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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79화 (79/122)

79. 19화 대비 (1)

미르헨 총장은 체념하는 표정을 짓는 브루스 단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설명을 재개했다.

[션 다이스 교수와 저는 스캔 과정 없이 가상 캐릭터의 스탯을 설정할 수 있는 묘안을 고심해 봤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총장님의 말씀에 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일루션’을 통한 가상 스파링은 여러 면에서 이점들이 있었지만, 스캔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투여돼야 했기 때문에 꺼려지는 측면도 있었다.

일단 특정 선수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한 뒤 습관, 패턴, 특징과 같은 것들을 모두 분석해야 한다.

그러고 난 후, 이를 직접 동작으로 시연하는 과정까지 모두 마친 후에야 스캔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한 번에 만족하는 경우가 드물어 괜찮은 가상 스파링 상대를 생성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대회가 임박해서 어쩔 수 없이 스파링이 필요한 경우에는 하겠지만, 개인 훈련을 할 때만큼은 좀 편하게 하고 싶다.’

안 그래도 관장님께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자료를 요청해 놓은 상태였다.

백성철 관장님은 특정 나라의 경우 국대 선발전 영상 자료를 잘 남기지 않는다는 점과 국제 무대에 처음 데뷔하는 선수들의 자료는 구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자료를 구할 때까지는 ‘일루션’을 통한 가상 스파링을 보류할 예정이었는데 가상 캐릭터에 직접 스탯 능력을 부여할 시스템이 개발되었다고 하니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아르마이스 님께서 일일이 동작들을 구현하여 스캔을 하는 것보다 직접 정보를 전달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총장님이 말씀처럼 그게 가능만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거예요. 저, 그런데 션 교수님과 개발하신 시스템이 정확히 뭔가요?”

[이번에 개발한 시스템의 원리는 아카이브 시스템과 무척 유사합니다. 먼저 마정석에 의해 작동되는 촬영 기계로…….]

질문을 받은 미르헨 총장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최근에 브루스 단장이 지구의 복싱에 대해서 상세히 공부했고 이를 카산트 대륙의 몇몇 투사들에게 강제로 익히게 만들었다.

이후, 마정석에 의해 작동되는 촬영 기계로 투사들의 동작을 녹화한 다음 일루션 시스템에 다이렉트로 전송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겠어요.”

설명을 들은 나는 화색을 드러내며 기뻐했다.

그러자 브루스 단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아르마이스 님께서 이렇게 좋아하시니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할 말을 모두 마쳤으니 지금부턴 브루스 단장님께서 말씀을 하시지요.]

미르헨 총장은 자연스럽게 발언권을 브루스 단장에게 넘겼다.

[정 원하신다면 제가 이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총장님께서 션 교수와 전송 시스템을 개발하는 동안 저는 말라스 타운의 투기장에 다녀왔습니다.]

“복싱 동작을 익힐 투사를 구하러 가신 거군요.”

[그렇습니다. 지난 일주일간 녀석들을 훈련시키느라 무척 힘들었습니다. 복싱에 관한 자료를 총장님에게 받아 검토를 해 봤는데, 이곳 카산트 대륙의 격투술 못지않게 체계적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나는 일전에 이 세상에 관한 정보를 총장님께 보내 드릴 때 복싱에 관한 자료를 첨부하여 같이 보낸 바 있었다.

“저, 그런데 왜 굳이 말라스 타운이라는 곳까지 가셨나요? 차라리 근위병이나 황실의 기사들을 훈련시키는 편이 훨씬 편했을 것 같은데요.”

[제국을 위해 근무하는 기사단원들 대부분은 마력 운용법을 익히고 있어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마력 운용법이면 일전에 저에게 알려 준 호흡법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브루스 단장의 말에 난 호기심이 생겼다.

[역시 아르마이스 님이십니다. 하나만 말씀드려도 척척 알아들으시네요.]

“단장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기사들에게 복싱 동작을 취할 때만 마력을 사용하지 않게 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제국의 기사들은 정규 훈련을 받은 자들로 저잣거리의 투사들보다 기본기가 탄탄하여 복싱을 익히는 속도가 훨씬 빠를 거라는 건 누가 봐도 자명했다.

나는 브루스 단장이 이 부분을 간과했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운용법을 익힌 자들은 온몸에 마력이 스며 들어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마력을 배제하고 동작을 취한다는 건 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아, 그게. 음…… 마력이 몸에 깃든다는 건…….]

[제가 대신 설명드리겠습니다. 마력 운용법을 익힌 기사들은 이미 신경이며 근육까지 마력이 스며 들어갔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마력을 활용하지 않으려 해도 일반인보다 훨씬 강합니다.]

브루스 단장이 말을 버벅거리자 미르헨 총장이 대신 나서서 설명을 거들었다.

“어? 그 말씀은 마력 운용법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신체 능력이 올라간다는 말인데 왜 저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요? 설마 이곳에는 마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걸까요?”

새벽과 같은 늦은 시각이면 방에 좌정하여 호흡법을 하곤 했으나 피로가 회복되는 느낌 외에는 딱히 변화가 없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도 하나의 이유가 더 있습니다. 현재 아르마이스 님은 격기술 후반부에 적힌 호흡법을 익혔다고는 하나 아직 마력 운용법의 묘의를 깨달았다고 하실 수 없습니다.]

“제가 저술한 운용법 외에 다른 방법이 또 있는 건가요?”

