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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76화 (76/122)

76. 18화 작은 변화 (1)

수요일에 있던 국가 대표 선발전을 무사히 치른 나는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라는 주변 어른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등교를 했다.

‘몸이 좀 쑤시긴 하네.’

이전 대회 때와 다르게 타격을 적지 않게 허용했던 터라 몸 이곳저곳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기껏해야 단순 타박상 정도에 불과하여 굳이 휴식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시스템만 믿고 너무 자만했던 것 같아.’

지역 대표 선발전과 전국체전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국가 대표 선발전에서 만났던 선수들은 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월한 피지컬과 월등한 능력을 바탕으로 매 경기를 압도했던 지난 대회 때와 달리 이번 선발전에서는 위기가 적지 않게 발생했다.

물론 복싱 경기에서 서로 난타전을 주고받는 건 무척 흔한 일이었으나 국내를 넘어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승부를 겨루기 위해서는 이 정도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훗, 언제 또 이런 걸 달았데?’

학교 정문 상단에는 국가 대표에 뽑힌 사실을 축하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나는 현수막을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였을까, 교실에는 칠판 주변을 청소하고 있는 아침 당번과 반장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우야, 축하해.”

“고마워.”

자리에 앉아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반장이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내년 5월에 있는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거야?”

“응.”

“들어 보니까 최연소로 국가 대표에 뽑혔다면서, 진짜 대단하다.”

반장은 현수막에 적힌 문구를 떠올리며 말했다

“복싱 선수들 사이에서만 그렇지 전체 통틀어서는 아닐 거야.”

열일곱의 나이에 나라를 대표하게 된 케이스가 흔한 건 아니었으나 탁구와 수영과 같은 종목에서 중학생 국가 대표가 나온 바가 있었기에 자랑할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복싱에서는 최연소라는 거잖아. 그건 그렇고 어제 뉴스가 뜬 뒤로 우리 학교 애들부터 학원 친구들까지 다 네 이야기뿐이야.”

“하하, 관심 가져 주면 나야 고맙지.”

나는 입으로는 고맙다고 말했지만,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 늦은 오후, 푸른닷컴에 내 인터뷰가 실린 기사가 게시되었다.

김현철 기자님이 쓴 인터뷰였는데, 서울 데일리로서는 이례적으로 푸른닷컴 스포츠란에 기사를 올릴 수 있었다.

이외에도 관장님이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 나눈 대화도 기사로 올라와 짧은 시간이었지만, 실시간 검색어 5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예, 감사합니다. 삼촌도 건강히 잘 지내세요.”

기사가 게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방팔방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왕래가 없던 친척들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때 알고 지낸 동창들까지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바람에 일일이 답장하는 수고로움을 견뎌야 했다.

‘다들 고마운 분들이니까 귀찮아하지 말자.’

시합을 막 마친 상황에서 늦은 시각까지 핸드폰을 붙들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과거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사람들의 관심을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마, 당분간은 널 두고 학교가 떠들썩할 거야.”

“응? 아, 그냥 가십거리 정도지 떠들썩까지야 하겠어?”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반장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이걸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질걸?”

반장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검색한 후 나에게 보여 줬다.

“헉, 이게 뭐야?”

나는 스포츠, 연예 관련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저녁, 포털 기사에 올라온 내 사진을 본 몇몇 사람들이 커뮤니티에 퍼 날랐는데, 이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

“이뿐만이 아니야. 어제 SNS에 네 경기 영상이랑 사진들이 많이 돌더라고. 너 WFC 김우현 선수 알지?”

“응, 당연히 알지.”

WFC는 미국 회사가 운영하는 격투기 단체로 수없이 많은 격투 단체들 사이에서도 최고라고 평가받는 곳이었다.

“김우현 선수가 본인 SNS에서 너를 직접 언급했었어.”

“그래서 어제 내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던 거구나.”

반장의 설명에 나는 어제 있었던 일들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이젠 내가 왜 학교가 시끄러워질 거라고 했는지 알겠지?”

“그러게. 앞으로 며칠 간은 그럴 것 같네.”

“아무튼 어제 선발전 우승한 거 다시 한번 축하해.”

“고마워, 반장.”

대화를 마친 반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등교하는 시간이 되자 우리 반 주변에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쟤 맞지?”

“와, 진짜 웬만한 연예인보다 훨씬 잘생긴 것 같아.”

“우리 학년에는 이렇게 멋진 애가 없을까?”

반 창문에는 나를 바라보는 여학생들로 가득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1학년이었지만, 2학년과 3학년 학생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없긴 왜 없어. 2학년에 최신우가 있잖아.”

“아, 맞다. 신우가 있었지.”

최신우는 187cm에 달하는 키와 잘생긴 외모로 일찌감치 모델 생활을 하여 학생들을 넘어 업계에서도 나름 유명했다.

“조회 시간 됐으니까 소란들 피우지 말고 반으로 돌아가라.”

“조회하려면 아직 5분 남았는데 조금 더 있다 가면 안 돼요?”

“쓰읍 어서.”

“네…….”

담임은 학생들을 반으로 돌려보냈다.

‘담임이 고맙기는 처음이네.’

주변의 쏟아지는 시선이 내심 부담스러웠던 나는 학생들이 물러가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 다들 알다시피 어제 진우가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내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기로 결정됐다. 다들 박수.”

