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잠들었던 성검이 600년 만에 깨어났다.
신성한 기운이 충만한 신전의 대강당.
그 대강당의 가장 높은 곳에 성검이 우뚝 솟았다.
“서, 성검이 깨어났다……!”
“어서 대신관님을 불러와!”
사제들과 신자들의 시선이 성검으로 향했다.
성검은 여느 다른 검들과는 달랐다. 온통 성스러운 은빛이었다.
성물을 녹여 만든 검이라 그렇다.
푸르스름한 빛이 도는 은색의 검날과 손잡이는 일체형이었는데, 그 외형은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든 검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신의 손끝에서 조각된 위대한 예술 작품처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오색빛깔 햇살이 성검의 은빛 날에 부딪혀 바스러졌다.
“오오, 신이시여!”
“신께서 대답을 하시려는 모양입니다!”
그 신비롭고 아름다운 광채가 대강당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성검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경외로 가득 찼다.
저 성검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나, 저 누님으로 할래.]
성검에서 예상과는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눈동자를 빛내고 있던 사람들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렸다.
‘내가 지금 환청을 들었나?’
대신관 옆에 서 있던 사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곧장 성검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경박하고 짓궂은 음성이 또다시 이어졌다.
[나, 리그하르트 벤 티에리 스코엘리이어 미티어스 록사니크의 선택을 받게 된 걸 영광으로 알라고!]
리, 리그하르……, 뭐? 사람들의 당황한 시선이 성검과 대신관 사이를 오고 갔다.
성검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점차 더 강해졌다.
[아, 거부권은 없다는 거 알지?]
성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검신에서 빛을 내는 주먹만 한 구체가 튀어나왔다.
그 동그란 빛덩이는 대강당에 모인 기사들 사이로 빠르게 떨어져 한 기사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태양 빛 구체가 기사에게 닿자마자, 주변으로 거친 바람이 짧게 몰아쳤고 기사의 은빛 머리카락도 그 바람에 휘날렸다가 잦아들었다.
모두가 넋을 빼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성검의 목소리가 다시금 흘러나왔다.
볕 좋은 곳에 자리 잡은 고양이처럼, 성검이 갸르릉거리며 말했다.
[아아, 역시. 예상대로야.]
포근해, 따뜻해, 아늑해! 이거지, 이거야!
그에 반해, 빛을 안아 든 기사는 무덤덤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륙 최초의 여기사이자, 망해 버린 공작가의 유일한 생존자.
그것이 아델리아 에스테르와 성검 리그하르트의 첫 만남이었다.
***
그로부터 7년 뒤. 성검의 기사는 돌연 모습을 감췄다.
“그녀가 은퇴한 이후에도 그 업적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죠.”
“그런가요.”
“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활약이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수백 년간 이어진 가이아 대전투. 그 대전투를 승리로 이끄셨지요.”
사내는 마치 자기 일인 양, 자랑스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녀는 하늘이 내려 준 축복이었습니다. ……다신 없을 축복 말입니다.”
사내는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여자의 표정은 그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렇군요.”
여자는 짧게 대답한 뒤, 낡은 나무 식탁 위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그런 여자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사내가 뾰로통하게 말했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얼굴이십니다.”
그러자 아델리아는 투박한 컵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하하,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 선생의 입에서 들으니 조금 민망하기도 하네요.”
“경의 이야깁니다. 에스테르 경. 그대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아델리아가 다시 웃었다. 그러다 금세 입매를 굳히며 펠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펠슨 선생. 그런 과거 이야기보다,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죠, 우리.”
“…….”
“……내 상태가 심각한 수준입니까?”
몸 상태를 봐 달라고 불렀더니, 과거 이야기만 주르륵 늘어놓았다.
아델리아는 그런 펠슨 선생의 버릇을 알고 있었다.
이야기 꺼내기가 힘든 상황일수록 말이 많아지는 그 버릇을.
그녀의 물음에 펠슨이 숨을 고르다 끝내 한숨을 터트렸다.
“경…….”
“듣고 있습니다.”
“……반년.”
