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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68)화 (68/161)

68화

‘나……. 또 죽은 건가?’

삐이이이이-

강력한 폭발이 눈앞에서 일어났던 탓인지, 귓가가 먹먹했다.

‘폭발……. 맞아, 방금 폭탄이 터졌었는데……?’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바로 눈앞에서 굉장한 폭발이 일어났는데, 고통은커녕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했다.

메케한 탄 내음이 공기에 실려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리고 제법 먼 거리에서 아렌트와 데프, 세라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델리아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슬며시 떴다.

“어……?”

시야가 어둠에 적응하자, 서서히 주위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미련하긴.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자리를 벗어났어야지. 어째서 돌진밖에 몰라?”

아델리아는 자신을 타박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 전하……?”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드러난 얼굴은 황태자였다. 아델리아는 카르세스를 올려다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여긴 어떻게……?”

아델리아의 물음에 카르세스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가 중요한가? 방금 죽을 뻔했다는 자각은 없나? 영애는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나 보지?”

어째서인지 카르세스는 화가 나 있었다.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는 죽었어. 저 시체들처럼 불에 타고 있었을 거라고.”

사실 성검이 있어서 쉽게 죽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폭발의 크기로 봤을 때 딱 죽을 만큼의 고통은 느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리그하르트도 다시 목걸이로 돌아가 있었다. 속으로 휴, 안도한 아델리아가 고개를 꾸벅했다.

“고맙습니다, 전하…….”

“그대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아. 하지만 사람은 결국 죽는다. 그게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매번 확인하고 조심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다. 그런데 그대는…….”

카르세스가 혀를 찼다.

“그 뛰어난 능력이 그대를 더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 같아.”

“…….”

아델리아가 그의 표정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내게 미안해할 이유는 없지. 죽더라도 그대가 죽는 거니까. 단지.”

“…….”

변성기가 일찍 찾아온 소년의 목소리는 제법 낮고 맑았다.

먼 기억 속, 성인 카르세스의 목소리보다는 얇았지만, 그 옛 카르세스를 떠올릴 만큼 듣기 좋은 음성이었다.

무뚝뚝한 음성에 걱정이 스몄다.

“죽기엔 너무 이른 나이이지 않나. ……그대가 죽은 뒤 남은 자들의 슬픔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제 몸부터 돌보도록.”

아델리아의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흔들렸다.

-경, 자신의 몸부터 돌보도록 해.

카르세스의 옛 목소리가 겹쳐 들렸던 까닭이다.

그것이 카르세스의 타고난 성품이었다.

자신보다 낮은 신분이라 하여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사람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무한한 신뢰를 보여 주었다.

그랬다. 내가, 그런 사내의 사람이었다.

아델리아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그러다 불현듯, 아델리아는 자신이 카르세스의 품에 안겨 있다는 걸 깨달았다.

‘허억!’

아델리아가 버둥거렸다.

“내, 내려 주세요!”

“가만히 있어. 다쳤을지도 모르니까.”

“안 다쳤습니다!”

“그건 의사가 확인하겠지.”

“저, 전하!”

“같이 흙바닥에 넘어질 게 아니라면 가만히 좀 있어.”

“…….”

그러자 아델리아가 조용히 입술을 말아 물었다.

사박사박, 바닥에 떨어진 낙엽 위로 카르세스의 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그의 걸음이 특별히 느린 것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아델리아를 찾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그제야 카르세스는 아델리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가씨!”

아가씨!! 세라와 아렌트, 데프가 아델리아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그들과 함께 있던 루드와 아스틴도 달려와 물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다.”

사실, 카르세스는 로즈힐 후작가에서 빠져나와 황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카를리나 로즈힐과 비올라 프레이르의 관계에 대해 언질을 줄 겸, 조금 더 대화를 나눌 생각으로 아델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얼굴만 보고 돌아가려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고 나니 쉽사리 떠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에스테르 공작가로 향하는 숲에서 아델리아를 기다렸다. 후작저를 지켜보던 아스틴이 돌아와 티파티가 끝이 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아델리아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이상하다 생각하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지.’

도착했을 때는 아델리아가 마지막 괴한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괴한이 아델리아의 발목을 붙드는 순간, 카르세스는 아델리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콰앙―! 등 뒤로 엄청난 굉음이 터졌다. 망토 안에 갑옷을 미리 챙겨 입지 않았더라면 등가죽이 모두 타 버렸을 정도의 열기도 함께 쏟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악시덤이 보낸 괴한들을 상대해야 했던 카르세스는 항상 옷 속에 갑옷을 착용했다.

흑마법을 사용하는 괴한들 때문에 마석을 갈아 넣고 신전에서 축복을 부여한 갑옷이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의 파괴력이라니.’

