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83화 (83/122)

83. 20화 실력 행사 (2)

“푸른웹툰에서 매주 수요일 날 연재하는 작품인데 제목은 ‘천마회귀’야.”

“헐! 천마회귀 작가가 너였어?”

‘천마회귀’는 수개월째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소설로 웹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박재윤은 스테디셀러인 ‘천마회귀’의 작가가 나라는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웹툰을 그린 건 아니지만, 시나리오가 되는 소설은 내가 썼어.”

“어? 근데 내가 알기로 천마회귀 작가님 필명이 네가 쓰는 거랑 다르던데?”

“사정이 있어서 필명을 여러 개 쓰고 있어.”

“진우야, 네가 정말 천마회귀 작가야?”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네, 진즉에 알려 드렸어야 했는데, 늦게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원래라면 부모님께 일찌감치 이야기를 드려야 했지만, 내가 거둔 성과에 과한 관심을 가지실 것 같은 예감에 지금까지 말씀을 못 드렸다.

마인드넷에서 근무하시는 부모님은 웹툰과 웹소설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계시기에 천마회귀의 작가가 업계에서 어떤 포지션을 차지하는지 훤히 꿰고 계셨다.

“천마회귀가 뭐라고 그렇게 난리들이야?”

박명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아까 연 소득 10억 이상 되는 작가님 수가 10명이 될까 말까 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진우가 그 10명 안에 들어갈 수도 있겠어요. 푸른닷컴이면 업계에서도 세 손가락에 드는 플랫폼인데 거기서 1등이라면 1년 누적으로 10억 이상 충분히 벌 수 있을 거예요.”

“뭐, 대단하긴 하구나. 그 정도 버는 거라면 굳이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는 없지…….”

자신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수입에 기가 죽은 박명길은 말끝을 흐렸다.

‘조금 치사하긴 하지만, 쐐기를 박아야겠다.’

속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가끔 나 자신도 속물이 되어야 했다.

나는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어제 용돈을 넣어 드렸는데 확인해 보셨어요?”

“무슨 용돈? 당신 들은 적 있어?”

“아니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긴데?”

부모님은 영문 모를 상황에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헉, 진우야. 이게 뭐냐?”

“돈을 왜 이렇게 많이 넣었어?”

각자의 폰으로 계좌를 확인한 부모님은 입금된 금액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그동안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했지 부모님을 위해서 해 드린 게 없었잖아요. 앞으로도 종종 용돈을 드릴 테니까 편하게 쓰세요.”

“진우가 철이 정말 빨리 들었구나. 벌써부터 부모님 용돈을 다 드리고. 저, 그런데 진우가 얼마를 넣었길래 그렇게 놀라신 거예요?”

김선화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용돈을 얼마나 받았는지 물어봤다.

“애가 돈이 어딨다고…… 방금 확인했는데 천만 원이 계좌에 입금됐네요.”

“진우야, 우리도 부족하지 않게 벌고 있으니까 돈을 함부로 쓰지 말고 잘 아껴라.”

아버지는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씀씀이가 헤픈 게 아닐까 싶어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김선화는 이런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부러운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달에 1억씩 버는데, 2천이면 큰돈은 아니지요. 그냥 부담 갖지 말고 진우가 말한 대로 편하게 쓰세요. 안 본 새에 어쩜 이렇게 잘 컸니? 외모만 잘생겨진 게 아니라 생각하는 것도 참 어른스럽네. 재윤아.”

“네?”

“앞으로 진우랑 자주 연락하고 만나. 너희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친했으면서 요즘 통 안 만나잖아.”

“응,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진우야, 좀 있다가 핸드폰 번호 좀 알려 줄래? 몰랐는데 우리가 번호 교환도 안 했더라고.”

박재윤은 눈을 반짝이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나를 하찮게 여겼던 녀석의 태도를 고려하면 단칼에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다 계시는 자리인만큼 잘 지내는 척은 해야 했다.

“그냥 지금 바로 알려 줄게.”

나는 박재윤에게 먼저 다가가 스스럼없이 번호를 알려 줬다.

