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13화 결착 (1)
“경험 삼아 한번 시켜 본 건데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관장님은 제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훗, 복싱할 때는 아무리 잘해도 칭찬을 아끼시더니 의외네요.”
“야, 이거랑 그거는 다르지. 하여간 무슨 말을 못 하겠다니까? 자, 분석은 대충 끝났으니까 밖으로 나가자.”
“네?”
“훈련 마저 해야지. 이틀 동안 방에만 처박혀서 몸이 굳었을 거 아니야.”
그는 나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이것들만 정리하고 바로 나갈게요.”
관장님은 내가 한 분석을 토대로 미트 훈련을 진행했다.
“김제훈이라면 이 상황에서 레프트 바디를 날릴 거야. 자, 이럴 땐 어떻게 할래?”
“일단, 가드를 한 뒤에 카운터를 치면 되지요. 아니면 백 스텝으로 거리를 두면서 잽을 날리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앞서 언급한 김제훈 습관들을 재현하며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들을 상의했다.
* * *
10월 초, 어느 월요일.
전국체전을 일주일 앞둔 시점, 나는 대회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전 훈련만 진행하던 관장님은 대회가 20일 앞으로 다가오자 저녁에 스파링이나 추가 훈련을 실시했다.
‘요즘 웹소설에 통 신경을 못 썼네.’
지난 한 달간 나는 다운 수나 독자님들의 반응을 살피기보다는 글의 퀄리티를 높이고 10월에 연재할 ‘천마회귀’ 원고를 쓰는 데 전념했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김호준의 작품과 내 작품을 비교하고 싶었지만,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자제했다.
‘유료로 전환된 이후 확인해 본 적이 없네.’
푸른닷컴의 정식 연재물은 2주간의 무료 연재 후에는 자연스럽게 유료로 전환된다.
무료 연재 마지막 날 확인했을 때만 해도 김호준의 작품과 내 작품의 다운 수는 2배 이상 차이가 벌어져 있었고 이후에는 멘탈을 관리하기 위해 되도록 앱에 접속하지 않았다.
“진우야,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동아리 시간마다 옆자리에 앉는 재웅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친구가 염려되어 물었다.
“전국체전이 코앞이라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것보다 김호준이 평소보다 너무 조용한 것 같지 않아?”
김호준은 지난 2주 동안 틈만 나면 나한테 와서 한바탕 자랑을 했었다.
무료 연재 기간 내내 1등을 했던 그는 유료로 전환되자마자 좋은 프로모션을 받을 수 있었고 역대 썼던 소설 중 가장 흥행할 거라는 기대에 기분이 업 된 상태였다.
하지만 오늘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습작 노트를 끄적거리는 그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보통 때라면 얌전히 있는 녀석의 모습을 반길 나였지만, 한창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선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내 생각엔 연재 성적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휴우, 맞아. 2주 전쯤엔가 확인했는데, 많이 밀리고 있더라고.”
“훗, 말은 안 해도 신경이 많이 쓰였나 보네?”
“응? 내 이야기 한 거 아니었어?”
당연히 내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진우 너 말고 김호준 말하는 거잖아.”
“김호준이 쓴 게 분위기가 안 좋다는 말이지? 그럼 격차가 전보다 줄었겠는데?”
“참네, 본인 작품을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
재웅이는 나를 황당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일주일 전에 ‘무림맹주의 셋째 아들’이 프로모션 들어간 건 알지?”
“응.”
“초반에는 다운 수가 하루에 5만씩 늘었는데, 갈수록 힘이 빠지더라고.”
작게나마 팬덤이 형성되어 있던 김호준은 ‘무림맹주의 셋째 아들’로 일약 스타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스토리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독자들의 반응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인기를 끌 만한 요소를 잔뜩 집어넣은 덕분에 초반에는 불 같은 기세로 치고 나갔지만, 평범한 스토리 전개와 다른 작가들과 차별점이 없던 그의 글은 힘을 잃어 갔다.
