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61화 (61/122)

61. 15화 여동생 (2)

방에 들어간 엄마는 30분이 지난 후에야 거실로 모습을 드러냈다.

“왜 혼자 나와? 밖에서 같이 점심 먹기로 했잖아.”

지연이와 함께 나올 거라고 기대했던 아버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지금 많이 피곤한가 봐. 식사는 눈을 좀 붙이고 하고 싶대.”

“흠, 그럼 일단 예약을 취소해야겠네.”

엄마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아버지는 품속에서 핸드폰을 꺼낸 뒤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대화를 지켜보던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휴, 팀에서 지연이를 괴롭히는 애가 있나 봐.”

“네?”

“이현영이라고 팀에서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걔네 삼촌이 TM엔터테인머트 이사라나 봐.”

“그래서요?”

TM엔터테인먼트는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기획사로 연습생이 되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는 소문이 있는 회사였다.

나는 엄마의 입에서 이사라는 단어가 나오자 어떤 식으로 내 동생을 못살게 굴었을지 짐작이 갔지만, 태연한 척하며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뭐긴 뭐겠어. 삼촌을 이용해서 지연이를 부당하게 대하고 있는 거지. 들어 보니까 처음부터 둘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더라고.”

“흠, 참 이상하네요.”

“뭐가?”

“지연이가 누구랑 척을 지거나 그럴 성격은 아니잖아요.”

지연이는 또래에 비해 배려심이 많고 어른스러워 어느 누구와도 마찰 없이 잘 지내 왔다.

이런 동생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갑자기 사이가 나빠진다는 건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을 일이었다.

“지연이 말로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돼서 팬덤하고 커뮤니티가 만들어졌는데, 사람들이 지연이 비중을 높이라고 요구를 했나 봐.”

“팀에서 지연이 비중이 적은 편인가요?”

“넌 오빠가 돼서 동생 공연하는 걸 한 번도 안 봤니?”

“아, 그게…….”

엄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멋쩍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복싱 대회부터 소설 쓰기까지 해야 할 일이 많았던 나는 지연이가 데뷔했다는 것만 알았을 뿐, 공연을 챙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지연이도 네 경기랑 그런 건 못 봤잖아. 둘 다 바빠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후, 아무래도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요.”

민망해하는 나를 달래 주는 엄마를 뒤로하고 지연이와 대화를 하려 했다.

“지연이 지금 자니까 좀 있다가 이야기하는 게 좋을 거야.”

“알겠어요.”

“어차피 알게 될 거 내가 말해 줄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엄마는 지연이에게 들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알려 줬다.

상황은 이랬다.

회사 이사였던 삼촌 덕분에 팀 리더를 단숨에 꿰찬 이현영은 각종 인터뷰부터 신인 가수를 소개하는 케이블 방송 출연까지 모두 독차지하였다.

TM엔터테인먼트에서 노골적으로 밀어준 덕분에 그룹 내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을 줄 알았지만, 지연이의 팬덤이 만만치 않았다.

예쁜 외모와 타고난 미성으로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지연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질투가 난 이현영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자리가 생기면 본인과 다른 멤버들만 나갈 수 있게 하고 지연이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것 같은 견제 행위를 끊임없이 했다.

“하아,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아이돌을 해야 하는 거야?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그냥 예전처럼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아.”

“아까부터 물을 왜 이렇게 많이 마셔?”

“속이 타니까 그렇지.”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는 답답한 마음에 냉수를 계속 마시고 있었다.

“계약이 있어서 마음대로 그만두는 건 힘들 거예요. 그리고 지연이도 이런 식으로 중단되는 건 바라지 않을 거고요.”

“진우 말이 맞아.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우리 쪽 피해도 만만치 않을 거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했다.

“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연아…….”

부모님과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지연이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아빠.”

“응?”

“원래 가기로 했던 식당으로 가요. 출출해서 뭐라도 좀 먹어야겠어요.”

지연이는 가족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낌새를 보이자 마음을 가다듬고 태연하게 굴었다.

“일단은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 밥은 그냥 집에서 챙겨 먹자. 무리 안 해도 돼.”

부모님은 그런 지연이를 애써 달래려 했지만, 동생의 성격을 아는 난 밖에 나가자고 권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부모님 말씀대로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게 맞았지만,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냥 바람도 쐴 겸 나가시죠.”

“맞아요. 그렇게 해요.”

“바람이야 좀 이따 쐬도 되니까 쉬었다 나가는 게 어때? 식당들이야 지천에 널렸잖아.”

엄마는 여전히 동생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집 근처에 맛있는 곳들이 있긴 하지만, 지연이가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 그래요.”

“흠, 진우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마냥 앉아서 우울해하기보단 나가서 기분 전환하는 것도 괜찮겠지.”

비록 데뷔한 지, 2달밖에 되지 않았으나 음악 차트 상위권에 들은 데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도 3천만 이상 나와 동생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지연아, 요즘 돌아다니면 알아보는 사람들 많지 않아?”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이 없었어. 매니저랑 같이 회사 차량을 타고 다니니까 연예인인 줄은 아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더라고.”