“…….”
“반년 남았습니다, 에스테르 경…….”
그의 말에 아델리아의 손끝이 멈칫했다. 펠슨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말을 이어 갔다.
“경. 자신의 몸부터 돌봐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건강이 무너지면 재력과 권력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그러니까 오러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이러다간 몸이 버텨 내질 못할 거라고.
그렇게 뜯어말리고 경고했건만…….
그러나 그의 탄식 어린 질책에도 아델리아는 말갛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게. 내가 선생의 말을 듣지 않아서 이렇게 벌을 받나 봅니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 사이로 보석 같은 붉은 눈동자가 펠슨을 조용히 응시했다.
진정, 고요. 그 자체였다.
펠슨은 제 허벅지 위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저 기사는 어째서 저리 웃을 수 있단 말인가.
남은 생명이 반년이라는 소리를 듣고서도 저 여기사는 도통 무너지지를 않는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최대가 반년이지, 사실 더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펠슨은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말했다.
“이렇게 끝이 나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곧장 무너질 것 같은 낡아빠진 초라한 오두막에서.
‘영웅의 마지막이 이래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펠슨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은퇴가 결정되고 이제 겨우 쉴 수 있게 되었다며 환하게 웃던 아델리아의 모습을.
대전투의 후유증으로 온몸이 망가져 버린 뒤에도 그녀는 웃었다. 지금처럼.
“이러지 말고, 공작저로 돌아가시죠. 이런 허름한 오두막에서 시간을 허비할 순 없습니다. 공작저에서 제대로 된 간병을 받으며 황실에다 치료에 능한 사제와 약초를 내어 달라 청하면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겁…….”
“펠슨 선생.”
아델리아가 펠슨의 말을 끊고 이름을 불렀다. 펠슨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에스테르 경.”
아델리아는 의자에서 일어나 펠슨의 곁으로 느릿하게 걸어갔다.
“영웅은.”
아델리아는 자신을 대신해 분노한 펠슨의 어깨를 짚으며 나직이 말을 이어 갔다.
“마지막 모습까지 영웅다워야 합니다.”
비록 이제는 검을 들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아델리아가 영웅의 무게를 인내한 덕분에 가문을 복권할 수 있었고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테오스와 데릭의 명예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거면 되었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더는 욕심이 없었다. 그래서 황제가 은퇴를 제안했을 때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때마침 아델리아는 그 무엇보다 휴식을 원했으니까.
‘물론, 그게 죽어서 얻는 휴식은 아니었지만.’
원래 삶이라는 것이 그렇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는 없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아델리아는 문득 시선을 내려 자신의 허리춤에 자리 잡은 성검을 바라보았다.
작게 미소 짓던 그녀가 어린아이 머리를 쓰다듬듯이 부드럽게 손잡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애썼다.”
파르르르, 성검이 말없이 떨렸다.
***
죽음의 순간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그보다 더 갑작스럽고 기가 막힌 것은 지금 아델리아가 처한 상황이었다.
아델리아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세라. 지금 내가 몇 살이라고?”
“이, 일곱 살, 이십니다.”
하. 아델리아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하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아, 아가씨……?”
에스테르 공작가의 하녀, 세라는 지금 매우 당혹스러웠다.
아침에 깨어난 아델리아의 말투와 표정이 어젯밤과는 사뭇 달라져 있던 탓이었다.
-좋은 꿈 꿔, 세라!
-네, 아가씨께서도요!
장난기 가득한 얼굴과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아델리아가 태어나면서부터 7년간 쭉 곁을 지켰던 세라는 알 수 있었다. 그 작은 변화를.
새벽부터 훈련을 위해 연무장으로 나가던 아델리아가 오늘따라 조용했다.
그것이 이상했던 세라는 아델리아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선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아델리아를 발견했다.
그 적막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괜찮냐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델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예?
-……살아 계시니?
공작 각하의 생사 여부를 묻더니 곧이어 도련님의 소식과 자신의 나이까지 차례차례 물었다.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 차분하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 주위를 살피는 느른한 시선 처리.
