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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13)화 (13/161)

13화

서, 성검?

갑자기 걔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아델리아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테오스는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며칠 전, 신전에서 돌아올 때.”

꿀꺽, 아델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테오스의 붉은 시선이 정확히 아델리아의 소매로 향했다.

“네게 들러붙은 기운이 하나 있었다.”

“…….”

테오스가 말하는 기운은 분명 리그하르트를 말하는 것이다.

아델리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뭐? 드, 들러붙어?! 저 녀석이 지금 누굴 거머리 취급하는 거야!]

이 녀석이 진짜. 누구보고 저 녀석이래?

‘우리 아빠한테 함부로 말하지 마.’

[하지만 누님! 들러붙었다잖아요!]

‘말밥굽.’

[……헛.]

리그하르트가 다시 조용해지자, 아델리아는 조용히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테오스의 시선이 어느새 아델리아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다 알고 부르신 거야.’

아델리아가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자, 테오스가 먼저 말했다.

“혼내려고 부른 게 아니다.”

“…….”

“그 물건이 위험한 물건인지 확인이 필요해.”

“위험하지 않아요.”

“아델리아.”

“…….”

아델리아는 턱을 꾹 눌러 닫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성검이 주인을 해칠 순 없거든요.”

“……주인?”

테오스가 놀라고.

“뭐……?”

데릭도 놀랐다.

여기서 신난 존재는 오로지 리그하르트뿐이었다.

[잘한다!]

역시 성검의 주인다워! 내가 선택한 누님답다! 속 시워어어언허다!

아델리아의 머릿속이 또 한 번 소란스러워졌다. 아델리아는 심호흡한 뒤 말을 이어 갔다.

“네. ……제가 성검의 주인이에요. 그러니까 성검은 절 해칠 수 없어요.”

그러자 데릭이 소파에서 펄쩍 튀어 오르며 말했다.

“아델! 신전에서 그 검이 널 해치려고 했어! 네게 달려들었다고!”

그게 어딜 봐서 주인을 대하는 태도냐고!

데릭의 말에 리그하르트가 또다시 발끈하며 떠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게 누님과 나만 아는 신호라고! 신호!]

‘릭!’

[아, 죄송.]

아델리아는 데릭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오빠.”

“무슨 이유? 너를 공격할 만한 이유?”

“오빠.”

“그건 명백히 공격이었어.”

“아니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은 아델리아에게로 복귀하려는 리그하르트의 습성이었다.

그리고 귀소 본능은 전장 위에서 꽤 유용한 능력이었다.

아델리아가 적을 처리하기 위해 성검을 집어 던지면, 성검은 적의 목을 베어 내고 그 즉시 아델리아에게로 날아왔다.

‘이걸 설명할 수도 없고.’

아델리아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소매 속에 감춰 두었던 리그하르트를 꺼내었다.

탁. 테이블 위로 올려 테오스 앞으로 밀어 놓았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가져가셔서 확인해 보셔도 돼요.”

데릭이 테이블 위 펜던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저게 그 성검이라고? 널 공격하려던?”

저 작달막한 쇳덩이가? 그러자 기죽어 있던 리그하르트가 버럭거렸다.

[이 무지한 자를 봤나! 감히 누구더러 쇳덩이라고!]

‘릭.’

[아니, 답답해서 그럽니다! 저는 성물을 녹여 만들어진 위대하고—]

“성검은 크기를 줄일 수 있어.”

아델리아는 리그하르트의 말을 듣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러자 데릭이 체념하듯 물었다.

“그러니까……. 이 성검이 널 선택했다고?”

“……응.”

아델리아의 대답에 모두가 침묵했다. 무거운 적막이 공기를 짓눌렀다.

그때, 테오스가 손을 뻗어 테이블 위 리그하르트를 손끝으로 꾹 눌렀다. 그러자 테이블이 우우웅— 작게 진동했다.

테오스의 손끝에 깔린 리그하르트가 참지 못하고 몸체를 꿈틀거렸다.

[감히 누굴 만지는 것이냐! 내 몸에 손대지 마라! 놔! 어허?!]

어차피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델리아의 머릿속만 웅웅, 울려 댈 뿐이다.

리그하르트가 징징, 울려 대자 테오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군.”

“…….”

그의 말에 아델리아가 마른침을 또다시 삼켰다.

“성검은 본래 말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검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겠어요. 원래는 목소리가 났…….”

아차, 그 원래는 과거의 일이었다.

“원래는 났다고? 언제?”

어……. 잠시 머뭇거리던 아델리아가 급히 말을 지어냈다.

“옛날이래요. 아주 먼 옛날. 그때는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 된대요. 그래서 저랑만 대화할 수 있다고…….”

“음.”

며칠간 리그하르트와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지금 리그하르트의 목소리는 아델리아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이들 앞에서 떠벌리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정확히 반으로 줄었어요. 제 능력이요.]

