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73)화 (73/161)

73화

아델리아는 초조한 듯 눈꼬리를 내리고 카를리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카를리나가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응? 아델리아는 걱정과는 달리 다정한 카를리나의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를리나는 무릎 위로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아델리아 덕분에 티파티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어요.”

“에이, 또 그러신다. 전 그냥 말이랑 보석이 탐나서 그런 거라니까요.”

아델리아가 민망하다는 듯 손을 내젓자, 카를리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렇게 나설 수 있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거든요. 자칫하면 모든 걸 아델리아가 뒤집어쓸 수 있었어요. 난 아델리아의 대담함과 행동력에 감탄했어요.”

“감탄씩이나…….”

생각지도 못한 칭찬 세례에 아델리아의 양쪽 뺨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카를리나가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모두 아델리아 덕분이에요.”

그러자 아델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업이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아델리아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카를리나를 바라보았다.

카를리나는 자신이 티파티를 성공적으로 끝내야 했던 이유들을 설명했다.

로즈힐 가문의 대략적인 상황과 아버지인 후작과의 약속, 그리고 열 번째 티파티까지.

“그러니까, 가문을 지키려고……?”

“맞아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가문이 사라지길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난 내 방식대로 방법을 찾았고요.”

그게 가업을 이어받아 직접 가주 자리에 오르는 거라고, 아델리아는 설명을 이어 가던 카를리나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카를리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내가 왜 아델리아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나도 모르겠어.’

그냥 감사 인사와 함께 선물만 건네주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비올라에게도 겨우 털어놓았던 가문 이야기를 아델리아 앞에서 술술 털어놓고 있었다.

‘고작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를 앞에 두고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하지만, 어쩐지 아델리아라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해 줄 것만 같았다.

“물론, 아델리아가 보기엔 여자의 몸으로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

“아니요!”

아델리아가 벌떡 일어나 탁자 위를 짚으며 말했다.

“너무 멋진 생각인 것 같아요!”

그러자 카를리나가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멋, 지다고요?”

“네!”

아델리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여자의 몸으로 가문을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진짜 대단해요! 물론, 당연히 힘들 거예요. 아직 그런 사례가 없기도 하고 편견도 심할 테니까요.”

아델리아는 알고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가문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난 직접 가주가 될 수 없었어.’

특수 계승법에 부합하지 않았기도 했고,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 방계 혈족을 찾아 가문을 잇게 했었다.

생판 모르는 남에 가까웠으나, 에스테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기에 그쯤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카를리나는 나보다 더 대단한 거야.’

돕고 싶다.

‘카를리나를 도와주고 싶어!’

아델리아는 카를리나에게서 자신의 과거가 겹쳐 보였다.

‘카를리나가 한 가문의 가주로서 당당히 서는 모습이 보고 싶어.’

그렇게만 되면, 카를리나는 제국 최초의 여성 가주가 될 거야.

멋지다, 정말!

아델리아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카를리나는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델리아…….”

“카를리나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아델리아의 반응에 카를리나는 얼떨떨했다. 어쩐지, 아델리아는 자신보다 더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아델리아가 소파에 다시 앉으며 턱 끝을 매만졌다.

“음, 그럼 오빠와 결혼해도 가문은 언니가 계속 돌봐야 하겠네요.”

쿨럭,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카를리나가 헛기침을 터트렸다.

“으음, 그래. 그러면 아이는 최소 두 명은 낳아야겠어요. 한 명은 에스테르를, 다른 한 명은 로즈힐을 이어받아야 할 테니까.”

“아, 아델리아!”

아델리아는 카를리나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카를리나. 그때쯤이면 세상은 많이 달라져 있을 거예요. 여자아이도 특수 계승법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가주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아델리아가 결의를 다진 눈빛으로 카를리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려면 우선, 카를리나가 성공해야만 해요.”

사업도, 가주가 되는 일도.

자신보다 더 긍정적이고 의욕적인 아델리아를 보며 카를리나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네, 꼭 성공할게요.”

“약속한 거예요!”

“네.”

카를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이거.”

카를리나는 정사각형의 흑단 상자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아델리아가 상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 거예요?”

“네, 아델리아 거예요. 고맙다는 인사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아버지께 배웠거든요.”

