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107화 (107/122)

107. 28화 시합은 만드는 거야 (1)

8월이 되었다.

서울의 거리는 뜨거운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더운 날씨로 인해 사람들은 거리를 돌아다니기보다는 안에서 에어컨을 켜고 피서를 하고 있었다.

“어제 설명회를 다녀왔는데, 다른 엄마들이 똑똑한 아들을 뒀다며 칭찬하시더라고.”

엄마는 아버지를 거실 소파에 앉혀 놓고 설명회 때 있었던 일들을 말씀하시는 중이셨다.

“오, 그래?”

“진우가 특별반 선발 고사에서 1등을 해서 그런가 어떻게 공부를 시켰냐며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더라니까?”

“우리가 한 게 있나? 진우가 다 알아서 한 거지 뭐.”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보니 내심 기분이 좋으신 것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너희 담임 선생님도 만나고 왔어. 최근에 대학 진학 관련해서 상담도 했다면서?”

“저도 내년이면 고3이다 보니까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듣기로는 한국대 경영학과를 목표로 삼았다던데?”

“네,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난 우리 애들이 예체능 쪽에만 재능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그동안 착각을 하고 지낸 것 같아.”

“그러게, 다들 공부 쪽은 관심이 없어 보여서 기대도 안 했는데 한국대 경영학과라니,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오네.”

‘한국대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내 기준에선 한국대학교 경영학과 입학보단 전국체전 우승과 웹소설 판에서 성공하는 게 훨씬 대단한 일이었지만, 부모님의 반응이 지금처럼 뜨겁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공부에 대해서 일절 터치를 안 하셨던 분들이라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까지 내신 관리를 엉망으로 해서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

“수시 말고 정시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맞아. 선발 고사에서 1등까지 했는데, 못 할 게 뭐 있어?”

부모님은 합이라도 맞춘 듯 이구동성으로 입을 열었다.

“특별반 애들 없이 본 시험이라 1등이라고 말하긴 어려워요. 그리고 한국대 경영학과를 정시로 뚫으려면 점수도 조금 더 올려야 해요.”

“선생님 말씀으로는 특별반 학생들이랑 같이 시험을 봤어도 3등 안에 들었을 거라고 하던데?”

“진우야. 수능까지 1년 넘게 남았으니까 준비를 잘해 보자.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만 하면 못 할 게 뭐 있겠어?”

‘만약에 한국대 입학을 실패하기라도 하면 엄청 실망하시겠는데?’

이제껏 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열정적인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 말을 이어 갔다.

“알겠어요.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서 한국대 경영학과에 꼭 들어갈게요.”

“그래, 우리도 뒤에서 열심히 뒷바라지해 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이야기하고.”

“크흠, 뭐, 진우가 알아서 잘하겠지. 아무튼 특별반에 들어간 거 다시 한번 축하한다.”

엄마와 함께 호들갑을 떨었던 아버지는 뒤늦게 현타가 오셨는지 헛기침을 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두고 보세요. 앞으로 기뻐하실 일이 더 많을 거예요.’

내가 거둔 성과에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더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겠다고 다짐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방학을 맞은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정선 체육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은 딱히 훈련이 계획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관장님께서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부르셨다.

‘안에 관장님 말고 누가 있나?’

나는 관장님이 아닌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체육관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알아챘다.

“안녕하세요, 관장님.”

“어, 그래. 너한테 미리 이야기를 못 했는데 오늘 김현철 기자님도 이곳에 자리하셨다.”

“선수님, 오랜만입니다.”

김현철 기자님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관장님이랑 무슨 즐거운 이야기라도 나누신 건가요? 웃음소리가 복도까지 들리더라고요.”

“이런, 저희가 너무 큰 소리로 떠들었나 보네요.”

“하하, 괜찮습니다. 어차피 다른 사무실들은 11시는 되어야 열어서 지금은 시끄럽게 떠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관장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저, 관장님 괜찮으면 선수님에게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아, 네 물론이지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나는 기자님과 관장님이 어떤 대화를 나누셨는지 대충은 짐작이 갔지만, 모르는 척하며 반문했다.

프로 테스트를 치른 이후, 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가 쇄도했다.

평소 그랬던 것처럼 가리지 않고 모두 인터뷰에 응했고 이 중 한두 개나 기사화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매스컴에서는 나를 계속 다루고 있었는데, 이는 나 외의 제삼자가 내 이름을 언급해 줘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일례로 KBW 협회장은 신인 선수로서는 이례적으로 타이틀 샷을 바로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었다.

그러자 KBW에 소속된 프로 복서들은 이에 대해 코멘트를 남기며 한창 시끌시끌한 상황이었다.

“최근에 조효종 선수가 SNS에 적은 글을 읽어 보셨나요?”

조효종은 내가 속한 체급인 슈퍼웰터급 챔피언으로 KBW 안에서도 몇 안 되는 인지도가 있는 선수였다.

“네, 여건만 되면 당장 다음 달에 붙자는 식으로 글을 올렸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랭킹전을 모두 스킵하고 타이틀 샷이 성사된다면 받아들일 의사는 있으십니까?”

김현철 기자는 챔피언 결정전에 대한 내 의사를 물어보았다.

“성사만 되면 지금 당장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요? SNS를 보니까 다른 선수들의 반발이 만만치가 않던데요?”

