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60화 (60/122)

60. 15화 여동생 (1)

[크흠, 제가 그만 주책을 떨고 말았군요. 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감정을 추스른 미르헨 총장은 겸연쩍어하며 질문을 기다렸다.

“다름이 아니라 현자의 눈에 관해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미션을 완료하시고 현자의 눈을 사용할 수 있게 되셨죠?]

그는 일전에 미션을 두고 이야기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미션을 통해 통찰력을 높인 덕분에 제 스탯뿐만 아니라 타인의 능력치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어 보니까 사용에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어떤 점이 궁금하신 겁니까?]

“현재 제 몸에 장착된 시스템에는 어드바이저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나는 어드바이저가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총장님께 말씀드렸다.

[지금까지 쭉 들은 걸 요약하면 통찰력을 일정 수준 이상 높이면 우리가 몰랐던 추가 기능이 발현된다는 이야기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르마이스 님께서 궁금하신 건 과연 그 기능이 뭔가이겠고요.]

미르헨 총장은 말하지 않았음에도 질문의 내용을 간파했다.

“어드바이저에게 물어봤는데, 녀석도 잘 모르더라고요.”

[아르마이스 님 체내에 장착된 시스템도 전생에서 넘어온 산물이기 때문에 영혼 동기화율에 따라 보유하는 정보량도 달라져서 그럴 겁니다.]

“저도 총장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영혼의 기억이 돌아오는 거랑 별도로 전생의 나를 최강자로 만들어 준 건 사실이었지만, 차원을 넘어 현세에서 작동할 때 제약이 따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 보죠.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르마이스 님께서 보유하셨던 능력들을 검토해야 하는데,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함을 드러내셔서 하나만 딱 짚어서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하, 그 능력들을 현세에서도 발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약 아르마이스 님께서 전생의 능력을 모두 회복하신다면 현재 살고 계신 곳쯤은 무력으로 정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냥 가볍게 해 본 말이었는데…….’

미르헨 총장은 농으로 던진 말임에도 꽤나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다행히 현자의 눈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능력이 하나 떠오르는군요.]

턱에 손을 괸 채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문헌에서 봤던 자료를 기억해 내곤 입을 열었다.

“그게 뭘까요?”

[카산트 대륙에 마왕이 강림하자 아르마이스 님께서 실력 있는 동료를 찾으러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그렇게 해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 특훈을 했다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바로 그겁니다. 방금 하신 말씀에 우리가 찾는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흠, 그런가요?”

총장님의 영문 모를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르마이스 님께서는 동료들의 훈련을 지도하셨는데 그 방식이 매우 특별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효율성을 위하여 사람들을 한데 모아 훈련을 실시하곤 합니다. 그러나 아르마이스 님은 동료들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들에게 적합한 트레이닝법을 제시해 줬지요.]

“말씀을 들으니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방금 언급하신 그 방식은 현재 제가 하고 있는 미션 수행과 상당히 유사하군요.”

상대의 취약점을 파악한 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훈련법을 제시하는 건 원하는 스탯을 올리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과 여러모로 유사했다.

[이제 슬슬 감이 오지 않으십니까?]

“사실, 아까부터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알아챘습니다. 상대의 능력 확인을 넘어서 성장을 도와줄 수 있다니, 참 놀랍군요.”

[이외에도 추가적인 능력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문헌들을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기억이 점점 가물가물해지더라고요.]

미르헨 총장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지금 알려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통찰력을 높였을 시, 곧바로 이와 같은 능력이 발현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어찌 됐든 단서를 찾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총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타인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면 여러 면에서 유용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싱이나 소설은 개인 역량이 중요하지만, 나중에 사업을 하게 되면 써먹을 데가 분명히 있을 거야.’

나는 통찰력을 키워 현자의 눈 기능을 한 번 더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심했다.

스탯을 올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 순간, 눈앞에 익숙한 화면이 하나 떴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조금 전 대화로 전생 핵심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전생과의 인연이 강화됐습니다. 영혼 동기화율이 상승합니다.>

<동기화율 50%를 달성했으므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원하는 스탯의 레벨을 하나 올릴 수 있습니다.>

‘와, 이런 건 예상 못 했는데…….’

처음 화면이 떴을 땐 통찰력을 키우기 위한 미션이 생성된 줄 알고 있었다.

어떤 미션을 수행할까 기대하면서 화면 문구를 읽던 나는 뜻밖의 보상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아르마이스 님, 아르마이스 님!]

“아, 네. 총장님. 부르셨어요?”

[왜 그러십니까? 혹시 시스템이 작동이라도 한 겁니까?]

미르헨 총장은 내가 허공을 바라보고 멍하니 있는 걸 수차례 목격한 바 있기에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눈치가 빠르시네요.”

[하하, 그래도 서로 알고 지낸 지 5개월이 지났는데 척 하면 척 아니겠습니까? 흠, 어디 보자. 방금 현자의 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으니까 통찰력을 올리는 미션이 나왔겠군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확인해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총장님께서 저에게 정보를…….”

나는 아까 있었던 일을 숨기지 않고 총장님께 말해 줬다.

[제가 그동안 전생의 기억을 찾는 것에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연구하다가 유용한 정보가 발견되면 즉각 즉각 알려 드리겠습니다.]

영혼 동기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미르헨 총장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요청드린 사안도 아니었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르마이스 님을 도와드리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기쁨입니다. 조만간 짬을 내서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문헌들부터 다시 한번 검토를 해 봐야겠습니다.]

