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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71)화 (71/161)

71화

공작저로 들어온 테오스는 데릭과 함께 아델리아의 방을 찾았다.

“마지막에는 작은 구슬을 입에 넣었는데, 그리고 바로 더 큰 폭발이 일어났거든요?”

아델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리며 당시의 상황을 온몸으로 설명했다.

아델리아가 턱 끝을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혹시, 폭탄은 아니었을까요?”

“폭탄이라…….”

테오스가 중얼거리자 아델리아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럴 리가 없겠죠? 폭탄은 금지된 게 아니었어요?”

그럼 대체 그게 뭐였지? 아델리아가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오스와 데릭을 곁눈질했다.

‘이쯤 하면 아버지도 알아들으셨을 거야.’

아델리아는 자신이 때려눕혔던 프레이르 대공가의 기사가 투기장의 검투사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필시 투기장의 검투사에 대해 어찌 아느냐고 물을 게 분명했다.

‘차차 알아보면 되지 뭐.’

검술 훈련 때 카르세스에게는 물어봐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카르세스는 아델리아가 투기장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아델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테오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델리아에게 엄중히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델리아. 그게 폭탄이었든 아니었든,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즉시 자리를 떠났어야 했어.”

아델리아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아빠……. 저도 그땐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 버렸다며, 시무룩하게 대답하자 테오스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혼내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아델리아. 단지, 난. ……만에 하나 네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테오스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끝을 흐리자, 데릭이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프레이르 대공가로 쳐들어가 그들의 목을 죄다 베어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점잖은 데릭의 입에서 미처 숨기지 못한 분노가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테오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공가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적지 않다. 이 일은 내 선에서 해결할 테니, 너희들은 함부로 나서지 말거라.”

“예, 아버지.”

데릭이 애써 분을 삭이며 대답했다. 그때, 아델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아빠.”

아델리아는 비올라가 내어놓은 시합 상품인 말과 보석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아직 초월석의 능력까지는 말할 필욘 없겠지?’

속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는 것을 모두 털어놓기에는 그 출처가 몹시도 수상해 보일 것이 분명했기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음, 잠깐 생각하던 테오스가 대답했다.

“승마를 즐기지 않는 딸에게 준 말이니 분명 군마에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아, 그럼 데프가 쓸 수는 없겠네요.”

그러자 테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데프 경에게는 질 좋은 군마를 내리도록 할 테니 그 말은 다른 주인을 찾는 게 좋겠구나.”

“네, 아빠!”

아델리아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프레이르 가문의 것이니 꺼림칙했던 탓이다.

“그리고 보석은 네가 쟁취한 물건이니 알아서 하거라.”

히히, 아델리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는 아델리아를 보며 테오스도 옅게 웃었다.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구나, 아델리아.”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아빠. 하며 아델리아가 양쪽 눈썹을 내리며 테오스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테오스가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델리아를 불렀다.

“아델리아.”

“네?”

“이참에 승마를 배워 두는 게 어떻겠느냐?”

“승마요?”

테오스의 말에 아델리아가 놀란 눈을 떴다.

어차피 승마를 배울 생각이었지만, 테오스가 먼저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물론, 아델리아는 말을 굉장히 잘 탔다.

‘하지만 승마를 배운 적도 없는 내가 갑자기 말을 능숙하게 타는 건 좀 이상할지도.’

그리고 테오스가 먼저 승마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내가 말을 잘 다루길 바라시는 거야.’

전장에서든, 어제와 같은 기습에서든.

‘말을 탈 수 있다는 것과 타지 못한다는 것은 곧, 생존과 직결되기도 하니까.’

테오스는 아마도 그와 같은 일이 또 생길지 모르니 대비를 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생각을 마친 아델리아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승마 배울래요!”

테오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엷게 미소 지었다.

“데릭, 네가 책임지고 아델리아의 말을 구해 보거라.”

“예, 아버지. 맡겨 주세요.”

데릭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리고 잠시, 테오스의 눈치를 살피던 아델리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아빠. 부탁이 또 있는데요…….”

테오스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게 무엇이냐?”