프로 무대에서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곧바로 타이틀전을 치르는 건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기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거지요.”

“기자들의 역할이요?”

“네, 이 언론이라는 건 실현하기 어려운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 있답니다.”

김현철 기자는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KBW 회장님이 언론에서 밑밥만 깔아 주면 타이틀전을 치를 수 있게 하겠다고 공언하셨다고 하네.”

“그게 사실인가요?”

“예, 이틀 전에 있던 미팅에서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관장님의 말씀에 놀란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묻자 기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기자님이 회장님을 만나셨다고요?”

“예, 타이틀전 성사를 위해 힘을 써 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물론 저도 흔쾌히 응했지만요.”

“회장님께서 먼저 부탁을 하셨다니 의외네요.”

“종합 격투기 붐이 불면서 복싱이 찬밥 취급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대중들이 열광하는 선수가 등장했는데 우대를 안 해 주는 게 이상한 거지요.”

기자님은 회장의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래도 주변 선수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같아서 왠지 마음에 걸립니다.”

“그럴 필요 없다. 네가 성공해야 다른 선수들도 먹고살 길이 열릴 테니까 말이야.”

관장님은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했다.

“흥행몰이를 해서 시장을 키우라는 말씀이시죠?”

“하여간 눈치 하나는 귀신같이 빠르다니까. 맞아, 네가 그래도 타 선수들보단 인기가 좋은 편이니까 파이를 키우면 근처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지 않겠어?”

“제가 복싱 커뮤니티나 SNS상에서 조금 유명한 건 맞지만, 판도 자체를 뒤집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진 않아요.”

관장님의 의견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언급이 자주 되는 편이긴 했으나 당장 인스타를 봐도 나보다 인기가 많은 인플루언서들은 널렸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은 제가 알아서 케어해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자님께서 뭘 어떻게……. 죄송합니다. 대화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실언을 했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가 곧바로 사과했다.

“아닙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평범한 지역지 기자였던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게 믿기지 않겠지요. 하지만, 저도 그동안 여러 변화가 생긴 덕분에 입지가 조금 넓어진 상황입니다.”

김현철 기자는 자신이 속한 스포츠 성동이 타 언론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회사라는 것을 은근히 어필했다.

“기자님께서 직장을 옮겼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네요.”

“하하, 아닙니다. 제가 이직한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이만하면 이야기도 어느 정도 된 것 같은데 바로 작업에 들어가시죠.”

백성철 관장은 김현철 기자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 선수님 갑작스럽게 이런 요청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조만간 타이틀전을 위한 특집기사를 낼 생각이거든요.”

김현철 기자는 협회장의 요청으로 조효종 선수와는 어제 인터뷰를 해 놓은 상태였다.

“뭘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대중들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있는지 알아보는 작업이니까 평소 하던 인터뷰를 조금 더 길게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선 선수님의 특징을 먼저 짚어 보겠습니다. 나이 열여덟, 전국체전 우승 및 아시안 게임 금메달. 유명 아이돌 여동생, 한국대를 나오신 부모님 그리고…….”

그는 품속에서 수첩을 꺼낸 뒤 인터뷰를 통해 알아낸 인적 사항을 읊으며 차근차근 적어 나갔다.

“이외에 혹시 대중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것들이 더 있을까요?”

“음, 교내에서 입상한 것들도 괜찮을까요?”

“판단은 제가 할 테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흠, 조금 자잘할 수도 있지만 작년에 교내 문학 공모전에서 2등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진행된 문학 공모전과 영어 경시 대회 그리고 특별반에 들어간 것까지 상세하게 말씀드렸다.

“내가 가르친 녀석이지만, 진짜 난 놈은 난 놈이다.”

관장님은 제자가 이룬 학업적 성과에 혀를 내둘렀다.

“단순히 운동만 잘하는 게 아니라 학업적인 능력도 갖췄다라……. 이거 잘만 하면 괜찮은 스토리가 나오겠는데요? 그리고 문학 공모전에 입상해서 소설 단편집을 낸 것도 대중의 눈길을 많이 끌 것 같습니다.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알리면 기존의 천재 이미지를 더 강화할 수 있거든요.”

김현철 기자님은 나에게 들은 이야기를 부지런히 옮겨 적으며 말했다.

“저, 문학 공모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드릴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 말씀하시죠.”

인적 사항을 적느라 메모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기자님은 고개를 들고 날 바라봤다.

그는 내 입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제가 사실 복싱 외에도 소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소설 활동이면 작가라는 말씀입니까?”

김현철 기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기자님, 혹시 웹소설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물론이지요. 제 아들이 웹소설이면 환장하는 아이라 잘 압니다.”

“현재 저는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걸 보시면…….”

나는 스마트폰으로 웹소설 앱을 실행시킨 뒤 기자님께 다가갔다.

‘어차피 공개될 걸 지금 알린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원래는 웹소설 작가라는 직업까지 공개할 생각은 없었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느꼈다.

작품이 연달아 성공하는 바람에 웹소설 커뮤니티에서도 상당히 많이 언급되는 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에다 국내 챔피언에 도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커뮤니티 안에서 반향이 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정말 선수님이 쓰신 거예요?”

김현철 기자는 순위표 맨 꼭대기에 올라있는 소설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이 작품 말고도 다른 플랫폼에서 1등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잠시만요.”

나는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연재작들을 보여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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