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47화 (47/122)

47. 12화 계속되는 승부 (3)

‘흠, 아직은 조금 더 두고 봐야겠는데?’

내가 쓴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외에 세 작품이 무료 연재 코너에 올라와 있었다.

연재가 개시된 지 1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댓글들이 달리는 중이었다. 특히, 김호준이 쓴 ‘무림맹주의 셋째 아들’의 경우 댓글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평범한 대학생이 망나니 아들 몸속으로 들어가 성장하는 이야기네. 전형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독자들에게 충분히 먹히겠어.’

김호준이 쓴 소설과 비슷한 소재로 쓰인 글들은 많았다.

그러나 유사한 소설이 많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독자들에게 먹힌다는 것을 의미했고 같은 소재여도 작가의 실력에 따라 퍼포먼스가 천양지차였기 때문에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째, 내일 하루는 좀 시끄럽겠는데?’

벌써 3질째 소설을 쓰는 김호준에게는 그의 글을 꾸준히 읽는 독자층이 존재했고 초반 양상은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를 가뜩이나 우습게 보고 있는 김호준이라면 동아리 활동 시간에 시비를 걸 게 분명했다.

그러나 승부는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것이기에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댓글 수에서 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완전 대박 작품 아니면 시간이 좀 지나야 판가름이 나니까 차분히 기다려 보자.’

어차피 길게 봐야 할 싸움이었기에 일희일비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은 뒤 평소처럼 소설 집필에 집중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성문고등학교 동아리 시간.

예상했던 대로 김호준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강진우, 정식으로 웹소설 작가 된 걸 축하한다. 과정에서 편법이 살짝 있었긴 했지만, 어찌 됐든 연재를 하게 됐으니까 동료 작가로 봐야겠지?”

“고맙다.”

과장된 제스처 뒤에 어떤 말이 이어질지 뻔히 알았던 나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댓글이 20개 정도 달린 거 보면 첫 스타트치고 나쁘지 않아. 나랑 한판 붙을 생각에 제법 노력을 했나 봐? 다운 수는 내일이 돼야 집계가 되겠지만, 3만 가까이 나오겠던데?”

“진우야, 정말 잘됐다. 축하해.”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재웅이는 내 속도 모르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김호준이 쓴 ‘무림 맹주의 셋째 아들’은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댓글은 어느새 50개가 훌쩍 넘어가고 있었고 무료 연재 작품들 사이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하는 중이었다.

그의 의도를 훤히 꿰고 있던 나는 할 말을 고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작품은 실시간 랭킹 1위를 계속하고 있던데 뭘. 역시,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독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잘 캐치한 것 같아.”

아직 초반이긴 했으나 김호준의 작품이 큰 열풍을 끄는 건 사실이었기 때문에 승부를 떠나 덕담을 했다.

그러자 그는 기쁜 감정을 애써 감추며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였다.

“아무래도 독자들의 취향 분석을 잘한 게 주효한 것 같아. 전 작품을 쓰면서 비판받았던 점들을 이번 기회에 싹 고쳤거든. 그리고…….”

내가 대화의 물꼬를 틔워 주자 김호준은 거침없이 말을 쏟아 냈다. 엄재웅과 난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게 버거웠으나 싫은 내색을 보이면 우리가 질투하는 것으로 착각할 게 뻔했기에 묵묵히 경청했다.

“아, 그리고 진우 네 작품도 한번 읽어 봤는데, 꽤 나쁘지 않더라고. 에피소드 구성 능력과 표현력 면에서는 내 데뷔작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

“네가 웬일로 진우를 다 칭찬하냐? 그래, 이렇게 서로 존중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엄재웅은 잠깐 의아하다는 제스처를 취했으나 이내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소재를 잘못 잡았어. 보니까 이번 공모전 때 썼던 작품을 리뉴얼해서 집필 시간을 줄이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순문과 웹소설은 독자층의 취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깜빡한 것 같아.”

“충고 고맙다. 안 그래도 소설을 쓰면서 그 부분을 최대한 감안하려고 노력했어.”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애당초 소재 자체가 관심을 끌지 못하면 열심히 쓴 작품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돼 있어. 승부만 아니었다면 너에게 이 점을 미리 알려 줬을 텐데, 조금 아쉽게 됐다.”

김호준은 나를 위하는 척 조언을 해 줬지만, 진지한 태도 이면에는 상대를 깔보는 거만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러게. 너한테 미리 물어보고 일을 진행할 걸 그랬네. ‘플레임’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첫 소설인 만큼 애착이 컸거든.”

“어, 어? 그래. 크흠 네가 어떤 심정인지는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대부분의 초보 작가들이 그 집착 때문에 한계에 봉착하곤 하지.”

자신의 말을 순순히 인정할 줄 몰랐던 김호준은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헛기침을 하며 타이르듯이 말했다.

“네가 앞서 말한 흥행 요소들은 솔직히 나도 다 알고 있었어. 하지만 왠지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로 승부를 보고 싶더라고.”

“훗, 그 경솔함이 널 승부에서 지게 만들 거야.”

“휴, 잘 나간다 싶었는데 예전 버릇이 또 나오네.”

엄재웅은 김호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재웅이 너도 진우처럼 친구가 하는 직언을 들을 줄 알아야 해. 항상 배우려는 자세, 이 하나만 봐도 너랑은 많이 다르잖아. 물론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지만 말이야.”

“야, 너 말 다 했어? 이젠 아예 우리들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하네? 너는…….”

“김호준, 봐줄 생각 같은 건 절대 하지 마라.”

