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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82화 (82/122)

82. 20화 실력 행사 (1)

“들어 보니까 이번에 국가 대표로 뽑혔다면서? 열일곱에 국가 대표로 뽑힌 거면 전무후무한 일 아니야?”

“복싱으로만 한정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종목 선수들 중에는 저보다 어린 친구들도 있어서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나는 아저씨가 덕담을 함에도 불구하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복싱이 어마어마하게 인기가 좋았어. 홍수환, 장정구, 유명우처럼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출전하는 날이면 동네 분들이 한데 모여 응원도 하고 그랬다니까?”

“옛날에는 헝그리 정신으로 운동하니까 챔피언이 나왔지 요즘은 눈에 띄는 선수가 없잖아.”

남편의 말을 가만히 듣던 김선화는 자연스럽게 대화에 동참했다.

“예전에 들었는데 70년대 80년대에 챔피언이었던 분들이 지금 돈으로 수십억 많게는 100억 이상 벌었다고 하더라.”

“그것도 인기가 좋던 옛날 말이지. 지금은 그렇게 벌기 힘들 거야.”

아버지가 손을 저으며 겸손한 반응을 보이자 대화 내내 가만히 있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만약에 아시안 게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면 부수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열리잖아. 최근에 보니까 현역에서 물러난 선수들이 개인 방송으로 체육관 홍보도 하고 광고도 찍고 별거 다 하던데?”

“올림픽에서 메달 따신 분들도 몇 년 지나면 잊혀지는데, 고작 아시안 게임 메달 딴 걸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겠어?”

“진우가 인물이 좋아서 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엄마는 박명길의 얄미운 말에 짜증이 올라왔지만, 표정을 관리하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크흠, 뭐 얼굴이 잘생겼으니까 여자애들이 좋아할 수도 있겠네. 그나저나 재윤이한테 들었는데 진우가 소설을 쓴다며?”

“소설이 아니라 웹소설이에요, 웹소설.”

음식에 정신이 팔려있던 박재윤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웹소설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

“그냥 쉽게 말해서 PC나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보긴 하고?”

박명길은 주변에 웹소설을 읽는 지인이 없어서 속으로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요즘 웹소설이 얼마나 잘나가는데요. 스타 작가님들 중에는 한 해에 10억 이상 버시는 분들도 있어요.”

“뭐? 10억?”

아들의 말을 들은 박명길은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글로 밥 벌어먹기 힘들다는 것도 다 옛말이야. 최근 5년간 시장이 빠르게 성장한 덕분에 자리만 잡으면 대기업 임원 못지않게 돈을 벌 수 있게 됐어.”

아버지는 커피를 마시며 차분하게 말했다.

부모님은 포털 사이트 기업인 마인드넷 안에서도 웹소설, 웹툰과 관련된 부서에서 일하셨기 때문에 이쪽 분야에 대해선 빠삭하신 편이었다.

“글로 그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단 말이야?”

“웹소설 시장의 추세를 보면 그 이상도 충분히 가능해. 그리고 인기작의 경우에는 수익이 오랜 기간 창출돼서 잘 쓴 글 하나로 인생이 바뀌는 분들도 계셔.”

“흠, 뭔진 모르겠지만 웹소설이 생각보다 괜찮은 거였네.”

박명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커피를 연신 들이켰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박재윤은 무심한 얼굴로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아저씨 말씀이 틀린 건 아닌데, 그렇다고 옳은 말씀도 아니세요.”

“오, 그래?”

“대기업 임원 아니 그 이상 버는 작가님들이 계신 건 사실이지만, 그건 상위 0.5퍼센트 안에 드는 작가님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거든요.”

시무룩해하던 박명길은 아들의 말에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상위 0.5퍼센트면 엄청 희박한 거 아니야?”

“어쩌면 그것보다 더 적을 수도 있어요. 예전에 기사를 봤는데 우리나라에 웹소설 작가가 20만 명이 있데요. 20만이라는 숫자 안에는 작가 지망생들도 포함됐지만, 무료 연재란에 글을 쉽게 올릴 수 있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작가라고 봐도 무방한 분들이 적지 않아요.”

