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99화 (99/122)

99. 24화 특별반 (2)

‘응, 뭐야 갑자기?’

선생님께 양해를 구한 후 해결책을 궁리하던 그때, 시스템이 활성화되면서 화면이 떠올랐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미션이 생성되었습니다.>

<목표: 특별반에 들어가십시오.>

<보상: 지능 LV UP>

‘이게 웬 떡이야?’

기왕 들어가는 거 미션 수행으로 보상까지 받으면 일석이조였기에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젠 미션까지 걸려 있으니까 어떻게든 특별반에 들어가야 해.’

나는 특별반과 결부된 여러 이해관계자와 내가 들어감으로 인해 유발될 수 있는 상황들을 예측하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사장님과 교장 선생님의 허락만 있으면 특별반에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지만, 그분들 입장에서 부담이 정말 크실 거다.”

담임은 내가 10분이 넘도록 말이 없자 답답했는지 말을 걸어왔다.

“제가 이사장님이어도 학업에서 뚜렷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학생을 특별반에 집어넣는 건 고민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했다.

“이해해 줘서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진우야 네가 고민하는 동안 생각해 봤는데 이건 어때?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집에 돌아가 부모님과 상의를 충분히 한 뒤에 무엇을 받고 싶은지 결정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나중에 후회할 일도 없고 여러모로 낫지 않겠어?”

“포상을 안 받으면 안 받았지. 특별반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휴우, 진우야. 뜻은 알겠지만 여건이 안 되는 거 잘 알잖아?”

담임은 애써 내민 제안을 단숨에 거절하는 제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약간의 융통성과 명분만 만들면 특별반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나중에 보완을 하더라도 일단 말씀을 드리자.’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안한 방법이라 선생님을 설득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뭐라도 말씀을 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명분을 어떻게 만들자는 건데?”

“우선은 제가 특별반 소속의 학생 못지않게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발을 예방할 장치도 마련해야 하고요.”

“계속 이야기해 봐.”

담임은 진지하게 내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저, 선생님. 제가 주제넘게 구는 건 아닌가 싶어서 조심스럽네요.”

나는 학교 측에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교내에서 인정도 받고 또래에 비해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하나 18살에 불과한 내가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하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해.”

담임은 어차피 윗선에 보고가 들어가면 해결책을 찾으라는 지시가 떨어질 게 분명했기에 내 의견을 들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고민했던 방안을 선생님께 모두 털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비용 절감과 기회 확대 명목으로 특별반 인원을 문이과 20명에서 25명으로 확대하는 겁니다.”

“기회 확대는 알겠는데, 비용 절감은 뭐야?”

담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유명한 강사님들을 초빙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텐데, 이를 학교 재정만으로 운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회비를 내는 인원을 늘려 비용을 분담하자는 계획입니다.”

“학부모들은 몰라도 교직원들에게는 확실히 먹히겠어.”

“교직원들뿐만 아니라 학생, 학부모님들도 공감해 주실 겁니다. 사람들은 돈에 관련된 거라면 예민해지기도 하지만, 이해의 폭도 넓어지기 마련이거든요. 제가 듣기로 특별반 소속이면 강사 말고도 교재와 모의고사를 지원해 준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열 명의 인원이 추가됨으로써 교육의 질이 좋아진다고 하면 반감을 갖는 사람이 줄을 겁니다.”

나는 복잡한 명분을 만들어 힘들게 설득시키는 것보다 비용 분담을 언급하여 학부모와 학생들 마음에 쉽게 와닿게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질 좋은 교육을 위해서 부득이하게 학생을 늘린다는 명분은 나쁘지 않아 보여. 그럼 선발 방식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담임은 이야기를 듣고 신뢰가 생겼는지 이제는 아예 구체적인 방안까지 나에게 물었다.

“학부모 설명회가 8월 초에 있으니까 7월 말에 모의고사를 치러 10명을 더 뽑으면 어떨까요?”

“10명만 뽑자는 건, 특별반이 확정된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는 거지?”

“예. 기존 학생들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면 상호 간에 피곤해질 일만 생기니까요. 저, 그리고 여쭤볼 게 하나 있습니다. 혹시 동문회에서 주는 격려금이 얼마나 되나요?”

“이런, 내가 깜빡하고 이야기를 안 했구나. 격려금은 총 500만 원이야. 계좌 번호만 알려 주면 2, 3일 내로 바로 입금될 거니까 상담 끝나기 전에 나한테 알려줘.”

그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받는 격려금 전부를 특별반 운영 비용으로 기부할 수 있을까요?”

“안 될 건 없지만, 굳이? 그리고 500만 원이면 적은 돈도 아닌데 부모님께서 뭐라 하시지 않겠어?”

“모교를 위해 쓴다고 하면 아무 말씀 안 하실 거예요.”

‘이 정도 마음 씀씀이는 보여야 나에 대한 반감이 생기지 않을 거야.’

학교 행정의 최종 결정권자가 교장 선생님이긴 하지만 이미 정해진 사안을 바꾸려면 교직원들 입장에서는 수고로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수정안을 제시한 자가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반발감은 더욱 커지기 때문에 이를 달래기 위한 모종의 장치가 필요했다.

