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아델리아의 손바닥 위로 푸른빛과 금빛이 어우러진 오러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언뜻 보면 푸른빛인데 사이사이 별을 가루 내어 흩어 놓은 것처럼 황금빛 가루가 반짝거렸다.
그녀는 그 오러를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자신의 오러가 맞았다.
“하…….”
아델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대체 언제 발현된 거지?
‘아니, 이 엄청난 놈들이 몸속을 돌아다니는데 왜 그걸 느끼지 못했던 걸까?’
지난 생에 죽어라 써 대던 오러였다.
이 오러가 몸속을 돌아다니는 느낌이나, 오러가 흘러나와 손끝으로 고였을 때의 느낌, 그리고 오러가 성검을 타고 나아가 폭발적인 공격을 퍼부었을 때.
그 모든 감각이 그녀에게는 익숙하고 당연했다.
‘그러니까 더 이상하잖아. 내가 내 오러를 못 느꼈다는 게.’
잠시 생각하던 아델리아의 머릿속으로 테오스와 데릭이 떠올랐다.
‘오러를 가진 그 두 사람이 몰라봤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두 사람은 태연했다. 아무런 것도 묻지 않았고 아는 체하지도 않았다.
“아빠나 오빠. 둘 중 한 명이 잠재웠던 거야.”
들은 적이 있다. 직접 해 본 적은 없지만.
폭주하는 타인의 오러를 잠재우려면 그보다 강한 오러가 필요하다고.
테오스나 데릭의 오러는 지금 아델리아의 오러보다 강했다. 훗날은 어찌 될지 모르지만, 당장은 그러했다.
‘아빠는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럼 오빠가 내 오러를 잠재웠구나.
‘시간을 돌아오자마자 아팠었지. 그게 오러 때문이었나 봐.’
그렇다면 말이 된다, 이 모든 상황이.
‘하아…….’
들켰네. 다 들켰어.
어차피 숨길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과거에서 얻어 온 지식이나 알고 있는 미래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멍청한 짓이니까.
‘조용한 은퇴 생활을 위해 거쳐야 할 일 중 하나일 뿐이야.’
일단 오러가 다시 발현된 이상 평범한 귀족 영애로 사는 일은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아델리아가 검을 들고 설치며 오러를 뿜어내면 모를까. 어지간한 사람들은 오러를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얌전한 척,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내리는 일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아.’
하기 싫은 영웅 노릇도 해냈는데, 그 정도쯤이야.
“우선, 이 오러부터 처리해야겠지?”
[어떻게 하시려고요?]
“제어해야겠지. 내 허락 없이 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과거의 아델리아 역시 그렇게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오러가 발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니, 펠슨 선생이 찾아내지 못했으니 어쩌면 아예 없었는지도 모른다.
-마탑의 고서에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르트반 대륙의 고서는 물론, 다른 대륙의 고서들도 모두 모이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마탑의 고서에 접근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없다고 봐야겠지.’
그랬기 때문에 훈련되지 않아 미완성인 몸으로 오러를 통제하고 제어하는 방법 따위는 밝혀진 게 없었다.
이대로라면…….
‘오러를 마구잡이로 쓰게 될 거야.’
과거처럼, 생명을 담보로 말이다.
‘또다시 시한부가 되는 건가…….’
순간, 뻣뻣하게 굳어져 가던 몸과 마지막 숨이 끊어지던 순간이 겹쳐 떠올랐다.
아델리아가 고개를 털었다.
아니. 그럴 순 없다.
어떻게 얻은 삶인데, 다시 오러에 발목을 붙들릴 순 없지.
생각해. 이 오러를 통제하는 방법을.
[하, 거참. 골치 아픈 녀석이네요.]
“…….”
그래, 골치 아프지. 너 하나로도 머리가 터지겠는데, 오러까지 같이 나타나다니.
[뭐라고요, 누님?]
“아니야.”
못마땅하다는 듯 큼큼, 목을 가다듬던 리그하르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내다 버리지도 못하고, 어디다 가둬 둘 수도 없고.]
“…….”
응? 가둬? 바닥으로 향하던 아델리아의 고개가 리그하르트에게로 휙 돌아갔다.
“그래, 릭!”
[네?]
“그거야!”
[그거? 뭐가요? 제가 또 뭔가를 해낸 건가요?!]
갑자기 신이 난 리그하르트가 협탁 위에서 퉁퉁, 튀어 올랐다.
그래, 왜 그걸 생각 못 했을까.
“가두는 거야.”
[엥?]
불안정하게 날뛰는 오러들을 한데 모아 가둬 둘 수 있다면? 가둔 오러를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방법이 있다면!
아델리아의 입가로 숨기지 못한 미소가 스몄다.
