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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77화 (77/122)

77. 18화 작은 변화 (2)

‘분위기가 괜찮은데? 가끔씩 여기 와서 글을 써도 되겠어.’

카페는 엔틱한 가구들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제가 가끔 지인들과 오는 곳인데 어떻습니까?”

이규석 선배는 내부를 살펴보는 날 보며 물었다.

“안 그래도 내부 인테리어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선배님께서 왜 이곳에서 만나자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요.”

“마음에 드시다니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동생분은 어떻게 잘 지내고 계십니까?”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아주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내년 2월 중에 신곡이 나오는데, 예전보다 비중이 많이 높아졌다고 들었어요.”

일전에 TM 본사를 방문한 이후로 박태민 대표는 ‘라비’를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했고 팀 내에서 동생의 비중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요.”

“이게 다 선배님이 조치를 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하하, 아니에요. 제가 굳이 안 도와드렸어도 동생분께서는 충분히 자리를 잡으셨을 겁니다.”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 최근에 AJ기획 관계자와 웹드라마 관련 미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강지연 양이 생각보다 연기를 잘해서 촬영이 무척 수월했다고 들었습니다.”

선배는 동생에게 공을 돌리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살면서 연기라고는 해 보지도 않았을 텐데, 신기하네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금방 적응하기 마련이지요. 마치 작가님처럼 말이죠.”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갑작스러운 칭찬에 난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어했다.

“작가님과 첫 작품에 대해 논의했을 때가 떠오르네요. 당시에 써 놓은 작품이 없어 공모전에 제출했던 소설을 부득이하게 활용했었지요.”

“예, 지금 생각하면 꽤 무모했던 것 같습니다.”

“공모전 심사 때 봤던 작가님의 재능 하나만 믿고 일을 진행시켰지만, 가슴 한 켠에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일반 소설을 웹소설화 하여 연재한다는 발상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저도 선배님께 제안을 하면서 무리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회사와 계약을 하고 당장 연재를 하고 싶었지만, 공모전 제출용으로 썼던 ‘플레임’ 외에는 제대로 쓴 소설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르헨 총장님은 기존에 썼던 플레임을 웹소설 형식에 맞춰 각색할 것을 추천했고 그 결과물이 데뷔작이었던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였다.

“처음 쓴 소설이 월매출 칠, 팔백이 찍히는 경우는 거의 전무할 겁니다. 게다가 웹드라마 반응도 좋아서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로 창출되는 수익은 더욱 늘어날 거고요.”

“회사에서 적절한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만약에 감성 출판사가 아닌 다른 회사랑 일을 했다면 웹드라마를 제작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는 굳이 첫 작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아도 꽤나 괜찮은 결과를 낸 작품이었다.

비록 지금은 웹소설 수익으로 달에 400 정도 들어오지만, 플랫폼으로부터 한창 프로모션을 받을 때는 천만 원도 찍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과는 결코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플랫폼 사이트로부터 좋은 플모를 따내고 웹드라마나 웹툰과 같은 2차 저작물을 제작할 때는 작가보다 출판사의 역량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많았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번 달 말에 ‘천마회귀’ 웹툰도 론칭하는데, 신경을 잘 써야겠습니다.”

“웹툰 연재가 벌써 확정된 겁니까?”

이규석 사장은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했다.

“푸른닷컴 측과 연재 시기를 사전에 조율해 놓아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최근에 매니저님께서 시안을 보내 준 것으로 아는데, 확인해 보셨나요?”

“예, 그림 선이 깔끔하면서도 강렬한 게 무협 장르에 잘 어울리겠더라고요.”

“그림 작가 섭외에 신경을 쓴 보람이 있네요.”

그는 만족해하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다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아, 깜빡하고 말씀 못 드릴 뻔했군요. 11월에 론칭한 작품 있지 않습니까?”

나는 지난달에 세 번째 작품 연재를 시작했다.

제목은 ‘조선 거상, 재벌가 망나니로 환생하다’였는데, 내용은 제목 그대로였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탓에 천애 고아로 자란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상단에 들어가 상인의 길을 걷는다.

비단, 인삼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던 상단은 주인공의 수완으로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었고 조선을 넘어 일본 중국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러나 주인공의 능력을 경계했던 상단주의 아들은 술자리에서 독주를 권하여 암살을 시도한다.

결국, 주인공은 마음에 원한을 품은 채 죽게 되고 현대 재벌가의 아들 몸에 태어나 활약을 하게 된다.

“예, 중간에 잠깐 체크해 봤는데 연재 성적이 나쁘지 않더라고요.”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해당 플랫폼에서 현재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오, 정말 잘됐네요!”

평소에 하는 일이 많아 작품 확인을 꼼꼼히 하지 않은 탓에 조회 수만 확인했지 등수는 미처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보통의 작가들은 수시로 성적을 확인하기 마련인데, 여유가 넘치시는 걸 보면 이번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나 봅니다.”

