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13화 결착 (5)
일주일 동안 치러졌던 전국체전은 막을 내렸다.
대회 다음 날이 되었다.
월요일 아침을 맞은 나는 상쾌한 마음으로 등굣길에 나섰다.
‘이 정도면 국대 선발전 때도 큰 문제는 없겠어.’
어제저녁, 전국체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미션이 완료된 것을 확인했다.
보상이 레벨 업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경험치를 채운 것만으로도 실력이 상승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응? 언제 이런 걸 붙였데?’
학교 정문에는 전국체전 우승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를 본 학생들은 교문을 지나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알기로 우리 학교에 체육 특기생이 없지 않나? 어떻게 전국체전을 우승한 거지?”
“애당초 입학생을 뽑을 때 체육 특기로 학생을 뽑지 않잖아. 그런데 강진우라고 들어 봤어?”
“아까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1학년인가 봐. 하여간 진짜 대단해. 고2, 고3 선수들 다 제치고 우승한 거잖아.”
학교 선배들은 바로 뒤에 내가 있는지도 모르고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드르륵-
“어? 왔다.”
“우승 축하해, 진우야.”
교실 문을 열기 무섭게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고마워, 애들아.”
“담임이 뒤에서 너 엄청 욕했는데 오늘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학우들 사이에 있던 반장은 나에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응, 네가 대회 나가느라 저번 주에 수업 며칠 빠졌잖아? 그거 가지고 자꾸 이상한 말씀을 하시더라고.”
“상관없어. 어차피 나한테는 별말씀 못 하실 테니까.”
어제 대회가 끝난 후 교감 선생님, 행정실장님과 같은 학교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학교의 명예를 빛내 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조만간 학교 차원에서 보상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담임이 아무리 불만이 많더라도 이런 축하 분위기 속에서는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이전에 내기에서도 이겼기 때문에 날 뭐라고 할 수 있는 명분조차 없었다.
“하하, 녀석들 뭐가 그렇게 좋다고 떠들고 있어? 자, 이만 자리들 앉아라.”
‘뭐야?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이잖아?’
썩은 표정을 지으며 반에 들어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담임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유유히 교탁 앞에 섰다.
“다들 알겠지만, 우리 반에서 전국체전 우승자가 나왔다. 대회를 치르느라 고생한 진우를 위해서 우리 박수 한 번 쳐 주자.”
짝짝짝-
담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저 양반 왜 저래?’
교우들이야 날 위해서 박수를 치는 게 당연했으나 담임까지 힘차게 손뼉을 치며 축하 분위기를 조성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훗, 저 녀석이 복덩이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담임은 이른 아침에 있던 교무회의에서 나의 전국체전 우승 소식을 들었고 교장과 교감으로부터 덕담을 들을 수 있었다.
“박 선생네 반에서 인물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동안 수업에만 매진하고 학생 관리를 소홀히 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 다시 봤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학교도 체육계통에 걸출한 인재가 나오게 됐습니다.”
일전에 김준석 사건으로 상사들에게 찍혔던 담임은 나로 인해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회의 시간에 있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흐뭇해했다.
“방금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진우에게 표창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교내 표창장은 이름뿐인 상이긴 했으나 생활 기록부에 올릴 수 있는 있기 때문에 훗날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성문고 동문회에서 진우에게 200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진우야.”
“네, 선생님.”
“좀 있다가 장학금 관련해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으니까 조회 끝나면 잠깐 앞으로 나와라.”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이렇게 극적으로 변하지?’
담임이 이제껏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하자 위화감이 들었다.
솔직히 여태 보여 준 언행들과 너무 달라서 살짝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크흠, 너희들한테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요즘 시대는 공부가 전부는 아니야. IT 기술이 발달됨에 따라서 새로운 업종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 이에 발맞춰서 새롭게 인정받는 직업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어. 너희들도 진우처럼 공부 외에 잘할 수 있는 특기가 있으면 개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참네, 언제는 딴짓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더니 금세 말이 바뀌네.”
“야, 담임이 저러는게 하루이틀이냐? 처음엔 무시하는 것처럼 해도 성과를 내면 태도가 금방 바뀌잖아.”
내가 학교를 빠진 날이면 대신해서 잔소리를 들었던 학생들은 담임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이후에도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아침 조회가 끝난 후 장학금을 받을 계좌를 물어봤다.
“제 개인 계좌로 받을 수 있을까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받아도 상관하지 않으실 것 같거든요.”
“그건 좀 고민을 해 봐야겠구나…… 아니다! 그냥 그렇게 하기로 하자. 계좌 번호 알려 줄래?”
‘평소 같으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 사람이 어쩐 일로 고분고분하지? 딱 보니까 나 때문에 뭔가 이득을 본 게 있는 것 같네.’
나는 담임을 잠시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천천히 계좌 번호를 불러 줬다.
* * *
오후 수업이 일찍 끝나고 문학부 활동 시간이 되었다.
“진우야, 전국체전 우승 축하해.”
“고마워, 채원아.”
“와, 복싱하는 거 이야기는 들었는데 우승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친구지만 난 놈은 난 놈이야.”
동아리 시간이 되어 동아리실에 들어가자 재웅이와 채원이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상하다. 언제부턴가 저 녀석에게 우주의 기운이 모두 몰리는 것 같아. 그리고 복싱이나 웹소설은 그렇다 치더라도 왜 얼굴까지 잘생겨지는 거야?’
김호준은 나와 친구들을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난 승부에서 진 이후, 그는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웹소설 작가라는 프라이드 하나로 재웅이와 나에게 으스대는 재미로 살았지만, 더 이상 작가로서도 내세울 게 없어진 상황이었기에 우리와 말을 섞는 걸 피하고 있었다.
