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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62)화 (62/161)

62화

“진검이라뇨?!”

비올라의 말에 놀란 카를리나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비올라가 카를리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의자에 다시 앉혔다.

“놀라지 마세요. 모두 숙련된 기사들이에요. 적당히 선을 지킬 줄 알고, 적당히 즐거움을 선사해 줄 거예요.”

“비올라, 아무래도 이건…….”

“그냥 공연이라고 생각하세요. 대결이니, 승부니. 그런 건 아직 우리에겐 어려운 단어니까.”

날 믿어요, 카를리나. 설마 내가 카를리나의 티파티를 망치려고 이러겠어요?

카를리나의 귓가에 속삭이는 비올라의 목소리가 한껏 다정했다.

비올라가 테이블에 둘러앉은 영애들을 훑었다.

이미 검투사의 등장으로 겁을 잔뜩 집어먹었던 영애들은 급기야 눈가를 붉히기까지 했다.

그것은 각 가문의 기사들 또한 비슷했다. 모두가 새로 등장한 기사의 기세에 눌려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비올라는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더욱 환히 웃었다.

“아까, 새로운 시합을 제안하겠다고 했죠? 실은 제가, 아버지께 선물 받은 게 하나 더 있거든요.”

짝짝. 그녀의 손뼉 소리에 하녀 하나가 은색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 위에는 손바닥 크기의 붉은 벨벳 쿠션이 올라가 있었는데, 그 쿠션 가운데에 반짝거리는 보석이 놓여 있었다.

흡사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했다. 그러나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붉은빛과 보랏빛, 그리고 금빛과 푸른빛이 절묘하게 섞여 빛났다.

비올라는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카마엘의 눈. 신을 볼 수 있는 눈이라는 뜻의 보석이에요. 이 보석을 시합 상품으로 걸겠어요.”

그러자 아델리아가 눈을 번쩍 떴다.

‘저게 왜 저기 있어?’

저 보석은 비올라의 말처럼 ‘카마엘의 눈’ 따위가 아니었다.

그 보석을 알아본 아델리아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심호흡했다.

“후우.”

눈을 한 번 느릿하게 감았다가 뜬 아델리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보석을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나서야 할 차롄가.’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무슨 소리냐며 물었다.

[예? 여기서 더 나서시겠다고요?]

‘릭. 이건 티파티의 일부분이라고. 난 티파티를 익히기 위해 여길 왔잖아. 즐겨 줘야지. 안 그래?’

물론, 생각했던 것보다 티파티라는 것이 몹시도 자극적이고 긴장감이 감도는 행사라는 게 의아하긴 했다.

‘카를리나 반응을 보면 의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원래 티파티는 이런 돌발적인 상황까지 감수하면서 열리는 걸까?

아델리아가 고민하는 사이 리그하르트가 말했다.

[아, 아니, 누님! 잘 생각하셔야 해요. 지금 누님은 오러도 사용할 수 없고 저를 꺼내서 쓰지도 못한다고요! 저 검투사 덩치를 봐요! 일곱 살 몸으로 저걸 어떻게 이겨요?!]

그러자 아델리아가 작게 웃었다.

‘릭, 이 내가 오러도 없이 아카데미 최연소 수석 합격을 하신 몸이야.’

거기에 과거의 기억을 모조리 가지고 돌아온 덕분에 각종 검술이며 암살 기술들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당하게 맞서면 불리할 수 있겠지만.’

아델리아의 올라간 한쪽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이들이나 학살하던 놈을 상대로 정당하게 싸울 생각은 없어.’

[다른 방법이라도 있으세요?]

‘있지. 내가 그동안 놀고만 있었던 거 같아? ……지켜봐. 이참에 투기장에서 허무하게 바스러졌던 아이들의 복수도 할 테니.’

아델리아가 자신 있게 대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제가 도전해 봐도 될까요?”

아델리아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아델리아는 벨벳 쿠션 위 보석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가진다.’

저 보석은 내 거야.

[……복수는 무슨.]

결국엔 저 보석이 목적이었던 거지!

보석을 바라보는 아델리아의 붉은 눈동자가 다시 한번 탐욕으로 일렁거렸다.

비올라가 ‘카마엘의 눈’이라 부른 저 보석의 진짜 이름은 10년이 지난 뒤에야 밝혀진다. 바로‘초월석’.

초월석은 이를 지닌 사람의 힘을 증폭시켜 주는 능력이 있었다.

마력이면 마력, 오러면 오러, 신력이면 신력.

그게 어떤 힘이든, 적게는 두 배. 많게는 열 배 이상으로 증폭시켜 준다고 들었다.

[그게 뭐예요! 사기잖아!]

‘그렇지? 나도 보기만 했어. 가지고 있는 녀석을.’

저 초월석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아델리아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회귀 전의 아델리아는 열일곱 살에 오러가 발현되는데, 그로 인해 기사단 동기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그녀의 적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기였던 기사 하나가 저 초월석을 가지고 나타나 아델리아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나, 델트에먼 후작가의 장남. 비오데르 델트에먼. 아델리아 에스테르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초월석을 가지고도 아델리아에게 이기지 못했다.

