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51화 (51/122)

51. 13화 결착 (2)

‘보상은 집에 돌아가면 받아야겠어.’

매력 스탯이 오르면 신체적 변화가 동반되기 때문에 아이들 앞에서 보상을 받아 관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웅아.”

“응?”

“잠깐 내 글 좀 봐 줄 수 있어? 이번에 쓴 건데…….”

나는 화면을 끄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왔다.

* * *

시간은 흘러 전국체전 날이 되었다.

“넌 운도 좋다. 원래라면 짐을 싸서 미리 지방에 가 있어야 하거든. 다른 선수들은 아마 며칠 전에 올라와서 숙소 잡고 적응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거다.”

“그러게요. 대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돼서 여러모로 좋은 것 같아요.”

백성철 관장님은 나를 데리고 잠실 종합 운동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실 종합 운동장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 경기를 진행하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전국체전을 치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대회에 온 게 실감이 나네요.”

대회 장소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즐비한 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벤이나 SUV 같은 차에는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대형 버스의 경우 창 앞에 지역이 적혀 있는 종이를 붙여 놓아서 전국 대회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오늘 올라온 선수들도 너 못지않게 훈련에 매진한 친구들이야. 첫 경기라고 방심하지 말고 집중해서 잘하자.”

“네, 관장님. 저, 그런데 숙소는 따로 있나요? 보니까 일정이 꽤 길던데…….”

전국체전은 일정을 소화하는 데 일주일이라는 다소 긴 시간이 소요됐다.

국내 최대의 체육 행사인 만큼, 수많은 종목의 경기를 모두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개최됐으면 호텔이라도 잡았겠지만, 서울이 집인 놈이 무슨 숙소야. 그것보다 체중 관리 잘한 거 맞지?”

일전에 받은 보상으로 매력 스탯이 오른 나는 신체적인 변화를 겪었다.

키는 기존의 182cm에서 183cm로 자랐고 골격과 같은 신체 프레임에도 조정이 이루어졌다.

어깨는 전보다 넓어졌고 허리는 슬림해져 스포츠 모델과 흡사한 체형이 되었다.

그러나 골격이 커진 만큼, 몸무게는 증가했고 그만큼 체중 감량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제 확인해 보셨잖아요.”

“하여간, 오전 계체량 때 탈락하기만 해 봐.”

“걱정하지 마세요. 계체량 때문에 일부로 아침도 안 먹고 왔다고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대회가 끝나면 체급을 바꾸든가 해야지. 후, 원래는 올 12월에 국가 대표 선발전에 참가할까 했는데, 어려울 수도 있겠어.”

백성철 관장님은 전국체전 고등부에서 우승하면 국가 대표 선발전까지 쭉 달릴 계획이었다.

그는 나를 하루빨리 프로 선수로 데뷔시킬까도 고민했지만, 군 복무를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여 이듬해 열리는 아시안 게임을 목표로 잡아 놓은 상태였다.

“체중은 조금만 신경을 더 써 주면 되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제가 조금 말랐긴 했어도 파워는 있는 편이라고 했잖아요.”

“참 이상해. 일반적인 선수면 살이 빠지면서 펀치력도 같이 빠져야 정상인데, 갈수록 더 세지니 말이야.”

“이게 다 관장님이 열심히 가르쳐 준 덕분이죠.”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체중이 감소하면 펀치력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이치였으나 미션 수행을 통해 힘 스탯을 올린 나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말은 하여간 청산유수야. 어? 곧 있으면 개막식 시작하겠다. 이만 들어가자.”

“네. 관장님.”

전국체전 개회식은 국내에서 주관되는 체육 대회 중 가장 큰 행사인 만큼, 대통령을 비롯한 거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안녕하십니까? 문정엽 총리입니다. 전국체전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한데 모여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대회이기도 하지만, 체육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제고시켜…….”

원래는 대통령이 개회사를 하는 게 맞았지만, 바쁜 일정 탓에 국무총리가 대신해서 행사에 참여했다.

잠시 후, 개회식은 끝이 났고 관장님과 나는 복싱 경기가 열리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볍게 몸 좀 풀자.”

“네, 관장님.”