“뭐야? 다운 수가 거의 비슷하잖아? 확실히 프로모션을 받고 안 받고가 엄청 크네.”
일주일 전,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의 프로모션이 확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담당 직원은 첫 작품이라 제일 좋은 프로모션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것을 받았다고 했다.
소식을 전달받고 당장 접속하여 확인하고 싶었지만, 2주 전에 김호준의 작품과 큰 격차를 보였던 탓에 주저했던 나였다.
“플모 들어간 후에도 확인을 안 한 거야? 와, 진우 생각보다 쫄보였네.”
“승부가 걸려 있으니까 보기가 어렵더라고.”
재웅이와 대화를 하는 중에도 내 시선은 온통 스마트폰에 꽂혀 있었다.
나는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의 댓글을 차근차근 읽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거야. 독자님들의 반응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는 화를 거듭할수록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져 갔다.
뒤늦게 불이 지펴지긴 했으나 초반 싸움에서 진 후라 다운 수에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프로모션이 들어가고 배너에 노출이 된 후부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미르헨 총장님과 1화부터 꼼꼼히 수정했던 것이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다.
추가로 유입한 독자님들은 퀄리티에 비해 다운 수가 부족하다며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이와 같은 반응은 작품을 고공행진으로 이끌었다.
“플모 들어가기 전에도 다운 수가 꾸준했던 걸 보면 고정 독자 수도 네 작품이 더 많은 것 같아.”
엄재웅은 실시간으로 우리가 쓴 소설을 체크했기에 현황을 모두 꿰고 있는 상태였다.
“신경 써 줘서 고맙다, 재웅아.”
“고맙긴 뭘. 이게 다 네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데.”
“야, 강진우.”
등 뒤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왜, 무슨 일이야?”
나는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온 김호준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지금 내 작품이 조금 앞서는 거 알고 있지?”
“다운 수로 보면 그렇지만, 유료 결제를 기준으로 보면 내가 더 나을 것 같은데?”
“크흠, 처음부터 기준을 명확히 정했으면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러지 못했잖아.”
“그래서?”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그냥 무승부로 하고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어떨까……?”
김호준은 본인이 말하고도 민망한지 말끝을 흐렸다.
“싫어.”
“뭐?”
“여기서 중단하기에는 내 분위기가 너무 좋잖아.”
“맞아, 자기가 유리할 때는 맨날 찾아와서 사람 약 올리더니 불리해지니까 이러는 게 어딨어?”
대화를 듣던 엄재웅은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억지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기간을 정한 것도 아니잖아.”
“기간?”
“그래. 결과를 확인할 시점을 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승부를 본다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야. 지난 한 달 동안 승부에서 이겼다고 주장할 기회가 많았지만, 합의가 안 돼서 가만히 있었어.”
김호준은 판단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승부를 무산시키려 했다.
나는 이런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미리 주장을 하지 그랬어. 시간 다 지나고 이제 와서 뭐라는 거야?”
“그래서 지금 무승부로 끝내려는 거잖아. 대결은 일단 여기서 끝내고 다음 작품으로 다시 붙…….”
“솔직히 이길 자신 없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헛소리하지 마.”
“헛소리라고? 네 작품에 달린 댓글들을 읽어 줄까?”
대화는 점점 열기를 띠고 있었고 부원들의 시선은 어느새 우리에게 쏠려 있었다.
사람들의 눈길에 부담을 느낀 김호준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말을 이어 갔다.
“치사하게 이럴 거야?”
“남들 앞에서 모욕 주는 거 네 주특기잖아. 왜? 막상 당하려니까 힘들어?”
“그게 아니라…….”
김호준은 패배를 시인하는 것보다 내기 조건이 마음에 걸렸다.
만약 여기서 진 것을 인정하면 1년 동안 작가 생활을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후, 글을 못 쓸까 봐 그런 거야?”