“흠, 그래도 일단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와야 할 것 같아. 네 실력으로 받은 격려금이라고 해도 네 말만 듣고 기부를 진행하긴 어렵거든.”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기부하는 걸 굳이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괜히 오해할까 싶어서요.”

비록 시험을 치러 특별반에 들어간다고는 해도 기부 행위가 선행되면 이를 고깝게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이어 갔다.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냥 기부는 기부대로 진행하고 이걸 대외에 알리냐 마냐는 학교에 맡기는 게 나아. 그리고 교직원 중에 학부모님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차피 다 알게 될 사실이야.”

“듣고 보니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나는 금방 수긍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기부금 용도도 학교 재량에 맞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이후,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궁리했고 30분이 더 지나서야 논의는 끝이 났다.

“원래는 학교생활이나 교우 관계를 주제로 상담을 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특별반 이야기만 하다 끝났네?”

“귀찮으셨을 텐데, 참고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선생님께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당연한 일에 감사는 무슨. 아무튼 오늘 했던 대화는 잘 정리해서 학교에 전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네, 선생님.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나는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린 후 상담실을 빠져나갔다.

* * *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우선 미션부터 진행하자.’

특별반 선발 시험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비를 해서 나쁠 건 없었다.

나는 아르마이스의 의지를 가동시킨 후, 지능 스탯 향상에 도움이 되는 미션을 생성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미션이 생성됩니다.>

<목표: 목록에 적힌 고전들을 정독하고 습득하십시오.>

<보상: 지능 LV UP.>

‘생각보다 평범한 미션이 나왔네.’

책 읽기 미션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수행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나는 미션을 수락한 후, 목록에 적힌 도서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아니, 이 책들을 어떻게 다 읽으라는 거야?!’

내가 읽어야 하는 책들은 이전에 매력 미션 때 읽었던 대인 관계나 심리학책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들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프란시스베이컨 등의 철학자들이 쓴 논리학 저서를 모두 읽으라는 미션이었다.

논리학은 과학, 수학, 사회과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학문이기 때문에 미션의 의도가 이해가 되긴 했으나 목록에 언급된 책들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이해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하아, 모의고사 공부도 따로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미션 수행과 별도로 모의고사 대비도 따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책상에 앉아 한참을 고민했으나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고 답답함은 점점 가중되었다,

‘총장님을 찾아봬야겠어.’

미르헨 총장님은 내가 난관에 처할 때마다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곤 했다.

공무로 바쁘신 분을 급작스럽게 부르는 건 실례였으나, 지금은 이것저것 잴 때가 아니었다.

나는 제국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화상 시스템을 실행한 뒤 호출 버튼을 눌렀다.

<아르마이스 님, 부르셨습니까?>

“어, 바로 연락을 받으시네요?”

<오늘 마침 휴일이라 아무 일도 없던 참이었거든요.>

“이런, 제가 쉬시는 걸 방해했나 보네요. 내일 다시 연락드릴 테니까 푹 쉬세요.”

<아닙니다, 매사 바쁘게 지내다가 갑자기 쉬려니까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미르헨 총장은 손을 저으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전 신경 쓰지 마시고 하실 말씀이 있으면 편하게 하세요. 무슨 일 때문에 절 찾으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제가 오늘 미션을 받았는데…….”

총장님의 휴식을 방해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몰려왔으나 한시가 급했기에 염치를 무릅쓰고 상황을 설명드렸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거군요.>

“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한데 가능한지 한번 알아봐야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희망을 찾은 기쁨에 나는 다급히 물었다.

<일루션을 활용하면 시간 부족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이긴 하지만, 아공간에 책을 갖고 들어갈 수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책을 꼭 갖고 들어갈 필요는 없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션 교수를 여기로 부르겠습니다.>

미르헨 총장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화면에 있는 버튼을 눌러 션 교수를 호출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션 교수의 모습을 담은 화면이 추가로 떠올랐다.

<총장님,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습니까? 어? 아르마이스 님도 계셨네요.>

나를 본 션 교수의 얼굴에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잘 지내셨죠?”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 그런데 무슨 일로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는 겁니까?>

<아르마이스 님, 제가 대신 설명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면…….>

미르헨 총장님은 내가 처한 상황을 간략히 설명한 다음, 아공간에 책을 갖고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책을 직접 갖고 들어갈 수는 없지만, 아카이브 시스템을 일루션과 연동시킬 수 있습니다.>

“아, 생각해 보니까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아카이브에는 텍스트를 스캔하는 기능이 있어서 현실 속 책의 내용을 파일로 저장하는 게 가능했다.

따라서 션 교수가 말한 대로 일루션과 아카이브를 연동시키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이전에 했던 작업에 비하면 간단한 편이어서 이틀이면 될 것 같습니다. 혹시 많이 급하신 거면, 연구원들과 힘을 합해서 하루로 시간을 단축시켜 보겠습니다.>

“이틀도 충분하니까 여유 있게 하셔도 됩니다.”

목록에 적힌 도서를 구한 후 아카이브에 업로드까지 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에 이틀이 하루가 된다고 해서 큰 이득이 없었다.

“덕분에 막힌 속이 뻥 뚫린 것 같아요. 두 분 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또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연동 작업이 완료되면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는 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화면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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