‘오늘따라 아가씨가 낯설게 느껴져…….’
흡사, 전장에서 돌아온 공작의 분신과 마주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라의 불안한 시선이 거울 앞에 선 아델리아를 향했다. 그러자 아델리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이 제국력 699년이라 했지?”
“네, 아가씨…….”
아아, 정말 자다가 머리를 다치신 걸까.
앞치마를 꾹 말아 쥔 세라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런 세라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거울 앞에 선 아델리아는 거울 속 자신을 쏘아보며 한쪽 눈을 찌푸렸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젯밤, 자신의 숨이 멎어 버린 순간을 기억한다.
사지가 마비된 상태에서 손쓸 도리도 없이, 깔딱깔딱 넘어가던 그 마지막 호흡을.
‘반년이라며, 펠슨 선생!’
돌팔이 같으니.
반년은커녕,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죽어 버렸지 않습니까!
속으로 혀를 차던 아델리아의 시선이 다시 하녀 세라를 향했다.
세라는 아델리아가 태어난 이후, 공작가가 망할 때까지 곁을 지켜 주었던 하녀였다.
‘공작가에서 나간 뒤에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했는데.’
고향에서 소꿉친구와 결혼을 했고 1년도 지나지 않아, 그 남편에게 매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랬던 세라가 버젓이 살아서 제 눈앞에 서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곱 살이라고? 내가?’
스물일곱에 죽음을 맞이했던 자신이 어째서 일곱 살이 되어 있는 건지, 그 또한 이해되지 않는 점이었다.
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새벽부터 지금까지 세라를 붙잡고 캐묻고 나니 꿈이 아니라는 것도 알겠다.
후움, 아델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흘러내린 은색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제국력 699년, 일곱 살. ……그리고 세라까지.’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향하고 있었다.
‘……20년 전으로 돌아왔어.’
거울을 통해 아델리아와 눈이 마주치자 세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의, 의사를 불러오…….”
평소와 다른 자신의 행동이 세라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아델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 세라. 난 멀쩡해.”
멀쩡하다는 대답에도 세라의 눈꼬리는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내일 아카데미 입학식이 있어요, 아가씨. 짐을 마저 정리하지 않으면……. 아니, 이럴 게 아니라 그냥 지금이라도 의사를 불러올까요?”
아니면, 데릭 도련님이라도……. 세라의 걱정이 이어지자, 아델리아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아카데미?”
“네.”
아, 그랬지.
일곱 살의 아델리아는 오빠 데릭을 따라 기사가 되고 싶어 했다.
다행스럽게도 황궁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은 나이 제한이 없었고, 그 어렵다는 시험을 아델리아는 보란 듯이 수석으로 통과했다.
‘내일…….’
아카데미에 입학한 덕분에 아델리아는 황실 기사단이 될 수 있었다.
과거 아델리아를 있게 한 것이 아카데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델리아는 거울을 등지고 몸을 돌렸다.
“그래, 아카데미. ……아카데미가 시작이었지.”
“네? 아가씨 방금 뭐라고 하셨…….”
저 아카데미가 아델리아를 기사로 키워 냈다.
나아가 성검의 기사, 제국의 영웅.
그리고.
‘전쟁터만 돌아다니며 죽어라 일만 하다가, 정말로 죽어 버렸어.’
단 하루도 마음 놓고 잠든 적이 없다.
오로지 전쟁, 전쟁, 전쟁!
아델리아의 붉은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소파 옆으로 나란히 세워 둔 여러 개의 짐가방을 찢을 듯 바라보았다.
‘저 가방들을 꾸리면서 얼마나 설렜었는지 기억나.’
오빠인 데릭의 뒤를 이어, 자신도 에스테르 공작가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었다.
게다가 최연소 합격자, 그것도 수석.
‘하지만…….’
아델리아는 그 짐가방을 향해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세라.”
“네, 아가씨.”
“이 짐. ……몽땅 다시 풀어.”
“네?”
“아니다. 풀어서 정리하는 것도 일이니까.”
서늘한 아델리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냥 불태워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