“그냥 멘탈 관리하려고 했을 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선배의 말에 당황한 나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하하, 강심장이신 줄 알았는데, 의외군요. 그것보다 제가 세 번째 작품 이야기를 꺼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에 AJ기획 측에서 원고 검토를 완료했다는 답신이 도착했거든요.”

“원고 검토라면 이번에 쓴 소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이번 작품이 워낙 재미있어서 드라마로 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AJ 측과 연락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작가님과 상의를 하고 일을 진행해야 하는데, 선발전 준비로 여념이 없으실 것 같아서 독단적으로 진행했습니다. 혹시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이규석 사장은 미안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니에요. 오히려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드는걸요. 저, 그런데 AJ 측에서 보낸 답신은 어떤 내용인가요?”

웹소설이 드라마로 제작되는 경우는 무척 드문 일로 만약 성사만 된다면 작가로서의 명예는 물론 큰돈도 벌 수 있었다.

일례로 5년 전에 한 작가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16부작 미니시리즈가 제작된 적이 있었는데, 게런티로 8억을 받았다고 한다.

5년 전에 8억이었다는 말은 현재는 최소 10억 이상의 게런티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웹소설 업계의 위상이나 규모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커졌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제작팀에서 작가님의 원고를 검토한 결과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답니다. 하지만 살짝 아쉬운 것은 사기업인 만큼 공중파 방송에 드라마를 싣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공영 방송의 경우 타 회사에 드라마 제작을 발주하여 협업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AJ기획에서 사적으로 기획한 드라마를 공중파에 보내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AJ기획이 종편 방송들과 관계가 괜찮고 본인들도 별도의 케이블 채널을 갖고 있어서 방영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방영 일정까지 세세히 잡힌 건가요?”

“드라마의 경우 웹드라마에 비해 준비해야 할 게 워낙 많아서 내년 하반기나 내후년 상반기는 돼야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을 받은 이규석 선배는 친절하게 답변해 주었다.

“세세한 부분들은 회사에서 잘 처리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일전에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가 웹드라마 제작에 그쳐서 살짝 아쉬웠는데 이번 기회에 그 아쉬움을 모두 털어야겠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엄청난 기회들을 쉽게 잡을 수 있게 됐네요.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웹드라마, 웹툰부터 드라마 제작 논의까지, 작가로 데뷔한 지 5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작가라고 해도 회사의 도움이 없다면 이렇게 클 수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웹드라마는 우리 회사의 노력이 조금 들어간 게 맞지만, 웹툰이나 다른 것들은 작가님의 공이 무척 컸습니다.”

“제 공이요?”

“제가 다방면으로 관계자들을 만나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해도 콘텐츠가 훌륭하지 않으면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첫 작품이 훌륭하게 안착하고 ‘천마회귀’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작가님의 입지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배의 말을 경청했다.

“예전에는 제가 상대 회사에 협조를 구하려 사정했다면 이제는 상대방이 작가님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이번 웹드라마 작업 때 대본 작가들의 호평도 작가님의 입지 개선에 큰 역할을 한 듯 보입니다.”

“제가 쓴 글을 높게 평가해 주신 모양이네요.”

“그렇습니다. 웹소설을 웹드라마 대본으로 치환하는 작업을 하던 몇몇 사람들이 작가님의 글을 극찬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웹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금세 화제를 끈 덕분에 흥행성도 인정을 받은 상태고요.”

선배의 말을 들으니 업계 안에서 내 인지도가 상당히 많이 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타 작가들 중에는 웹소설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출판하거나 인터넷 강의를 하는 분들이 다소 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학 강단에 서서 교수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만약에 나도 여기서 한두 작품 더 경력을 쌓는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나중에 여건이 되시면 일반 소설도 한번 써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까지 보여 준 필력이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웹소설에 비해 수익이 잘 안 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웹소설 판에서 흥행하면 종이책으로 출간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선배의 제안을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지금 당장 결정하시라는 건 아닙니다. 훗날, 마음이 동하시면 그때 함께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방금 하셨던 말씀이 틀린 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히트했던 베스트셀러들은 책으로 출판되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소설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부족한 저를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계획이 서면 그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선배가 나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여 한 이야기임을 눈치채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래요. 때가 되면 어련히 말씀하시겠지요. 이런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지금부터 웹툰 연재 일정이랑 AJ기획과 주고받은 내용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예, 선배님.”

이후, 우리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카페에 한 시간쯤 더 있다가 헤어졌다.

* * *

12월 말의 어느 주말.

방학을 맞은 나는 관장님을 뵙기 위해 정선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늘 중요하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뭘까?’

내년 5월에는 도쿄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원래라면 한 달 정도 휴식을 취한 뒤 감독님과 대비를 하면 됐으나 국가 대표에 선발된 자는 선수촌에 입소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훈련 계획을 세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왔으면 들어와라.”

“네, 관장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백성철 관장은 제자에게 사무실로 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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