“으응…….”
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소심하게 대답했다.
“패배만 인정하면 내기는 없던 걸로 할게.”
어차피 미션만 완료하면 됐기 때문에 녀석이 글을 쓰든 말든 큰 상관이 없었다.
“어떻게 할 거야? 지금 대답 안 하면 나중에는 기회가 없을 거야.”
“음…….”
거듭되는 회유에 김호준의 얼굴은 복잡미묘하게 변해 갔다.
“알았어…….”
잠시 고민을 하던 김호준은 남들 귀에 안 들리게 작게 말했다.
“야, 확실히 말해. 뭘 알았다는 거야?”
“됐어. 어쨌든 인정한 거니까 여기까지 하자.”
재웅이가 김호준의 애매모호한 답변에 발끈한 것에 반해 당사자인 나는 오히려 차분했다.
‘이제 미션 보상만 받으면 되겠네.’
꼭 미션이 아니더라도 승부에서 이기는 것 외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김호준이라는 존재가 내 인생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악착같이 굴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대신, 조건이 있어.”
“이 자식이 지면 진 거지 무슨 조건까지 달려고 그래?”
“뭔데, 이야기해 봐.”
“휴, 알아서들 해라.”
내 대응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재웅이는 굳은 얼굴로 팔짱을 꼈고 김호준은 이런 그의 눈치를 잠깐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최근에 차기작으로 쓸 수 있는 좋은 소설 소재를 찾았는데, 나중에 다시 한번 붙어 봤으면 좋겠어. 이번에는 방심해서 졌지만…….”
“마음대로 해.”
“어?”
너무나 쉽게 제안에 응하자 김호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무슨 말 했는지 들었어?”
대답에 성의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했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 앞으로도 작품을 계속 연재할 예정이니까 시기를 맞춰서 들어오든 뒤늦게 시작하든 편한 대로 해.”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자신감이 넘치든 말든 받아 주면 된 거 아니야? 할 말 끝났지?”
“그, 그래…….”
“재웅아, 오늘 수필 쓴다고 했나?”
“응, 맞아. 좀 이따 선배님께서 주제를 알려 주실 거야.”
일부로 무시하려는 건 아니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대결 내내 녀석이 신경 쓰였다.
성격은 조금 모날지라도 실력만큼은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작품의 성적을 확인할 겸, 김호준의 글을 훑어본 후로 그동안 가졌던 경계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부지런히 미션을 수행한 덕분에 필력 레벨이 5에 다다른 나는 녀석의 글 안에서 고쳐야 할 점을 속속들이 발견했다.
‘독자님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한데 모아 글을 썼긴 했는데, 전개 방식이나 문장이 뒷받침을 못 하네. 괜히 쫄아서 녀석을 과대 평가한 것 같아.’
눈대중으로 읽긴 했으나 내가 쓴 글보다 나은 점을 찾지 못한 나는 김호준이 더 이상 내 적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자식이, 어디서 건방을 떨어.’
김호준은 머릿속이 온통 분노와 좌절감으로 가득 찼지만, 패배를 시인한 상황에서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납득하기 어려웠다.
불과 2달 전만 해도 무료 연재에서 헤매던 내가 어느새 자신을 뛰어넘는 작가가 된 것이다.
물론 한 작품 가지고 역량을 비교하는 건 문제가 있었으나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를 일부 읽어 본 그는 실력으로 태클을 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후, 두고 보자.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승부에 관심을 잃은 나와 달리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재승부를 벌이기로 다짐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사용자의 미션 완료를 알려드립니다.>
<보상: 매력 LV UP, 필력 경험치 +50%>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N>
김호준이 자리에 돌아가 앉는 순간, ‘아르마이스의 의지’는 미션이 완료됐음을 알렸다.
‘보상은 나중에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반에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매력 수치가 상승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매력이 오르면 피부, 키, 눈매 등과 같은 외적 요소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유발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