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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51)화 (51/161)

51화

아델리아는 성검의 기사가 된 이후로 나가는 전장마다 승리를 쟁취했다.

당연히 제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뒤따랐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자, 성검의 주인, 제국민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는 영웅.

아델리아의 위치가 그러했다.

그러나 아델리아가 악시덤이 부리는 무기이긴 했지만, 그녀의 영광까지 악시덤의 것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악시덤은 아델리아를 온전히 손에 넣기를 갈망했다.

아델리아가 가진 영광, 명예. 그 존재 자체를.

전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악시덤이 아델리아를 불렀다.

늦은 밤. 축하 연회가 아침까지 이어지는 그런 날이면 악시덤은 아델리아를 세워 놓고 말했다.

-이제, 그만하면 영웅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지 않겠느냐?

-영웅의 역할은 다음 영웅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적당히란 없는 거지요.

-……그것을 정하는 것은 나다. 그쯤 하면 되었으니, 그냥 내 곁에 머물도록 하라.

-예?

악시덤은 그녀에게 정부들이 지내는 별궁을 내어주겠다고 했다. 아델리아가 질색하며 거절하자 한술 더 떠 한다는 말이.

-황비 제도를 만들어 정식으로 널 맞이할 수도 있다.

-싫습니다.

당시 아델리아는 황제의 눈치를 크게 보지 않았던 탓에 단칼에 거절했다. 황제가 시답잖은 농담을 즐기는구나,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탓이었다.

‘아무렴. 악시덤이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데, 그런 말을 진담으로 했으려고?’

[누님은 너무 순진해서 탈이에요.]

‘뭐?’

[대대로 제국의 역사상 서른 살 차이는 나이 차이도 아니라고요.]

‘그게 뭐야. 징그럽게.’

[제가 수백 년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못 볼 꼴을 참 많이 봤거든요. 거기에 서른 살 나이 차이 정도는 우스울 정도라고요.]

‘…….’

리그하르트의 말을 듣다 보니, 악시덤이 더욱 싫어졌다.

‘끔찍해.’

그게 다 진심이었다고?

그래서 거절하자마자 미친 듯이 전장으로 돌린 건가?

어차피 아델리아도 황제가 있는 황궁보다 전장이 더 편하긴 했다.

‘으, 토할 거 같아.’

순간, 머릿속이 핑그르르 돌았다.

[누, 누님?!]

아델리아가 비틀거리며 테오스의 망토를 붙잡았다. 그러자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잠깐 돌아보았다.

테오스는 아델리아의 표정이 좋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고 망토를 들어 아이를 감추듯 숨겼다.

“다음을 기약해야겠습니다. 아이의 몸이 허약하다 보니, 저희 둘의 오러에 견디지 못하는 것 같군요.”

“으음.”

악시덤은 망토에 다시 숨겨진 아델리아의 잔영을 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너무 오래 붙잡아 두고 있었던 모양이오. 그럼,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죠.”

“그러죠.”

테오스는 그 즉시 아델리아를 안아 들고서 신전을 빠져나갔다.

악시덤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테오스의 뒤에 숨어 자신의 기세에 주눅이 든 듯한 아델리아를 떠올렸다.

악시덤이 턱 끝을 매만졌다.

‘그리 보면 영락없는 어린아이인데.’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악시덤은 찝찝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몸을 돌렸다.

그때, 대신관이 대강당으로 들어왔다.

“대공 전하가 아니십니까?”

“제가 온 것은 어찌 아시고 대신관께서 나오셨습니까?”

“아…….”

악시덤의 말에 대신관이 조금 곤란한 듯 시선을 돌렸다. 대신관은 대강당 안을 조심스레 살펴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그 표정을 읽은 악시덤의 눈매가 갸름해졌다.

‘나를 만나러 나온 게 아니로군.’

대신관이 평소의 표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대공 전하.”

“……아닙니다. 급히 가야 할 곳이 떠올라서.”

악시덤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신전을 빠져나왔다.

***

대공저로 돌아온 악시덤은 집무실로 향했다.

“전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안색이 좋지 못하십니다.”

“그런 거 없다. 그나저나, 연락은?”

“아직입니다. 알아보고 오늘 안으로 연락해 준다고 했으니, 곧 도착하지 않겠습니까?”

악시덤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외투를 집사에게 넘긴 뒤 소파에 앉았다.

‘대신관이 만나러 나온 사람은 에스테르의 그 계집이로구나.’

그렇다면 그 상자도 대신관에게 전하기 위한 것인가.

‘그래 놓고 또래 친구에게 줄 선물처럼 거짓말을 했군.’

요망한 것.

악시덤이 소파의 손잡이 위로 팔꿈치를 올리며 몸을 기대었다.

‘대신관이 일개 공작 가문의 어린아이를 만난다?’

신전은 황제와 동맹 관계였다.

