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117화 (117/122)

117. 30화 미션 그리고 또 미션 (4)

‘솔직히 이건 좀 충격인데?’

중급 교본을 읽고 스탯이 오른 덕분에 내 필력 레벨은 7에 달했다.

게다가 소설 읽기 미션으로 받은 경험치까지 더해져서 레벨 7보다 높은 7.5에 해당했다.

민첩성, 동체 시력, 체력, 힘. 매력 등과 같은 스탯들 중에서 필력보다 높은 레벨을 이룩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이 정도면 유수의 작가들과 비빌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문제에서부터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막혀 버리니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번처럼 추가 미션을 진행하는 방법밖에 없는 건가?’

아공간에 접속하여 사생결단하는 마음으로 교본에 있는 문제들을 풀고 싶었지만, 현재 실력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추가 미션을 진행하는 건 다소 번거로워서 다른 방법이 없나 잠시 고민했으나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미션 창을 켠 다음 스탯 항목 중 필력을 클릭한 뒤 미션을 생성했다.

<아르마이스의 의지가 발동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미션이 생성됩니다.>

<목표: 현재 연재 중인 웹소설들을 모두 마무리 지으십시오.>

<보상: 필력 LV UP, 상상력 LV UP>

‘…….’

미션의 내용을 확인한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현재 연재 중인 작품인 4개로 그중 2개는 스토리가 후반부에 접어들어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지만, 남은 2개는 이제 막 초반부를 벗어난 상황이라 종반부까지는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이었다.

‘자고 내일 생각하자.’

시간이 늦어 더 생각해 봤자 묘안이 떠오를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미션 수락 버튼을 누른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천마회귀 원고는 이번 주 내로 완결을 짓고, 다른 작품들도 다음 주말까지 해서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해 보려고요.”

“천마회귀의 경우 현재까지 입고된 원고가 542화까지인데, 550화 선에서 완결 낸다고 보면 될까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매니저님께 전화 통화로 집필 계획을 설명 드리고 있었다.

미션을 수행하려면 당장 오늘부터 원고를 빠르게 써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뿌린 떡밥들이 적지 않아서 다 회수하려면 600화는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옳은 말씀이긴 한데, 다른 작품들도 쓰시려면 조금 무리이지 않을까 싶네요.”

매니저님은 다른 연재작들을 언급하며 우려를 표했다.

“우선 계획을 말씀드린 거니까 실제로 가능할지 말지는 추후에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아, 물론입니다. 단지, 연재하시는 작품이 적지 않아서 힘드시지 않을까 걱정돼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저, 그럼 혹시 다른 작품들은 어느 선에서 완결을 지을 생각이신가요?”

“300화에서 350화 사이가 될 것 같습니다.”

“저, 작가님 말씀에 토를 달려는 건 아닌데 분명 아까 다음 주말까지 원고를 마무리 지으신다고…….”

“네, 그렇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집필 일정에 할 말을 잃은 매니저님과 달리 내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일단 말씀하신 방향으로 집필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저도 작가님의 속도에 맞춰 교정을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양이 너무 많으면 여유 있게 하셔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작가님께서 워낙 원고를 깔끔히 써 주셔서 교정하는 데 시간이 얼마 안 걸리는 편입니다. 최대한 열심히 해서 계획하신 시일 안에 작업이 끝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보통의 매니저들은 적으면 일곱, 여덟 많으면 열 명 이상의 작가를 관리하지만, 지금 같이 일하는 매니저님은 나 하나만 관리하면 돼서 다소 힘든 부탁도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받아 주시곤 했다.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네, 추가로 논의할 사안이 있으면 편히 말씀하세요.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다음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아파트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곧바로 집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뒤 션 교수님을 호출했다.

예전에 션 교수님께서는 아공간에서 쓴 글을 현실에 있는 기계로 전송할 방법을 찾겠다고 하셨는데, 마침 미션이 웹소설을 쓰는 거라 작업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아르마이스 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급하게 연락드렸는데, 이렇게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미리 약속을 잡은 덕분에 교수님께서는 금방 모습을 드러내셨다.

[저희야 부르시면 당연히 와야지요.]

“말씀만으로도 고맙네요. 저, 교수님. 일전에 말씀하신 작업의 진척 상황이 궁금합니다.”

[아공간에서 작업한 문서를 현실 세계의 기기에 연결하는 작업을 말씀하시는군요. 안 그래도 아르마이스님과 의논을 한 이후로, 제국 연구원들과 밤잠을 설쳐 가며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모종의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고요.]

션 다이스 교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아공간에서 만든 작업물을 컴퓨터나 노트북에 옮길 수 있게 된 겁니까?”

[카산트 대륙엔 아르마이스 님이 말씀하신 컴퓨터나 노트북과 같은 기계가 없어 시험을 못 해 봤지만, 틀림없이 잘 작동될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교수님께서 장담하시니 안심이 되네요.”

[이르젠 제국의 기계와 그쪽 세상의 기계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제가 고안한 이 방법이라면 파일 전송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 전송을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교수님께서 확신을 하는 이상 더 이상의 서론은 불필요했다.

나는 아공간에서 쓴 글을 어떻게 기기로 옮기는지 물어봤다.

[오늘 오전에 아공간에 설치된 기기를 업데이트하여 써 놓은 글들을 데이터로 치환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대단하시네요.”

[사실 여기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했는데, 문제는 다른 차원의 기기에 파일을 보내는 거더군요.]