저어, 아델리아는 머뭇거리다 말을 이어 갔다.

“검술이나 승마 배우는 것도 좋은데, 자수나 그림, 춤이나 음악도 배우고 싶어요.”

다른 영애들처럼요. 아델리아가 의욕 넘치는 눈빛을 하며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그러자 테오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데릭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헛것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테오스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침묵에 아델리아가 민망하다는 듯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안 될까요……?”

그러자 테오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놀란 표정을 지우고 평소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선생을 구해 주마.”

그에 아델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고맙습니다, 아빠!”

아델리아의 맑은 목소리가 집무실을 잔잔히 울렸다.

***

다음 날, 에스테르 공작저로 편지가 도착했다.

하나는 올리비아의 편지였고, 또 하나는 디크레드 영지에서 보낸 보고서와 편지였다.

‘와! 글씨 너무 귀엽다!’

동글동글한 올리비아의 글씨는 하루 일과를 빽빽하게 늘어놓았는데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푸딩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저도 푸딩을 좋아해요! 언젠가 한 번 저희 집에 초대하고 싶어요. 혹시, 푸딩을 직접 만들어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면 이참에 저와 같이 만들어 보시지 않겠어요?>

우와! 푸딩을 직접 만든다고?!

‘이 나이의 영애들은 다 요리도 배우고 그러는 거야?!’

편지 속 올리비아는 자수와 요리, 음악과 춤에도 능통해 보였다.

같은 나이인데도, 올리비아는 아델리아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이미 해내고 있었다.

‘요리는 주방장한테 가서 알려 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아빠께 선생님을 따로 구해 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아델리아는 잠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도 검 하나만큼은 누님이 더 잘 다루시잖아요.]

‘생각해 보면, 그 검술 말고는 잘하는 게 없긴 해.’

여전히 또래 영애들과 자신은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 티파티 한 번으로 좁혀질 차이가 아닌 모양이다.

‘괜찮아! 나도 이제 배울 거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고는 못 하지만, 남들만큼은 할 수 있겠지!

아델리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다음 편지를 들었다.

할아버지인 오벨르 디크레드 백작의 편지였다.

‘할아버지께서 보낸 편지야.’

아델리아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었다.

<사랑하는 내 손녀. 아델리아, 잘 지내고 있느냐?>

다정한 인사말로 시작된 편지에 아델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아델리아, 이 할아버지는 벌써 네가 보고 싶구나. 메릴다도 매일 아침, 널 보러는 언제 가느냐고 묻고는 한단다.>

편지를 읽어 내리다 보니 자연스레 오벨르와 메릴다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도 보고 싶어요…….’

혈육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의 자취를 느꼈기 때문일까.

짧았던 만남이었는데, 오히려 그 짧은 만남이 그리움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오벨르는 디크레드 영지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타 버리고 갈려 버린 영지는 다시 복구 작업이 한창이라고.

<영지가 안정되면 놀러 오거라. 데릭도, 네 아버지도 함께 말이다. 그때는 디크레드 영지의 명소들을 소개해 주마.>

오벨르는 메릴다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며 에스테르 영지로 직접 가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오벨르의 편지 곳곳에서 단 한 번 만난 게 전부인 손녀를 향한 애정이 느껴졌다.

‘할아버지도 참.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아델리아가 코끝을 쓱 훔치며 배시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 황태자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서류를 함께 동봉한다.>

편지지 뒤로는 제법 묵직한 서류가 함께였다.

7년 전, 디크레드 영지에서 있었던 도난 사건과 관련된 서류였다.

아델리아가 편지를 내려놓고 서류를 들었다.

그 사건이 발생했던 시기에 디크레드 영지를 방문한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독초를 관리하는 영지인 만큼, 출입객에 대한 신분 확인은 매우 철저했다.

아델리아가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살피며 서류를 넘기던 그때.

어?

아델리아의 손끝이 멈칫했다.

‘……휴시안?’

익숙한 이름 하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에 리그하르트 역시 반응했다.

[어! 누님! ……휴시안이면, 그 녀석이잖아요!]

마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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