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78화 (78/122)

78. 18화 작은 변화 (3)

“날이 추운데 보일러라도 트시지 그러셨어요.”

사무실 안은 난방을 틀지 않아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원래 일은 살짝 추운 곳에서 해야 머리가 잘 돌아가는 법이야. 일단 우선 국가 대표 된 느낌이 어때? 최근까지 아주 시끌시끌했잖아.”

“일주일간은 학교 다니기 힘들 정도로 떠들썩했는데, 지금은 조용해졌어요.”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잠깐의 유명세에 취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매스컴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 받은 덕분에 주변의 열렬한 환호를 받을 수 있었지만, 최대한 의연하게 대처하려 노력했다.

“훗, 마음이 들떠 있으면 혼쭐을 낼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이룬 성과에 비해 과한 관심을 받아서 오히려 부담스럽더라고요.”

국가 대표에 선발된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했으나, 지난 2주간 나에게 쏟아졌던 관심은 복싱 외적인 부분들이 작용해서 발생한 것이었다.

아이돌 여동생과 운동선수 같지 않은 준수한 외모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이는 스포츠면에 복싱이 많이 언급되게 만들어 복싱 협회 관계자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따도 이름이 안 알려지는 선수가 얼마나 많냐? 그런 걸 생각하면 과한 면이 있긴 했지.”

“묵묵히 계속하다 보면 실력으로 유명해지는 날이 오겠죠.”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면 너에게 스타성이 있다는 거야.”

“그냥 잠깐 반짝한 것뿐인데, 스타성을 갖췄다고 보기에는 이르지 않을까요?”

나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넌 스타성이 뭐라고 생각하냐?”

“흠,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능력 아닐까요?”

“맞는 말이야. 그럼 스타성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력과 화려한 언변, 거기에다가 약간 외모를 갖춘 상태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네가 말한 게 틀린 건 아니지만, 정답도 아니다. 스타성이라는 게 노력해서 갖출 수 있는 거라면 누구나 다 스타가 됐을 거다.”

백성철 관장은 제자의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예전부터 느낀 건데, 네가 경기를 하고 있으면 주변 기자들이 몰려와서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 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아마, 상대를 압도하는 실력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 그런지 말하면서도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이 자식 보기와 다르게 낯짝이 두껍구나.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물어보시니까 답변 드린 것뿐이잖아요.”

“훗, 알겠다. 아무튼 난 옛날부터 이 부분에 대해서 궁금했었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관장은 얼굴을 붉히는 제자를 보며 말을 이어 갔다.

“스타성은 그냥 타고나는 거야. 어떤 선수는 장기간 챔피언을 하고 월등한 기량을 보여 줘도 인기가 그저 그런 반면, 전성기가 짧아도 오랜 시간 회자되는 선수도 있어.”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요.”

“우리나라 복싱 선수들 중 세계 챔피언을 하신 분들이 적지 않지만, 대중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기억된 분들은 얼마 안 된다. 그리고 내가 볼 때 적절한 성과만 낸다면 너는 대성할 수 있을 거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관장님의 덕담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크흠, 감사는 무슨. 자, 그럼 슬슬 내년 플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혹시 선수촌이나 협회 측에서 연락을 받은 적이 있어?”

“아니요, 아직 어떤 연락도 못 받았습니다.”

“흠, 내가 아는 지인에게 물어봤는데, 이번 아시안 게임이 일본에서 열리는 만큼 협회에서 각별히 신경 쓴다고 들었어. 정확한 일정까지는 모르지만, 아마 내년 1월에 바로 입촌을 하게 될 거다.”

“그렇게 빨리요?”

국가 대표라면 선수촌에 입촌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내년 초에 바로 들어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뭘 그렇게 놀래? 아시안 게임이 5월인 걸 생각하면 1월도 빠른 건 아니야. 애당초 국대 선발전도 조금 늦은 감도 있고.”

“그렇군요.”

관장님이 어떤 말씀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가 됐으나 나로서는 다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소설 연재를 신경 써야 했을 뿐만 아니라 내 생활 터전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삶을 사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촌 남자 복싱팀 감독이 나랑 동기인데 성격이 아주 지랄 맞으니까 눈밖에 안 나게 조심해라.”

“예…….”

“진우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백성철 관장은 힘없이 대답하는 나를 보며 물었다.

“1월부터 아시안 게임 끝날 때까지면 거의 6개월가량을 밖에서 지내야 한다는 건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서요.”

“흠, 하긴 네가 어른스럽긴 해도 아직 고1이라 그런 고민을 할 만하지.”

‘그런 의미가 아닌데…… 뭐, 하긴 상관없나?’

복싱 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상황이었으나 일일이 설명 드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관장님께서 알아서 이해를 해 주신 덕분에 굳이 설명을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예, 아무래도 동생도 거의 항상 밖에 있는데 저까지 집을 나가게 되면 부모님께서 적적하실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사실 나도 네가 바로 입촌해서 훈련받는 것보다 여기서 일정 기간 대비를 하고 들어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혹시 입촌 시기를 늦출 수 있는 건가요?”

관장님의 말씀에 희망이 생긴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알기로 국가 대표 선수를 선수촌 밖에서 훈련 시킬 수 있는 촌외 훈련이라는 게 있거든. 규정을 좀 살펴보고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청서를 내기만 하면 바로 받아들여 주나요?”