황궁이 폐쇄된 지금, 황제파 가문인 에스테르 공작가와 신전의 만남을 우습게 넘길 수는 없었다.

‘공작까지 직접 나타난 걸 보면 분명 무언가가 있다.’

혹시 우리의 계획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 그럴 일은 없다.

위험 요소는 그때그때 처리하면서 일을 진행해 왔으니까.

꼬투리가 잡힐 만하면 그 꼬리를 잘라 버렸으니 그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없다.

‘심증은 가겠지만 물증이 없으니 함부로 나서지도 못할 터.’

어쩌면, 그 아이에게서 느껴졌던 그 기운이 정말 신력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래서 대신관이 직접 나왔던 게야.

‘그건 또 그것대로 골치 아프겠는데.’

역시, 죽여 버리는 것이…….

그때, 시종 하나가 문을 두드렸다.

“전하, 에이블화이트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오, 악시덤이 상체를 곧게 세웠다.

“들여라.”

드르륵— 문이 열리고 검은 복면을 쓴 사내가 천천히 들어왔다.

그러자 사내를 알아본 악시덤이 놀란 눈을 떴다.

“에이블화이트의 용병 단장이 직접 올 줄은 몰랐는데.”

“일이 급박하여 직접 찾아왔습니다.”

킬리어드는 집무실로 들어오며 안을 잠시 살폈다.

‘그 여자는 없나 보군.’

킬리어드가 속으로 안도하며 소파로 걸어갔다. 그는 악시덤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임무를 맡았던 3조 조원들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악시덤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뭐라 했소? 모두 죽었다고?”

“그렇습니다.”

으음, 짧게 침음하던 악시덤이 물었다.

“길목을 지키는 건 일도 아니라며 믿어 달라 하더니.”

조롱하는 듯한 악시덤의 말에 킬리어드가 어금니를 짓이기며 시선을 떨궜다.

“그래, 누구의 짓이오?”

“알아보고 있습니다.”

“……의뢰도 실패했고 범인도 찾지 못했군.”

악시덤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의뢰한 일이 새어 나가는 것은 아니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임무를 맡겼던 3조는 의뢰인이 대공 전하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심문을 당했다 하더라도 쉽게 털어놓을 사람들도 아니었고요.”

게다가 애초에 심문을 받을 수 없었을 거다.

‘모두 급소를 맞아 단번에 죽어 버렸으니.’

그때 악시덤이 다리를 꼬았다.

“그래서? 임무는 실패했다, 하고 끝낼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이번 의뢰의 선수금을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에이블화이트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범인을 꼭 잡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그거야 내 알 바가 아니고. 내가 입은 손해는?”

예상은 했지만, 몹시도 적나라한 대공의 발언에 킬리어드는 잠시 입술을 물었다.

악시덤이 소파의 손잡이 위를 손끝으로 두드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 길목을 지키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는 것은 누군가가 디크레드 영지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소?”

그러자 킬리어드가 말했다.

“대공 전하께 사죄하는 의미로, 저희 아이들을 처리하고 디크레드 영지로 들어간 자가 누구인지 찾아내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디크레드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알아내겠습니다.”

흐음, 악시덤이 못마땅한 얼굴로 턱 끝을 매만졌다. 그러자 초조해진 킬리어드가 말을 덧붙였다.

“그들의 처리도 저희 에이블화이트에서 맡겠습니다.”

그제야 악시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좋소. 아직 그들이 디크레드에 있을지 모르니 서둘러 움직이시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을 보내 놨습니다.”

“……실패는 한 번으로 끝이어야 할 것이오.”

로시안트 제국에서 에이블화이트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킬리어드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

“감기인 것 같습니다.”

공작저에 도착한 아델리아는 기다렸다는 듯이 열이 끓어올랐다.

“갑자기?”

“갑자기가 아닙니다, 각하. 디크레드 영지까지 그 거리를 쉬지도 않고 달려오셨다 들었습니다. 다녀오신 뒤로도 곧장 입궁하셨다고요. 쓰러지신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공작가의 주치의 레널드의 말에 테오스가 조용히 아델리아를 바라보았다.

레널드가 약을 만들어 오겠다며 방을 나가자, 테오스는 의자를 끌고 와 아델리아의 옆에 앉았다.

침대에 폭 파묻혀 끙끙 앓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심장께를 도려내는 듯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끝까지 말렸어야 했다.’

아델리아에게 모든 것을 맡길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나서야 했다고. 디크레드 영지 입구에서 붙잡혀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이 자신이어야 했다고.

테오스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디크레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짧은 서신으로 대충 전해 들었다.

‘감옥이라니…….’

당장이라도 디크레드 영지로 달려가 아델리아를 감옥에 처넣은 놈을 찢어 버리고 싶었다.

테오스가 서신 내용을 떠올리며 두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때.

“아빠아……?”

테오스가 고개를 빠르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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