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42화 (42/122)

42. 11화 능력 개안 (2)

[성공한 사람마다 공통점이 하나씩 있다고 하지만, 각 나라가 갖는 문화적 배경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아르마이스 님께서 살고 계시는 대한민국은 학연이 굉장히 중요한 곳이더군요. 그리고 선비라는 용어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학문을 숭상하는 국가이기도 하고요.]

미르헨 총장은 내가 사는 현실을 분석하는 것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다다른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뭐 그 부분에 대해서 반박할 거리가 많긴 하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핵심만 말하겠습니다. 만약, 스포츠나 소설로 성공한 사람이 최고 명문 대학을 나오면 아르마이스 님의 나라에서 꽤 나 화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흠, 그렇긴 하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소설을 한 편 더 쓰고 경기를 뛰는 게…….”

우리나라에서 대학이 중요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과거와 같이 명문대를 나왔다고 인생이 보장되는 시기는 이미 지났기에 쉽사리 공감이 안 됐다.

[그냥 성공한 소설가나 복싱 선수로 남고 싶다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아르마이스 님과 같이 다른 분야로의 외연 확장을 꿈꾸는 분이라면 명문 대학이 큰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지요. 아, 선택은 어디까지나 아르마이스 님의 몫이니 제 말은 참고만 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르헨 총장은 행여나 자신의 말을 강요처럼 느낄까 봐 말을 조심했다.

“시간을 두고 숙고해 보겠습니다.”

[진지하게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최근 아르마이스 님에 관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과거에 아르마이스 님이 위대한 웅변가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제가요?”

꾸준한 훈련과 여러 성과들 덕분에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원래 내 성격은 내성적이고 조용했다. 오죽 말수가 적었던 탓에 나중에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겠냐며 아버지께서는 종종 우려의 감정을 드러내시곤 했다.

전생의 내가 현재의 내 성격과 정반대의 면모를 보였다는 총장님의 말은 흥미를 끌었고 나는 귀를 세우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1,000년 전 마왕이 강림했던 그 시절에는 수도 없이 많은 국가들이 난립해 있었습니다. 지금은 대륙 공용어가 있다지만, 당시에는 국경을 조금만 벗어나도 언어가 달라 서로 소통하기 어려웠지요. 이런 상황에서 아르마이스 님은 마왕 퇴치라는 목표를 세우고 여러 국가의 영웅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합니다.]

“전생의 저는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나 보네요.”

[그뿐이 아닙니다. 아르마이스 님께서는 몬스터들과의 대치 상황에서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적군의 기세를 꺾는 연설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 말씀은 설마…….”

미르헨 총장의 말에 난 경악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국가의 언어야 공부로 익힐 수 있다지만,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달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르마이스 님께서 위대한 웅변가로 알려지신 것도 이 때문이지요. 눈치를 채셨겠지만, 아르마이스 님은 모든 종류의 언어에 통달한 언어 마스터이기도 했습니다. 즉, 아직 발현되지 않은 전생의 능력 중에 언어와 관련된 게 분명히 있다는 말씀이지요.]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기억의 편린이 점점 깨어나고 있습니다.>

<시스템 내에서 자동 번역 기능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준 정보는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능력을 일깨웠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건 현실 세계에서 엄청난 메리트였고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당장 실행시켜 줘.’

<영혼 동기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동기화율을 높이시고 다시 시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용한 기능을 찾았음에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총장님, 아카이브에 접속하면 방금 말씀하신 자료를 열람할 수 있나요?”

[하하, 물론입니다. 새로운 자료를 찾을 때마다 바로 업데이트를 하고 있으니 편하실 때 열람하십시오. 아, 그리고 최근에 션 다이스 교수와 협업을 해서 제국 도서관의 모든 자료를 아카이브에 넣어 두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궁금하신 부분이 있으면 절 부르시거나 검색을 하시면 됩니다.]

미르헨 총장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답변했다.

‘좋아, 대화가 끝나는 대로 나랑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읽어 봐야겠어.’

나는 당장이라도 아카이브를 작동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의 행적이 적힌 문헌 자료를 읽는 건 영혼 동기화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아르마이스 님, 괜찮으시면 남은 대화를 마저 해도 괜찮겠습니까?]

“아, 네네. 계속하시죠.”

기쁨에 취해 있던 나는 다시 펜을 들고 총장님의 말씀을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지력과 통찰력을 키우시면 제 조언 없이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아르마이스 님께서 보완하셔야 할 능력으로는…….]

이후 설명은 1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긴 시간 손을 쉬지 않고 놀림에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성공 요소를 하나하나 체크하는 것은 더 큰 발걸음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궁금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지금 말씀해 주신 걸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 같습니다. 남은 설명은 나중에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메모지에는 내용들이 빽빽이 적혀 있었고 여기에 무언가를 더 추가하는 건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탯을 적절히 올려서 혜안을 갖추도록 노력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일을 진행하시면서 순간순간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할 때가 올 테니까요.]

미르헨 총장은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나의 곁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그였지만, 내가 성공하려면 의사 결정을 하는 데 있어 결단력과 순발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용건을 마친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우선 오늘 해야 할 거 먼저 하자.’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의 연재가 앞당겨졌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야 했다.

4시간 동안의 작업 끝에 2화 분량의 소설을 쓴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글 쓰는 속도를 더 높여야겠어.’

