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30화 미션 그리고 또 미션 (5)
‘나쁘지 않은데?’
7화 분량의 글을 읽고 검토까지 마쳤다.
워낙 빠르게 써 내려간 글이라 곳곳에 오류가 발견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읽어 보니 이전에 썼던 것과 퀄리티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근소하게 더 낫다고 봐도 무방했다.
‘속도에 초점을 두고 써서 그렇지, 심혈을 기울여서 쓰면 질적으로 훨씬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스탯 레벨이 1.5나 상승한 것치고는 퀄리티의 변화가 미미하여 실망할 수도 있었지만, 연재 분량을 채우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글을 쓴 것이어서 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생각은 그만하고 글이나 계속 쓰자.’
현재 연재하고 있는 네 작품을 모두 완결 짓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글을 써야 했다.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 * *
9월 말의 어느 토요일.
웹소설 작업을 조속히 마무리 짓기 위해 하루 중 대부분을 글을 쓰는 것으로 보냈다.
매니저님께 말씀드렸던 것보다 더 빨리 끝낸다는 각오로 부지런히 소설을 쓴 덕분에 원래 약속했던 기한보다 하루 더 빨리 작업을 마무리했다.
‘소설을 다 써서 좋긴 한데, 괜히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린 것 같네.’
소설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일루션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볼 때는 자식의 안위가 걱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온종일 침대에만 누워 있으니 기력이 떨어진 게 아닌가 걱정이 되셨던 거다.
‘오늘부터는 그렇게까지 무리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야. 그나저나 선배님께서 날 왜 보자고 하신 걸까?’
나는 이규석 선배님을 뵙기 위해 한남동에 위치한 한 카페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선배님이 사업 구상이나 주요 고객을 만나기 위해 자주 들리신다는 이 카페는 과거에 한 번 들른 적이 있는 곳이라 찾아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았다.
“작가님, 이쪽입니다.”
카페에 들어서자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선배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규석 선배는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작가님들을 만나러 전라도부터 경상도까지 동분서주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어, 이거 왠지 안 본 사이에 더 멋져지신 것 같습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후배를 보며 덕담을 건넸다.
“선배님께서 항상 저를 좋게 봐 주셔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선배님의 칭찬에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감이 정말 예리하시단 말이야. 이러니까 출판사도 금방 자리를 잡고 성공한 거겠지?’
며칠 전, 한참 글을 쓰고 있는데 매력 경험치가 올랐다는 표시가 뜬 적이 있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래?’
영문 모를 상황에 혼자 멍하니 스탯 창을 보고 있던 그때, 어드바이저가 활성화되더니 상황을 설명해 줬다.
‘인지도가 오른 게 영향을 미쳤나 보네.’
<그렇습니다. 매력은 스탯 발달에 도움을 주는 행위로 오르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사용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변화되기도 합니다.>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라 해도 유명세를 갖추게 되면 뭇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생각하면 어드바이저의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지도가 오른 이유로는 잦은 매스컴 노출, 김현철 기자님의 도움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크게 작용한 건 협회의 공격적인 마케팅이었다.
KBW에서는 최근 들어 웰터급 타이틀전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SNS를 통한 실시간 마케팅과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V튜브에 기자 회견과 인터뷰 영상을 개재하는 등 12월에 있는 시합을 전방위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내 영상이 조회 수가 잘 나오긴 하지.’
현재 V튜브에는 나에 대한 영상들이 적지 않았다.
잡지 인터뷰나, 기자 회견 영상처럼 직접 등장한 것들 외에도 팬들이나 이슈를 쫓는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2차 영상들의 수도 상당했다.
이 영상들 사이에서도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아시안 게임 결승전 영상으로 조회 수가 700만을 훌쩍 넘었고 SNS나 숏 영상에서 공유된 거까지 다 합하면 2,000만 뷰 이상을 기록했다고 한다.
“작가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그냥 잠깐 헛생각이 머리를 맴돌아서 집중을 못 했습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더 궁금해지네요. 그건 그렇고 최근에 이혜성 매니저님께 작가님에 관한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습니다.”
이규석 선배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이혜성 매니저는 현재 나와 함께 일하고 계시는 직원분의 이름이었다.
“현재 연재 중인 소설들의 원고를 모두 쓰셨다면서요?”
“네, 새 소설 구상에 집중하고 싶어서 작업을 땡겨서 했습니다.”
“10일 만에 600화 이상의 원고를 작성하셨다는 보고를 들었을 땐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형용할 말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는 회사 컴퓨터에 저장된 새 원고 파일들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며 말했다.
“선배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제가요?”
“장편 소설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까 동기 부여가 확실히 되더라고요.”
“훗, 그 말씀을 하신 거였군요.”
처음엔 의아한 표정을 짓던 선배는 이어지는 말에 금세 이해를 했다.
“빠르게 쓰는 데만 치중해서 실력 발휘를 잘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런 대로 마무리를 한 것 같아 속은 후련하네요.”
