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30화 미션 그리고 또 미션 (3)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사용자께서 미션을 완료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보상: 필력 경험치 +50%>
<보상을 적용하시겠습니까? Y/N>
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탯이 상승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필력 경험치가 쌓였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미션 창이 스스로 켜졌다.
‘레벨 업을 못 해서 아쉽긴 하지만, 경험치가 쌓인 것만으로도 실력이 오르니까 상심하지 말자.’
노벨 문학상 작품 10권을 읽고 요약, 분석을 하는 게 이전 미션들에 비해서 결코 어렵다고 할 순 없으나 보상으로 경험치를 받은 건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 레벨은 여전히 6밖에 안 되네.”
나는 스탯 창에 표시된 필력 수치를 확인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필력 레벨이 9 이상은 되어야 명작이라 불리는 장편 소설을 쓸 수 있는데, 아직도 레벨이 그대로니 조바심이 생겼던 것이다.
“아카이브를 켜 줘.”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아카이브를 실행합니다.>
미션을 완료한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예전에 진행하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아카이브를 켰다.
‘그래도 예전보단 수월하겠지?’
아카이브에 뜬 파일 목록에서 글쓰기 중급 교본을 클릭한 뒤 문제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문제 풀이에 돌입한 지 20여 분이 지났다.
나는 첫 문제 답안지를 모두 작성한 뒤 긴장되는 마음으로 채점을 기다렸다.
“해냈다!”
답안지에 적은 문장들이 통과를 의미하는 푸른빛을 띠자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초급 교본에서는 처음 쓴 글로 통과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중급 교본을 공부한 이래로 한 번에 통과한 적이 없던 나였다.
그나마 운이 좋으면 2번, 고난이도의 문제를 만났을 때는 답안지를 5번이나 작성한 적도 있었다.
이랬던 내가 단 한 번의 시도로 문제 풀이에 성공하니 나로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았어, 이 기세로 계속 풀어 보자.’
집에 돌아오자마자 일루션에 접속했기에 저녁을 못 먹었지만, 허기쯤은 쉽게 참아 낼 수 있었다.
방금 문제를 풀면서 시간을 재 보니 이전에 비해 시간 단축은 크게 되지 않았다.
하긴, 경험치가 오른 것만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있어 체력 소모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답안지를 다시 작성하는 짓만 안 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참을 수 있어.’
풀이 시간이 단축되지 않은 건 아쉬웠지만,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답안지가 모두 지워지는 걸 볼 때면 교본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책이 홀로그램 형태로 떠서 망정이지 손에 잡히는 것이었다면 충동이 행동으로 이어졌을 확률은 100퍼센트라고 봐도 무방했다.
솔직히 중급 교본을 다시 펼쳤을 때도 당시에 느꼈던 스트레스가 다시 올라와 문제들을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러나 막상 문제를 풀어 보니 전과 다르게 오답이 거의 발생하지 않고 쭉쭉 진도가 빠져서 없던 힘도 솟구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우야, 저녁 안 먹었어? 오늘 아침에 미역국 끓여 놨는데 데워서 먹지.”
“자고 있으니까 냅둬. 배고프면 일어나서 알아서 챙겨 먹겠지.”
한참 문제를 풀고 있는데, 퇴근하신 부모님이 내 방에 들어오셨다.
나는 아공간 한쪽에 뜬 화면으로 부모님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참 신기해. 아공간 안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어도 밖에서 보기에는 잠든 것으로 보이니 말이야.’
아버지는 침대 위에 반듯이 누워 있는 나를 보다가 이불을 덮어 주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난 다시 교본 쪽으로 시선을 돌려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마지막 문제에 대한 답안 작성까지 모두 마친 나는 힘차게 기지개를 켜며 채점을 기다렸다.
‘후우, 살면서 이렇게 오래 앉아 있는 건 처음인 것 같아.’
8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앉아서 문제만 풀었다.
중급 교본에 수록된 문제의 수는 150개로 답안을 손으로 작성했다면 이틀은 걸렸을 분량이었다.
하지만 아공간에는 션 교수가 설치한 기기와 워드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
‘후, 이것 좀 썼다고 피곤하네.’
내 몸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은 아공간을 기준으로 생성되는 것이어서 바깥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야.’
나는 푸른빛이 넘실대는 답안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문제를 풀은 덕분에 내가 작성한 답안지가 통과될지 안 될지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힘든 과정 끝에 중급 교본을 마치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고급 교본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만족감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일단 나가서 밥 좀 먹어야겠어.’
일루션을 끄고 밖에 나와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1시였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은 뒤로 아무것도 안 먹은 상태라 몹시 배가 고팠다.
방금 엄마가 말씀하신 국을 데워 먹으려고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내 눈앞에 화면이 떠올랐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스탯이 상승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Y/N>
‘한 것도 없는데 스탯이 상승했다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Y 버튼을 클릭했다.
잠시 후, 스탯 창이 켜지더니 필력 레벨이 상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 지금 상황에서 오를 스탯은 필력밖에 없지.’
최근에 했던 활동들은 모두 필력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스탯이 변화할 건덕지가 없었다.
‘이게 근데 말이 되나?’
불과 몇 시간 전에 미션에 대한 보상으로 경험치를 받았는데, 이런 식으로 또 스탯이 오른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르헨 총장의 초, 중급 교본을 열심히 공부하신 덕분에 필력 레벨이 오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드바이저는 내 생각을 읽고 자동으로 활성화되었다.
