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아델리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랑 같은 증상의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을 아버지가 알고 있다고? 펠슨 선생조차 찾지 못한 사람을?
펠슨은 마탑의 고서에 기록이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추측뿐이었다.
그런데 테오스가 알고 있다니.
‘아빠가 마탑의 고서를 읽으신 적이 있나?’
아델리아가 놀란 눈을 뜨고 테오스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아니, 그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살아, 있어요?
쏟아 내고 싶은 질문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그 질문을 뱉어 내지는 못했다.
테오스의 입에서 죽었다는 말이 덜컥 튀어나올까 봐.
테오스의 침묵이 길어지자, 초조해진 아델리아가 에둘러 물었다.
“친한 분, 이셨어요?”
그러자 테오스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아주 찰나였다. 하지만 여태껏 담담하던 것에 비하면 꽤나 큰 반응이었다.
“……그래.”
테오스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반쯤 감긴 눈꺼풀 속 눈동자는 아득히 먼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했다.
테오스는 소파 팔걸이에 팔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의 눈동자도 다시 무감한 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오러가 일찍 발현된다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아델리아, 너는 이미 제어하고 있으니 더욱더 문제 될 건 없다. 앞으로도 오러를 제어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해라.”
“……네.”
테오스의 어투는 담담하고 또 건조했다.
그러나 아델리아는 이미 한 번 겪어 알고 있었다. 오러가 일찍 발현된 사람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거짓말을 하고 계셔.’
잠깐 스쳤던 테오스의 반응을 보아, 그 사람은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운신이 힘들 정도로 건강 상태가 나쁘다거나.
그런데도 테오스는 큰 문제가 아니라며 아델리아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설마, 내가 불안해할까 봐……?’
그는 무심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딸아이 앞에서 죽음을 선고할 만큼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상해.’
오늘따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다정하게 느껴진다면.
‘단순한 착각일까…….’
어쩐지, 일곱 살의 아델리아는 느낄 수 없었던 무언가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아델리아가 테오스를 쳐다보고 있자니,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테오스가 잠시 멈칫하다 말을 이어 갔다.
“황태자 전하와 검술 훈련을 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아, 맞아요. 폐하께서 같이 검술을…….”
그러자 테오스가 아델리아의 말을 끊었다.
“내키지 않으면 나가지 않아도 된다.”
“네……?”
테오스는 아델리아가 아닌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억지로 할 필요 없다는 소리다. 네가 싫다면 내가 직접 황제를 찾아가 없던 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아델리아는 멍하니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아, 안 돼! 이건 황궁을 정당하게 드나들 기회란 말이야!
“아, 아니에요, 아빠! 저 싫지 않아요! 좋아요! 좋아서 수락한 거였어요!”
뭐? 데릭과 테오스의 시선이 아델리아를 향해 빠르게 돌아왔다. 데릭이 놀라 물었다.
“뭐라고?! 조, 좋아서 수락한 거라고?”
아델리아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테오스를 향해 말했다.
“네, 아빠! 그러니까 그건 취소하지 마세요, 네?”
“…….”
그러자 테오스의 낯빛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래……. 좋아서, 수락했단 말이지…….”
그런 거였나……. 좋아서 그랬다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테오스가 중얼거리며 입가를 쓸어내렸다.
“아빠. 저, 조심할게요. 황태자 전하 앞에서도 얌전히 굴고, 황궁에서 사고도 안 칠 거고요.”
아델리아는 혹시라도 안 된다고 할까 봐 급히 말을 이었다.
“성검도, 오러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걸 보여 드릴게요. 믿어 주세요!”
조금 전까지 불안에 흔들리던 아델리아의 눈동자가 다시금 단단해졌다.
아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던 테오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네 뜻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거라.”
“아버지!”
데릭이 놀라 테오스를 불렀다. 그러나 테오스는 말없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창문까지 걸어간 그가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낮은 음성이었다.
“나가 봐도 좋다, 아델리아.”
“네.”
아델리아는 잠시 테오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소파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조용히 꾸벅 인사를 하고서 총총 걸어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
아델리아가 집무실을 나간 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데릭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정말 이렇게 넘기실 생각이세요?”
데릭의 질문에 테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데릭.”
“네, 아버지.”
테오스가 잠시 뜸을 들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델리아는. ……태어날 때부터 오러를 가지고 있었다.”
“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데릭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테오스가 말을 이어 갔다.
“아델리아의 오러는 주기적으로 폭주했다.”
1년에 두 번, 아델리아가 일곱 살이 되는 해까지.