‘맞는 말이야. 제국의 인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차원 연결 장치도 작동에 실패했는데 무슨 수로 이곳의 기계에 아공간의 데이터를 전송한다는 거지?’

나는 전송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교수님의 설명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처음에는 제국에 있는 공학 기술을 총 검토하여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해결책이 나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겐 공학 말고 또 하나의 도구가 있었습니다.]

“그게 뭔가요?”

[바로 마법입니다. 지금 이 문양이 보이십니까?]

션 교수는 난생처음 보는 기하학적 문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 보입니다.”

[원하시는 기기에 이 문양을 새기시면 아공간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그쪽으로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작용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을 말씀드릴 순 있지만, 설명하는 데 족히 2시간은 걸릴 것 같아서 생략할까 하는데…….]

“그냥 해당 문양이 데이터를 받는 역할을 한다고만 알아 두겠습니다.”

누구한테나 그렇듯 긴 설명은 사양하고 싶은 법이다.

[방금 하신 설명이 완전하진 않지만, 거의 비슷합니다. 지금 보여 드리는 이 문양은 무형의 정보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어쨌든, 기기 표면에 문양을 새기시면 자연스럽게 전송이 가능해질 겁니다.]

“대화를 마치는 대로 한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곳 제국 연구소에서 1, 2시간 더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혹시 사용 중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려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후,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간단히 물은 뒤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

‘아무래도 컴퓨터에 새기는 게 낫겠지?’

내가 웹소설을 쓸 때 활용하는 기기는 컴퓨터와 노트북,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총 3개다.

이들 중에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표면에 문양을 새기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양을 새기면 필연적으로 훼손이 되기 마련인데, 방금 언급된 둘은 외형적 훼손이 기능 저하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문양을 새겨 넣기로 결정한 나는 커터 칼을 집어 들고 본체 표면을 파기 시작했다.

그래픽 카드나 칩과 같은 주요 부품들은 본체 표면을 이루는 플라스틱과 거리가 있어서 문양을 새겨도 컴퓨터가 망가질 일이 없었다.

‘생각보다 너무 빡센데?’

나는 화면에 보이는 문양을 보고 손을 부지런히 놀렸지만, 무늬가 워낙 복잡해서 작업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휴, 어설프긴 해도 어쨌든 작동만 하면 되잖아. 그나저나 옷 좀 갈아입어야겠다.’

1시간을 꼬박 문양을 새긴 탓이었을까, 입고 있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했던 복싱 훈련에서도 땀이 이 정도로 나진 않았는데, 커터 칼 좀 만졌다고 땀이 이렇게 나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간단히 한 뒤 새 셔츠로 환복했다.

‘일루션을 켜 줘.’

준비를 마쳤으니 이젠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일루션이 실행됩니다.>

얼마 있지 않아 시스템의 안내문이 떴다.

그리고 잠시 후, 시야가 컴컴해지는 암전이 발생하더니 곧이어 빛이 번쩍하면서 아공간이 생성되었다.

나는 션 교수님이 설치해 준 기기 앞에 앉아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했고 아무 글이나 끄적이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휴, 다행이다.”

글을 쓰고 전송해야겠다고 생각하자 화면 우측 하단에 초록색 버튼이 생성되었다.

보아하니 그 버튼을 누르면 컴퓨터로 데이터가 보내지는 것 같았다.

‘우선 확인 먼저 해 보자.’

버튼을 눌러 데이터를 전송한 나는 컴퓨터에 잘 보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루션을 종료하고 밖으로 나왔다.

“대박이다!”

나는 컴퓨터 바탕 화면에 떡하니 있는 파일을 발견하고는 탄성을 질렀다.

아공간에서 작업한 글을 현실 세계의 기기와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았다.

글을 많이 쓰기로 유명한 소설가도 10권짜리 장편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하루에 12시간씩 7, 8년을 일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일루션을 통해 시간 효율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분량의 글을 2년, 3년 만에 쓰는 게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즉, 다른 작가들보다 4배 이상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었다.

‘바로 시작해 볼까?’

전송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니 이제부턴 글만 쓰면 될 일이었다.

나는 다시 아공간에 접속하여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와, 씨 이게 말이 돼? 이거 다음 주말까지 갈 필요도 없겠는데?’

예전보다 필력 수치가 1.5가 올랐기 때문에, 글 쓰는 속도가 빨라진 건 필연적인 결과였다.

과거에 한 화를 쓰는데 20분에서 25분가량의 시간이 걸렸다면, 현재는 15분에서 18분 사이의 시간만 투자해도 됐다.

타닥-타닥-타닥

생각과 손이 혼연일체가 되어 키보드를 누르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내가 하는 거지만 참 신기했다.

기계마냥 키보드를 두들기고 정신을 차려 보면 에피소드가 완성되어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학교 시절, 재웅이와 나는 글이 막힐 때면 소설 쓰는 기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었다.

당시에는 농담으로 꺼낸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다.

그런데 현재 나의 퍼포먼스는 상상 속에 존재하던 글쓰기 기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벌써 이만큼 썼다고?’

글을 쓴 지 2시간이 지났다.

5,200~5,500자 기준으로 7화 분량이 순식간에 작성되었다.

대부분의 웹소설 작가들이 한 화를 작성하는 데 2시간은커녕 3시간, 4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보인 퍼포먼스가 얼마나 대단한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불안해. 한번 읽어 봐야겠어.’

빨리 쓰는 것도 쓰는 거지만, 글의 퀄리티가 유지되는 게 더 중요했다.

나는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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