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67)화 (67/161)

67화

꾸벅꾸벅 졸고 있던 세라는 정신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아델리아를 찾아 끌어안았다.

“괜찮아요, 아가씨! 저한테 딱 붙어 있으세요!”

세라는 아델리아를 안고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놀란 말들이 한참을 요동쳤다. 당연히 마차 역시 크게 흔들렸다.

쿵, 쿵. 그때마다 세라의 몸이 마차 벽면에 세게 부딪혔다. 그러기를 잠시, 곧 마차는 고요해졌다.

아델리아가 세라의 품에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세라, 괜찮아?”

“전 괜찮아요, 아가씨. 아가씨는요?!”

세라의 눈동자가 아델리아의 얼굴과 몸을 훑었다. 크게 다친 곳이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놀란 얼굴에 안도하는 빛이 어렸다.

“아가씨! 나오지 마십시오!”

마차 밖에서 아렌트가 소리쳤다.

세라가 아델리아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괜찮을 거예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기사님들이 아가씨를 지켜 줄 테니까요.”

세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덜덜 떨면서도 아델리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바깥은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웬 놈들이냐!”

스르릉- 여러 군데에서 검을 빼 드는 소리가 들렸다.

‘일곱이야.’

[모두 훈련받은 기사들이에요.]

아델리아가 바깥의 상황에 귀를 쫑긋 세웠다.

“어차피 죽을 놈들이 우리가 누군지 알아서 뭘 하려고!”

데프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차피 죽을 놈?! 그건 네놈들을 말하는 것이냐?”

잘한다, 데프! 데프가 사람 성질 긁는 데는 타고났지!

데프가 다시 소리쳤다.

“네놈들을 하나하나 잡아다가 심문해 보면 알게 되겠지!”

“그럴 기회나 있을 것 같으냐!”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고 갔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델리아가 미간을 구겼다.

아……. 저것들이 입으로 싸우나.

“검 뽑아다 스튜 끓여 먹을 거야?! 그냥 때려잡아!”

참다못한 아델리아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괴한들이 소리쳤다.

“계집은 마차 안에 있다! 끌어내!”

그리고 곧장 검날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순간, 세라 품 안에 있던 아델리아가 움찔거렸다.

‘계집……?’

아델리아는 세라의 품에 콕 파묻혀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기 새 같던 여린 얼굴이 느릿하게 마차 창문 밖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콰앙—!

마차 쪽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검을 맞대고 있던 괴한과 에스테르 기사들이 놀라 마차를 쳐다보았다.

마차 한쪽 문이 떨어져 나간 듯 덜렁거렸다.

“아, 아가씨!”

놀란 아렌트가 괴한 하나를 빠르게 처리하고 마차로 달려왔다.

“들어가 계십시오.”

“방금 어떤 놈이야?”

“……예?”

문을 부수며 걸어 나온 아델리아가 흉흉한 눈빛으로 물었다.

“쪼, 쫄지 마라! 상대는 고작 여섯 살, 어린 계집일 뿐이야!”

그러자 아델리아의 고개가 조금 전 소리친 괴한에게 향했다.

“너구나.”

“쳐라!”

아델리아가 옷 속에서 목걸이를 꺼내어 손바닥에 쥐었다.

[누, 누님?!]

놀란 리그하르트가 아델리아를 불렀다. 아델리아가 리그하르트에게 말했다.

‘너 외형 바꿀 수 있다고 그랬지? 성검처럼 보이지 않고, 내 손에 딱 맞게.’

[그건, 제가 남은 힘을 다 되찾았을 때…….]

‘짧게도 안 돼?’

잠깐 고민하던 리그하르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시, 십 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잘됐네.

‘오 분. 오 분 안에 끝낸다. 당장 바꿔.’

그러자 아델리아의 오른손에서 짧게 번쩍이는 빛이 흘러나왔다. 곧 아델리아가 휘두르기 딱 좋은 길이의 날렵한 은빛 검신이 어둠 속에 드러났다.

“저, 저 검이 갑자기 어디서……?”

“그리고 난 여섯 살이 아니라, 일곱 살이야!”

아델리아가 흙바닥에서 튀어 오르며 괴한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의 발끝이 닿는 족족, 흙먼지가 돌풍처럼 휘몰아쳤다.

괴한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가며 지면으로 착지했다가 다시 솟구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공격이 날아들자, 괴한들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오늘 네놈들은.”

까앙—! 캉! 깡!

아델리아가 공격을 퍼부으며 말했다.

“세 가지의 실수를 했다.”