담임은 반에 들어오자마자 내 칭찬으로 아침 조회를 시작했다.

‘교무실에서 좋은 이야기라도 들으셨나? 엄청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

한껏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의 얼굴을 보며 뭔가 좋은 일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진우 덕분에 요즘 학교 다닐 맛이 난다니까?’

오늘 아침, 교장과 교감 선생님이 전 교직원이 참여하는 회의 자리에서 칭찬을 해 준 덕분에 담임의 기분은 한껏 고양된 상태였다.

옛날에는 나를 골칫덩어리로 여기며 싫어했으나 주변 동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게 되자 나에 대한 감정은 180도 바뀌었다.

대회 일정 수행으로 부득이하게 학교를 빠져야 할 때면 프리패스로 처리해 줄 뿐만 아니라 더 도와줄 게 없냐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오히려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누차 이야기하는 거지만, 학생은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학업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해. 이런 면에서 볼 때 진우는 너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거다. 저번에 봤던 영어 수행 평가에서도…….”

‘휴우, 저런 말씀까지는 안 하셔도 되는데.’

선생님께서 거듭 칭찬을 해 주시는 게 마냥 싫지는 않았으나 가끔 오버하실 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최근 영어 수행 평가뿐만 아니라 담임이 수업 시간에 보는 쪽지 시험과 과제들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소설을 쓰고 복싱 훈련을 하느라 학업에 시간 투자를 거의 못 했지만, 자동 번역 기능 덕분에 외국어와 관련된 것들은 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어 교사인 담임은 학생들의 성적을 살필 때 다른 과목보다 외국어 성적을 더 꼼꼼히 살폈는데, 내가 지난 영어 경시대회에서도 2등을 하고 매번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분간은 조금 피곤하겠어.’

쉬는 시간이면 적지 않은 학생들은 교실 근처로 다가와 나를 구경하곤 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점심시간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급식실까지 아이들이 따라붙었다.

‘애들을 불러야겠어.’

나는 재웅이와 채원이를 불러 따로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진우야, 너 완전 유명인사 다 됐더라. 학원에서 너에 대해 묻는 여자애들이 한둘이 아니야.”

“그러게. 앞으로 진우 얼굴을 자주 봐야겠어. 더 유명해지면 보고 싶어도 못 볼 거 아니야.”

재웅이가 먼저 입을 열자 채원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매점에서 빵과 음료수를 산 우리는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한테 조금 알려졌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이러는 것도 잠시지 아마 며칠 후면 다시 잠잠해질 거야.”

나는 빵을 한입 베어 물으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내 생각엔 꽤 오래갈 것 같은데? 단순히 네가 국가 대표 됐다고 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게 아니잖아.”

“옛날에도 얼굴 잘생겼다고 반짝 뜬 사람은 몇 명 있었어. 지금부터 조용히 지내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그 말도 맞지만, 네가 스타 작가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엄재웅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며 말을 이었다.

“너랑 채원이 제외하면 김호준 정도만 알고 있는 거라서 사람들한테 알려질 일은 없을 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안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 않아?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본인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게 흉이 되는 건 아니잖아.”

“난, 진우 마음이 이해가 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윤채원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힘이 되는 건 맞지만, 과하면 오히려 부담이 되거든.”

“하긴, 채원이 너라면 진우가 처한 상황이 이해가 가겠다.”

윤채원은 성문고등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항상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내 심정을 잘 헤아릴 수 있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시스템이 사용자의 명성이 높아진 것을 감지했습니다.>

<스탯 보정이 이루어집니다.>

<매력 경험치가 50% 올라 LV 3에서 LV 4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명성이 높아진 것만으로도 경험치를 준다고?’

친구들의 대화를 한참 듣던 중, 시스템이 활성화되더니 화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이해가 막 안 가는 건 아니야. 인터넷에 사진 몇 개 퍼졌다고 날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잖아.’

전국체전에서 우승을 했을 때도 또래 아이들로부터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았지만, 이번 국가 대표 선발전 때만큼은 아니었다.

SNS와 대형 커뮤니티에 내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하자 대중들의 관심은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게 커졌는데, 이는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심리와 묘하게 맞닿아 있었다.

‘내가 계획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소설과 복싱으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생각하면 오늘 벌어졌던 상황들은 일상의 작은 변화에 불과했다.

“진우야,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아니야, 이야기 계속 듣고 있었어.”

허공에 뜬 화면을 보며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채원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나랑 재웅이는 입 벙끗도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김호준도 네가 유명 작가라는 것을 떠벌릴 것 같진 않아.”

“응, 생각해 줘서 고마워.”

김호준은 성격상 남 좋은 이야기를 할 녀석이 아니어서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후, 우리는 빵과 음료를 먹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교실로 돌아갔다.

* * *

시간은 흘러 토요일이 되었다.

‘엄마랑 아빠가 이렇게까지 좋아하실 줄은 몰랐네.’

부모님은 지난 이틀간 지인들의 축하 속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아들이 국가 대표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인데, 지연이가 촬영한 웹드라마가 최근에 방영을 시작하면서 주변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넘어 부러움을 받고 계셨다.

“작가님, 이쪽입니다.”

“네, 선배님.”

오늘은 업무상의 이유로 이규석 선배와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한남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 들어서자 선배는 손을 흔들며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렸다.

“뉴스 통해서 소식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규석 사장은 미팅에 앞서 축하 인사를 건네며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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