“나중에 시간 되면 우리 집에도 놀러 오고 그래.”

“네, 알겠습니다. 저, 아저씨.”

“어? 그래. 진우야”

넋 나간 얼굴로 침묵을 지키던 박명길은 내 부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조언 감사합니다. 아저씨 말씀처럼 학업에 신경을 써서 한국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훗, 뭐라고? 한국대? 아, 아니다. 목표는 높을수록 좋으니까 어디 한번 열심히 해 봐라.”

그는 평소 공부라고는 하지 않았던 내가 한국대를 운운하자 웃음이 터질 뻔했으나, 자신을 노려보는 아내의 모습에 간신히 절제할 수 있었다.

“재윤이 수학 과외 선생님이 이 근방에서 유명한데, 그분한테 배워 볼래? 진우 네가 원하면 내가 연결해 줄 수 있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지만, 이것저것 할 게 많아서 따로 과외까지 받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아줌마가 과외까지 구해 주겠다면 선심을 썼으나 미션 수행을 통해 충분히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과외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고3 임박해서 공부 시작하면 늦어. 아줌마 말대로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저, 죄송한데 제가 알아서 공부도 잘 챙기겠습니다.”

“크흠, 그래. 네가 어련히 잘하겠지.”

박명길이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는 낌새를 보이자 나는 단칼에 그의 말을 일축해 버렸다.

“명길아 식사도 다 했고 슬슬 일어나자.”

“그래, 나도 내일 아침부터 일정이 있어서 일찍 들어가 봐야겠어.”

나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 박명길은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몸을 일으키더니 외투를 걸쳐 입었다.

“뭘, 그렇게 서둘러? 어디 근처에서 차라도 한잔…….”

“여보, 그냥 다음에 하자. 우리는 이만 들어갈 테니까 조심히 들어가.”

박명길은 가족들을 데리고 황급히 호텔을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아까 좀 오버했나?’

부모님을 위한다고 나섰지만, 다소 지나친 면도 있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평소 매너를 중시하시는 탓에 어딜 가더라도 예의범절을 강조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행여나 부모님의 기분이 상했을까 싶어 창밖만 바라보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진우야, 아까 보니까 돈이 방금 입금됐던데?”

“그게, 아저씨가 자꾸 얄밉게 말씀하셔서 꼼수를 부렸어요.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어제 돈을 입금했다고 말씀드린 것과 달리 나는 호텔에서 즉석으로 돈을 이체했었다.

예전부터 부모님께 제대로 용돈을 드리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툭하면 자식 자랑하며 나를 깎아내리는 박영길 아저씨를 골탕 먹이려는 목적이 더 컸다.

“미안할 게 뭐 있어? 아들 덕분에 속이 너무 시원해서 오늘은 푹 잘 수 있겠어.”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분 좋으셨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계속 말씀이 없으셔서 저한테 화나신 줄 알았거든요.”

“내가 저 친구랑 모임을 가진 지 횟수로 20년인데, 저렇게 풀죽은 모습은 처음이었어.”

“그러게 말이야. 다른 때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버지의 말에 동의했다.

“그건 그렇고 진우가 ‘천마회귀’ 작가인 줄 알았어?”

“당연히 몰랐지. 만약에 알았으면 작가 섭외하려고 이 고생을 했겠어?”

“작가도 섭외하러 다니세요?”

나는 궁금하여 아버지께 여쭤봤다.

“응, 기성 작가나 스타 작가들 중에 플랫폼과 직접 계약을 맺는 분들도 계시거든. 진우 넌 지금 감성 출판사랑 일하고 있지?”

“네.”

“회사랑 계약을 맺는 분들은 매니지먼트를 거치지 않고 우리와 직접 협업을 한다고 보면 돼. 포털 입장에서도 매니지먼트와 수익을 분배하는 것보단 작가와 양분하는 편이 더 낫거든.”

“회사에선 수익성이 보장되는 작가와는 매니지먼트를 거치지 않고 직접 계약하고 싶어 하겠네요.”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

아버지는 나와 감성 출판사의 사이가 각별하다는 것을 알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럼 회사랑 의논해서 마인드넷과 협업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

부모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말을 꺼냈지만, 아버지는 대번에 거절하셨다.