내 빠른 성장세에 자신의 역할이 없어질까 걱정했던 미르헨 총장은 희망을 찾은 사람처럼 주먹을 불끈 쥐고 의욕을 드러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하네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여유가 되시면 하세요.”

[후후, 그 어떤 공무보다도 아르마이스 님을 지원하는 게 우선인 법입니다. 아르마이스 님과 함께한다는데 누가 저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풋, 어째 점점 브루스 단장님을 닮아 가시는 것 같네.’

평소 점잖던 미르헨 총장님이 의외의 모습을 보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하하, 아닙니다.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손을 저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이후, 우리는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간단히 대화를 나눴고 나중에 볼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 * *

11월 초의 어느 주말.

“지연이는 언제 온대요?”

“아마 30분 후면 도착할 거다.”

아버지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내 물음에 대답했다.

우리 가족들은 오랜만에 지연이가 온다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9월 초 데뷔를 한 동생은 단숨에 차트 상위권을 꿰찼고 각종 음악 프로와 행사를 돌아다니며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목소리 듣기도 어려웠다.

“어디로 온대요? 봐서 마중이라도 나가야겠어요.”

“소속사에서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으니까 여기서 기다려도 괜찮을 거야. 그건 그렇고 진우야, 이것들 다 웬 거야?”

지연이 방과 화장실을 청소하며 부산을 떨던 엄마는 거실에 놓인 쇼핑백과 봉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회사에서 정산받은 걸로 간단히 선물을 사 봤어요.”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받았던 편지 이후로 선물은 처음인 것 같네? 고맙다, 진우야. 확인해도 되지?”

“네, 확인해 보세요.”

대답을 들은 엄마는 쇼핑백으로 다가가 내용물을 확인했다.

“와, 이거 너무 이쁘다.”

쇼핑백 안에 있던 종이 박스를 오픈한 엄마는 고급스럽게 생긴 숄더백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진우야, 마음은 고마운데 너무 무리한 거 아니냐?”

엄마 옆에 서 있던 아버지는 돈이 든 봉투를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왜? 얼마 들어 있는데?”

“당신이랑 나 쓰라고 50만 원씩 넣어 줬네. 진우야, 이거 우리 주지 말고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 돈이란 게 벌기는 어려워도 쓰는 건 금방이라 되도록 아껴야 돼.”

아버지는 봉투를 챙기고 나에게 다시 돌려주려 했다.

“자식들이 첫 월급 타면 부모님께 봉투 같은 거 주잖아요.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쓰세요.”

“그래, 애써 성의를 보였는데 거절하면 얼마나 민망하겠어.”

“휴, 알겠어. 고맙다 진우야. 요긴하게 잘 쓸게.”

엄마와 내가 간곡히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봉투를 받아들였다.

“그건 그렇고 소설 반응은 괜찮니?”

“그럭저럭 읽히고 있긴 해요.”

부모님은 내가 어떤 작품을 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옳았을 것이다.

아들이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지지를 해 주셨지만, 그냥 으레 하던 것처럼 자식이 하는 것을 제지하지 않으셨을 뿐 기대감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가의 백과 지갑 그리고 봉투까지 두둑이 챙겨 드리자 부모님은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참네, 연재한 지 2달 동안 아무 말씀 없으시다가 이제 와서 궁금하신 거예요?”

엄마의 질문에 난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막 연재를 한 시점에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어? 괜히 부담만 줄 뿐이지.”

“그래, 엄마 말이 맞아. 너한테 괜히 소설 관련해서 묻지 말자고 내가 먼저 이야기했어.”

부모님은 직업 특성상 웹툰이나 웹소설 종사자들과 접촉이 빈번했고 신입 작가가 한 번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생각이 짧았네.’

부모님께서 기대감이 없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무관심이 아니라 업계 현실을 고려한 배려였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괜히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농담 한번 던져 본 거예요. 아까 제 작품 어떠냐고 물으셨죠?”

“응.”

“처음 쓴 거치곤 반응이 나쁘지 않아요. 회사에서도 제 작품을 높게 평가해 준 덕분에 추가적인 투자가 이루어질 것 같아요.”

“다행이다. 혹시 작품 이름 좀 알 수 있을까?”

엄마는 조심스럽게 작품을 알려 달라고 물었다.

“엄마가 읽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조금 부끄러운 데요?”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 괜찮으니까 어서 말해 봐.”

“네, 알겠어요. 지난 9월에 연재된 작품인데, 제목은…….”

삑-삑-삑-삑

부모님께 제목을 알려 드리려던 순간 현관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지연아 왔어?”

“우리 딸 고생 많았지?”

“아니에요. 짐 좀 방에다 넣을게요.”

지연이가 갑작스럽게 집에 들어오는 바람에 대화는 자연스럽게 중단됐다.

“애가 표정이 안 좋은데?”

“당신도 느꼈어?”

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곧바로 반응했다.

지연이는 부모님의 말에 애써 웃으며 대답했지만, 안색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내가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 볼까?”

“냅 둬. 하고 싶으면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아버지는 행여나 딸이 부담을 받을까 싶어 엄마를 제지했다.

그러나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연이 방으로 들어갔다.

“어딜 가?”

“가끔은 먼저 가서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도 필요한 거야.”

“엄마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한번 기다려 보죠.”

나는 동생이 힘든 내색을 잘 안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엄마의 의견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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