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112화 (112/122)

112. 29화 도전 (3)

[메시지를 보니 소설과 관련된 논의를 하고 싶다고 하셨던데, 혹 이번에 내놓은 신작에서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미르헨 총장님은 내가 마인드넷에 론칭한 웹소설을 쓸 때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셨다.

그는 자신의 의견이 많이 첨부된 신작이 행여나 잘못됐을까 싶어 하던 일을 내려놓고 급하게 나에게 왔다.

“총장님과 함께 작업한 소설은 지금 순항 중에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제가 같이 상의하고 싶은 건 웹소설이 아닌 종이책으로 발간되는 일반 소설입니다.”

[오, 웹소설 말고 종이책으로도 소설을 발간하기로 하신 겁니까?]

“일단은 종이책을 중심으로 출판을 할 계획인 것 같긴 한데, 상황에 따라서 E-BOOK으로도 출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일반 도서의 전자 출판도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가 쓸 장편 소설이 종이책으로만 출판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그렇군요. 혹시 구상하고 계신 소설의 특징이나 현황 같은 것들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오늘 점심쯤에 회사 대표님과 미팅을 하고 왔는데…….”

나는 이규석 선배님과 나눴던 대화를 총장님께 상세히 알려 드렸다.

총장님은 자신이 모르는 용어나 인물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져 내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동안 쓰셨던 웹소설과는 다른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계신 거네요.]

“확률적으로 봤을 땐 허황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기왕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거 남들이 이룩하지 못한 큰 성과를 거두고 싶습니다.”

[허황되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저를 비롯한 황실의 인사들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면 방금 말씀하신 여성 작가님보다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여성 작가는 해리포터를 쓴 조앤 K. 롤링을 의미했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선배님께 장편 소설을 써 보겠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한번 발을 들이면 최소 5년 이상은 시간을 투입해야 해서 고민이 됩니다.”

[아르마이스 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포부를 생각하면 장편 소설로 천문학적인 돈을 번다고 해도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된다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고 볼 수 있지요.]

“일루션이 있어서 남들보다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겠지만, 복싱 시합도 중간중간에 치러야 하고 할 게 많아서 답답하긴 합니다.”

당장 올겨울에 타이틀전을 치러야 해서 경기 준비를 해야 함은 물론이고 프로 복서로서 소화해야 할 스케줄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곧 있으면 고3이라 입시 준비를 해야 했고 연재가 마무리되지 않은 웹소설도 4편이나 남아 있었다.

물론 시간 효율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일루션이 있어서 절망적인 상황까지는 아니었으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고되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대로 대책을 세워 놨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벌써 대책을 세우셨다고요?”

나는 짧은 새에 대책을 마련했다는 총장님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이야기만 들으면 어렵고 복잡한 듯 보이지만, 결국 타 소설들을 능가하는 대작을 쓴 다음에 홍보를 잘하면 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홍보야 대표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기로 했으니 저는 대작만 쓰면 되겠군요.”

이규석 선배는 소설을 일단 써 두면 마케팅은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솔직히 어떤 방식으로 국내에서 출판되는 소설을 세계 각국에 보급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지만, 언행이 가벼운 분이 아니셔서 눈에 보이는 근거가 없어도 믿음이 가는 게 사실이었다.

“저 총장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네, 듣고 있습니다.]

“카산트 대륙에서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작품성이 좋은 소설이라고 흥행이 보장되는 게 아닙니다. 또 반대로 대중성을 갖춘 글이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는 경우도 빈번하고요.”

[이곳이라고 아르마이스 님이 사시는 곳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군요.]

미르헨 총장은 카산트 대륙의 문학계도 내가 사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했다.

“그럼 이야기가 쉬워지겠네요. 저는 총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대작이 정확히 뭔지 궁금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을 대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심오한 답변을 기대했던 나는 총장님의 뻔한 말씀에 맥이 빠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로 느끼실 수 있지만, 제 말을 조금 더 듣다 보면 금방 이해가 가실 겁니다. 설명을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평론가들로부터 작품성이 있다고 평가받았는데 정작 독자들에게는 외면을 당하는 소설들의 특징이 뭘까요?]

“쓸데없이 너무 어렵게 쓰거나 형식에 치우쳐서 쓴 글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여태껏 읽었던 소설들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현학적으로 글을 쓰게 되면 일부 식자층들에게는 호평을 받을진 몰라도 가독성이 떨어져 대중들이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지요. 반면에 글을 너무 가볍게 쓰게 되면 쓱쓱 읽기는 쉽지만, 돈을 주고 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둘을 동시에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당장 떠오르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아르마이스 님이 계신 세상에서 명작이라 불리는 책들을 읽어 봐야겠습니다.]

“파악을 먼저 하시겠다는 거군요. 제가 당장 아카이브로 책들을 스캔해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방 안 책장에는 헤르만 헤세, 헤밍웨이와 같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들의 작품부터 해리포터,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처럼 세계적인 스테디셀러까지 꽂혀 있었다.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 구비해 놓았던 책들을 이렇게 써먹네.’

