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28화 시합은 만드는 거야 (2)
“소설 4개를 동시에 연재하고 계셨던 겁니까? 복싱하랴 공부하랴 무척 바쁘셨을 텐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이게 정말 가능은 한 겁니까?”
김현철 기자는 내가 진행하고 있는 일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믿어 지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 버겁긴 했지만, 계속하다 보니 익숙해지더라고요.”
“제가 웹소설 업계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작가님들 사이에서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까요?”
“흠, 게임으로 치면 1티어 작가인 건 확실한데 정확히 몇 등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들마다 잘 나가는 작가를 구별하는 방식이 달라서 뭐라고 대답을 드려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보통 독자님들이 어떤 작가를 대단하다고 하던가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지도, 히트작 수, 다운로드 혹은 조회 수, 매출…….”
“선수님, 잠시만요.”
“네?”
“말씀 중에 답이 나온 것 같습니다. 다른 건 상관없고 매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득을 기준으로 위상을 이야기하는 게 대중들 입장에서도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그 사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건 결국 소득이었다.
제아무리 5억짜리 히트작 10개를 내도 100억짜리 히트작 하나만 못하다는 게 김현철 기자의 지론이었다.
“매니저님 말씀에 따르면 현재 추세로 웹소설이 계속 팔리면 60억가량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 6억도 아니고 60억?”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백성철 관장은 60억이라는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말 그대로 매출 60억이라 제 주머니에 들어오는 건 절반도 안 될 거예요. 아니다, 세금까지 떼면 수익이 훨씬 더 줄어들 수도 있겠네요.”
“1등을 하신다길래 돈을 많이 벌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저, 그럼 업계에 작가님, 아니 선수님처럼 버는 분들이 몇이나 됩니까?”
이야기를 듣던 김현철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나를 작가로 호칭하려다가 급하게 정정했다.
내가 웹소설로 거둔 성과가 작지 않았기에 선수와 작가 사이에서 혼동이 발생한 것이다.
“작가와 선수 둘 다 제 아이덴티티를 설명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그러니 기자님께서 편하신 대로 불러 주세요.”
“아닙니다. 명색이 스포츠 담당 기자인데, 선수님으로 대해야 하지요.”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앞선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면 저처럼 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저보다 많거나 비슷한 매출을 기록한 작품이 10개가 채 안 될 겁니다.”
나는 웹소설 판에서 대성공을 거둔 타 작가의 작품들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재능, 외모처럼 타고난 스타성 자체도 크신 편인데, 선수님을 꾸며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 저로서는 작업하기가 무척 수월할 것 같습니다.”
기자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이외에 또 궁금하신 게 있으신가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간략하게라도 듣고 싶습니다.”
“들어 봤자 쓸 만한 게 없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중산층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내 삶에서 특별히 쓸 만한 내용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한국대 출신 부모 밑에서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배출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스토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굵은 뼈대에 붙일 수 있는 살을 찾는 겁니다.”
김현철 기자는 나와 조효종 선수로부터 대중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 뽑아내려 했다.
“기자님께서 원하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어렸을 때는 서울이 아니라 화성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는 기자님의 요청에 따라 살아온 행적들을 차분하게 읊기 시작했다.
* * *
시간은 흘러 8월 말이 되었다.
‘여긴가?’
짧았던 방학이 끝이 나고 어느덧 개학 날이 되었다.
나는 원래 있던 2학년 교실이 아닌 학교 본관 1층에 있는 특별반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진우야, 여기야.”
특별 A반과 B반 중 어느 게 문과 반인지 몰라 서성이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교실 안에서 들려왔다.
“채원아, 너도 특별반이었어?”
나는 윤채원이 있는 A반에 자연스럽게 입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옆자리를 치우더니 앉을 것을 권했다.
“너 올 줄 알고 자리 맡아 놨었어.”
“고마워. 이제 7시가 조금 지났는데 엄청 빨리 등교했네?”
“중학교 때부터 아침 일찍 등교해서 글을 쓰는 게 습관이 됐거든.”
채원이는 글을 끄적이던 노트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최근에 소설책을 출간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대단하다.’
재웅이에게 듣기로 채원이는 문과에서 전교 5등 안에 드는 수재라고 한다.
게다가 모의고사 성적도 전교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을 고려하면 그녀의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요즘 네 기사가 뉴스에서 엄청 뜨던데?”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김현철 기자님께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준 덕분에 KBW 슈퍼웰터급 타이틀전이 성사되었다.
일전에 심층 인터뷰를 마친 이후, 스포츠 성동을 중심으로 나에 관한 기사가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복싱 입문 14개월 만에 프로 챔피언을 노린다는 기사부터 교내에서 영어, 소설로 입상했다는 기사까지 나를 어필할 수 있는 많은 기사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물론, 대다수의 기사들은 포털 상단이나 일간지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애당초 인지도를 높이려 작성된 기사들이 주요 뉴스로 분류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푸른닷컴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천마회귀’의 작가임이 공개된 이후로 상황은 급변했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가 요즘 가장 핫한 웹소설 작가라는 사실은 독자들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예전에 썼던 소설이 다시 뜨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며칠 전, 나는 담당 매니저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내가 맨 처음 썼던 작품인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가 랭킹 안에 들어 푸른닷컴으로부터 프로모션을 받게 됐다고 일러 줬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던 이유로 다양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점은 복서가 복싱에 관한 소설을 썼다는 것이었다.