“저도 마침 그 부분이 의아했던 참인데, 말씀을 먼저 꺼내 주셨군요.”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작가님께서는 글의 퀄리티가 보통 때보다 떨어졌을 거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셨지만, 제가 검토해 본 바로는 질적 하락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근소하게 더 나아졌다고 봐도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규석 선배는 나에게 궁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닌 듯싶었다.
‘괜히 설명하지 말고 칭찬으로 받고 넘겨야겠다.’
선배님께서 이전에 썼던 것들과 비교해도 퀄리티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며 놀라워했지만, 내 기준에서 봤을 땐 질적으로 아쉬운 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현재 내 필력 레벨은 과거에 연재했을 당시보다 2단계 이상 상승했기 때문이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을 아끼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답변을 듣긴 어렵겠군요. 자, 그럼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이야기를 해 보죠.”
이규석 선배는 단기간에 엄청난 양의 글을 쓴 비법이 궁금했지만, 말을 돌리는 내 모습에 알아내는 것을 단념했다.
“원고를 완결 짓고 장편 소설에 집중하고 싶다고 하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웹소설 쪽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매니저님에게 들어 보니까 신작에 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으신 것 같더군요.”
‘웹소설 쓰는 게 싫은 건 아닌데, 당분간은 다른 것에 집중하고 싶다.’
어렸을 적부터 꿈꿔 왔던 소망을 이룬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웹소설 작가로서의 열정은 예전만 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선배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머리를 스친다.
다른 작가들이 평생 글을 써도 달성하기 어려운 업적을 1년도 안 돼서 이루었다고.
본인이 나라면 더 오를 곳이 없는 현실에 매너리즘에 빠져 6개월이고 1년이고 글 쓰는 것을 쉴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내 상태를 걱정하신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장편 소설 이야기에 빠져 깊게 생각을 안 했었다. 하지만, 두고두고 선배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걸 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던 것 같다.
“네, 아마 별일이 없으면 신작 집필은 안 할 것 같습니다.”
“장르를 아예 전환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그냥 지금 당장은 흥미가 없다는 거지 나중에 좋은 소재 거리가 떠오르면 또 쓸 수도 있습니다.”
나는 손을 저으며 한발 물러섰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선을 그으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은 웹소설을 새로 집필하실 생각은 없으시니, 전담 직원을 새로 선정해야겠습니다.”
“학교에서 낸 회지 말고는 출판 경력도 없는 작가에게 너무 잘해 주시는 거 아닌가요?”
선배님의 배려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회사 구성원들이나 다른 작가님들의 눈치가 보일 때도 있었다.
일례로 감성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면에 내가 출판한 웹소설들이 쭉 전시되어 있었다.
회사에는 웹소설뿐만 아니라 종이책을 출간하는 기성 작가님들도 적지 않게 계셨는데, 그분들을 다 제치고 내 작품이 메인 화면을 차지한 것이다.
밀리언셀러까진 아니어도 나름대로 명망이 있는 작가님들이 계시는 상황에서 어엿한 대표 작가로 소개되고 있는 현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다.
“작가님을 담당하는 부서를 바꾸는 것에 불과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장편 소설을 연재하게 되시면 이래저래 할 일이 무척 많아질 것 같아서요.”
“일반 소설은 출판 과정이 되게 복잡한가 봐요.”
“국내 출판만 생각하면 웹소설 연재보다 더 간단할 수도 있는 과정이지만, 해외 시장까지 고려하다 보니 이래저래 할 일이 많더라고요.”
이규석 선배는 커피를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
“선배님 말씀을 들으니까 집에 돌아가서 소설을 쓰고 싶네요.”
아직 집필에 들어가지도 않은 작품을 위해 섬세하게 신경을 써 주는 선배님의 모습에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물밀 듯이 올라왔다.
“하하, 작가님께서는 그저 글만 열심히 잘 써 주시면 됩니다.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소설 초안을 볼 수 있을까요?”
“검토하실 목적이면 내달 말에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권 분량이면 충분하겠죠?”
선배님께서는 언론계에 재직하시면서 논설위원 외에도 문학 공모전 심사 위원을 맡은 경험이 많아서 작품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신 편이었다.
따라서 아주 가끔씩이지만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검토하실 때도 있다고 들었다.
“1권 분량이면 딱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작업이니까 서두르지 말고 여유 있게 하셔도 됩니다.”
“혹시, 뭘 하시려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게, 저도 처음 해 보는 작업이라 지금은 말씀드리기가 쉽지 않네요. 그냥 출판을 위한 밑 작업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께서 어련히 잘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묻지 않기로 했다.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상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해외 출판이 확정되면 실력 있는 번역가를 구하는 게 매우 중요한데, 어제 그 부분을 모두 해결하고 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지인 소개로 한국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님을 만났는데, 졸업한 제자들 중에 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다며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처를 준다고 하셨습니다.”
“잘됐네요.”
“저, 작가님. 혹시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이규석 선배는 좋은 소식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원치 않은 내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비용, 시간, 퀄리티 뭐로 봐도 내가 직접 번역을 하는 편이 나아. 하아,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씀드리지?’
나에게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자동 번역 기능이 있어서 번역가들을 따로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선배님께 해당 기능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적합한 설명 거리를 찾기 위해 잠시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