등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아직도 그대로인 것을 보면 조금 전 폭발로 갑옷이 망가진 모양이다.

카르세스는 욱신거리는 등의 통증을 애써 무시하며 루드의 망토를 빼앗아다 등에 걸쳤다.

“마차는?”

“에스테르 가문의 마차는 이미 불에 타 버렸습니다. 불에 타지 않았더라 해도 아마…….”

말을 잠시 끊은 루드가 아델리아를 흘깃거리며 말했다.

“영애께서 문짝을 부수는 바람에 공작저까지 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래, 그랬었지.”

카르세스가 짧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에스테르 공작가까지는 우리 마차로 동행한다.”

“예, 전하.”

카르세스와 아델리아 일행은 함께 마차로 이동했다. 카르세스는 자신의 마차에 아델리아를 태운 뒤, 아델리아를 보며 말했다.

“따로 마차를 구하진 않았다. 불편하더라도 참아.”

“불편하긴요, 그때 그 마석 마차보다 열 배는 더 편안한걸요!”

아델리아는 마차의 의자에 앉으며 싱긋 웃었다.

세라는 데프와 함께 말을 탔다.

‘함께 타도 된다니까…….’

카르세스 역시 허락한 일이었지만, 세라는 기어이 마차에 오르지 않았다.

마차의 창문으로 세라를 바라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세라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뭔데? 왜 저렇게 신난 거야? 설마, 세라가 데프를 좋아했었나?’

그렇다면 말이 되지. 타지도 못하는 말을 타겠다고 우기던 게 그런 이유였다면야…….

‘내가 눈치 없이 굴었나 봐.’

아델리아는 생각보다 데프와 세라가 잘 어울린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카르세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대는.”

창문 밖을 내다보던 아델리아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덜컹, 마차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태연해?”

“네?”

“조금 전 죽을 뻔했어.”

“하지만 전하께서 구해 주셨잖아요.”

“내가 늦었다면?”

“음…….”

아델리아가 침음했다.

사실,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리그하르트를 가지고 있는 이상, 신력이 그녀를 어느 정도 보호했을 테니까. 그리고 아델리아 역시 여차하면 오러를 꺼낼 작정이었다.

물론, 죽는 것이 나을 만큼 엄청난 고통은 겪었겠지만.

아델리아가 시선을 떨구며 작게 말했다.

“전하께서 때마침 도착해 주신 덕분에 다친 곳은 없습니다. 전하가 아니었다면 아마, 많이 다쳤겠죠…….”

아델리아가 잠시 시무룩해졌다.

어째서 그토록 태연하냐는 말에 아델리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왜 태연하냐고.’

사실, 잘 모르겠다.

자신이 괜찮은 게 맞는지, 태연한 게 맞는 건지.

성검의 주인, 제국의 영웅.

아델리아 에스테르는 항상 괜찮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다치거나 아파도, 슬프거나 두려워도, 그런 내색을 하면 안 되는 사람.

-괜찮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

선두에 서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어깨에 짊어진 영웅은, 그래야만 한다고 스스로 정의를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아프다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이, 무섭다는 말 대신 아무렇지 않다는 말이 습관적으로 튀어나왔다.

그게 아델리아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리고 한 번 죽음을 겪고 시간을 돌아온 지금도.

‘내 주위는 달라지고 있는데, 정작 나는 그대로구나…….’

어쩐지 입안이 까끌거렸다.

“무슨 생각을 그리해? 역시, 어딘가 다친 건가?”

카르세스가 고개를 기울여 아델리아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아델리아가 두 손을 저으며 대꾸했다.

“아, 아닙니다.”

큼큼, 작게 헛기침한 아델리아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 자폭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었다.

“마지막 괴한이 품에서 꺼낸 검은 구슬이 폭발을 일으킨 것 같아요.”

“구슬?”

“네. 가슴에서 구슬을 꺼내더니 입속으로 넣어서 콱! 씹었던 것 같은데……, 그런 폭탄에 대해 들어 보신 게 있으세요?”

아델리아가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카르세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카르세스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는 시선을 내린 채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적막은 공작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카르세스가 다시 입을 연 것은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선 뒤였다.

“그 구슬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볼 테니, 영애는 아무 생각 말고 제대로 진료받아.”

“다친 곳 없…….”

또다.

이번에도 괜찮다, 다치지 않았다, 멀쩡하다. 그런 말을 쏟아 내려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델리아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녀를 카르세스가 가늘어진 시선으로 응시했다.

“왜, 왜 그렇게 보세요?”

그러자 카르세스가 말없이 일어나 마차 문을 열고 내려갔다. 그리고는 아델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함께 가지. 그대가 제대로 진료를 받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가야겠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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