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14화 도약 (1)
[강한 신체를 갖고 태어난 드래곤의 마력 운용법을 인간에게 적용했을 때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건 필연적인 결과였지요. 하지만 아르마이스 님께서 하단전을 이용한 호흡법을 알려 주신 이후로 앞서 언급한 단점들이 모두 상쇄됐습니다.]
‘무협지도 아니고 내가 단전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수많은 웹소설을 읽은 나에게 단전이라는 용어는 낯설지 않았다.
무협지에서 단전이라 하면 흔히 배꼽 바로 아래에 위치한 부근을 일컫는 말이다.
[아르마이스 님께서는 단전을 상중하로 나누셨는데…….]
“혹시 상단전은 머리, 중단전은 심장, 하단전은 배꼽 아래를 말하는 겁니까?”
[어?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미르헨 총장님께서 보내 주신 책에서 얼핏 본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 읽었던 웹소설에서 숱하게 봤던 용어들이었기 때문에 알아들은 것이었으나 굳이 단장님께 그 사실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배경 지식이 있으시니 이야기가 쉬워질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정좌하신 상태로 하단전에 의식을 집중하신 뒤 호흡을 최대한 길게 들이마셔 보십시오. 여기서 포인트는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정 동안 의식의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브루스 단장의 지시에 따라 하단전으로 호흡을 보내려 노력했다.
[호흡을 계속하시면서 들으세요. 처음에 이 수련을 하게 되면 가슴이나 명치 부근에서 호흡이 걸리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호흡을 최대한 길고 예리하게 하시면 막히는 부분을 모두 뚫고 하단전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숨을 길고 예리하게?’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밑져야 본전인 만큼 폐부에 들어오는 호흡을 길게 늘리고 예리하게 만든다는 상상을 해 봤다.
‘어? 이러다가 정말 되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행위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브루스 단장의 지속적인 지시를 따르면서 호흡이 가늘고 날카로워져 감을 느꼈다.
[호흡을 최대한 천천히 들이마시면서 칼처럼 예리해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호흡이 뚫리는 것 같습니다.”
[오, 벌써 단전까지 호흡이 닿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역시 아르마이스 님이십니다. 제국의 우수한 인재들도 삼 일 이상 걸리는 작업을 벌써 해내셨군요.]
브루스 단장은 빠르게 운용법을 익히는 내 모습에 감탄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별다른 재능 없이 현생에 온 나는 제국에서 엄선된 인재들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지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의 존재들을 만나면서 영혼 동기화율을 높인 결과 과거의 능력들이 점차 발현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배우고 있는 호흡법은 전생의 내가 고안한 것이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습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후우, 조금씩 단전이 따뜻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좋습니다. 아르마이스 님 주변으로 기운이 출렁거리는 게 보이는군요. 그럼 바로 다음 단계로 가겠습니다. 단전으로 가는 통로를 점점 넓혀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단장님.”
브루스 단장은 오랜 시간을 걸쳐 지도를 계속했다.
그러나 아무리 전생에 내가 만든 호흡법이라고 해도 단숨에 이를 익히는 것은 어려웠다.
[아르마이스 님, 시간이 꽤 지났는데 괜찮으십니까?]
“저는 괜찮은데 곧 있으면 부모님이 오실 것 같아서 수업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시계는 어느새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아르마이스 님. 또 언제 뵐 수 있을까요?]
그는 지루한 공무에서 벗어난 기쁨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었다.
“내일 똑같은 시간에 뵙도록 하죠.”
[하하,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3시간에 걸친 긴 수업을 마친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생각보다 몸이 가뿐한데?’
브루스 단장의 말에 따르면 내가 배운 호흡법은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입문 과정에서 무리하면 신경 쇠약에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대기 중에 마력이 충만한 카산트 대륙에서만 해당하는 말이었다.
기를 축적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는 외부의 강한 기운이 몸에 부담이 될 수 있으나 마력이 거의 없는 지구에서는 명상과 유사한 효과를 줬기 때문에 정신 건강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후, 소설이 후반부로 들어가니까 스토리가 잘 안 나오네.’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의 화수가 200화를 넘어서자 글 쓰는 속도는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치부하고 간단히 넘겼지만, 한 화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조만간 미르헨 총장님을 만나야겠어. 후, 일단은 좀 쉬자.’
원고 작업을 마친 나는 침대에 누워 방안을 고민하다가 깊은 잠에 빠졌다.
* * *
브루스 단장이 수업을 시작한 지 3일이 지났다.
나는 이전 훈련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지시에 따라 정좌를 한 뒤 호흡을 하고 있었다.
[어, 어?]
“왜 그러십니까?”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던 나는 브루스 단장의 탄성에 수련을 멈췄다.
[아, 아닙니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말도 안 돼. 호흡법을 벌써 익히셨단 말이야?’
브루스 단장은 내 몸에서 푸른 빛이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수련이 아직 극에 달하지 않아 그 기운이 미약했지만, 몸에 아우라가 형성됐다는 건 호흡법을 습득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사용자께서 마력 운용법의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몸에 쌓인 피로가 자동으로 회복됩니다.>
‘응? 별로 변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마력 운용법을 익혔다고?’
