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24화 특별반 (1)
귀국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하루 이틀은 휴식을 취하라는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빨리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귀국 바로 다음 날부터 등교를 시작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2학년 1학기가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였다.
대표 팀 훈련으로 석 달 이상 학교를 빠진 탓에 반 아이들과 안면도 제대로 트지 못한 상황이어서 등교 전날에는 조금 긴장이 됐지만, 재웅이와 한 반이 된 덕분에 적응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플래카드가 아직도 붙어 있네.’
대회를 마치고 처음 등교를 했을 때도 부착되어 있던 것을 고려하면 적어도 8일 이상은 붙여 놨다는 이야기다.
들리는 말로는 성문고 동문회장님이 몇몇 선배와 합심하여 플래카드와 격려금을 보내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께서도 개교 이래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서 금메달을 딴 인재가 나온 것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이사장님이 표창장을 수여할 거라는 것을 따로 귀띔해주셨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리 반 학생 하나가 담임 선생님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광경을 지켜보다가 마침 내 앞을 지나가는 반장을 붙잡고 물었다.
“아직 조회 시간도 아닌데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빨리 오신 거야?”
“아, 2학년 2학기 때부터 특별반 뽑잖아. 그거 관련해서 상의하려고 오셨을 거야.”
“특별반? 그게 뭔데?”
소설을 쓰고 운동을 하느라 학교생활에 별 관심이 없던 나에게 특별반은 처음 듣는 단어였다.
“문이과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을 20명씩 뽑은 후에 따로 공부를 시키는 곳이라고 들었어.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5년 전에 폐지됐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성문고등학교 입결이 시원치 않아서 다시 운영하려고 한데.”
“그래서 성현이가 선생님이랑 이야기한 거였구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아이는 우리 반 1등 김성현이었다. 그는 전체 석차에서도 10등 안에 드는 친구로 특별반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했다.
“이번 1학기 때까지는 그대로 가고 2학기 때부터 특별반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건가 봐. 아까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잠깐 들었는데 방학에 학부모 설명회가 있을 예정이래.”
“그래?”
“특별반 담당 선생님들께서 부모님들에게 반 운영을 어떻게 할 건지 설명하는 자리겠지. 그리고 이건 최근에 알게 된 비밀인데, 특별반을 가르칠 선생님들을 외부에서 초빙할 가능성이 엄청 큰가 봐.”
“학원 강사 같은 분들을 말하는 거야?”
나는 반장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응, 대치동이나 목동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로 강사진을 꾸릴 예정이래.”
“우리 학교가 그렇게 돈이 많나?”
“사회에서 성공하신 선배님들이 적지 않아서 장학금 명목으로 들어오는 돈이 꽤 된다고 들었어. 그리고 학부모님들께도 매달 회비를 걷을 예정이고.”
성문고등학교는 역사가 오래된 명문 사립으로 가정 형편이 괜찮은 친구들이 대다수라 매달 회비를 걷는다고 해도 무리를 느낄 부모님은 거의 없었다.
“한 학기도 아니고 매달 걷는 건 조금 심한 것 같은데? 최소한 수능 끝날 때까지는 내야 할 거 아니야.”
수능까지 16개월가량 남은 상황이어서 매달 회비를 내는 게 무리라고 느껴졌다.
“수능 끝날 때까지 낼 수만 있으면 그거 나름대로 성공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반장의 아리송한 말을 듣고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닌데, 1달에 한 번씩 모의고사를 실시해서 전교 20등 밖으로 밀려난 사람은 자기가 있던 반으로 돌아가게 되나 봐.”
“흠, 완전 서바이벌식이네. 그나저나 넌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어?”
반장의 입에서 특별반 운영 사안들이 술술 나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가 운영위원회 임원이라 학교에서 실시하는 정책에 관여를 많이 하고 있거든.”
“그래서 알고 있던 거구나. 어쨌든 귀한 정보 알려 줘서 고마워.”
“그래, 진우야. 또 궁금한 게 생기면 편하게 물어봐.”
작년에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로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된 덕분에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애들이 부쩍 늘었다.
‘진우가 날 좋게 생각하겠지?’
반장은 나를 도와줬다는 생각에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자리를 떴다.
‘조금 있다가 선생님께 여쭤봐야겠다.’
담임은 1학기 초에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학교생활과 진로를 주제로 상담을 진행한 바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면담을 할 거라 말씀하셨고 마침 오늘이 상담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라고 하지만, 학교와 사회에서는 여전히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학벌을 갖춘 사람을 우대하고 있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땄다고는 하나 학교 입장에서는 특별반 학생들에게 더 많이 투자하고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기왕 학교 오는 거 칭찬 들으면서 다니면 더 좋잖아.’
나는 웹소설, 복싱 외에도 학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한국대 출신의 부모님은 지연이와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신 적은 없으나 우리 나이 때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셨고 친구들과 지인들도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특별반에 들어갈 좋은 방법이 없을까?’
다음 학기에 좋은 성적을 거둬서 특별반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기왕이면 부모님이 설명회에 참석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부모 입장에서 본인들 자식이 학교에서 인정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많지 않다.
나는 특별반에 들어가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시간은 흘러 상담 시간이 되었다.
똑-똑-똑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시간 딱 맞춰서 왔구나. 거기 음료수 하나 놓아뒀으니까 목마르면 마시고.”
담임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 줬다.
그는 사회문화와 경제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는데, 인터넷 강사 못지않게 강의력 좋다고 정평이 나 있어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요즘 인기가 아주 대단하던데? 결승전 끝난 지가 꽤 됐는데도 기사가 계속 올라오더라고.”