채앵—! 괴한의 검을 멀리 날려 버린 뒤, 망설임 없이 목을 그었다. 그리고 또 다른 괴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첫 번째는, 내게 계집이라 한 것!”

과거 기사단에 있을 때부터, 아델리아를 깔보던 놈들은 항상 그녀를 ‘계집’이라 불렀다.

‘그중에 정작 날 이길 정도의 실력자는 없었지.’

꼭 실력도 안 되는 것들이 함부로 말해요.

껑! 끄아아악! 예리한 검날이 괴한의 어깨 한쪽을 깊숙이 베어 냈다. 괴한이 소리를 지르며 흙바닥 위로 나뒹굴었다.

동료가 떨어져 나가자 다음 괴한이 아델리아의 등 뒤를 습격했다.

“두 번째.”

아델리아가 가뿐하게 몸을 돌려 괴한의 급소를 걷어찼다.

“끄억!”

“날 여섯 살이라고 한 것.”

“무슨, 그런 억지가…….”

“시끄러.”

사뿐하게 지면에 착지한 아델리아가 곧장 다음 괴한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죽어라!”

괴한이 아델리아의 검을 피한 뒤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아델리아가 몸을 낮게 웅크렸다가 바닥에서 튀어 올랐다.

“내 눈썰미를 우습게 본 것.”

눈썰미? 복면 위로 드러난 괴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검날에서 흘러나온 검기가 예고도 없이 괴한의 팔을 잘랐다.

검을 들고 있던 손이 흙길 위로 처박혔다.

“으아악!”

아델리아는 쉴 새 없이 달려들어 검 끝으로 괴한의 외투와 복면을 서걱서걱 잘라 냈다.

그러자 검은 복장 안으로 적갈색 제복이 드러났다.

“난 한번 본 제복은 잊지 않아.”

사람 이름을 잊으면 잊었지.

아델리아가 적갈색 제복에 새겨진 푸른 문양을 지그시 밟으며 웃었다.

“프레이르 대공가의 기사님들. 프레이르 대공 전하 앞에 기사님들을 던져 주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궁금해지네?”

얼굴도 낯이 익다 했더니, 검은 옷과 검은 복면을 쓴 사내들은 티파티에 참석했던 프레이르 대공가의 기사들이었다.

‘치졸하네, 정말. 보석을 찾으러 온 건가?’

줬다가 뺏는 게 어딨어? 아델리아가 혀를 찼다.

그 순간.

퍼엉—!

“응?”

다시 들려온 폭발음에 아델리아의 고개가 그곳으로 향했다.

제일 처음 목을 그었던 괴한이 쓰러져 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널브러졌던 시체가 불타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어?! 누님, 저, 저거!]

리그하르트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두 번째 시체에서도 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까지.

아델리아가 쓰러트린 기사들이 차례대로 폭발을 일으키며 불이 붙었다.

“자……폭?”

오래전, 전장에서도 여러 번 본 적이 있었다.

죽였다고 안심했던 시체가 갑자기 폭발을 일으키고 불타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을 자폭환이라 부른다고 했다.

자폭환에도 종류가 나뉘었다.

하나는 소지자의 목숨이 끊어지면 일정 시간 후에 스스로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입속에 머금고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그것을 씹어 터트리는 것이었다.

‘이상한데? 자폭환이 왜 벌써……?’

세상에 드러나려면 아직 10년은 족히 남았는데.

그때였다. 갑자기 아델리아의 발목이 붙들렸다.

아델리아가 밟고 있던 기사가 아델리아의 다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혼자, 죽진 않는다…….”

그리고 괴한은 품에서 검은 구슬 하나를 꺼내었다. 그 구슬이 불길한 물건이라는 걸 깨달은 리그하르트가 소리쳤다.

[누, 누님! 피해야 해요!]

아델리아가 발목을 붙잡고 있는 팔을 자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보다 괴한이 조금 더 빨랐다.

“—씨께 속죄를…….”

괴한은 혼자 중얼거리더니 탄약처럼 생긴 그 구슬을 입 속으로 집어넣고서 콰직, 힘껏 깨물었다.

[누님!]

그리고 콰아아앙—!

“아가씨!”

“아가씨이!!”

다른 시체에서 터진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폭발이었다. 폭발이 일어난 자리에서 곧장 불길이 맹렬하게 치솟았다.

감히 다가서지도 못할 정도의 열기였다.

아렌트와 데프가 넋 나간 얼굴로 불길을 쳐다보며 “아가씨……!” 꽉 메인 목소리로 외쳤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