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11화 능력 개안 (3)
‘새벽 훈련을 스킵해서 그런가 평소보다 몸이 가벼운 것 같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등굣길에 나선 나는 방학 기간에 이룩한 성과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있었다.
우선 첫째로 육체 능력이 강화됨에 따라 관장님의 훈련을 소화해도 피로감이 거의 들지 않았다. 펀치볼 치기를 필두로 다양한 훈련이 진행됐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이 모두 소화했다.
게다가 나이트 아린의 격기술 수업으로 테크닉을 정교히 다듬었기 때문에 전보다 간결하면서도 예리한 펀치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웹소설 작업도 계획한 날짜보다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겠어.’
푸른닷컴에 연재를 하려면 일정량의 분량을 미리 확보해 두어야 했다.
따라서 두 편의 웹소설 연재를 기획하고 있는 나로서는 글을 빠르게 쓰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필력과 창의력 스탯이 오른 이후 5,500자를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단축되었다.
“진우야!”
교문 앞에 이르렀을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어, 재웅아. 잘 지냈어?”
“훗, 나야 가족들이랑 물놀이도 다녀오고 맛있는 것도 잔뜩 먹었지.”
태양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와 통통하게 오른 볼살은 그가 얼마나 안락한 방학을 보냈는지 보여 주고 있었다.
“와, 너 근데 안 본 새에 너무 멋있어진 거 아니야? 피부도 좋아지고 키도 더 큰 거 같아.”
“그냥, 가끔 보면 고등학교 때 갑자기 크는 애들 있잖아. 내가 딱 그런 케이스인 거 같아.”
“오, 최신우가 보면 긴장 좀 하겠는데?”
최신우는 고등학생으로는 드물게 모델 활동을 하는 친구였다.
187cm에 달하는 키와 9등신에 가까운 사기적인 비율을 가진 그는 뭇 여학생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고 어렸을 때 아역 배우로 출연한 경험이 있어 연예계에도 인맥이 제법 있는 편이었다.
“여자애들이 들으면 욕할 수도 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
“진짜라니까 그러네. 내가 빈말하는 거 봤어? 아무튼 좀 이따 동아리 시간에 보자.”
재웅이와 나는 오후에 있을 클럽 활동시간에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야, 쟤 누구냐?”
이석호는 반에 들어오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김준석이 전학 간 이후, 이석호와 남은 패거리들은 예전처럼 설쳐 대지 않았다.
이들은 내가 반에 들어오면 복도로 나가든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일전에 패거리들에게 반에서 얌전히 지낼 것을 요구했다.
툭하면 욕설을 내뱉거나 음담패설을 하는 통에 반 분위기를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헉, 자리를 보니까 강진우인 것 같은데?”
“김준석이 전학을 간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멋있어지는 것 같아.”
“쳇, 어차피 우리랑은 노는 물이 다르잖아. 신경 쓰지 말고 아까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자.”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목소리를 들은 이석호는 나를 조심스럽게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예전 같았으면 날 두고 조롱을 일삼았을 그들이었지만, 혼쭐을 난 경험이 있기에 언행을 조심했고 심지어 몇몇 놈들은 나에게 선망 어린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너 방금 봤어?”
“강진우 말하는 거지?”
“방학 동안 너무 멋있어진 거 아니야? 진우랑 친해질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
“참나, 넌 양심이 있니? 진우보고 찐따 같다며 무시했던 게 언제였더라?”
“어이가 없네.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그러는 거야?”
반 여자아이들도 변한 내 외모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확실히 외모가 경쟁력이긴 하구나.’
등굣길에서 간간이 마주친 여성들의 호감 섞인 시선을 느낄 때부터 내 외모가 크게 변했다는 것을 자각했다.
과거의 나라면 여자들이 보내는 뜨거운 눈길을 부담스러워했겠지만, 미르헨 총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이후로는 성공에 도움이 되는 큰 장점으로 여겨졌다.
드르륵-
왁자지껄 떠들던 학생들은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대화를 멈추었다.
“다들, 방학 동안 공부들 열심히 했어?”
담임은 교실에 들어옴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시전했다.
“표정들을 보니까 뜨끔 하는 녀석들도 있는 것 같네. 노는 것도 좋지만 미래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하길 바란다. 방금 선생님들하고 회의를 하고 왔는데, 이번 주 수요일에…… 아, 그 전에 너희들한테 알려 줄 소식이 하나 있다.”
그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하려던 이야기를 멈췄다.
“우리 반 강진우가 올 10월에 있는 추계 전국체전에 참가하게 됐다. 2주 전에 열린 지역 예선에서 우승까지 했다니까 다들 축하해 주자.”
‘갑자기 웬일이래?’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담임이 반 아이들 앞에서 치켜세워 주자 기쁨의 감정보다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잠시 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학생들은 나를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진짜 대단하다. 전국체전이면 각 지역에서 1등 한 사람만 참가할 수 있는 거잖아.”
“참, 불공평하다니까? 잘생긴 데다가 운동까지 잘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야?”
체육 특기생이 없는 성문고등학교에서 전국체전 선수가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는 담임의 얼굴은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그는 잠시 할 말을 고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우야, 그렇게 중요한 대회를 나가는 거였으면 나한테 미리 언질이라도 하지 그랬어?”
그는 자신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교장 선생님께 추천서를 받은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죄송합니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선생님께 말씀드리기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죄송할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알다시피 교내 행정이라는 것도 절차라는 게 존재해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곤란하다.”