‘책 두 권 뗀 것만으로도 레벨이 오른다고?’
미션과 상관없이 특정 행위를 반복해서 경험치를 얻는 경우가 없진 않았지만, 레벨이 낮았던 초기에나 있었지 어느 정도 성장을 한 이후부터는 미션 이외의 행위로 스탯이 오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례로 관장님과 수없이 많은 훈련을 소화하면서도 레벨이 오르기는커녕, 경험치를 얻는 것도 힘든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고작 책 두 권으로 레벨이 올랐다고 하니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르헨 총장이 저술한 글쓰기 교본은 카산트 대륙에 있는 모든 아카데미에서 필수 교과서로 선정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두 권의 책으로 스탯이 오른 게 신기한 일은 아닌 것으로 사료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동안 내가 봤던 책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지?’
어드바이저의 설명에 일련의 상황들이 이제야 납득이 되었다.
‘우선 밥은 먹고 오자.’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 실력을 시험하고 싶었지만, 허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나는 어드바이저를 종료한 뒤 식사를 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 * *
‘헐, 이것들은 뭐야?’
원래는 10분 안에 식사를 마칠 요량이었으나 막상 부엌에 가니 국 외에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게 준비되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중간에 일어나 배고파할 것을 예측하고 김치볶음밥과 스펨을 구워 놓으셨다.
대충 끼니나 때우자는 심산으로 방을 나왔지만, 막상 맛난 것들이 식탁에 차려진 것을 보니 군침이 도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들을 전자레인지로 데운 뒤 제대로 된 식사를 즐겼다.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허비하긴 했지만,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시간을 허비했다는 말과 달리 내 얼굴은 만족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양치를 한 뒤 방에 들어와 일루션을 실행했다.
“흠, 바로 확인해 볼까? 아카이브를 켜 줘.”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아카이브를 실행합니다.>
아공간에 접속하자마자 아카이브를 열어 중급 교본 파일을 클릭했다.
‘이 문제였나?’
나는 중급 교본에서 가장 난항을 겪었던 문제를 다시 한번 풀어 보았다.
이미 풀어 본 문제라서 실력을 점검하기에 부적절할 수도 있었지만, 글을 쓰다 보면 필력 상승의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서 어떤 문제를 푸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확실히 전보다 글이 훨씬 빨리 써진다.’
일전에 본 문제라 답안 구상에 들어가는 시간이 줄어든 것을 고려해도 처음 쓸 때보다 거의 배 이상 빠른 속도로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었다.
물론 고급 교본에서는 지금 같은 속도로 글을 써 내려가긴 어렵겠지만, 지금 한 것에 반만큼의 퍼포먼스만 보여도 만족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해 보자.’
나는 고급 교본 파일을 실행했다.
책의 구성은 이전 교본들과 마찬가지로 초반부엔 이론, 중후반부엔 문제 풀이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전 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급 교본 아래에 괄호로 소설이라고 쓰여 있다는 점이었다.
“소설 전용 교본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중급 교본까지는 전 종류의 글을 다루지만, 고급 과정부터는 글 종류에 따라 과정이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
시나 논설문처럼 소설과 관련도 없는 글을 쓰느라 내심 스트레스였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슬슬 읽어 볼까?’
나는 어드바이저를 종료한 뒤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책 초반부에는 박사급 논문에서나 나올 법한 개념과 용어 그리고 소설 쓰기에 유용한 작법 등이 서술되어 있었다.
비록 이전 교본들보다 내용이 어렵다고 하나 정성을 들여 꼼꼼히 읽으니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흠, 소설에 특화된 책이라서 그런가 문제 유형도 이전 것들하고 다르다.’
이론 파트를 마치니 곧바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나타났다.
첫 문제는 간단했다.
교재에서 제시한 단어들을 토대로 소설 초입부를 작성하라는 문제였는데, 30줄이라는 분량이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동안 웹소설 썼던 짬밥이 있는데,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나는 제시어들을 토대로 물 흐르듯 글을 써 내려갔다.
처음엔 30줄이라는 분량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웹소설을 쓴다는 기분으로 작업을 하니 답안지를 완성하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흠, 나름 잘 썼다고 생각했는데…….’
고급 교본에 적힌 이론들과 웹소설을 쓰며 얻은 노하우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썼기에 당연히 통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예상과 달리 답안지에서는 불통을 알리는 붉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처음인데 뭐 어때?’
나는 애써 적은 글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답안지를 재차 작성하고 채점을 기다렸다.
“하아, 설마 또 시작인가?”
처음 중급 교본 문제를 풀 당시에 느꼈던 답답함이 다시 재현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아이씨, 그래도 한 문제 정도는 맞혀야 할 거 아니야?”
거듭되는 실패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답안 작성만 무려 열두 번을 했으나 돌아오는 건 항상 불통이었다.
<현 스탯으로는 고급 교본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시기 어렵습니다.>
혼자 씩씩대는 내가 안타까웠던 걸까, 어드바이저는 자동으로 켜지더니 때늦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럼 진즉에 알려 줬어야지 뭐 하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후, 일단 여기서 나가자.”
나는 애꿎은 어드바이저에게 화를 낸 뒤, 일루션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