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106화 (106/122)

106. 27화 선발 시험

‘진즉에 스탯을 올려놓을 걸 그랬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박인데?’

채점을 해 보니 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답이었다.

만점이 아니라서 아쉽긴 했으나 시험 시간을 절반만 활용하고 맞은 점수라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다른 것들도 확인해 볼까?’

나는 아카이브에 있는 수학 관련 도서를 하나 골라 클릭했다.

그리고 잠시 후, 수학 개념들이 정리된 참고서가 3D 형태로 떠올랐다.

“문과라서 그나마 다행이야.”

수학은 그 특성상 단기간에 익숙해지기 매우 어려운 과목이었다.

담임이 내가 특별반에 들어갈 확률이 희박하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수학 때문이었다.

여타의 과목들보다 분량이 많은 데다가 난이도 조절도 용이하여 학교에서 마음먹고 어렵게 내면 점수를 깎아 먹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으나 걱정을 계속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기본 개념들을 먼저 읽고 시험 통과의 가능성을 점쳐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괜찮은데?’

과거에도 참고서에 적힌 기본 개념들에서 막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제아무리 어려운 수학 공식이라도 공을 들여 고민하면 해답을 찾기 마련이었고 정 모르겠으면 아버지께 설명을 들어 금방 이해를 하곤 했다.

하지만, 현재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해력은 이제까지 보여 줬던 퍼포먼스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참고서를 펼친 뒤, 텍스트를 읽어 나가기 시작하는데, 소설책을 넘기듯이 진도를 쑥쑥 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맞나 싶어 사이사이에 있는 연습 문제를 풀었는데 굳이 채점을 하지 않아도 개념을 익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개념은 이런 식으로 익히면 될 것 같고 그럼 이젠 실전인가?’

나는 우등생들 사이에서도 어렵다고 소문난 문제집을 펼친 뒤, 몇 문제를 골라서 풀어 봤다.

‘좋아, 이거면 됐어.’

25분에 걸쳐 4문제를 풀었지만, 맞은 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였다고 하나 빵점을 맞았으면 실망을 할 법도 한데, 내 얼굴은 화색이 가득했다.

‘지금부턴 내가 얼마나 하는지에 달려 있어.’

내가 궁금했던 건 해답지에 있는 해설을 이해할 수 있느냐였다.

평범한 문제들이야 해설지를 보는 순간 한눈에 이해가 갔지만, 어려운 문제들은 해설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문제가 워낙 어려워 페이지의 절반을 넘는 분량을 잡아먹는 해설도 일목요연하게 이해가 됐다.

그리고 이해가 되니 암기도 자연스럽게 따라와 한두 번 읽은 것만으로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수학까지 정복할 실마리를 찾자 신이 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누가 공부하라고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나였지만, 옛날엔 엄두도 못 냈던 문제들이 친근하게 다가오자 즐거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 * *

시간은 흘러 선발 시험 날이 되었다.

성문고등학교는 나와 담임 선생님이 논의한 대로 문이과 5명씩 총 10명의 인원을 추가로 뽑는다는 공지를 한 바 있었다.

특별반에 들어가면 수준 높은 강사의 수업, 일반 학생들에게 없는 자율성, 교재 및 모의고사 무료 제공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이는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후우, 긴장된다. 이번에 시험 잘 봐서 특별반에 꼭 들어가야겠어.”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학생들이 고사실에 도착해 있었다.

“넌 양심도 없냐? 전교 150등 언저리가 무슨 특별반이야.”

“공지 안 읽었어? 내신이랑 상관없이 선발 시험 점수로만 뽑는 데잖아.”

‘곧 시험인데 다들 긴장은 안 되나 보네. 어? 담임이잖아?’

학우들의 잡담을 무시하고 마무리 공부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안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보아하니 선발 시험 감독을 하러 오신 게 분명했다.

그는 교탁 앞에 서서 학생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들, 잠깐만 주목해라.”

학생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앞을 바라봤다.

“방금 교무실에서 선발 시험 관련한 회의가 있었는데, 선발 방식에 변동이 생겼어.”

“오늘 시험인데 선발 방식이 바뀌었다고?”

“하아, 진짜 짜증 난다. 공지를 시험 당일 날 하는 경우가 어딨어.”

담임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학생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애들아 잠시만 조용히 좀 해 줄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건 알겠는데,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들어 봐야 하지 않겠어?”

“그래, 우선 들어보기나 하자.”

“일단 내용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게 맞는 것 같아.”

학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고 선생님을 바라봤다.

“나도 오늘 회의에서 들은 이야긴데, 특별반 학생들 중 몇몇이 선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모양이야. 원래는 시험을 치러서 5등 안에 든 학생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었잖아. 그런데…….”

담임은 착잡한 얼굴로 학생들을 보며 설명했다.

내용은 이랬다.

우수한 학생들은 이미 특별반에 들어갔기에 선발 시험에서 5등 안에 들어도 수준이 미달되는 학생이 발생할 확률이 있다.

따라서 단순히 등수를 매기기보단, 커트라인을 만들어 조금 덜 뽑히더라도 기존 학생들과 수준을 맞추기로 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방식을 바꾸면 학생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까 원안을 유지하자고 말을 했는데, 저쪽에서 하도 공정성을 들먹이며 따지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됐다.”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담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후에도 설명은 5분여간 이어졌고 이야기를 듣던 학생들은 저마다 손을 들며 질문을 하려 했다.