“어차피 한 게임만 뛰면 되니까 땀 좀 빼자고.”

총 16명이 출전하는 웰터급의 예선 경기는 첫날에 이루어졌다.

전국체전은 서울 대표 선발전과 달리 격일로 경기가 이루어졌고 준결승이 결승전 전날에 이루어지는 체급에 한해서 이틀 연속 시합을 치를 때도 있었다.

“혹시 긴장되거나 그러진 않아? 컨디션은 좋아 보여서 다행이긴 한데, 큰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라 조금 걱정이네.”

미트 훈련을 마친 관장님은 내 상태를 체크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장이라도 시합을 뛰고 싶습니다.”

선발전 이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션 수행으로 이전에 비해 스탯이 큰 폭으로 오른 나로서는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좋아, 우승하러 온 놈이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관장님은 자신감으로 충만한 제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웰터급 경기는 라이트급 경기 이후에 있었기 때문에, 여유 시간이 조금 있었다.

따라서 다른 선수들도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코치와 몸을 풀든가 경기 전략을 논의했다.

한편, 경기를 준비하는 인파들 너머로 기자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들이 복싱 경기가 열리는 체육관 내부를 이리저리 걷고 있었다.

“어차피 결승전 외에는 기사로 쓸 만한 거리도 없는데 왜 오자고 그런 거야?”

깔끔한 와이셔츠에 면바지를 입은 남자는 친구에게 볼멘소리를 내며 물었다.

전국체전 개회식에는 고위 정치인들과 협회 간부들이 대거 참석하기에 기삿거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중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저번에 말 안 했나? 우리나라를 뒤흔들 복싱 유망주가 나왔다고.”

서울 데일리의 김현철 기자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휴, 유망주인지 아닌지는 결승전 때 확인하면 되잖아. 좋은 곳이 있다길래 따라왔더니 이게 뭐야.”

남자는 현철을 만나기 위해 연차까지 내고 시간을 낸 상황이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우리 같은 기자들은 쉬면서 특종을 잡는 거 아니겠어? 좀 있다가 강진우 선수 경기를 보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그리고 혼자 정보를 독식하는 것보다 너랑 공유하고 싶어서 부른 거니까 기분 좋게 보고 가자.”

“하여간 말은…….”

김현철 기자의 너스레를 들은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후, 웰터급 경기가 열립니다. 선수들은 별도의 공지가 있기 전까지 대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진행 요원은 경기를 뛰어야 하는 선수들에게 시합이 열리는 링으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코치님이 보시기엔 어때요? 아까 몸 푸는 걸 봤을 땐 그저 그렇던데요?”

전라북도 대표로 뽑힌 이정훈은 내 쪽을 흘낏 바라보며 코치에게 물었다.

“가볍게 몸을 푼 것만 보고는 실력을 알 순 없지. 그래도 이강호를 이기고 올라온 놈이니까 방심하면 안 돼.”

“그렇긴 한데, 원체 운동하는 친구로 보이지 않아서요.”

“운동선수치고 외모가 곱상하긴 하네.”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자의 말에 동의했다.

보통의 선수들이라면 고된 훈련의 흔적이 외모에 묻어 나오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저런 기생오라비 같은 놈한테 이강호가 지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얼굴만 보고 상대를 재단하는 건 금물이야. 자, 이만 올라가라.”

“네.”

이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링 위로 올라갔다.

“다녀오겠습니다.”

“잘하고 와라.”

상대 선수가 링 위에 올라간 것을 확인한 나는 관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시합을 하러 들어갔다.

“양 선수 모두 코너로.”

주심은 경기 중 주의 사항을 공지한 뒤 선수들을 코너에 대기시켰다.

“파이트!”

‘흠 일단 탐색전 먼저 해 볼까?’

나는 심판의 수신호를 확인한 뒤 가드를 올린 채 천천히 링 중앙으로 다가갔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이정훈은 링 중앙을 점령한 나를 호기롭게 바라보다가 얼굴과 복부에 연달아 잽을 날렸다.

그러나 안면 공격이 페이크임을 알아챈 나는 백 스텝으로 여유롭게 피했다.

“저 친구가 네가 말한 강진우 선수지?”