그러자 아델리아가 상자를 향해 손을 뻗으며 히히 작게 웃었다.

“이런 건 제가 또 거절하지 않거든요.”

에헤헤, 아델리아는 상자의 잠금쇠를 풀고 뚜껑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제가 이어받을 사업이에요.”

“아, 로즈힐 가문의 사업이 광산이었어요?”

“맞아요.”

아델리아는 상자 속 원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런 원석을 가공해서도 팔고요?”

“네. 원석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가치가 높지 않거든요.”

아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즈힐 후작가에서 보석 광산 사업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보석 광산만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요?”

아델리아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카를리나가 순진한 표정의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광산의 종류는 다양해요. 장신구를 위한 보석 광산이 있는가 하면, 마석이 나오는 마석 광산도 있어요. 그리고 병기를 제작할 때 쓰이는 광물이 나오는 광산도 있고.”

가만히 듣고 있던 아델리아가 말했다.

“폭탄 제조에 필요한 재료가 나오는 광산도 있겠죠?”

폭탄? 카를리나가 눈썹을 끌어 올리며 대답했다.

“맞아요. 폭탄 제조에 필요한 초석이 광산에서도 나오니까요.”

아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초석이라는 재료가 누구에게로 팔려 갔는지도 알 수 있겠네요?”

“그렇죠. 구매자 목록을 꼼꼼하게 작성하는 편이거든요.”

아델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숲에서 마주친 괴한들을 떠올렸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폭발하던 시체, 그리고 마지막 괴한이 사용한 검은 구슬까지.

자폭환은 원래대로라면 아델리아가 성검의 선택을 받고 10년 뒤에나 등장해야 했다.

엄청난 파괴력에 비해 불량률이 높다 보니, 가지고 다니기에 위험부담이 컸던 까닭이다.

‘그렇다는 건 아직 시험 단계라는 소린데…….’

[그 누렁이가 자폭환을 만들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가만히 듣고 있던 리그하르트가 조심스레 의견을 내어놓았다.

그럴 수 있어. 아니면.

‘……자폭환을 발명한 그 누군가와 인연이 닿았거나.’

회귀 이전, 악시덤의 수족이 되었던 자들을 미리 빼내려 했는데 이미 악시덤의 수중에 들어간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노베트와 펠슨 선생만으로는 안 돼.’

인재를 알아보는 눈.

악시덤의 강점은 거기에 있었다. 그는 숱한 인재를 곁에 두고 적재적소에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벌써 자폭환이 등장한 것을 보면 썩 좋지 못한 상황이라는 건 확실했다.

아델리아가 카를리나를 바라보며 눈동자를 빛냈다.

“그럼, 카를리나.”

“네.”

“혹시, 아타뮴 광석이나, 플라니트 광석이 나오는 광산은 어때요?”

그러자 카를리나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광물에 대해 어떻게 알아요?”

“평소에 관심이 있었어요. 검을 다루다 보니 검을 만들 재료에 대해 미리 알아보고는 했었거든요.”

아델리아의 대답에 카를리나는 여전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 군요…….”

잠시 생각하던 카를리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타뮴 광석과 플라니트 광석은 희귀 광물이에요.”

철광석과는 차원이 다른 광석이었다.

특히 플라니트 광석보다 아타뮴 광석이 더욱 희귀했다.

아타뮴 광석은 강도도 강도였지만, 광석 자체에서 마력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더욱 값어치가 높았다.

대륙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로시안트 제국 내에서도 플라니트 광석 광산은 고작 세 곳에 불과했다.

“아타뮴 광산은 아직 한 군데도 발견된 게 없고요.”

그래서 아타뮴 광석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근래에는 그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카를리나의 설명이 끝나자 아델리아가 양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카를리나. 만약, 이건 정말 만약인데요.”

그러자 카를리나가 아델리아와 눈을 마주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때, 아델리아의 눈매가 순식간에 갸름해졌다.

“그 아타뮴 광산의 소유주가 나타나서 로즈힐 후작가에 독점권을 주겠다고 한다면.”

잠시 말을 멈춘 아델리아가 말을 이어 갔다.

“로즈힐 후작가는 뭘 해 주실 수 있으세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