김호준의 도발에 재웅이가 화를 내려던 그때,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설마 아직도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우야, 웹소설은 기세 싸움이야. 시간이 지나면 역전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순진한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결과는 유료 연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에 이야기하자. 그리고 내가 봐주지 말라고 한 건 나중에 졌을 때 네가 핑계를 댈까 봐 걱정돼서 한 말이야.”

“뭐? 핑계? 너야말로 지고 나서 헛소리하지 마라.”

내내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던 김호준은 처음으로 흥분한 기색을 드러냈다.

“내기 조건은 잊지 않았지?”

“당연하지. 감성 출판사는 너랑 어울리지 않아. 초보 작가면 초보 작가답게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배우라고.”

김호준은 내가 감성 출판사에 들어간 것을 눈엣가시로 여겼고 무슨 수를 써서든 날 끌어내리고 싶어 했다.

“네가 지면 1년 동안 절필해야 하는 거 알지?”

“야, 됐고 너나 나중에 딴소리하지 마.”

“잊지 않은 거 같아서 다행이네. 그럼 수고해라. 재웅아, 가자.”

“응.”

연재 첫날에 누구의 작품이 더 나은지 판단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초반에 아무리 잘나가는 작품도 중간에 뇌절을 하면 독자들이 우수수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고 뒤늦게 입소문이 퍼져 흥행하는 작품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이 풍부한 김호준이 실수를 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재수 없긴 놈이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않으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겠어. 휴, 어떻게 하면 좋지?’

김호준에게 호언장담을 했지만, 가슴 한편에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 내 페이스를 찾기로 했다.

‘어차피 판단은 독자님들이 하는 거야. 지금 하던 대로 쭉 하면서 작품을 더 보완해 보자.’

나는 김호준의 말에 신경을 쓰기보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주사위가 던져진 상황에서 내가 내린 선택을 후회하는 것처럼 미련한 짓도 없었기 때문이다.

* * *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 원고를 살펴보며 고민에 빠졌다.

‘얄밉긴 해도 녀석의 말에 일리가 있어. 대결에서 이기려면 대중적인 요소를 조금 더 첨가해야 해.’

아직 연재가 이루어지지 않은 원고는 매니저와 상의하에 수정이 가능했다. 회사 직원 입장에서 수고스럽겠지만, 작가가 요청하면 거의 대부분 들어주기 때문에 언제든지 내용을 바꿀 수 있었다.

[아르마이스 님, 안녕하십니까?]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빠르게 검토하던 나는 눈앞에 떠오른 화면에 컴퓨터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대화에 참여했다.

“공무로 바쁘실 텐데, 급하게 불러서 죄송합니다.”

[세이라 황녀님께서 아르마이스 님에 관한 업무를 그 어떤 공무보다 우선순위로 두셨기 때문에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일로 절 찾으셨습니까?]

미르헨 총장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는 김호준과의 대결을 위한 전략을 짜기 위해 그를 호출했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총장님과 대화를 나누며 돌파구를 찾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교우 하나와 웹소설로 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난 그간의 사정을 상세히 설명했고 미르헨 총장님은 진지한 태도로 내 말을 경청했다.

[아르마이스 님께서 무엇을 염려하시는지 잘 알겠습니다.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이 작품성은 있을지는 몰라도 흥미 유발 부분에서 부족할까 봐 그러신 거지요?]

“그렇습니다.”

[혹시 괜찮다면 김호준이라는 자의 소설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제가 읽어 보고 대결의 향방을 가늠해 보겠습니다.]

“저, 웹소설은 카산트 대륙의 문학과는 결이 다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미르헨 총장이 카산트 대륙 최고의 문필가라고는 하지만, 웹소설은 여타의 문학들과는 차이점이 많은 분야였다.

그러나 총장님은 이런 나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감 있는 태도로 대화를 이어 갔다.

[예전에 웹소설 자료를 아카이브에 올려 달라 했던 요청을 기억하십니까?]

“네, 총장님.”

그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틈나는 대로 내가 소장한 웹소설 작품을 아카이브에 올려 열람할 수 있게 했다. 정확한 편 수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적어도 10 작품 이상 업로드를 한 것으로 기억했다.

[최근까지 보내 주신 소설들을 모두 완독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일전에 보내 주신 웹소설 관련 자료들도 모두 숙지했으니 믿어 보셔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아카데미 관리하느라 짬을 내기 어려우셨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처음은 어려웠지만, 웹소설 형식에 익숙해지니 다음 소설부터는 쑥쑥 읽히더군요.]

“총장님께서 이제야 웹소설의 재미를 느끼시나 보네요. 김호준이 쓴 소설은 아카이브에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딱 10회 분량만 보내 주십시오. 어차피 분석만 할 거라서요.]

미르헨 총장은 이미 웹소설의 전형적인 전개 방식과 흥행 공식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라 소설을 전부 읽을 필요가 없었다.

“저, 김호준과의 비교를 떠나서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를 분석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혹시 스스로 쓴 작품에 대한 확신이 없으셔서 그런 겁니까?]

“그동안 총장님과 함께 작업을 하고 수정을 거듭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긴 하지만, 그 녀석의 작품이 현재 너무 잘나가서요.”

[흠,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후, 어떤 말씀을 하실까?’

미르헨 총장은 일전에 나와 함께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를 작업했기에 대략적인 내용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이번에 익힌 웹소설 공식을 작품에 대입하며 다각도로 분석에 들어갔다.

[아르마이스 님, 들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네, 총장님.”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의 설명을 기다렸다.

[들으면 허무하실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수정할 부분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런가요?”

[저희는 이미 ‘플레임’에 부족한 웹소설적 요소를 충분히 논의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장치를 추가로 넣을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방향성은 옳았다고 판단됩니다.]

“휴, 다행이네요.”

작품을 대폭 수정하지 않아도 됨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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