2시간에 5,500자를 쓰는 건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 봐도 상당히 빠른 페이스였지만, 미션을 통해 스탯을 높일 수 있는 나로서는 만족할 만한 속도는 아니었다.

남은 방학 기간을 불태우기로 결심한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생각했다.

‘지력과 매력 그리고 필력을 높일 수 있는 미션이 필요해.’

내 마음을 읽은 아르마이스의 의지는 금세 미션을 생성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사용자의 욕망을 읽었습니다.>

<미션들이 생성됩니다.>

<목표: 목록에 적힌 도서들을 읽거나 필사하십시오.>

<보상: 지력, 매력, 필력, 상상력 LV UP>

‘오케이. 그럼 목록들을 먼저 살펴볼까?’

화면 한쪽에는 미션 수행을 위한 도서 목록이 있었고 난 이를 클릭한 뒤 확대하여 읽어야 할 책들을 확인했다.

‘각 스탯 별로 필요한 책들이 구분되어 있어서 편리하네.’

목록에 쓰인 책들 옆에는 어떤 스탯과 연계됐는지 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필사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읽기만 해도 충분한지도 모두 구별이 되어있었다.

<방금 언급한 것처럼 복수의 미션들이 한 번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스탯은 특정 도서를 클리어함에 따라 개별적으로 레벨이 올라갈 겁니다.>

어드바이저는 자동으로 활성화되어 내가 미션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덧붙였다.

미션을 모두 확인한 나는 아카이브를 실행하여 목록에 쓰인 책들을 검색했다.

‘찾았다.’

카산트 대륙 초기, 수많은 국가가 난립하던 난세에 최고의 연설가로 명성이 자자한 데커드라는 인물이 있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가의 귀족으로 태어난 그는 전쟁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외교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언변술과 처세술을 익히는 데 평생을 바쳤다.

데커드가 남긴 역작으로 ‘수사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있었는데 이는 1,000년이 넘도록 출간이 되는 스테디셀러였다.

총 1,000p가량의 책은 분량만 방대한 것이 아니라 인물별, 상황별로 적합한 언행을 상세히 가르쳐 줬기에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 책이면 지력과 매력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겠어.’

‘수사학의 정석’은 시중에서 팔리는 처세술 도서와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갖고 있었다.

논문 수준의 분석과 문장에서 느껴지는 뛰어난 표현력은 완독하는 것만으로 내 지적 수준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는 늦은 새벽, 나는 아카이브를 실행하여 책을 펼친 뒤 차분히 읽기 시작했다.

[소위 학자층이라 불리는 명사들은 수사학을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궤변 논리의 집합이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을 객관적 논리로 움직이려 드는 것이야말로 모순된 행위라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시나 소설 위주로 독서를 하던 나에게 ‘수사학의 정석’은 대가가 쓴 고전 도서처럼 느껴졌다.

새로운 분야의 지식을 익히는 건 몹시 즐거운 일이었고 서서히 책의 내용에 빠져들어 갔다.

* * *

‘후, 체력 하나 만큼은 자신있는 편이었는데 요즘 따라 조금 피곤하네.’

서울 대표 선발전 이후, 남은 2주간의 방학을 한여름의 열기처럼 치열하게 보냈다.

백성철 관장님과 새벽 훈련을 하고 나면 곧바로 집에 돌아와 소설 쓰기에 집중했고 자칫 부족할 수 있는 운동량을 보완하기 위해 나이트 아린과의 격기술 수업도 이틀에 한 번꼴로 수강했다.

그리고 미션 수행을 위해서 틈나는 대로 ‘수사학의 정석’을 정독했고 방학 종료를 이틀 앞두고 모두 읽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1,000p가 넘는 분량이라도 10일이 넘게 걸린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수사학의 정석’ 외에도 목록에 적힌 다른 도서들을 읽어야 했기에 속도가 느리다고 볼 수 없었다.

“새 교복 소파 위에 두었으니까 입고 가.”

“네, 엄마.”

보통 때라면 정선 체육관에서 새벽 훈련을 하는 게 정상이었지만, 방학 후 첫 등교 날인 만큼 관장님께 양해를 구했다.

지난 2주간 부지런히 미션을 수행한 덕분에 나의 스탯들은 전반적으로 향상된 상태였다.

복싱에 필요한 힘, 체력, 민첩성, 동체 시력뿐만 아니라 필력과 창의력과 같은 글쓰기 관련 스탯까지 이전보다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하지만, 엄마가 교복을 사 준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매력 스탯이 오름에 따라 나의 키는 182cm에 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70cm 초중반의 키였을 때 구입했던 교복은 더 이상 내 신체에 맞지 않게 되었고 결국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우리 아들 피부가 좋아지는 것 같은데 엄마 몰래 따로 관리받고 있는 거 아니야?”

“하하, 제가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엄마는 아들의 외모가 눈에 띄게 잘생겨졌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녀는 평소와 달리 나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며 질문을 퍼부었다.

“쓰읍, 아무래도 이상한데…… 뭔가 눈매도 더 또렷해진 것 같고 입술도 틴트를 바른 것처럼 촉촉해졌어.”

“거참, 진우가 이래 봬도 지연이 오빤데 유전자가 어디 가겠어?”

출근 준비를 하던 아버지는 모자간의 대화를 듣다가 입을 열었다.

“지연이야, 어렸을 때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애잖아. 그렇다고 우리 진우가 부족하다는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럽게…….”

“엄마,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가 볼게요.”

나는 엄마의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방을 메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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