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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23)화 (23/161)

23화

리그하르트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아델리아는 말간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그리고 그 신력은 굉장히 강하고, 아이의 몸은 너무나 약해져 있기 때문에 대신관님이 아니면 다룰 수 없다고도 했어요.”

[그러니까, ……제가요?]

‘조용히 좀 해.’

[…….]

어차피 리그하르트의 목소리는 아델리아만이 들을 수 있다. 아델리아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도움이 된다는 것에 기뻐해.’

[…….]

아델리아의 말을 듣고 있던 테오스가 말했다.

“신전을 가야 한다는 말이로군.”

“네, 아빠.”

“그래……. 데릭과 둘이 다녀올 테니 너는 저택에 남아서―.”

“아니요. 저도 가겠어요.”

아델리아가 테오스의 말을 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빠, 데오나를 고쳐 주겠다며 큰소리친 건 저였어요. 그 아이의 상황이 저랑 너무 비슷했거든요.”

저도 오러 때문에 죽을 뻔했었잖아요? 하며 아델리아가 눈꼬리를 내렸다.

“아빠와 오빠를 믿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제가 직접 가서 이야기를 듣는 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테오스는 딸아이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과 같은 붉은 눈동자가 고집스레 빛나고 있었다.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델리아.”

“네.”

“네가 신전에 간다는 것은 성검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알고 있느냐?”

잠시 뜸을 들이던 아델리아가 대답했다.

“네. 각오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델리아가 목걸이로 걸고 있던 리그하르트를 꺼내어 테이블 위로 올렸다.

“대응 방법도 생각해 뒀고요.”

테오스는 테이블 위 자그마한 성검을 내려다보았다가 아델리아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래. 뭘 도와주면 되겠느냐.”

“검을 하나 주세요.”

“검?”

“네, 성검이 자기랑 똑같은 모습의 검을 만들 수 있댔어요.”

[누, 누님?]

이 역시 미리 이야기가 되었던 것은 아니어서 리그하르트가 놀란 목소리로 아델리아를 불렀다.

‘할 수 있잖아.’

[아니, 그거야 그런데. 말도 없이 일부터 치시는 건 아니죠!]

‘어차피 내 머릿속 다 들여다보잖아.’

[언제는 허락 없이 들여다보지 말라면서요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아델리아가 싱긋 웃었다.

“이왕이면 희귀한 광물로 만든 검이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아타뮴 광석이라든가, 플라니트 광석이라든가.”

왜, 구하기 힘들고 제련하기도 힘든 단단한 그런 재료들 있잖아요? 하고 뒷말을 덧붙였다.

“아, 아델.”

듣고 있던 데릭도 당황해하며 아델리아를 말렸다. 하지만 아델리아는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그런 광물이 아니라면 모습이 똑같다 해도 의심받을 거예요.”

희귀한 광물이나 재료들은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비범함이 남달랐다.

“가짜 성검이라…….”

잠시 생각하던 테오스가 소파에서 일어나 반대편 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벽에 전시되어 있던 검 한 자루를 끌어 내렸다.

“아버지! 그건……!”

데릭이 놀라 소리쳤다. 테오스는 그 검을 가지고 돌아왔다.

[우와! 저 검! 엄청난데요, 누님?!]

“어…….”

아델리아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당당하게 좋은 검을 내어 달라 했지만, 설마 이 검을 내어놓으실 줄이야…….

“아르티누스. 새벽의 은총이라는 뜻을 가진 검이다.”

알고 있다. 모를 수 없다. 이 검은 테오스의 아버지, 그러니까 아델리아의 할아버지가 쓰던 검이었다.

수백 년에 걸쳐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라고 볼 수 있다.

단단하고 희귀하기로 유명한 아타뮴 광석이나 플라니트 광석과 비교할 수 없는.

‘이건 드래곤의 이빨로 만든 거잖아요!’

아델리아가 속으로 소리쳤다.

테오스는 검집에서 검을 꺼낸 뒤, 검날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성검에 비할 바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드래곤 역시 신수에 가까운 영물이었다.”

예리한 검날이 차가운 냉기를 뿜어내는 것만 같았다.

테오스가 검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이걸 쓰거라. 아마 비슷한 기운을 지녔을 테니 더욱 감쪽같을 것이다. 신전을 상대로 속일 작정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거야 그렇긴 한데…….

‘이런 걸 선뜻 내어주시다니.’

[저 해 볼래요! 할 수 있어요! 할래요! 할래요!]

성검이 테이블 위에서 황금빛을 내며 통통통- 튀어 올랐다. 이 자리에서 신난 것은 리그하르트뿐이었다.

아델리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빠 말이 맞아요. 이 정도는 되어야, 대신관님도 속아 주시겠죠.”

아델리아는 리그하르트를 아르티누스 위로 겹쳐 올렸다. 그러자 성검이 파르르르르- 진동하며 황금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찬란한 광채가 터지며 거대한 빛무리가 집무실을 한차례 흔들고 지나갔다.

[짜안—!]

리그하르트의 호들갑에 다시 눈을 떴다. 그러자 그 자리에 성검의 모양과 똑같이 생긴 검이 생겨나 있었다.

[후욱, 후욱. 어때요? 대단하죠! 아직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고요!]