하지만, 담임은 곤란한 기색을 드러내며 급하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30분 후면 시험이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자. 어차피 결과 확인하려고 학교에들 올 거 아니야.”

담임의 말에 따르면 문이과 다 합해도 응시자가 70명을 넘지 않기 때문에 결과는 바로 다음 날에 공표된다고 했다.

“아이씨, 이게 뭐야.”

“재수 없으면 5명은커녕 1명도 합격자가 안 나올 수도 있겠는데?”

성문고등학교에서 제시한 커트라인은 서울 소재의 괜찮은 사립대를 정시로 통과할 수준이었는데, 최근 10년간, 정시 T.O가 많이 줄어든 바람에 입결이 올라간 것을 고려하면 너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조금 갑작스럽기는 해도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

울상을 짓고 있는 학우들과 달리 나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커트라인이 생긴 탓에 응시자 전부는 아니어도 합격자의 점수가 공개될 확률이 높아졌다.

보통의 경우라면 자신의 점수가 노출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겠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니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특별반에 편입한다고 해도 기존 학생들의 텃세에 시달릴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이 텃세는 비단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곧 있으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특별반 설명회가 열리는데, 편입생들에 대해 무시하는 기류가 조성되어 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부모님이 받게 될 거다.

그러나 만약 선발 시험에서 압도적인 점수로 통과하여 학교를 뒤집어 놓는다면 일련의 상황들을 예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기왕 보는 거 만점을 목표로 해 보자.’

지난 3주간, 가상 공간에서 공부에만 매진했다.

그 결과 일전에 사 놓은 참고서와 문제집들을 마스터한 것은 물론이고 과목별 모의고사도 모두 풀어 놓은 상태라 자신감이 넘쳤다.

잠시 후, 시험 시간이 임박하자 담임이 교실로 돌아왔다.

그는 시험지가 든 봉투를 교탁 위에 꺼낸 뒤, 분배할 준비를 했다.

“시험지 뒤로 넘겨라.”

1교시 국어 영역 시험이 임박했다.

나는 양손 깍지를 낀 채 기지개를 켜며 덤덤히 기다렸다.

담임은 시험지가 분배된 것을 확인한 후, 시험개시를 알렸다.

“시작해라.”

나는 담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문제들을 풀어 재꼈다.

‘뭐, 뭐야?’

‘문제는 제대로 읽고 푸는 걸까?’

‘거 참, 되게 신경 쓰이네.’

학생들은 시험지를 넘기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본인들이 온 집중을 다 하여 한 장을 넘기고 있을 때 나는 두 장 세 장을 넘기니 그들 입장에서는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시험을 포기할 녀석은 아닌데, 왜 저러지?’

시험 감독을 보던 담임도 이런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그는 학생들이 시험지 넘기는 소리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보고 제지를 할까 고민했지만, 4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책상에 엎드리는 것을 보고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1교시가 끝나고 수학 영역 시간이 되었다.

‘흠, 아무래도 확인을 해 봐야겠어.’

2교시에서도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시험지를 넘기자 담임은 확인을 하기 위해 은근슬쩍 나에게 다가왔다.

국어의 경우 이해하고 풀었는지 찍고 넘어갔는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수학은 암산으로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라 타인의 눈을 속일 수 없었다.

‘진짜 풀고 있는 거였잖아?’

담임은 시험지 여백에 적힌 숫자와 공식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크흠…….”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담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떴다.

나는 이런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오늘은 공고한 대로 특별반 선발 고사의 시험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문과 합격자는 3명이고 이과 합격자는 고작 2명이라고?”

한 학생이 학교 게시판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보며 입을 열었다.

“커트라인을 생각하면 합격자가 나온 것도 용한 거야. 그런데 강진우 점수 실화냐?”

학생들은 내 이름 옆에 적힌 점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수능 수준의 시험에서 487점이라고?”

“와, 씨 이게 말이 되냐? 전교 50등 안에도 못 들던 애가 갑자기 이 점수를 맞는다고?”

“점수로 표기가 안 돼서 그렇지 제2외국어도 만점이래.”

“야, 조용히 해. 옆에서 다 듣겠어.”

“헉, 언제부터 와 있었지?”

나를 두고 설왕설래하던 아이들은 바로 뒤에 내가 있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쁘지 않긴 하지만, 점수를 더 올려야겠어.’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인 것을 감안하면 지금 맞은 점수도 대단한 거였으나 한국대 경영학과를 목표로 하는 나에겐 살짝 아쉬운 점수였다.

나는 게시판에서 결과를 확인한 뒤, 선생님을 뵈러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합격자들에 한해서 특별반 설명회에 관한 공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축하한다, 진우야.”

담임은 화색이 가득한 얼굴로 날 반겨 주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네가 문제 푸는 것을 보고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1등까지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운이 좋았습니다.”

“예전에 한국대 경영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그랬지?”

“예.”

“남은 학교생활만 무난히 보내면 불가능도 아니겠어.”

담임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결과로 증명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니까?’

나는 지난 상담에서 코웃음을 치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180도 바뀐 담임의 태도가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생사라는 게 결국 실력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명회는 교무실 옆에 있는 세미나실에서 진행될 거야. 그런데 장소가 조금 협소해서 부모님 중 한 분만 오시는 것으로 결정됐어…….”

이후, 담임은 설명회 관련된 공지를 나에게 알려 주었고 학교에서 제작한 팸플릿을 주는 것으로 대화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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