“응.”

“확실히 몸놀림이 좋네.”

“이제 시작이니까 좀 더 지켜보자고.”

김현철 기자는 친구와 함께 내 경기를 관전하러 와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조심하지 않아도 되겠네.’

미션 수행을 통해 동체 시력과 민첩성 레벨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상태라 상대 선수의 공격이 훤히 보이는 것을 넘어 느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한 번의 접전으로 파악한 이정훈의 실력은 이전에 붙었던 이강호보다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과감하게 경기를 운영해도 될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몸 푼다고 생각하자.’

나는 현재보다 더 낮은 스탯일 때도 이강호 선수에게 정타 하나 허용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단 한 대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 새끼 봐라?’

이정훈은 발을 지면에 붙인 채 터벅터벅 걸어오는 날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몸놀림이 좋더라도 스텝을 적절히 활용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펀치를 피하기 어려웠다.

물론 선수들이 일반인과 스파링을 하거나, 현격한 실력 차이를 보이는 선수들 간에서는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하긴 했으나 각 지역 대표가 모인 전국체전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훅- 훅-

이정훈은 내가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자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뭐, 뭐야?’

그는 훅, 스트레이트, 어퍼컷 등 다양한 각도로 펀치를 날렸지만, 나의 현란한 움직임에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헉헉…….”

전력을 담은 펀치들이 모두 실패한 이정훈은 극심한 체력 소모로 호흡이 가빠졌다. 반면에 나는 온몸에 힘을 뺀 채 여유롭게 공격을 받아 낸 터라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팡-

집중력이 극도로 올라온 나는 가볍게 잽을 뻗었고 이는 상대의 안면에 그대로 적중됐다.

“윽…….”

충격으로 인해 고개가 젖혀진 그는 추가타에 대비하기 위해 자세를 추스르고 가드를 바짝 올렸지만, 상대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 후속타를 날리지 않았다.

“씨발!”

주심은 욕설을 내뱉은 이정훈에게 주의를 주려고 했지만, 그는 말릴 새도 없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무시당했다는 굴욕감에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아까와 똑같은 양상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상대 공격에 맞춰 카운터 잽을 날렸고 이정훈은 그때마다 얼굴이 뒤로 젖혀졌다.

“스톱! 경기 끝.”

“헉, 헉…… 아직 할 수 있습니다.”

이정훈은 주심의 제지에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항변하려 했으나 링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보고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미안하다, 정훈아. 실력 차이가 너무 크게 나서 어쩔 수 없었어.”

코치는 낙담하고 있는 제자에게 다가가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건데요 뭘.”

시합이 끝나고 이성이 돌아온 이정훈은 코치의 말에 순응하고 링에서 내려왔다.

“간만에 물건이 나왔네.”

“훗, 따라오길 잘했지? 너도 봐서 알겠지만, 강진우 선수가 봐주면서 해도 상대가 아무것도 못 하잖아.”

경기를 보던 친구가 감탄하자 김현철 기자는 의기양양해졌다.

“단순히 실력만 보고 그러는 게 아니야. 잽으로만 상대를 이기는 퍼포먼스에다가 연예인 뺨치는 외모까지 겸비한 선수라 대중들의 관심을 단숨에 끌겠어.”

“네 말대로 실력에 스타성까지 겸비한 선수라 성과만 낸다면 국내에 복싱 붐을 다시 불러올 수도 있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현철 기자의 말에 공감했다.

“어떻게 바로 인터뷰 하나 딸까?”

“인터뷰는 대회 끝나고 해도 늦지 않아. 자, 볼 거 다 봤으니까 이만 돌아가자.”

“김제훈 선수 경기는 안 보고 가?”

김제훈은 작년 전국체전 우승자이자 이번 대회 강력 우승 후보로 꼽히는 자로 아마추어 선수로는 드물게 매스컴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난 이미 용무를 다 봐서 안 봐도 될 것 같아. 넌 남아서 더 보려면 봐.”

“쳇, 알겠어. 같이 가자고.”

어린 나이에 국가 대표 상비군까지 뽑힌 김제훈이었지만, 김현철 기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다.

이들은 방금 있었던 경기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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