“그럼 그 작가들 중에 연 10억 이상 버시는 분들은 얼마나 돼?”

“솔직히 말씀드리면 10명도 안 될 것 같은데요?”

박재윤은 어른들과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20만 명 중의 10명이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잖아?”

“1년에 10억까지는 아니지만, 진우도 나름 잘나가고 있어.”

“진우가요? 어? 이상하다. 제가 알기로 무료 연재 코너에 글 몇 개 올린 게 전부인 걸로 아는데요?”

엄마의 말을 들은 박재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아직 이야기를 못 들었나 보구나. 진우가 사실 작년 8월부터 푸른닷컴에 작품을 연재했거든.”

“어? 그래요? 어떤 작품인데요?”

그는 평소에 푸른닷컴에서 웹소설을 읽었기에 웬만한 작품들은 모두 알고 있는 상태였다.

“현대 판타지 소설인데, 제목이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야.”

“헐,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 작가님이 진우였어요?”

“갑자기 왜 호들갑이야?”

박명길은 갑자기 돌변한 아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가 방금 말한 소설이 애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작품이거든요. 어? 그럼 설마 지연이가 나온 웹드라마가…….”

“응, 맞아. 지연이가 이번에 출연한 드라마의 원작이 진우가 쓴 소설이야.”

“웹소설로 드라마도 만들어요?”

김선화는 대화 중 처음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며 질문했다.

“웹드라마, 웹툰 그리고 심지어 티비 드라마까지 웹소설을 기반으로 해서 제작된 것들이 적지 않아요.”

“웹드라마로까지 제작이 될 정도면 소설이 어느 정도 흥행을 했나 보네요.”

“혹시 실례가 안 되면 대충 얼마 벌었는지 알 수 있을까? 드라마까지 제작됐다고 하니까 괜히 궁금해지네.”

박명길은 대화를 나누는 와이프와 엄마를 뒤로하고 뜬금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애한테 뭘 그런 걸 물어봐.”

“가만있어 봐. 솔직히 당신도 궁금하잖아.”

“수입에 편차가 좀 있긴 하지만, 첫 작으로 대충 한 달에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사이를 번 것 같아요.”

나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허심탄회하게 알려 주었다.

그러자 김선화는 외마디 탄성을 지르며 감탄했다.

“와우, 천만 원이면 나쁘지 않은데?”

“운이 좋았습니다.”

“지금도 계속 연재 중이고?”

“2주 전에 연재를 마치긴 했는데, 조만간 다른 플랫폼에도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에요.”

“다른 플랫폼에도 올리면 수입이 계속 더 들어오겠네? 그런데 잠깐 아까 첫 작이라고 하지 않았니?”

“예전에 무료란에 올렸던 글이 몇 개 있긴 한데, 정식으로 유료 연재에 들어간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녀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처음 쓴 작품이 이 정도로 인기를 끄는 경우는 드물 것 같은데?”

“처음부터 호응을 받는 작품이 있긴 해도 진우처럼 첫 작에 웹드라마까지 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런데 너 진짜 대단하다. 글 잘 안 써진다고 푸념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나름 스타 작가가 됐네?”

“스타 작가는 무슨, 이제 막 데뷔한 상황이라 그런 말 듣기는 아직 일러.”

나는 머리를 긁으며 겸손하게 대답했다.

‘쟤가 웬일로 나한테 칭찬을 하지?’

항상 나를 자기 밑으로 생각하던 박재윤은 어느 순간부터 날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열일곱에 국가 대표가 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복싱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웹소설은 자신을 비롯한 또래 친구들이 즐겨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관심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글 쓰는 것도 좋고 운동도 좋은데 그래도 공부는 소홀히 하지 마라.”

“당신도 참, 좋은 이야기하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해.”

김선화는 남편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자 어깨를 치며 만류했다.

“사실 맞는 말이잖아. 소설가도 어떻게 보면 연예인처럼 남의 인기로 벌어먹는 직업인 걸 생각하면 안정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야. 뭐 일단은 성과를 내고 있으니까 계속하는 게 맞는데 공부는 안 놓는 게 좋겠다 이 말이지.”

