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111화 (111/122)

111. 29화 도전 (2)

‘선배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지 짐작이 간다.’

첫 작인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의 연재를 마친 후 연달아 4개의 작품을 론칭했다.

글 쓰는 속도가 빠르니 다작을 해 보라는 회사의 권유로 시작한 거였지만, 막상 해 보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필력 레벨이 6에 달하다 보니 스토리가 후반부에 들어도 1화를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을 초과하지 않았고 신작의 경우에는 20여 분만에 5,000자 이상을 채워 넣을 때도 있었다.

이처럼 웹소설 쓰는 것에 대해서는 통달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동시에 네 개의 작품을 연재해도 무리는 없었으나 가끔씩 드는 공허함은 있었다.

새벽 1시나 2시 무렵에 써야 할 분량을 모두 채우고 잠자리에 들 때면 하루하루가 매일 똑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몇몇 사람들은 웹소설을 기계처럼 쭉쭉 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양산형 소설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걸 봐도 그 말이 아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제아무리 스토리를 쉽게 뽑아 내는 작가님이 있더라도 사람이 기계가 된 것은 아닙니다.”

“…….”

이규석 선배는 작년 여름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내가 스트레스를 겪고 있지 않을까 염려했다.

나를 배려해 주는 선배님의 마음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대답을 드려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작업 자체에 살짝 질려 가는 감이 있었고 힘들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라서 입을 다물고 일단 듣기로 했다.

“작가님이 쓰신 작품이 웬만한 메이저 플랫폼을 모두 휩쓸고 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아마 웹소설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적어도 4할 이상은 작가님 글을 읽었다는 거지요.”

“커뮤니티에서 언급되는 빈도를 보면 많은 분들이 읽으신 것 같기는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배님 말씀에 공감했다.

“원래 한 작가가 후속작을 연달아 내놓게 되면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과 소재에서 겹치는 부분이 발생해서 신선함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가님께서는 매번 참신한 소재로 글을 쓰는 건 기본이고 문장력이나 이야기 구성 능력이 더 좋아지셔서 많이 놀랐습니다.”

“하하, 항상 좋게 봐 주시니 괜히 부끄럽네요.”

갑작스러운 칭찬에 난 멋쩍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사실, 선배님께서 하신 이야기는 커뮤니티에서도 몇 번 거론된 적이 있었다.

보통 장편의 소설을 한번 쓰고 나면 소재가 고갈되거나 글을 쓰는 방식이 눈에 익어서 진부해지는 면이 있는데, 내가 쓴 웹소설은 신작으로 나올 때마다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가 늘 나왔었다.

‘틈틈이 스탯을 올린 게 주효했던 거야.’

이유는 간단했다.

꾸준한 미션 수행으로 필력 레벨을 올렸다는 것.

나는 스탯 레벨이 올릴 때마다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신작을 구상해 보곤 했다.

아니면 역으로 신작을 쓰기 전에 글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션을 수행하여 스탯을 높인 적도 있었다.

즉, 능력이 높아지고 나면 신작을 써 보는 게 일종의 습관처럼 굳어졌고 이는 새로운 작품을 들고 올 때마다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는 세간의 평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추세라면 전체 웹소설 작가님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하지만, 그다음은 무엇일까요?”

“다음이랄 게 있을까요? 그저 내 실력을 갈고닦고 주기적으로 신작을 내는 게 제 할 일인걸요.”

“왠지 달가워하시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이규석 선배는 내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아닙니다. 선배님을 만나서 웹소설을 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정말 즐겁고 행복합니다. 다만, 여러 번 했던 작업이라 그런지 예전처럼 흥분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작가님이어도 충분히 그랬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들은 선배님은 이해가 간다는 얼굴로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사람은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있을 때 원동력이 생기는 법입니다. 예를 들면 등산가의 경우 산을 등반해서 정상에 다다르면 그 순간 기쁨을 느끼지만, 내려온 뒤에는 아직 올라가야 할 산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높은 산에 올라가기 위한 대비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초장에 히말라야에 있는 모든 산을 등반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산을 정복하는 데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등산을 하는 데 흥미를 잃게 될 것 같습니다.”

‘흠, 그래서 요즘 글을 쓰는 데 흥이 안 났던 건가?’

나는 선배님께서 어떤 의도로 말씀하시는지 알아챘다.

처음 웹소설을 연재할 때만 해도 무료 연재를 벗어난 기쁨만으로도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다. 게다가 첫 작이었던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가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리고 웹드라마 제작으로 이어지면서 하루하루가 행복의 연속이었다.

그 뒤로는 복이 넝쿨째 들어왔다는 말 외에 내가 거둔 성과를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일이 잘 풀렸다.

‘천마회귀’로 푸른닷컴에서 1위를 찍었고 내가 쓴 작품들이 웹툰화 되는 것은 물론이고 드라마와 영화로까지 제작이 된다고 하니 웹소설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복할 산이 남지 않은 전문 산악인과 같은 처지라고 볼 수 있어서 스스로 동기 부여를 잘하지 않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웹소설을 써 온 기성 작가님들 중에도 드라마나 영화는 고사하고 웹툰화도 안 된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운도 운이지만, 작가님의 필력이 다른 작가들을 상회했던 게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었습니다.”