나를 좋아하는 팬들뿐만 아니라 복싱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에 호기심을 가졌고 웹소설 시장으로 유입되어 역주행 현상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필명으로만 알고 있던 작가가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라는 것을 알게 된 웹소설 독자와 작가 지망생들은 자신들이 우상으로 여기던 작가의 챔피언 결정전이 열린다는 말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즉, 양쪽에서 시너지를 일으킨 덕분에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이후, 포털 스포츠란에 나와 관련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올라가게 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 타이틀전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진우가 선발 고사에서 1등을 했다며?”
“맞아, 복싱하고 글도 쓰느니라 공부할 짬을 내기 어려웠을 텐데 정말 대단해.”
“솔직히 우리랑은 사는 세상이 아예 다른 애 같아. 그래도 윤채원은 같이 있는 게 어색해 보이지는 않네.”
아이들은 하나둘 반에 들어오더니 교실에 있는 나를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진우야, 애들 때문에 신경 쓰이거나 그러진 않아?”
윤채원은 학우들이 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는데 이젠 괜찮아.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너도 이러지 않았어?”
“응, 그랬었지. 그래도 이번에는 네 덕분에 예전보다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상대적으로 관심이 나에게 더 쏠린 탓에 그녀로서는 편안해진 측면도 있었다.
“공부하는 애들도 있으니까 조금만 조용히들 하자.”
맨 앞 줄에 있던 남학생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반 아이들을 보며 일갈했다.
그의 이름은 박건희로 문과에서는 부동의 1등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었다.
‘특별반에 왔으면 차분히 앉아서 공부나 할 것이지 왜 저렇게들 호들갑이야?’
박건희는 나를 두고 수군거리는 아이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흔히 사법, 외무, 행정 고시로 불리는 삼시를 모두 통과하고 현재는 서울중앙지법에 재직 중인 판사 아버지, 한국대 의대 교수를 역임 중인 어머니를 둔 녀석은 공부에 대한 집착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는 내신 성적은 물론이고 평소 보는 모의고사의 점수를 고려하면 한국대 입학은 너끈히 하고도 남았다.
‘단순히 입학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박건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조인이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법대에 진학해야 했지만, 로스쿨이 생긴 탓에 주요 대학의 법학 학사 과정이 모두 사라진 상황이었다.
따라서 차선으로 한국대 경영학과에 입학하려 했는데, 문제는 수석 입학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한국대 경영학과는 법학과가 없어진 이후로 문과생이 들어가기 가장 어려운 곳으로 여겨진다.
즉, 한국대 경영학과 수석 입학은 전국 1등과 같다는 이야기였다.
“쟤는 성적 유지만 하면 되는데 뭘 저렇게 예민하게 굴어?”
“냅둬. 옛날에 들었는데 부모님이 한국대 법대, 의대를 수석으로 들어가셨나 봐.”
“헐, 그럼 부모님이 문이과 양쪽에서 전국 1등이셨단 말이잖아. 그래서 전교 1등을 밥 먹듯이 해도 만족을 못 하는 거구나.”
박건희네 집안에는 의료, 법조인과 같은 전문직 종사자가 무려 9명이나 됐다.
친가는 아버지와 같은 법조 계통의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고 외가에는 의사, 약사처럼 의료 계통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공부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그가 이런 환경 속에서 인정을 받으려 하니 입학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중간에 들어왔으면 조용히 지낼 것이지 왜 저렇게 설쳐 대?’
그는 아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나를 아니꼽게 생각했다.
특별반은 우등생이 모두 모여 있는 만큼, 공부를 잘하는 게 곧 능력인 곳이었다.
박건희는 이런 아이들 사이에서도 군계일학이라 여겨질 정도로 뛰어난 학업 능력을 자랑했고 성문고를 넘어 인근에 있는 학원, 학교들까지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반면에 이전까지 공부랑은 전혀 상관없던 내가 별 노력 없이 주목받는 모습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휴, 딱 보니까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네.’
나는 현자의 눈을 통해 박건희에 대한 분석을 끝낸 상태였다.
부동의 전교 1등이라는 명성답게 학업과 관련된 스탯이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눈여겨본 건 스탯보단 나에 대한 감정이었다.
현자의 눈은 박건희가 나에 대한 질투심을 넘어 본인 포지션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알려 줬다.
“진우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아, 주말에 있는 기자 회견을 생각하고 있었어.”
시스템이 분석한 내용을 읽으며 상념에 잠겨 있던 나는 채원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난 내 일만 하면 되는 거야.’
박건희가 나를 견제한다는 사실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앞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에 비하면 하찮은 일에 불과했다.
“여긴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져?”
“어? 원래 담임 선생님들이 시간표랑 교재를 배부해 주시는데, 넌 못 받았어?”
“아, 맞다. 선생님이 아침에 교무실에 들리라고 하셨는데.”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아침 조회까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대로 교무실로 달려갔다.
“풋, 바보. 가만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윤채원은 이런 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