“알겠습니다.”
나는 담임의 꾸중에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크흠, 우리나라도 이제 어엿한 선진국인 만큼 예전처럼 운동 하나만 바라보고 학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거다. 전국체전 참가야 학교에서 보내 줘야 하겠지만, 이외의 어떤 편의도 봐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후, 역시 예상대로 나오는구나…….’
담임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속이 끓었으나 책에서는 이럴 때일수록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대응하라고 했다.
“저,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편의라고 하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뭐 임마?”
축하 분위기를 마무리 짓고 다음 대화를 하려던 담임은 갑자기 들어온 내 질문에 크게 당황했다.
“널 꼭 집어서 이야기한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라. 난 그저 옛날처럼 공부는 등한시하고 운동에 올인하는 관습을 비판한 거니까.”
처음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던 담임은 평정심을 되찾은 뒤 변명을 쏟아 냈다.
“선생님께서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게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이 듣기에 제가 운동을 핑계로 편의를 추구할 것처럼 들릴 것 같아서 물어본 겁니다.”
예전 같았으면 대차게 받아쳤을 나였지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는 세팅을 할 필요가 있었다.
“오, 그 말은 운동을 핑계로 수업을 빠지지 않는다는 말로 들어도 되겠지?”
“방금 그 말씀을 들으니 조금 전의 발언이 저를 타겟으로 했다는 게 분명해지는군요.”
“말꼬리 잡지 말고 확실히 대답해라. 앞으로 운동한다고 날 찾아와서 귀찮게 굴지 말고.”
담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나에게 되물었다.
그는 원래 권위적인 성격을 가진 자로서 학생들을 엄하게 다루는 선생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학생 인권이 대두됨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어려워지자 거리를 두는 것이었을 뿐, 자신의 뜻에 반기를 드는 학생을 가만히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 상의를 드려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도 있어서 확답을 드리기 어렵네요.”
“참나, 결국 편의를 봐달라는 이야기네. 이런 이야기나 하려고 나한테 그렇게 따지고 들었던 거냐?”
“흠,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마지막으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윗사람과의 날 선 대화가 길어질수록 좋을 게 없었던 나는 이 질문을 끝으로 이야기를 마치려 했다.
“말해 봐라.”
“지역 예선도 나름 서울에서 날고 기는 선수들과 붙는 대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훈련과 준비 기간도 필요하고요.”
“빙빙 돌리지 말고 본론만 말해라. 너 하나 때문에 조회가 길어지고 있잖아.”
담임은 귀찮다는 투로 날 재촉했다.
“제가 그동안 운동을 한다는 핑계로 편의를 봐달라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은 없지.”
“그리고 운동하느라 바빠서 공부를 잠깐 손을 놨을 뿐이지 학업을 중단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디서 배웠는지는 몰라도 말 하나는 청산유수구나.”
“저에 대한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아 안심하라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는 담임의 말에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흐흠, 어쨌든 알았으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건 그렇고 너희들에게 공지할 게 있다. 이번 주 수요일 날 학교에서 영어 경시대회를 열려고 한다. 학업 수준을 진단한다는 목적으로 시행하는 거지만, 입시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라면 교내 경시대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 안 해도 알 거다.”
대화를 더 끌어 봤자 이득 될 게 없다고 판단한 담임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꿨다.
정시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고는 하지만, 유수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스펙을 잘 쌓는 것이 중요했다.
교내 경시대회는 교외 대회에 비해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으나 학생기록부에 적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대회에서 3등 이내에 들면 상장과 소정의 장학금이 지급될 예정이니까 열심히 준비하길 바란다. 그리고 공부에 대한 의지는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결과로서 입증해야 하는 거다. 이게 다 너희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니까 잔소리로만 듣지 말고 열심히 해라. 알겠냐?”
‘후, 끝까지 진상을 떠네.’
담임은 또다시 나를 도발하고 있었다.
애당초 인격적으로 배울 점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감정적으로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나를 견제하는 담임을 제지할 필요가 있었다.
“네,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훗, 그래. 어? 방금 너였냐?”
학생들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담임은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깨닫고 황당해했다.
“예, 제가 대답했습니다.”
“푸하핫, 그렇게 한다고 가산점 주는 거 아니니까 오버하지 말아라.”
“어차피 전국체전 시기가 되면 공부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지금이라도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우리 반에서 입상자가 나오면 선생님한테도 나쁘지 않잖아요.”
“지난 기말 때 네 영어 성적이 어떻게 나왔는지 확인은 해 봤어? 3등은 고사하고 반 평균이나 깎아 먹지 말아라. 헛소리 그만해라. 조회는 여기까지니까 경시대회 준비들 잘하도록.”
담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번에 3등 이내에 못 들면 운동은 내려놓고 공부에만 열중하겠습니다.”
그는 반을 나서려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
“쯧쯧, 지 무덤을 지가 파네.”
“대신 3등 안에 들면 제가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언제 널 신경 썼다고 그런 소리를 하냐? 착각도 자유네. 하든지 말든지 관심 없긴 하지만, 자신 있으면 한번 해 보든가.”
내가 조건을 걸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담임은 한마디 툭 던진 뒤 반을 떠났다.
‘미끼를 물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제부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어.’
담임이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교실 뒤편에 있는 게시판으로 가서 경시대회 내용을 확인했다.
“진우야, 정말 해 보게?”
경시대회 관련 공지를 게시판에 붙이고 있던 반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