‘오러 큐브……!’
오러 큐브는 과거 펠슨 선생이 찾아 준 방법이었다.
-몸속에 오러 큐브를 만드는 겁니다.
-오러 큐브?
-일종의 금고 같은 거지요. 금제를 걸어 둔 큐브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 오러를 모아 두는 겁니다. 집어넣을 수 있는 오러는 무한이지만, 그곳에서 오러들이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금제를 걸어 두는 거지요.
간혹, 성년이 된 이후로도 오러를 제어하지 못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런 자들을 위해 고안된 방법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시 아델리아는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오러 큐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신체가 회생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아델리아는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지.’
지금 아델리아의 몸은 무척 건강한 상태니까.
그 방법이 지금 아델리아의 몸에서 성공한다면, 아델리아가 성년이 되어 오러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티는 게 가능해진다.
‘오러 때문에 언제 죽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기도 해.’
물론, 획기적인 방법인 만큼 위험 부담은 있었다.
[누님. 그거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아델리아와 펠슨의 설명을 함께 들었던 리그하르트도 걱정을 드러냈다.
[그거…….]
리그하르트가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레 말을 이어 갔다.
[심장에다 걸어야 하는 거잖아요?]
“응……. 맞아.”
리그하르트의 말대로, 오러 큐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심장이 필요했다.
심장은 사람의 몸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하게 박동하는 곳이었다.
오러라는 강력한 힘을 가둬 두기에 그만한 곳이 없었다.
[누님, 그때도 펠슨 선생이 말했어요.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
펠슨의 말로는 그러했다. 그러나 펠슨이 보지 못했을 뿐, 어딘가에서는 성공한 사례가 있지 않을까.
“릭, 알잖아. ……어차피, 오러를 제어하지 못하면 죽어.”
지난 삶처럼. 그렇게 천천히 굳어 버리겠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멸망을 바라만 보면서.
[하지만…….]
고민할 시간조차 없다.
아델리아는 욕실로 뛰어 들어가 욕조에 차가운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러 큐브를 생성하는 방법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오로지, 심장.
심장이 오러의 열기를 견뎌내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차가운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게 좋았다.
아델리아는 욕조에 물이 가득 찰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촤아악— 욕조를 채운 물이 기어이 밖으로 흘러넘쳤다. 그제야 아델리아가 움직였다.
[누님!]
리그하르트가 다시 아델리아를 만류했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차가운 물 속으로 발끝을 밀어 넣었다.
‘으으…….’
욕조 물은 몹시도 차가웠다. 겨울철 야영지에서 호수에 들어가 목욕을 하던 것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으나, 일곱 살 어린아이의 몸에는 충분히 고통스러운 온도였다.
아델리아는 어금니를 꽉 다문 채 머리끝까지 물속으로 담갔다.
촤르르르르—
그러자 욕조 물이 또다시 넘쳐 흘렀다.
신체가 모두 물속에 잠기자, 세상이 고요해졌다. 아델리아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할 수 있어.’
누님, ……힘내세요. 작게 소곤거리는 리그하르트의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번엔 내가 오러를 지배하는 거야.’
과거처럼 휘둘리지 않도록. 내 몸을 더 이상 갉아먹지 못하도록.
두근두근. 심장의 울림이 점차 커졌다. 몸속의 오러에 집중하면 할수록 심장에서 느껴지는 박동과 열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손끝과 발끝, 머리끝까지 퍼져 있던 오러들을 더욱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델리아는 집중했다. 흩어져 있는 오러를 빠르게 심장 쪽으로 불러들였다.
쿵, 쿵, 쿵, 쿠웅—
심장에서 울리던 박동은 곧 몸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뜨거워…….’
핏줄에 흐르는 것이 피가 아닌 펄펄 끓는 쇳물 같았다. 심장뿐 아니라 살갗마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욕조에서 튀어 나가 심장을 뜯어내고 싶은 고통이 이어졌다.
‘아파……!’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비록 당장은 까무러칠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테오스와 데릭을 잃었을 때만큼 고통스럽진 않았다.
‘집중해.’
기껏 모아 놓은 오러를 놓치기 전에. 놓치게 되면 모든 게 끝이 날 테니까.
‘죽고 싶지 않아…….’
이제는 살아야겠다.
‘아직 제대로 은퇴 생활을 누리지도 못했다고!’
순간, 아델리아의 몸에서 푸른 오러가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포그르르, 물속에서 공기 방울이 떠오르자, 이내 차가웠던 욕조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누, 누님?]
숨죽여 그 장면을 지켜보던 리그하르트가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아델리아를 불렀다.
그러나 그 뒤로도 아델리아는 물속에서 일어서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