“아니야, 나중에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랑 일하면 되니까 부담 갖지 마.”

“네, 알겠습니다.”

자식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은 나는 곧바로 수긍하는 자세를 취했다.

‘최대한 빨리 성공해서 가족들을 편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겠어.’

부모님은 내가 주변 신경은 쓰지 말고 현재 누리고 있는 삶에 집중하길 바라셨지만, 성공의 과실을 혼자만 만끽할 생각이 없었다.

* * *

‘후, 감독님하고 첫 대면인데 무슨 이야기가 오갈까?’

기다리고 기다리던 입촌 날이 되었다.

원래라면 진천에 있는 선수촌에 짐을 풀어야 했으나, 백민규 감독의 요청으로 3월 초부터는 다른 곳에서 훈련이 진행되고 있어, 선수촌 입소는 연기될 것처럼 보였다.

“너도 참 불쌍하다. 국가 대표라면 선수촌에서 주는 밥도 먹어 봐야 하는데, 오자마자 전지훈련이라니.”

백성철 관장은 제자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선수촌이랑 저는 인연이 아닌가 봐요.”

현재 우리는 관장님의 차를 타고 훈련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새로운 훈련장은 충청북도 오창군 부근에 위치해 있었는데, 진천 선수촌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여러 면에서 이점이 작지 않았다.

게다가 재계에서 복싱 골수팬으로 유명한 대현그룹의 정호중 회장이 직접 비용을 대서 시설의 퀄리티가 무척 뛰어났다.

“대현복싱센터에 숙소가 있긴 해도 선수촌이랑 멀지 않아서 잠은 진천에서 잘 수도 있겠어. 혹시 알아? 가는 김에 밥도 먹을지.”

“참나,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전 선수촌 밥에 관심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먹고 싶어서 그런다. 옛날에 국가 대표 됐던 친구들이 자랑질을 해 대는 바람에 몰래 잠입해서 먹을까 고민한 적도 있다니까?”

선수촌 밥은 과거 태릉 선수촌 시절부터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감독님이랑 친하시다면서요. 가서 식사만 가능하냐고 여쭤보세요.”

“안 그래도 그놈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좀 있다가 센터 도착하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면담을 할 거다. 첫 만남이니까 괜히 찍히지 않게 언행을 조심하고.”

“예전부터 감독님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그러는 거예요?”

관장님께서 조심하라는 당부를 틈만 나면 하시는 바람에 없던 반발심도 생길 지경이었다.

“그냥 나랑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돼. 요행이랑 변칙은 싫어하고 정석만 추구하는 그런 녀석이야.”

“원리원칙주의자라는 말씀이군요.”

백 감독님이 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계시는지는 만나서 확인할 문제였으나 방금 언급한 것처럼 원칙을 중요시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면 1, 2월 훈련을 빠진 나를 좋게 볼 확률은 낮다고 봐야 했다.

“원리 원칙 못지않게 실리도 추구하는 성격이라 융통성이 아예 없진 않아.”

“복싱에서 실리라면 뭐가 있을까요?”

“뭐긴 뭐겠어, 실력이지. 감독이라는 위치가 원칙만 고집하기 어려운 자리거든.”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수라는 걸 입증하면 되겠네요.”

나는 관장님께서 어떤 취지로 말씀하시는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래, 결국 적응을 잘할 수 있느냐는 네 손에 달렸으니까 주눅 들지 말고 열심히 해라. 알았지?”

“…….”

‘뭐야, 갑자기?’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미션이 생성되었습니다.>

<목표: 백민규 감독이 주는 과제를 모두 수행하시오.>

<보상: 체력, 힘 경험치 +50%>

관장님과 대화 중 미션이 생성되는 바람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야?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아,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센터 들어가면 선배들밖에 없을 텐데, 그렇게 어리버리해 가지고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백성철 관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자를 바라봤다.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어요. 어, 저기 센터가 보이네요.”

나는 손가락으로 센터를 가리키며 들뜬 감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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