리그하르트는 시간을 돌아오면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힘이 줄었다고 했다. 그 여파로 자신의 목소리가 아델리아에게만 전달된다고.

‘차라리 다행이지.’

끼어들기 좋아하고 수다 떨기 좋아하는 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차라리 이러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테오스는 펜던트 모양의 성검을 누른 채 잠시 생각하다, 다시 아델리아 앞으로 밀어 주었다.

“넣어 놓거라.”

“네?”

“이 성검의 주인은 너다.”

“믿어 주시는 거예요?”

“믿지 않을 이유가 없지.”

“…….”

테오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아델리아는 테이블 위 리그하르트를 후다닥 끌어당겨 다시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 그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

“……네?”

아델리아가 커다랗게 뜬 눈으로 테오스를 쳐다보았다.

“성검은요?”

“성검이 왜.”

“성검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라고요?”

그녀의 질문에 오히려 테오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할 말이 더 남아 있거든 해도 된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뭔가,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테오스가 공작저로 돌아왔던 날도 그랬다.

테오스는 입학을 취소하겠다는 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않았다.

분명 많은 것이 궁금했을 텐데도, 곧장 황궁으로 가자며 일어섰다.

이번에도 그랬다.

무려 성검이다. 신전을 뒤집어 놓고 대륙을 뒤집어 놓을 성검.

그 성검이 깨어나서 성검의 주인을 선택했다는데. 그게 자신의 딸이라는데. 게다가 그 딸이 신전에서 성검을 훔쳐 나왔다는데.

분명 더 궁금하고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도 그는 캐묻지 않았다.

‘그냥,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가…….’

세상 만물에 무관심한 테오스의 성격상, 그럴 가능성이 컸다.

“아버지. 성검은…….”

데릭이 다시 성검에 대해 거론하자, 테오스가 손을 들어 데릭의 말을 막았다.

테오스는 더 이상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데릭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델리아. 나는 그 쇳덩이보다 네 몸속에 자리 잡은 오러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르르르— 쇳덩이라는 말에 리그하르트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짐승들이 낼 법한 소리를 냈다.

아델리아는 소매 속 리그하르트를 꾹 거머쥐고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아델리아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데릭이 아델리아를 보며 질문을 쏟아 냈다.

“너 왜 안 놀라? 알고 있었어? 너한테 오러가 발현되었다는 걸? 아니, 언제? 어떻게?”

금제를 걸어 놔서 당분간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놀란 데릭의 반응에 아델리아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신전에서.”

“저 쇳덩이 때문이야, 아델?”

[저, 저!]

“비슷해.”

“하아…….”

데릭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데릭과 아델리아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테오스는 말없이 생각에 빠졌다.

“아델리아.”

“네, 아빠.”

“오러를 제어할 수 있게 된 것이냐.”

테오스의 질문에 아델리아는 잠깐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네.”

아델리아는 순순히 대답했다.

‘역시,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는 분이셨어.’

테오스는 아델리아를 잠시 본 것만으로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성검에서부터 오러까지.

‘이러다 오러 큐브에 대해서도 물어보시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델리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테오스의 표정을 살폈다.

오고 가는 말의 무게와는 달리, 테오스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무정한 것 같으면서 냉철하고 담담했다.

그가 가슴팍 앞으로 팔짱을 끼며 말을 이어 갔다.

“알고 있겠지만, 오러는 위험한 힘이다.”

그의 말에 아델리아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다른 귀족 가문들이 저희 가문을 더욱 경계하게 되겠죠.”

에스테르 공작가는 오랜 세월 귀족파의 견제를 받아 왔다. 굳이 황제파인지, 귀족파인지, 구분을 둔 적은 없었다.

그러나 황족의 안위를 지키고 황명을 받들어 선두에 섰다는 이유로 자연스레 황제파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 에스테르의 가주는 전투마다 대승을 거두는 전쟁 영웅이었고, 그의 아들 역시 천재라 불리며 어린 시절부터 출중한 능력을 드러냈다.

에스테르 공작가의 활약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딸마저 아카데미 시험을 수석으로 통과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마 황태자와 같이 검술을 배운다는 것도 곧 제국 전체로 알려질 거야.’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적당히 숨길 줄도 알아야 하고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하필 성검과 오러까지 더해졌다. 이 역시 평생 숨길 수는 없는 힘이었다.

아델리아의 눈꼬리가 바닥까지 내려가고 뺨과 입매가 천천히 굳어졌다.

‘역시, 귀찮다고 생각하시려나. 아니면 이조차도 관심이 없으실까?’

테오스의 무감한 시선이 허공을 지나 아델리아를 응시했다. 조용한 적막이 이어지던 가운데, 깊고 낮은 그의 목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성년이 되기 전에 오러가 발현된 사람을 알고 있다.”

……네? 바닥으로 향했던 아델리아의 고개가 빠르게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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