“솔직히 가능성이 희박해. 촌외 훈련이라 해도 다른 국가 대표들이랑 같이 훈련받는 게 아니라 너 혼자만 떨어져서 있겠다는 거잖아. 그리고 아까 말한 대로 협회 측에서 이번 아시안 게임에 대한 메달 획득 의지가 강해서 많이 어려울 거야.”

‘꼼짝없이 가야 하는 건가? 후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몇 달씩이나 있고 싶지는 않은데…….’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상념에 잠겼다.

그러자 관장님은 이런 나를 보며 미소를 짓더니 어깨를 두들기며 말을 이어 갔다.

“야, 걱정하지 마. 내가 그래도 협회에 아시는 분들도 계시고 좀 불편하긴 해도 감독하는 녀석하고도 안면이 있으니까 시도 한번 해 볼게.”

“감사합니다, 관장님. 아, 계속 여쭤봐서 죄송한데 혹시 언제까지 연기할 수 있을까요?”

“음, 아무리 늦어도 4월 초에는 입촌해야 하지 않을까?”

“와, 그렇게만 되면 소원이 없겠네요.”

지금이 12월 말이니 4월 초면 적어도 3개월은 밖에서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참네, 아까는 죽을상이더니 어떻게 이렇게 휙휙 바뀌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신 여기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서 훈련할게요.”

예상보다 훨씬 더 늦출 수 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그 부분은 일단 허가를 받고 나서 이야기하자. 어쨌든, 여기까지 왔는데 가볍게 몸은 풀어야지.”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나는 대답을 마친 후, 곧장 탈의실에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거, 참. 이러다가 허가 못 받으면 난리라도 나겠는데?”

백성철 관장은 평소와 다르게 의욕이 넘치는 제자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 * *

체육관에 다녀온 뒤,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관장님은 신년부터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며 쉬라고 하셨고 나는 남은 연말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집에서 열심히 글을 쓰는 중이었다.

‘곧 약속 시간이네.’

촌외 훈련 신청서가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해서 시간을 허송세월 보낼 순 없었다.

지난 선발전에서 실력을 늘릴 필요를 느낀 나는 미르헨 총장님과 브루스 단장님을 만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모색해 보기로 했다.

[아르마이스 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브루스 단장은 힘찬 목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저야 잘 지냈죠. 단장님은 잘 지내셨나요?”

[흐음, 미르헨 총장님이 닦달을 하시는 바람에…….]

[아르마이스 님, 오랜만입니다.]

미르헨 총장은 브루스 단장의 말을 끊고 인사를 하며 나섰다.

‘다들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시지? 뭔진 몰라도 고생들 하신 것 같은데?’

나는 추레한 모습의 미르헨 총장과 브루스 단장을 보며 생각했다.

초췌한 얼굴과 부석부석한 머리를 보니 최소 2~3일간은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보였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잠들은 잘 주무셨습니까?”

[이런, 회복 마법을 건다는 걸 깜빡했군요. ‘리커버리’]

미르헨 총장이 주문을 외우자 이들 주변으로 환한 빛이 번쩍하고 생겼다가 금세 사라졌다.

[총장님, 이런 게 있으셨으면 진즉에 좀 해 주시지 그랬습니까?]

브루스 단장은 온몸에 샘솟는 활력을 느끼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허허, 저도 단장님을 4일 만에 뵙는 건데, 회복 마법을 해 드릴 틈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아르마이스 님께서 계시니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다음에 따로 하는 것으로 하시죠. 그나저나 부탁드렸던 일은 모두 수행하셨습니까?]

[크흠, 예. 그렇습니다.]

“저,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지 저도 알 수 있을까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예, 물론입니다. 저희는 아르마이스 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후 지난 일주일 동안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르마이스식 격기술 외에 근접전에 특화된 기술을 가르쳐 드리려 했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제가 괜히 일찍 말씀드렸나 봅니다. 저는 다 같이 만나서 상의를 하려고 했던 건데…….”

미르헨 총장의 설명을 듣자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들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 일을 자신들의 일처럼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 노력했다.

언젠간 이르젠 제국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나는 미르헨 총장님의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다시 화면으로 옮겼다.

[아르마이스 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도 밤을 샐 수 있으니 개의치 마십시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일루션’을 활용하여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는 게 다른 어떤 방법보다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저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아르마이스 님과 버금가거나 그 이상 되는 실력자들과 가상 스파링을 할 수 없다는 점을 말씀하시려는 거군요.]

“네, 딱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신기하네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미르헨 총장님은 오고 가는 대화를 분석하여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 무척 뛰어났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나를 훨씬 상회하는 통찰력을 지니고 계실 것이다.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일주일간 션 다이스 교수와 새로운 시스템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이요?”

[저는 아르마이스 님의 가상 스파링 상대가 되어 줄 녀석들을 훈련시키느라 쌔 빠지게 고생했습니다.]

브루스 단장은 질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도 나를 위해 노력했음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하하, 두 분 다 고생하신 것 같아서 어떤 분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할지 고민이네요.”

[브루스 단장님. 괜찮다면 제가 아르마이스 님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총장님, 아까부터 자꾸 대화를 독점하려 하시는데, 저에게도 기회를 좀 주십시오.]

[흠, 알겠습니다. 대신 정보 전송 시스템에 관한 설명과 말라스 마을에서 단장님이 하셨던 일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흐흠…… 저는 잠시 검토할 서류가 있으니 먼저 하시죠.]

단장은 미르헨 총장처럼 유려하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슬그머니 꽁지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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