[대체 얼마나 약했던 겁니까?]

‘초월석만 가지고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강해질 거라는 어리석은 믿음이 있었던 거지. 하아……. 그때 대련에서 이긴 대가로 초월석을 빼앗았어야 했는데!’

아델리아가 아깝다는 듯 속으로 혀를 찼다.

[근데 저 보석이 왜 지금은 저기에 있는 걸까요?]

그 후작가도 아니고.

그거야 아델리아 역시 알 수 없었다.

다만, 짐작하건대.

‘프레이르 공녀나, 악시덤이 아직 저 초월석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거야.’

이런 시합 상품으로 가볍게 던져질 물건이 아니었다.

‘공녀가 시합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런 식의 시합을 통해 후작가에 흘러 들어갔을 수도 있어.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악시덤이 후작가를 회유하기 위해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후작가는 황제파 귀족 중에 영향력이 꽤 큰 가문이었으니까.’

정통성이 부족했던 악시덤에게는 귀족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거기에다 황제파의 귀족을 회유하고 첩자로 심어 놨다가 황제파를 와해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

델트에먼 후작가는 원래 황제파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황제파 귀족들 사이를 이간질하던 가문이 델트에먼 후작가였거든.’

델트에먼 후작가의 배신으로 기존의 황제파 귀족들은 크게 흔들리고 신뢰가 깨져 버렸으니, 악시덤이 황제 자리에 오르게 한 공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었다.

[이미 회유를 당한 상태였나 보네요?]

‘그렇지. 그런데 지금 초월석이 아직 대공가에 있네? 그렇다는 건…….’

[회유하기 전이라는 거죠?]

‘맞아. 그리고.’

아델리아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진정시켰다.

‘이번에는 저 초월석이 내 것이 된다는 이야기지.’

[…….]

‘초월석은 내가 가지고, 델트에먼 후작가가 대공에게 넘어가는 것도 막고.’

일석이조 아니겠어?!

‘이번에 델트에먼 후작가를 회유하려면 다른 방법을 찾으셔야겠네요, 대공 전하.’

후후후, 아델리아가 고소하다는 듯 속으로 웃었다.

하지만 악시덤은 다른 방식을 써서라도 델트에먼 후작가를 회유하려 들 것이다.

‘이참에 아빠한테 슬쩍 흘려야겠어.’

델트에먼 후작가에 수상한 움직임은 없는지, 조심할 수 있도록 말이야. 아니면 배신의 싹을 미리 도려낼 수 있도록.

‘그나저나, 프레이르 가문은 진짜 대단하네.’

투기장에서 학살을 일삼던 검투사를 데리고 있질 않나, 10년 뒤에나 세상에 드러나야 할 초월석을 가지고 있지 않나.

‘대공가 유물 창고에 또 뭐가 더 있을까?’

[……좀 위험한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응? 아니야, 아니야. 설마 내가 대공가 유물 창고를 털겠다는 뭐, 그런 질 나쁜 생각을 했겠어?’

[구체적이시네요.]

‘아니라니까? 궁금해하는 것도 안 돼?’

아델리아가 리그하르트에게 핀잔을 들으며 걸어 나오던 그때, 비올라와 눈이 마주쳤다.

비올라는 아델리아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델리아가 직접 나설 줄 몰랐던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크게 당황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비올라가 흐음, 작게 콧소리를 내며 말을 이어 갔다.

“진검승부인데요, 에스테르 영애.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요?”

“괜찮아요.”

“진검승부가 뭔지는 아시죠? 누군가는 다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죠.”

그러자 아델리아가 천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가 이래 봬도 기사가 되려고 준비하던 사람인데 설마 모르겠어요? 아마, 제 소문에 대해 다들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거예요.”

아델리아가 소문에 대해 언급하자, 영애들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에스테르 공녀에 대한 소문은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중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한 가지를 아델리아가 직접 거론했다.

“귀족 영애라면 응당 익혔어야 할 기본 소양이 한참은 부족하다? 맞는 말이에요.”

자수나 예법, 춤이나 음악 등. 귀족 영애가 배워야 할 기본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대신 전, 검술을 배웠죠. 제가 좋아하는 걸 직접 선택한 거라 후회는 없어요.”

아델리아는 테이블에 둘러앉은 영애들을 고루 바라보며 그린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저를 보며 모두가 의문을 품죠. 여자아이가 검술을 배워 봤자 얼마나 배웠겠어? 비엔테올라 아카데미 최연소 수석 합격자라고? 가문의 힘으로 들어간 거 아니야?”

그러자 비올라가 한쪽 눈썹을 꿈틀했다.

다른 가문의 영애들은 아델리아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해 고개를 돌렸다.

실제로 그런 이야기가 사실처럼 퍼져 있었다. 그러나 아델리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직접 보여 드릴게요. 그리고 소문 좀 제대로 퍼트려 주세요.”

소문을 내 달라고? 영애들이 눈을 깜빡거리며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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