나는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읽은 지연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동생이 속한 팀은 국내 팬보다 외국 팬이 많았기에 탑급 가수들에 비해서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이 여유를 즐겨야겠네. 나중에 유명해지면 밖에서 떡볶이 먹기도 힘들어질걸?”

“훗, 오빠 말 들으니까 괜히 떡볶이가 먹고 싶어지네? 좀 있다가 순대랑 해서 먹어야겠다.”

“오는 길에 포장해 오자. 길 건너편에 가게가 하나 있는데 맛이 괜찮았어.”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후,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즐겼고 여느 가족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 * *

일요일 점심을 막 지난 시각.

나는 이규석 선배와 급하게 약속을 잡고 감성 출판사 사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후, 지연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회사는 지연이를 데려가기 위해 아침 일찍 차를 보냈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동생을 그곳에 보내기 싫었지만, 같이 있는 내내 씩씩한 모습을 보였기에 그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아직 고교생 신분인 데다 목표했던 만큼 큰 성공을 거두건 아니었으나 내가 가진 역량을 모두 발휘해서 어떻게든 동생을 도와줄 방도를 찾을 예정이었다.

“작가님, 오셨습니까?”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사옥에는 이규석 선배님 외에 다른 직원은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무실에 한쪽에 배치된 소파에 앉아 날 기다렸던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아 주었다.

“쉬는 날에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보니까 회사 문도 직접 여신 거 같은데…….”

“회사 문 여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가장 빨리 출근하는 사람이 열면 그만이지요.”

이규석 선배는 손을 저으며 부담 갖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렇게 바로 뵐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저녁에 이 근방에서 지인을 보기로 해서 겸사겸사 온 겁니다. 그것보다 어쩐 일로 이렇게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까?”

사실, 어제 급하게 연락을 한 건 맞았지만 당장 오늘 볼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약속을 잡을 수 있었던 건 내가 감성 출판사에 적지 않은 수익을 안겨 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규석 선배님이 나에 대해 큰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여러 가지 일로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이거 아무래도 대화가 길어질 것 같군요. 제 집무실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이규석 사장은 꼭대기 층에 위치한 본인의 집무실로 날 데려갔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까 커피를 마셔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럼 간단한 음료수라도?”

“네, 감사합니다.”

선배의 거듭되는 권유에 두 손으로 캔 음료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해 볼까요?”

“신작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첫 작품이 아직 연재 중인 걸로 아는데 벌써 신작 작업에 들어갔습니까?”

그는 마시던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관심을 보였다.

“첫 작 원고를 모두 마무리해서 여유가 좀 생겼습니다.”

“이민영 팀장 말처럼 글 쓰는 속도가 아주 빠르시군요.”

“최근에 팀장님을 만난 것도 알고 계십니까?”

“제가 지시를 내렸으니 모를 수가 없지요.”

원래라면 이규석 선배가 직접 나를 만나 웹툰이나 웹드라마 관련된 사안들을 이야기해 주려고 했으나 바쁜 스케줄 탓에 이민영 팀장이 대신 나왔던 것이었다.

“그럼 이야기가 쉬워지겠네요. 팀장님께서 저에게 조언을 해 주셔서 이번 신작을 쓰게 됐거든요.”

나는 가방에서 미리 뽑아 둔 프린트를 꺼내며 말을 이어 갔다.

“제출 원고를 벌써 작성하셨네요?”

“네, 내일 팀장님이나 매니저님께 연락드려서 곧바로 신작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아까 이민영 팀장이 조언을 해 줬다고…….”

“팀장님께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현재 푸른닷컴에 글을 올린 상황에서…….”

이민영 팀장이 일전에 알려 줬던 방안들을 선배님께 설명드렸다.

글 쓰는 속도가 빠른 만큼, 소설을 여러 플랫폼에 동시 론칭해서 수익을 다각화하고 다양한 독자층들을 포섭하자는 게 이야기의 골자였다.

“작가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그 정도로 쓰는 속도가 빠르십니까?”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한 화를 쓰는 데 1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원고들도?”

“어제 급하게 작성한 거라 부족할 수도 있는데 읽어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규석 선배에게 원고를 건네줬다.

그는 프린트를 집어 든 뒤, 말없이 원고를 읽어 나갔다.

“빨리 쓰신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퀄리티가 좋습니다. 이 퀄리티면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게 봐 준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선배님은 흡족해하며 원고를 나에게 돌려줬다.

“내일 당장 마인드넷이나 타 플랫폼에 심사를 넣을 테니 회사 메일이나 매니저에게 원고를 보내 주세요.”

“알겠습니다.”

“보통 한 작품을 완결하면 2주에서 한 달 정도는 휴식을 취하기 마련인데, 작품 3개를 연달아 쓰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는 어느새 나에게 경탄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선배님께서 기회를 주신 덕분에 마음 편히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딱 지금처럼만 하시면 됩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작품을 빠르게 써 내려가는 작가를 어떤 회사가 마다할까?

이규석 선배는 손을 저으며 점잖게 말하고 있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보면 기분이 좋은 게 확실했다.

“차기작 반응이 괜찮으면 추가로 웹툰 론칭이 가능한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런 부분은 선배님이 알아서 잘해 주시겠지요.”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왠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군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선배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말씀드려도 되겠다.’

선배의 기분이 한껏 좋아진 걸 확인한 나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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