“휴, 그래. 알겠어. 진우야, 아저씨가 걱정이 돼서 하시는 말씀이니까 네가 이해해라.”

그녀는 남편이 한번 고집을 피우면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아니에요. 저도 어느 정도 자리 잡히면 공부를 할 생각이었어요.”

“그래, 잘 생각했다. 지금 돈 좀 버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아저씨 주변에 사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명길아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잘 케어할 테니까 재윤이나 잘 돌보는 게 어때?”

친구의 발언이 도를 지나치자 내내 참고 있던 아버지가 드디어 폭발했다.

“재윤이는 알아서 잘하는 타입이라 내 케어가 딱히 필요하지 않아. 너도 알잖아? 재윤이는 어렸을 때부터 칭찬만 듣고 자랐다는 거.”

“네 아들이 공부 잘하는 거 누가 모르냐? 그런데 네가 볼 땐 우리가 공부가 중요한 줄 몰라서 애들 진로에 간섭하지 않는 거 같아?”

부모님이 나온 한국대 전자 컴퓨터 공학부는 공과 계열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학과로 전국에서 난다긴다하는 수재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도 의아했던 거 아니야? 알 만큼 아는 친구가 계속 방관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 물론 진우랑 지연이가 스스로 진로 잘 찾은 것은 인정해. 에효, 이제 이런 이야기 그만하자. 괜히 이야기 꺼낸 내 잘못이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서로 얼굴 붉히고 이게 뭐냐?”

박명길은 친구의 화내는 모습에 흡족해하며 어영부영 대화를 마무리했다.

“10분만 더 있다가 일어나지.”

아버지는 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엄마에게 귓속말을 했다.

평소 다툼이라고는 모르고 사는 아버지였으나 친구가 자식과 관련된 사안을 건드린 바람에 예민해지신 상태였다.

“아저씨 말씀이 맞아요. 인생을 장기적으로 봐야지, 당장의 상황만으로 낙관해서는 안 되죠.”

“진우야.”

내가 박명길의 말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적당히 마무리 짓고 자리를 뜨려던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날 제지했다.

“하하, 우리 진우가 마음이 참 넓구나. 그래, 아저씨가 다 널 걱정해서 그런 거야.”

“네, 아저씨.”

“지금 당장은 일, 이천이 크게 느껴져서 공부하기 싫을 수도 있어. 그래도…….”

“저 말씀 중에 죄송한데 아저씨가 저에 대해서 조금 착오가 있으신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던 그는 어리둥절해 하며 반문했다.

“아까 말씀드렸던 제 수입은 첫 작품에서 나온 것만 말씀드린 거라서요. 사실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 외에 두 작품을 더 연재하고 있거든요.”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냐? 설마 네가 버는 수입이 일, 이천보다 더 많다는 걸 알려 주고 싶은 거야? 후우, 진우야.”

“예?”

“우리 진우가 운동도 잘하고 글솜씨도 좋은데 대화하는 법은 잘 모르는 것 같네? 이제까지 이야기하던 논점이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해서 뭐 하니? 그리고 네가 한 달에 천만 원이 아니라 3천, 4천을 번들 내 말이 틀려지는 것도 아니잖아.”

박명길은 나를 한심하듯 쳐다보며 점잖게 타일렀다.

“아저씨께서 무슨 말씀 하시는지는 알겠는데요, 저에 관한 정보가 팩트랑 너무 동떨어져서요.”

“참나,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억울하면 얼마 버는지 한번 이야기 해 봐라.”

“제가 괜히 아저씨를 화나게 만든 것 같네요. 불편하시면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짐짓 미안한 척하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자 그는 약이 오른 목소리로 나를 다그쳤다.

“괜찮으니까 말해 보라니까?”

“괜찮으시다고 하니까 말씀드릴게요. 지난달 제가 벌어들인 수입은 총 9,500만 원입니다.”

“그, 그게 진짜냐?”

박명길은 본인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현재 연재하고 있는 웹툰이 2주 전부터 계속 1위를 찍고 있어서 아마 이번 달에는 더 들어올 거예요.”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고? 제목이 뭐야?”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박재윤 궁금해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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