“기자님들과 인터뷰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여러 언론사들로부터 인터뷰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대한일보, 성동일보와 같은 메이저 언론사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제법 인지도가 있는 연예, 스포츠 매거진까지 다양한 곳에서 연락이 오는 바람에 학교를 마치면 기자님들을 뵈러 동분서주했다.
“그래, 어쨌든 학교에 돌아온 지 1주일 정도 됐는데 생활은 어때?”
“재웅이랑 반장이 도와준 덕분에 수월하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하긴, 그 어려운 금메달도 땄는데 학교생활로 힘들어할 것 같진 않다. 그나저나 혹시 진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있니? 일단, 복싱은 계속할 것 같은데…….”
“예, 다음 달에 프로 테스트 응시하고 프로 복서로 계속 활동할 예정입니다.”
나는 선생님의 물음에 차분히 대답했다.
“그럼, 대학은 아무래도 대한체대나 한국대 체대 이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겠네?”
대한체대와 한국대는 체육 분야에서는 탑을 달리는 학교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체육보다는 경영학과에 진학하고 싶습니다.”
“경영학과?”
담임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예, 예전부터 회사 경영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흐음, 옛날에는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 종목 특기자들이 명문대학교 법학과나 경영학과를 진학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특혜라고 비판하는 바람에 체육과나 체육교육과가 아니면 다른 과는 진학할 수 없다고 들었어.”
“아, 전 체육 특기로 입학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수능으로 대학을 들어가려고?”
선생님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
내신을 잘 관리해서 학생부 종합 전형과 같은 수시로 대학에 입학하는 길이 있었지만, 고교 생활의 절반이 지난 상황에선 늦은 감이 있었다.
“목표하는 대학은 어딘데?”
“한국대학교 경영학과요.”
“한국대학교? 그것도 경영학과?”
담임은 마음 같아서 헛소리하지 말라며 일축하고 싶었지만, 학교 내에서 내 이미지가 굉장히 좋았기에 감정을 다스린 다음 입을 열었다.
“잠시만 기다려라.”
선생님은 나의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를 5분여간 꼼꼼히 검토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펙은 전교권 안에 드는 학생들하고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아. 영어 경시 대회랑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 실적이 있고 공부랑 관계는 없지만, 전국체전이랑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면 대학 입학처에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거야.”
“다행이네요.”
“하지만, 문제는 내신이야. 1학년 평균 석차가 280명 중 67등인데, 이 성적으로 한국대 경영학과에 원서를 넣으면 바로 서류 탈락할 거다. 그리고…….”
“저,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한데요.”
“괜찮으니까 말해 봐.”
그는 설명을 하다 멈추고 제자를 쳐다봤다.
“아까 말씀드린 건데, 한국대에는 수능을 보고 들어갈 겁니다.”
“혹시 정시로 한국대 경영학과를 입학하겠다는 소리야?”
“네, 그렇습니다.”
“정시로 한국대 경영학과를 들어가려면 전 과목에서 3개 미만으로 틀려야 되는 건 알고 있지?”
“예.”
나는 황당해하는 선생님을 보며 덤덤히 말했다.
“영어 경시 대회도 그렇고 언어 성적을 보면 네가 잠재력이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정시로 한국대 경영학과에 들어가는 건 무리가 아닐지 싶다.”
“어려운 건 알고 있습니다.”
“진우야, 네가 생각하는 어려움보다 훨씬 힘들 수도 있어. 솔직하게 말할게. 현재 성문고에서 문과 전교 1등 하는 아이도 수능으로 한국대 경영학과 진학을 장담할 수 없을 거다.”
담임은 태연자약한 내 모습에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선생님 말씀처럼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목표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휴우, 그래. 선택은 어디까지나 네 몫이니까 나도 여기까지만 말할게. 아 그리고 너한테 전할 말이 있다.”
“전할 말이요?”
“교장 선생님께서 나를 따로 불러서 너한테 필요한 게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 내가 볼 때 따로 포상을 내리실 생각이신 것 같아.”
“동문회장님께서 주시는 격려금 말고 학교에서 따로 챙겨 준다는 말씀인가요?”
나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훗, 그래. 이사장님께서 네가 금메달 딴 것에 대해 무척 기뻐하셨대. 내가 알기로 교장 선생님을 따로 불러서 방안을 모색하라고 하셨나 봐.”
“원하는 건 뭐든 된다는 말이죠?”
“무리한 것만 아니면 웬만한 건 뭐든 들어줄 거야.”
“저, 그럼 지금 당장 말씀드려도 되나요?”
“하하, 예전부터 생각해 둔 게 있는 모양이네? 그래 어디 말해 봐.”
담임은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하는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특별반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특별반에 들어가고 싶다고?”
그는 내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 힘들까요?”
“교장 선생님께 말씀을 드릴 수는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지 않을까 싶다. 차라리 컴퓨터나 노트북 같은 상품이나 장학금을 선택하는 건 어때?”
‘그런 건 나한테 아무 의미도 없는데…….’
웹소설로 매달 수천만 원의 수익을 버는 내가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성이 찰 리는 없었다.
‘하긴, 내가 학교 관계자여도 정말 난감하겠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특별반에 넣어 달라고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객관적인 지표를 토대로 학생을 선발하는 자리를 턱 하니 내줬다가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지탄을 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특별반에 들어가는 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진우야, 잘 생각해야 해. 교장 선생님이 설사 허락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 거야. 그리고 9월에 당장 월말고사를 보는 걸 생각하면 들어간다고 해도 다시 반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거다.”
선생님은 내 실력이 특별반에 들어갈 학생들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선생님,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실까요?”
“생각이야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웬만하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방법이 있을 거야.’
심각한 얼굴로 포기할 것을 종용하는 담임과 달리 나는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