허억, 헉헉. 제법 힘에 겨웠는지, 리그하르트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우쭐거렸다.

‘응, 대단해. 잘했어, 릭!’

아델리아가 흐뭇하게 웃으며 속으로 칭찬했다.

[크헹헹헹.]

리그하르트는 아델리아의 칭찬에 크게 웃으며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이제 성검의 기운을 조금 옮기면 돼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리그하르트의 몸체에서 작은 황금빛 구체가 튀어나왔다. 동실동실 떠오른 구체는 곧장 가짜 성검의 몸체로 들어갔다.

[됐어요! 이제 대신관 녀석도 구분하지 못할걸요!]

자신감 넘치는 리그하르트에 아델리아가 작게 웃었다. 그녀는 테오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다 됐대요. 이제는 대신관님도 눈치 못 챌 거라고 그러네요.”

“겸손이란 걸 모르는 녀석이로군.”

[뭐, 뭐라고!]

“그런 편이에요.”

아델리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였다. 주치의 레널드가 집무실의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가, 각하! 아가씨께서 데려온 아이가 위급합니다!”

뭐?!

아델리아가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빠! 시간이 없어요! 빨리 데오나를 신전으로 옮겨야 해요!”

아델리아는 간절한 표정으로 테오스를 바라보았다.

‘대신관은 아무나 만날 수 없어. 지금은 아빠의 힘이 필요해.’

테오스는 그런 아델리아와 가짜 성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테오스가 입을 열었다.

“아델리아.”

“네, 아빠.”

“대신관을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성검이 너를 공격한 일을 언급하면서 먼저 달려 나와 무릎 꿇게 할 수도 있지. 하지만.”

테오스가 물었다.

“그것으로 되겠느냐?”

“네?”

“저 아이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성검이 널 공격한 일은 영원히 묻히게 될 것이다. 더는 그것을 빌미로 무언가를 요구할 수 없다는 소리지. 신전의 신관들은 우리 생각보다 더 계산적이니까.”

아델리아는 자신을 응시하는 테오스의 시선을 올곧게 바라보았다.

“네, 아빠. 후회하지 않아요.”

아델리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테오스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휘었다.

‘어……?’

아델리아가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그의 미소는 사라진 상태였다.

‘잘못 봤나.’

테오스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공작가의 집사, 일렌드를 불렀다.

“일렌드.”

“예, 각하.”

“마차를 준비하고 아이를 신전으로 옮긴다. 아이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

일렌드가 가슴 위로 주먹을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명 받듭니다.”

그리고 테오스는 데릭을 돌아보며 말했다.

“데릭, 너는 저 가짜 성검을 챙겨라.”

“예, 아버지.”

일렌드가 집무실을 나가고 데릭은 성검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델리아.”

“네?”

그가 아델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아델리아가 잠시 그가 내민 손을 바라보다, 그 위로 손을 얹으며 밝게 대답했다.

“네, 아빠!”

***

같은 시각, 테트 도르 3층.

“주치의가 가지고 있던 독초는 이게 전부입니다. 해독제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죠.”

루드가 독초가 든 주머니를 건넸다. 그것을 받아 든 카르세스가 테이블 위 작은 접시 위로 독초를 부었다.

“디크레드 영지에서도 판로가 모두 막혔다고 했지.”

“예, 주치의가 가지고 있던 독초를 마지막으로 재배지가 모두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독초를 더는 구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수확을 앞두고 몽땅 불에 타 버린 곳도 있었고, 멀쩡한 땅을 일부러 갈아엎은 곳도 있었다.

“혹시라도 해독제를 만들게 될까 봐 마무리까지 철저히 했어.”

카르세스는 얼마 남지 않은 독초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조소했다.

“에스테르 공작을 만나야겠다. 그라면 디크레드 백작 가문에 대해 아는 바가 있을 터.”

“미리 연락을 넣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어차피 내일 훈련 약속이 잡혀 있다. 에스테르 영애가 오면 그때 이야기하도록 하지.”

“예, 전하.”

그때, 누군가가 3층 계단으로 급하게 뛰어 올라왔다. 카르세스의 호위 기사인 아스틴이었다.

“전하, 노베트가 대장간을 다시 열었다고 합니다.”

서류를 넘기고 있던 카르세스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

“점심시간을 조금 넘기고 방문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 문이 열렸는데…….”

“그런데?

루드가 빨리 말하라는 듯 재촉했다.

“대장장이는 모습을 드러냈지만, 방문객들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스틴의 말이 끝나자, 루드가 말했다.

“뒷문으로 나갔나 봅니다, 전하.”

카르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베트는 악시덤이 주시하던 대장장이였다. 악시덤은 인재를 곁에 두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런 악시덤을 주시하다 보니 그가 노베트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노베트가 실력 좋은 대장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

앞서 뛰어난 의원을 악시덤에게 빼앗겼다. 그 의원은 카르세스가 지켜보며 회유하려던 인물이었는데 악시덤이 보란 듯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이번만큼은 빼앗길 수 없다.’

카르세스는 아스틴에게 물었다.

“방문객 인상착의는?”

“망토를 쓰고 있어서 정확한 생김새는 파악이 어려웠습니다. 신장과 체격으로 보아, 어린아이 한 명과 호위 기사쯤으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었다고 했습니다.”

호위 기사를 거느린 어린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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