[격기술에 쓰이는 호흡법은 아르마이스 님이 만든 마력 운용법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지금 옆에 계시는 브루스 단장님만 해도 그보다 상위의 운용법을 알고 계시니까요.]

“만약, 상위의 운용법을 익히게 되면 마력을 축적하는 능력이 훨씬 좋아지겠죠?”

[물론입니다. 아마 못해도 지금보다 효율성이 열 배 이상 늘어날 겁니다.]

미르헨 총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에 답했다.

“단장님,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가르쳐 줄 수 있으신가요?”

[물론입니다. 원하시면 지금이라도 당장 방법을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몇 개 있습니다.]

“어떤 거죠?”

[제가 익힌 운용법을 익히려면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 놓고 수련을 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그곳은 마력의 양도 적고 마법사도 있지 않아서 사실상 익히는 게 많이 어렵습니다. 도움이 되야 하는데 이런 말씀이나 드리고 괜히 죄송스럽네요.]

브루스 단장은 머리를 긁으며 미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괜찮아요. 단장님께서 일부로 안 가르쳐 주려는 게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투기장에서 마력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은 찾으셨나요?”

[예, 그렇습니다. 비록 거리에 돌아다니는 무뢰배 같은 놈들이나 거칠게 살아서 그런지 근골이 괜찮은 자들을 몇몇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들을 제 개인 연무장으로 데리고 온 다음 속성으로 복싱을 익히게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화제를 바꾸자 브루스 단장은 자연스럽게 설명을 재개했다.

말라스 타운은 제국 외곽에 있는 도시로 거대한 투기장이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르젠 제국은 무의미한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투기장을 엄격히 금하고 있지만, 말라스 타운에 한해서는 시합을 열 수 있도록 안배했다.

우승자에게는 엄청난 상금과 더불어 근위대 병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는데,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상금보다는 근위대에 관심을 더 기울였다.

왜냐하면 근위대에서는 거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마력 운용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동작들이 조금 어색했지만, 실전 경험이 많고 다양한 무술을 섭렵한 놈들이라 금방 익히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1주일인데 복싱을 익히는 게 가능할까요?”

[훗,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놈들이 이래 봐도 투기장 최상위 랭커들이라 제법 쓸 만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단장님의 말씀을 확신할 수 없었으나 지금으로서는 믿는 수밖에 없었다.

[총장님, 이럴 게 아니라 영상을 보여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단장님께서 쓸 만한 제안을 하실 때도 있군요.]

[거, 참. 누가 들으면 내가 힘만 센 무식한 놈인 줄 알겠습니다.]

[흠, 어쨌든 아르마이스 님께 영상을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미르헨 총장은 그의 말을 굳이 부인하지 않고 투사들의 동작이 담긴 영상을 실행했다.

‘뭐야? 정말 일주일 만에 복싱을 익힌 거야?’

총장님의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보조 화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화면 안에는 검은 장발의 남성이 능숙하게 복싱을 구사하고 있었는데, 그의 실력은 프로 복서의 그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허허, 보아하니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완벽해서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보니까 복싱도 스타일이 여러 개 있더라고요. 그리고 키와 리치처럼 신체 스펙도 중요하게 작용하고요.]

“언제 그런 것까지 다 파악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크흠, 아르마이스 님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지만, 저도 나름 제국의 안위를 책임지는 황실 기사단장입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지요.]

브루스 단장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풋, 보니까 총장님이 주신 자료에 다 써 있는 내용인가 보네.’

나는 미르헨 총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단장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총장님이라면 복싱에 관한 모든 자료를 취합해서 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뿌듯해하는 단장님의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었다. 난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대화를 이어 갔다.

“단장님께서 제국 최고의 기사라는 이야기는 나이트 아린으로부터 익히 들었습니다.”

[하하하, 이거 참 쑥스럽네요.]

“사람들을 뽑을 땐 말씀하신 속성들을 모두 고려하셨나요?”

[물론입니다. 여길 보면 제가 훈련시킨 자들의 목록이 나오는데…….]

거듭된 칭찬에 신이 난 브루스 단장은 열정적인 태도로 설명을 이어 갔다.

“와, 이 작업을 단장님 혼자서 다 하신 거예요?”

[투사들 중에 자질이 부족한 녀석이 있어 고생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설명을 들으니까 일루션에 접속해서 빨리 시험을 해 보고 싶네요.”

브루스 단장은 인파이터, 아웃파이터, 단신, 장신 등 다양한 속성을 고려하여 투사들을 훈련시켰고 그 결과 다양한 유형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만약,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어 이 정보들을 일루션에 적용할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복서와 언제든지 스파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화를 나누시는 동안 데이터를 모두 전송해 두었습니다.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하지만 않았다면 아마 지금 당장 가상 스파링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미르헨 총장은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미리 작업을 다 해 두었다.

“총장님, 단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표정을 보니 일루션에 바로 접속을 하고 싶으신 것 같군요.]

“아, 아닙니다. 더 계셔도 됩니다.”

속을 간파당한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더듬었다.

[마침 저희끼리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물러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전 아직 아르마이스 님하고 할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가시려면 총장님 먼저 가시죠.]

미르헨 총장은 적절한 타이밍에 퇴장하려 했지만, 브루스 단장은 손을 저으며 먼저 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그는 가란다고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저흰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어, 총장님 이러실…….]

브루스 단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총장을 말리려 했으나 화면은 이미 꺼진 이후였다.

‘눈치 하나는 정말 귀신같으시단 말이야. 그럼 슬슬 접속을 해 볼까?’

생각을 마친 나는 곧바로 일루션을 실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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