<그렇습니다. 현세는 과거 아르마이스 님이 사셨던 카산트 대륙에 비해 기의 농도가 현저히 적어 마력 운용법을 익혔을 때 얻을 수 있는 효용이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내 마음을 읽은 아르마이스의 의지는 어드바이저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최고 인재들도 한 달 이상 걸리는 과정을 3일 만에 익혔으니까 나로서도 나쁜 건 없지.’
브루스 단장처럼 마력을 자유자재로 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긴 했으나 수련 시간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서운한 마음은 의외로 들지 않았다.
“저, 단장님.”
[아르마이스 님, 질문은 조금 있다가 받겠습니다. 좀 더 집중해 주십시오.]
브루스 단장은 내 몸에서 나오는 기운이 워낙 작았기에 호흡법을 익히는 것을 넘어 단전 형성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수련을 안 하려는 게 아니라 말씀대로 기의 통로도 확보했고 단전도 만들어진 것 같아서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어드바이저 덕분에 운영법을 습득했다는 사실을 안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흠,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내 말을 들은 브루스 단장은 눈에 마력을 집중한 다음 내 신체를 샅샅이 훑어봤다.
[정말이군요. 작긴 하지만, 아르마이스 님의 배꼽 아래에 단전이 만들어졌습니다. 저 그런데 혹시 몸에 변화는 안 느껴지십니까?]
“노곤함이 가신 것 외에 특별한 변화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피로 회복은 호흡법으로 얻을 수 있는 효용 중 가장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당장 몸 안의 마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겠습니다.]
수련이 끝나면 다시 공무를 하러 돌아가야 하는 브루스 단장은 수업이 허무하게 마무리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이 이상 수련을 더 진행하는 건 큰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알다시피 제가 사는 곳은 마법을 수련하기에 적합하지 않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황궁 내실에 위치한 창고에는 마력을 증폭시킬 수 있는 각종 영약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황제 폐하를 알현해서 이 사정을 말씀드리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영약이 있다 한들 저에게 보낼 방법은 있나요?”
[그, 그건…….]
의욕이 앞선 그는 내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송곳 같은 질문에 말문이 막힌 브루스 단장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후, 큰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진즉에 나이트 아린의 말을 들었으면 시간이 낭비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브루스 단장은 훈련으로 얻은 성과가 고작 피로 회복이라는 것에 자괴감에 빠졌다.
한편, 나는 눈앞에 뜬 창을 보느라 단장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단장님의 노력이 마냥 헛된 건 아니었네.’
<사용자께서 아르마이스식 격기술을 마스터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격기술을 마스터함에 따라 전생과의 인연이 강화됩니다.>
<영혼 동기화율이 상승하였습니다, 전생의 능력 일부를 되찾았습니다.>
‘훗, 이렇게 뜬금없이 받는 보상이 미션으로 받는 것보다 더 기분이 좋다니까?’
호흡법을 끝으로 격기술 수업을 모두 수료한 나는 뜻밖의 보상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아르마이스식 격기술은 전생의 내가 일평생 사용했던 무술로 훈련 과정을 모두 소화함으로써 동기화율이 올라가는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저, 아르마이스 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고뇌에 빠져 괴로워하던 브루스 단장은 허공을 보며 실실 웃고 있는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아, 별일 아닙니다. 단장님 덕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르마이스 님…….]
브루스 단장은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뜻을 표하는 내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다음에는 아르마이스 님께 꼭 필요한 수업을 준비해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번 수업이 아니었으면 격기술의 정수를 영영 모를 뻔했습니다. 단장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건 그게 무엇이든 언제나 환영이니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흐윽…… 알겠습니다. 저 브루스 아르마이스 님께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찾아뵙겠습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성급했나? 당장이라도 배울 걸 들고 찾아오실 것 같네.’
나는 열정 넘치는 브루스 단장의 태도가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후에도 그는 다음 수업을 주제로 열변을 토하다가 작별 인사를 한 뒤 사라졌다.
‘후우, 드디어 가셨네. 이제 슬슬 능력을 확인해 볼까?’
<사용자께서 기존에 갖고 있던 현자의 눈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어드바이저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 마음을 읽고 자동으로 활성화되었다.
‘응, 바로 확인할게.’
<현자의 눈이 개안 되었습니다. 사용자께서는 이 시간 이후로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의 스탯도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오, 대박인데?’
<이에 더하여 사용자님이 만나시는 인물의 특성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물의 특성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야?’
문구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어드바이저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용자님께서 현자의 눈을 활용하여 특정 대상을 바라보게 되면 우호도와 대략적인 성격 같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호도라면 날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말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현자의 눈과 함께라면 제아무리 가면을 쓴 상대라도 아르마이스 님을 속일 수 없을 겁니다.>
‘이 능력은 나중에 사업을 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겠어.’
나는 웹소설과 복싱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사업을 할 계획이었다.
물론 이 두 분야도 정점을 찍으면 일반인이 꿈꿀 수 없는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었지만, 유능한 조력자들이 있는 상황이라 꿈 하나를 더 추가해도 무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