할 수 있는 건 맞지만, 그렇게 하면 다른 작가님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군요.”

“푸른닷컴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짐작이 가네요.”

비록 정식 연재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웹소설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알았기에 선배님의 말씀이 금방 이해가 갔다.

지금 현재도 웹소설 플랫폼에 연재하기 위해 수많은 작가들이 일정을 조율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작가가 동시에 두 작품을 연재하게 되면 작가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는 9월에 연재를 시작하고 ‘천마회귀’는 10월 중순에 연재하면 반발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는 플레임의 웹소설 제목으로 원소설의 내용과 웹소설적 요소가 절묘하게 섞인 일종의 개정판이었다.

“한 달 정도 텀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걸로 충분할까요?”

“그래서 준비한 묘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조금 번거롭겠지만 ‘천마회귀’를 연재할 때는 다른 필명을 사용하는 겁니다.”

“흠, 알겠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쓰던 ‘월명’이라는 필명은 이틀을 고민하여 지은 만큼 애착이 많이 갔다. 그러나 동시 연재를 위해서는 별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필명을 쓰면 여러 이점이 있습니다. 나중에 동일 인물인 게 들키더라도 쉽게 대처할 수 있거든요.”

“그런 부분은 저보단 선배님께서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저 믿고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진행하는 것으로 하고 대화를 마무리 짓도록 하죠.”

“네, 선배님. 항상 신경 써 주시는 만큼 최선을 다해 글을 쓰겠습니다.”

연재 일정에 관한 논의를 마친 우리는 일상적인 대화를 잠시 나누다가 헤어졌다.

‘열심히 쓴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복싱 훈련과 소설 쓰기를 병행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 3시간 정도 자는 건 예사였고 피곤한 상태에서도 해야 할 일을 마치기 위해 시간을 쪼개 가며 생활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대가가 하나도 없다면 아무리 체력이 좋아졌다 한들, 버티기 어려웠을 거다.

서울 대표 선발전 우승과 심사 통과라는 낭보를 연달아 들은 덕분에 그동안 쌓인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

“다녀왔습니다.”

선배를 만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나를 불러세웠다.

“진우야, 잠깐만.”

“네, 엄마.”

“너, 혹시 최근에 복싱 대회 나갔었어?”

“헉,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엄마의 입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자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학교에서 전화 왔어. 네가 이번에 서울시 대표로 전국 체전 본선에 나가기로 확정됐다고. 어쩐지 최근에 몸이 좋아졌다 싶었는데 뒤에서 몰래 운동을 하고 있었구나?”

아들의 성과를 자랑스럽게 여긴 아버지는 입이 헤벌쭉이 되어 있었다.

“우리한테 비밀로 한 건 좀 서운하긴 하지만, 어쨌든 축하해 아들.”

엄마는 짐짓 서운한 척을 했지만,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감사해요. 기왕 시작한 거 복싱도 제대로 해 볼게요. 아,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제가 이번에…….”

나는 내친 김에 웹소설을 연재하기로 한 사실까지 이야기했고 부모님은 아들의 겹경사를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진우가 대회에서 우승한 건 좋지만, 복싱이 워낙 거친 스포츠라 걱정이 되네.”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우려를 표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도전하는 내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은 눈치였다.

“체력이 있어야 소설이든 공부든 잘할 수 있는 거야. 난 오히려 우리 아들이 하고 싶은 건 뭐든 다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서 앞으로도 좋은 소식 전해 드릴게요.”

“휴,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진우야, 엄마도 널 응원하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라.”

“네, 엄마.”

부모님은 애당초 우리를 낳을 때부터 자신들의 의견을 강요하지 않고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존중하기로 약조했기 때문에 대화는 별 마찰 없이 화기애애하게 이루어졌다.

“요즘 따라 우리 집안에 경사가 계속 있네?”

“그러게, 이래서 자식 키운 보람이 있다고 하는 건가?”

“저 말고 지연이한테도 좋은 일이 있나 봐요.”

나는 부모님의 대화를 듣다가 궁금하여 질문했다.

“아직 못 들었나 보네? 이틀 전에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9월쯤에 공중파에서 데뷔하기로 결정됐대.”

“와, 진짜요?!”

동생의 데뷔가 확정됐다는 이야기를 듣자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지연이도 지연이지만, 진우 너한테도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열심히 해서 동생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오빠가 될게요.”

“부담되게 뭐 하러 그런 이야기를 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이런저런 건 신경 쓰지 마. 얼른 가서 씻고 푹 쉬어라.”