선배님은 내가 거둔 성공에 운이 개입한 건 맞지만, 절대적 이유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순히 동문 후배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는 총 45분의 소속 작가님들이 계십니다.”

이규석 대표는 수익을 다각화하기 위해 웹소설 작가 영입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작가들을 만나러 돌아다녔고 그 결과 많은 수의 작가를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매달 여러 편의 신작이 출간되곤 하지만, 저는 오직 작가님 글만을 즐겨 읽습니다. 왜냐하면, 작가님의 소설에는 다른 분들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깊이가 있거든요.”

“열심히 쓴 보람이 있네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장편 소설을 써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장편 소설이라면 삼국지나 태백산맥과 같은 글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는 선배님의 말씀을 단번에 이해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다.

오래전에 웹소설이 아닌 일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문 작가가 되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일반 소설을 쓰는 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0년 중반 이후로 웹소설 시장이 커짐에 따라 종이책 시장은 축소되기 시작됐다.

일례로 내가 쓴 ‘복싱으로 전설이 되다’는 두 달 전에 종이책으로도 출간이 됐는데, 그동안 발생한 매출이 웹소설의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로서는 선배님의 말씀에 바로 알겠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네, 작가님의 필력이라면 충분히 대작을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 서서 드리는 제안입니다.”

“흠, 시도야 해 볼 수는 있겠지만, 웹소설에 비해서 가성비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장편 소설 하나를 쓰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태백산맥의 경우, 총 10권 분량의 장편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걸렸던 시간은 6년이었다.

책의 저자인 조정래 작가님은 하루 24시간 중 16시간을 집필에 활용했으면 1년 중, 출타를 2번 이상 하지 않는 분으로 유명했다.

이런 분께서도 10권의 장편 소설에 6년을 소비하셨는데, 괜히 발을 잘못 들였다가는 골치 아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필에 들어가는 시간이나 책을 통해서 창출되는 수익을 감안하면 작가님 말씀이 틀린 게 아닐 겁니다. 하지만, 만약 작가님이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명작을 쓰신다면 웹소설 100편을 쓰는 것보다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리포터랑 반지의 제왕처럼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해리포터를 쓴 조앤 K.롤링은 현재 재산이 1조 3천억 원으로 평가되는데, 책이 한창 잘 팔릴 때는 연간 천억 원의 소득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이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벌은 줄은 몰랐어.’

나는 다소 놀란 얼굴로 선배님의 말씀을 계속 경청했다.

“들으시면서 조금 허황하다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작가님께서 그동안 보여 주신 반응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네요.”

“제가 보인 반응이요?”

선배님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나오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보통 작가님들이라면 본인의 작품이 웹툰이나 드라마로 제작된다고 하면 반응이 어떨 것 같습니까?”

“감격하거나 좋아하시거나 그러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 분도 없는 건 아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심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지요. 하지만 작가님은 조금 달랐습니다.”

“제가 원래 리액션을 잘 못하는 편이라서요.”

“리액션이라면 작가님이 다른 분들보다는 더 나은 편입니다.”

그는 처음 웹소설 연재가 확정됐을 때 내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던 걸 떠올리며 말했다.

“제가 작가님의 반응 안에서 느꼈던 감정은 불만족입니다. 순간순간 기뻐하시긴 했어도 종점에 가서는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앞으로 선배님을 뵐 때는 조심해서 행동해야겠어.’

나는 선배님의 말씀에 소름이 돋을 뻔했다.

오래전에 이세계의 존재들과 내 진로에 대해 상의한 적이 있었다.

브루스 단장님을 비롯한 이르젠 제국 사람들은 꿈을 크게 가지라고 독려했고 나도 이에 호응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와 명예를 거머쥐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복싱과 웹소설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계속해서 거뒀고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내 모습에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원하는 성취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뿐이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욕심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 욕심을 크게 가지면 재앙을 면하기 어렵지만, 기량을 갖춘 사람은 야망을 크게 가질수록 좋은 법입니다.”

“흠……. 알겠습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는 대로 장편 소설을 쓸 준비에 들어가겠습니다.”

선배님의 말씀에 감화된 나는 장편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저도 다음 주 월요일에 임원들을 소집해서 작가님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장편 소설을 쓰겠다는 내 말에 선배님의 얼굴은 화색이 감돌았다.

“선배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국내에 내로라하는 작가님들 중에도 해외 판매를 시도조차 못 한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놓으신 거라도 있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 방도를 생각해 놨으니 작가님은 글만 잘 쓰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의 자신감 있는 대답에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던 일말의 불안감이 모두 사라졌다.

이후, 우리는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나눈 뒤 헤어졌다.

* * *

당일 저녁.

난 선배님과 헤어지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아르마이스 님, 부르셨습니까?]

“사전 연락도 없이 뵙자고 해서 죄송합니다.”

나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미르헨 총장님을 호출했다.

그는 제국 도서관에 새로 입고된 서적들을 검토해야 하는 업무가 있었지만, 급한 용무라는 말에 일을 제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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