‘두고 봐라. 다음 작품으로 네 콧대를 눌러 줄 테니까.’
‘무림맹주의 셋째 아들’은 유료 연재로 전환된 후 인기가 식는 중이었다.
김호준은 처음 기획안을 낼 땐 300화 분량의 원고를 쓰겠다고 출판사에 이야기했지만, 매출이 급감하는 게 눈에 보이자 250화 선에서 조기 종료하기로 협의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비축분을 많이 쌓아 뒀기 때문에 다음 작품을 써도 크게 무리가 없는 상황이라 주변 작가들로부터 첨삭을 받아 가며 야심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전 거는 너무 자극적으로 쓰려고만 했지, 세부적인 문장들을 신경 쓰지 못했어. 매니저가 이번 원고는 역대급으로 잘 썼다고 하니까 다음 작품 론칭할 때까지만 꾹 참고 기다리자.’
‘무림맹주의 셋째 아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엉성해지는 스토리와 어설픈 문장으로 비판을 많이 받았다.
김호준은 여유 시간을 모두 소설 쓰기에 쏟아부으며 단점들을 보완하려 노력했고 주변에서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듣고 있었다.
“저 근데 진우야. 물어볼 게 하나 있어.”
“응, 뭔데?”
엄재웅은 다른 친구들이 떠나자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최근에 새 작품 연재를 또 시작하지 않았어?”
“어? 그걸 어떻게…….”
그동안 시간을 쪼개 가며 열심히 집필하던 ‘천마회귀’의 연재가 최근 시작되었다.
첫 연재작 때 썼던 ‘월명’이라는 필명을 사용하지 않고 론칭을 했던 상황이라 적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요즘 작가들 보면 필명 여러 개 쓰는 분들도 많던데.”
“난 줄 어떻게 알았어? ‘천마회귀’랑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는 스토리 전개 방식이나 필체도 많이 달라서 구분하기 어려웠을 텐데…….”
현대물과 무협물은 무대 배경과 용어에서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같은 작가가 써도 차이점을 만들기 어렵지 않았다.
예를 들면 간단한 대화를 할 때도 무협물은 하오체와 같은 사극 말투를 사용하지만, 현대물은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를 쓰기에 작가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천마회귀의 작가가 강진우라니. 에이 설마 아닐 거야.’
우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김호준은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그가 이렇게 놀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주에 연재를 시작한 ‘천마회귀’는 무료 작품들이 아니라 전체 작품들 사이에서 실시간 랭킹 1위를 심심치 않게 하곤 했다.
올해 초부터 알박이로 1위를 하던 작품이 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보니까 천마회귀를 쓴 작가님의 필명이 ‘조선글쟁이’던데? 이거 네가 중학교 때 처음 썼던 필명이랑 똑같지 않아?”
“…….”
재웅이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체전 준비와 웹소설 작업을 병행하느라 새로운 필명을 짓는 데 고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무심결에 사용한 것이 중학교 때 썼던 필명이라니…….
뜻밖의 실수에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반응 보니까 맞는 것 같네. 혹시 이거 비밀로 해야 하는 거야?”
“아니야, 그냥 갑자기 머리가 좀 아파서 그랬어.”
“와! 진짜 네가 쓴 거 맞구나!”
나에게 확답을 들은 엄재웅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탄성을 질렀다.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지금 웹소설 커뮤니티도 그렇고 ‘천마회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 호들갑 안 떨게 생겼어?”
“그게 무슨 소리야?”
지난주 월요일에 작품을 론칭한다는 이야기를 전달받긴 했으나 체전에 집중하느라 어플에 접속한 적은 없었다.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가 초반에 살짝 고전했던 이후로 작품을 체크하지 않는 버릇이 생긴 것도 한몫했다.
“이거 봐 봐.”
재웅이는 핸드폰으로 웹소설 커뮤니티에 접속하여 나에게 보여 줬다.
“헐, 진짜네.”
커뮤니티에 게시된 글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은 모두 ‘천마회귀’에 관한 거였다.
글의 내용은 다양했다.
흡입력이 좋다, 재미있다와 같은 내용에 관한 것부터 기성 작가가 필명을 바꾸고 작품을 올렸다 등과 같이 내 신상을 추측하는 글까지 다양한 논의가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둔해도 너무 둔하다.”
엄재웅은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며칠 전에 매니저님께서 작품이 대박 날 것 같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어쨌든 이제 돈방석에 앉게 될 텐데, 그 돈으로 뭐 할 거야?”
“아직 무료 연재 기간이잖아. 돈은 그 이후에 생각해야지.”
‘와, 첫 작품 때랑 비교 자체가 안 되네.’
나는 어느새 어플에 접속하여 ‘천마회귀’가 거둔 실적을 확인했다.
정확한 건 회사에 문의를 해 봐야 알겠지만, 한눈에 봐도 무료 연재 때, 1~5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던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보다 3배 가까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만으로도 수익이 엄청나겠던데?”
그는 틈틈이 내 작품을 읽은 덕분에 현황들을 모두 꿰고 있었다.
“첫 정산은 11월 초에 들어오니까 그때 가봐야 알 것 같아.”
“오, 성공을 맛봐서 그런가 여유가 넘치는데?”
“재웅이 너도 나중에 우리 회사에 원고 제출해 봐. 저번에 보여 준 원고들 보니까 실력이 많이 늘었던데?”
“그러게 나도 열심히 해서 너처럼 성공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진우야, 쟤 좀 봐 봐.”
“응?”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재웅이는 다른 자리에 앉아 있는 김호준을 가리키며 조용히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