지연이와의 비교로 스트레스를 받을 걸 염려한 엄마는 방에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전혀 부담되지 않으니까 편하게 축하하셔도 돼요. 전 그럼 이만 글 쓰러 가 볼게요.”

“그래.”

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방에 들어왔다.

‘이거 나도 좀 분발해야겠는데? 방학이 아직 조금 남았으니까 이 기간을 잘 보내 보자.’

백성철 관장님은 9월 중순까지는 새벽 훈련을 제한 다른 훈련 일정은 일절 잡지 않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전국체전이 10월에 열려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선수라면 지금부터 당장 합숙 훈련을 하는 등 대비를 하겠지만, 관장님은 나의 실력이라면 2주에서 3주 정도 준비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미르헨 총장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좀 더 해 봐야겠어.’

카산트 대륙 최고의 현자인 미르헨 총장은 내가 문제에 직면할 때면 혜안을 주곤 했다. 나에게는 성공한 소설가와 복서가 되는 꿈 외에도 성공한 사업가가 되려는 꿈도 같이 있었다.

미성년자는 나이로 인해 자본이 있다 한들 법인 설립에 제한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템으로 사업을 벌일지 결정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미르헨 총장의 조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르마이스 님, 안녕하십니까?]

“오셨습니까, 긴히 상의드릴 게 있어서 급하게 호출했습니다.”

화면에는 인물별로 호출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기에 미르헨 총장과 미팅을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카이브를 통해 자료들은 잘 전달받았습니다. 마침, 분석을 막 끝냈던 참이라 아르마이스 님을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미르헨 총장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카이브는 대륙 최고의 기술자인 션 다이스 교수가 차원 연결 장치를 조작하여 만든 시스템이다.

시간이 날 때면 차원 연결 장치를 손보던 그는 아카이브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여 현실 세계의 문서를 카산트 대륙으로 전송할 수 있도록 개량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활자가 적힌 문서들을 한쪽에 모은 뒤 아카이브 시스템의 전송 기능을 실행하면 인쇄된 문자들이 데이터화 되어 이르젠 제국으로 전달됐다.

“스포츠, 문학, 경영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자료를 최대한 보내 드리긴 했는데 도움이 됐을지는 모르겠네요.”

[카산트 대륙과 지구는 몇 가지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아 분석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사업을 하고 싶으시다고 하셨지요?]

“물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준비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어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밝혔다.

[아르마이스 님께서 예전에 스탯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리가 마법의 경지를 서클로 구분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능력들을 수치화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땐 일단 매력과 지능을 상당히 높여야 할 것 같습니다. 주신 자료를 보니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그에 걸맞은 보수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상당한 것 같더군요.]

미르헨 총장은 실력 하나만으로는 커다란 부를 이루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일례로 현실 세계에서 격투기 세계 챔피언이 경기당 12억에서 20억 사이를 버는 반면에 어떤 선수는 악동 이미지와 화려한 언변을 토대로 경기당 수백억을 버는 자도 있었다.

게다가 한 번 스타성을 갖추면 자신의 이름으로 술, 의류, 향수와 같은 제품들을 브랜딩하기도 쉬워 유명세를 갖추는 건 성공을 위한 필수 코스였다.

“네, 계속 말씀하시죠.”

나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총장님의 말씀을 받아 적으며 열심히 경청했다.

[지력 같은 경우는 모든 학습의 토대가 되는 능력입니다. 경영 자료를 분석하거나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요. 아 그리고 아까 말씀을 못 드렸는데 통찰력도 반드시 키우셔야 합니다. 큰 인물은 자고로 혼자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지요. 사람을 보는 안목을 키우고 시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려면…….]

성공학 도서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총장님의 입에서 쏟아졌다. 솔직히 살면서 한 번쯤은 들은 내용이었지만, 복싱과 소설에만 미쳐 있던 나에게 상당히 유익했다.

“총장님 덕분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대충 감이 잡힌 것 같습니다. 저 그런데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통찰력이랑 매력이 성공에 도움이 되는 요소라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력이 저에게 꼭 필요할까요? 요즘 성공한 스포츠 선수를 보더라도 통역가는 한 명쯤 다 데리고 다니고 소설도 번역가가 있어서 굳이 외국어를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력을 갖추셔야 하는 건 단순히 외국어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 그리고 어차피 그 부분은 해결할 방법을 제가 이미 찾았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외국어를 쉽게 습득할 방법을 찾았다는 말에 호기심이 들었지만 총장님의 말씀이 끝나지 않았기에 차분히 더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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