책을 사 놓기만 했을 뿐, 읽은 적은 별로 없어 내심 아깝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는데, 이렇게라도 활용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를 다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참고할 만한 도서는 딱 3권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실까요?”

[속독으로 읽으면 2시간 안팎으로 완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책들을 보내겠습니다.”

나는 총장님께 대충 인사를 한 뒤 책장에서 보낼 책을 선별했다.

‘바로 시작하자.’

책 선별을 마친 후, 곧바로 아카이브를 실행하여 스캔 작업에 돌입했다.

* * *

[아르마이스 님,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더니 시간이 금방 지나가더라고요.”

미르헨 총장은 약속한 대로 2시간 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보내 주신 책들을 검토한 결과 이곳에 있는 것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작업을 하기에 앞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선 웹소설만 해도 그동안 읽었던 소설들과 형식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또 더 알아내신 건 없습니까?”

나는 총장님의 혜안이라면 책들 안에서 특별한 점을 발견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처음에 말씀드리려고 했던 방법을 그대로 써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흠, 그렇군요…….”

[아, 그, 그게 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책들을 읽고 느낀 점을 적어 놓은 종이가 여기 있습니다.]

미르헨 총장은 내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허둥지둥 대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깜빡하고 말씀을 못 드릴 뻔했군요.]

“어떤 걸 말씀이신가요?”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총장님의 말씀을 경청했다.

[방금 보내 주신 소설들의 수준을 가늠함으로써 아르마이스 님이 얼마큼 더 발전을 하셔야 하는지 알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총장님은 내가 가장 최근에 집필했던 웹소설을 읽은 상황이라 명작들과의 비교 분석이 충분히 가능했다.

“대작들과 제 소설이 차이가 많이 나던가요?”

[예상했던 것보다 크진 않았습니다. 소설별로 조금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르마이스 님의 글보다 두 단계에서 세 단계 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다. 세단 계 위면 필력 레벨이 9라는 이야기잖아.’

나야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스탯을 올릴 수 있다지만, 혼자 힘으로 스탯 레벨 9를 달성했다는 건 엄청나다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아르마이스 님께서 성공을 하시려면 책의 저자들보다 더 높은 필력을 보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레벨을 4단계나 올리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혹시 다른 방안은 없을까요?”

[책의 저자들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비약적인 필력 상승은 필수입니다. 아시다시피 웹소설도 그렇고 장편 소설이 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초반에 승부를 봐야 하니까요.]

옳은 말이었다.

유명한 장편 소설들을 살펴봐도 중후반부 들어서 재미가 반감되는 경우는 간혹 있으나 초반이 약한 소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아주 가끔씩은 완독을 마친 독자 하나가 끝까지 읽었을 때 감동이 배가 된다는 후기를 남겨 뒤늦게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기대하기보단 처음부터 잘 쓰는 편이 여러모로 훨씬 나았다.

[제가 총장을 역임하기 전에는 아카데미에서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미르헨 총장은 말을 함과 동시에 책 꾸러미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게 뭡니까?”

[이건 아카데미 학생들이 공부할 때 쓰는 글쓰기 교재입니다. 기초부터 심화까지 단계별로 책이 있고 중간중간에 연습 문제들이 섞여 있어서 필력을 높이는 데에는 아주 그만일 것입니다.]

“…….”

[저, 아르마이스 님, 괜찮으십니까?]

열띤 설명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무 반응 없이 멍하니 있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태를 살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미션이 생성되었습니다.>

<목표: 미르헨 총장의 교재를 공부하십시오.>

<보상: 필력 LV UP.>

‘이게 웬 떡이야.’

나는 갑자기 뜬 미션 창을 보느라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르마이스 님, 아르마이스 님!]

“네, 총장님 듣고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창이 뜨는 바람에 집중을 못 했네요.”

[미션이라도 뜬 겁니까?]

미르헨 총장님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스탯을 올리는지 모두 알고 계셨다.

“예, 그렇습니다.”

[제 교재의 진가를 시스템도 알아주네요.]

“풋, 그러게 말이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는 총장님의 모습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션 내용은 제 교재를 공부하라는 거겠지요?]

“맞습니다.”

[그럼, 이것 말고 추가로 미션을 더 수행할 수 있습니까?]

“각 스탯별로 최대 2개까지 미션들을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교재를 공부하는 것 말고도 틈틈이 미션을 수행하셔서 최대한 빨리 필력을 높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저는 장편 소설 구상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따로 찾아보겠습니다.]

총장님은 적극적으로 미션을 소화하여 스탯을 올릴 것을 주문했다.

“감사합니다, 총장님. 열심히 노력해서 최단 시일 내에 레벨 10까지 올려 보겠습니다.”

[아르마이스 님께서 노력하시는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해서 새 소설 집필을 돕겠습니다. 저는 우선 제국 도서관에 가서…….]

이후, 우리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헤어졌다.

‘좋아 바로 시작해 볼까?’

화면이 꺼진 것을 확인한 나는 지체 없이 일루션을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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