“나는 그걸 주기적으로 눌러놓았을 뿐.”
출정에서 돌아와 아이의 오러를 잠재워 놓고 다시 출정을 떠났다.
항상 같은 시기에 오러가 폭주했기 때문에 시기만 잘 맞추면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주기가 깨진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러가 폭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데릭이 빠르게 발견했다는 거였다.
폭주하는 오러는 더 강한 오러로 제압할 수 있다. 데릭에게는 만약을 위해, 어릴 적부터 알려 주었던 방법이었다.
테오스의 말을 듣고 있던 데릭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아버지께서 이토록 태연하신가 했더니…….’
이미 알고 계셨기 때문이구나.
테오스는 조금 전, 아델리아에게 말했다. 아델리아처럼 어린 나이에 오러가 발현되었던 사람을 알고 있노라고.
“오러가 일찍 발현된 사람이 또 있었다고 하셨죠. 아버지께서는 그 사람을 통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고 계셨던 거군요.”
“그래, 데릭.”
그러자 데릭의 표정이 조금은 환해졌다.
“그럼 그분께 도와 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델리아의 상태를 좀 봐 달라고요. 앞으로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도 좀 물어보고…….”
그러자 테오스가 데릭의 말을 끊었다.
“데릭.”
“네?”
“그 사람은.”
테오스가 데릭을 돌아보며 말했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 때문에 테오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죽었다.”
“…….”
데릭은 무슨 소리냐고 되묻지도 못할 정도로 굳어 버렸다.
죽었, 다고? 데릭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테오스에게 성큼 걸어가며 물었다.
“그, 그럼. 우리 아델은요? 아델도, 설마……. 설마, 아니죠?”
네? 아버지? 데릭의 일렁거리는 눈동자가 테오스의 대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테오스가 데릭의 어깨를 지그시 붙잡았다.
“진정하거라, 데릭. ……아델리아는 다를 테니.”
“다르다니요?”
데릭은 잔뜩 긴장한 눈초리로 테오스를 응시했다. 테오스는 데릭을 소파로 데려다 놓으며 말을 이어 갔다.
“……내가 말했던 그 사람은 끝까지 오러를 제어하지 못했다. 거기에다 체력적으로 무리를 했어. 그것이 죽음을 앞당긴 거지.”
하지만, 조금 전 보았던 아델리아는 완벽하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오러를 능숙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스스로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평생의 난제로 남아 있던 문제가 해결된 셈이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오러가 조금이라도 불안정해지면 그땐 내가 다시 나설 것이다.”
테오스는 이미 같은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다. 오러의 폭주를 잠재웠던 것도,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일이었다.
그제야 데릭이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파에 기대앉으며 테오스에게 물었다.
“그럼 성검은요?”
“성검은 오히려 아델리아를 지켜 줄 테니 더더욱 걱정할 필요 없어.”
“공격하려는 걸 보셨잖아요.”
테오스도 데릭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공격하려던 게 아니었을 거다. 그게 정말 성검이라면 주인의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했을 테니까.”
성검은 주인에게 해가 되는 짓을 하진 않는다. 오히려 주인이 알아차리지 못한 위협을 알려 주고 대비하도록 도우면 도왔지.
데릭은 여전히 그 성검이 못마땅했지만, 아버지 테오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테오스가 소파에 등을 묻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미 발현한 오러는 돌이킬 수 없다, 데릭.”
“예,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델리아가 직접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걸 감사히 생각해야 해.”
“예…….”
데릭이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데릭.”
테오스가 데릭을 조용히 불렀다. 데릭이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아이가. ……살아만 준다면 뭐든 하게 해 주겠다고 맹세했다.”
그게 무엇이든, 어떠한 일이든.
“그게 아델리아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라면 내가 직접 나서서 말릴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지켜보고 싶구나.”
데릭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공작저 앞으로 마차가 도착했다.
“응? 어디서 왔다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세라가 아델리아를 깨웠다. 침대에서 막 일어난 아델리아는 영문도 모른 채, 화장실 안까지 끌려 들어갔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아가씨!”
“자, 잠깐 세라. 우웁, 어풉!”
세라는 세면대에 빠르게 물을 받아 서둘러 아델리아를 씻겼다. 그 와중에도 수건으로 물기를 꼼꼼하게 제거하고 화장대로 데려갔다.
“그러니까 대체 누구길래 이러냐고!”
세라는 아델리아의 잠옷을 벗기고 갈아입힐 드레스를 여러 벌 들고 오며 말했다.
“황궁이요! 황태자 전하께서 아가씨를 모셔 오라며 마차를 보내셨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