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74)화 (74/161)

74화

로시안트 제국의 플라니트 광산은 모두 세 곳.

문제는 그 세 곳 모두가 귀족파 귀족들의 것이라는 거다.

귀족파 귀족들은 당연하게도 황제파인 로즈힐 후작가와 거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플라니트 광산도 아니고, 아타뮴 광산이라니.

“다른 제국 사람인가요?”

카를리나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아뇨? 로시안트 제국 사람이에요.”

“로시안트 제국에는 아타뮴 광산이 없는데요.”

그러자 아델리아가 씨익 짓궂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걱정하지 말고요. 그래서, 만약에 정말 아타뮴 광산의 소유주가 독점권을 로즈힐 후작가에게, 아니. ……카를리나에게 주겠다고 한다면 카를리나는 그 소유주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어요?”

“…….”

카를리나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뭘 해 줄 수 있냐고?

‘당연히, 원하는 건 모두지!’

지금 카를리나는 이제 겨우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첫걸음을 내디딘 상태다.

‘아타뮴 광산의 독점권이라니. 그것은 아버지조차 해내지 못한 일이야.’

카를리나가 무사히 사업을 이어받고 정착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주는 일이기도 했다.

카를리나는 이 장난 같은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뭐든지. 제가 할 수 있는 한계까지 내어드릴 수 있어요.”

단정하고 진중한 카를리나의 대답이 흡족했는지, 아델리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렇군요. 잘 알겠어요, 카를리나. 그런데, 그 소유주가 신분을 밝히기 싫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요? 익명으로도 거래가 가능한가요?”

“익명……?”

당연히 광산의 소유주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했다. 그 서류에는 소유주의 신분이 적혀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거래를 할 수는 없었다.

카를리나가 고개를 저었다.

“소유주 확인이 어렵다면 거래는 불가능해요, 아델리아. 그 거래가 아무리 욕심난다고 해도, 가문이 위험해지는 일은 할 생각이 없어요.”

정중한 거절에 아델리아는 여전히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비밀 보장은 확실한가요?”

그러자 카를리나가 빠르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서류를 확인하는 건 소유주와 저. 두 명만 있으면 가능해요. 소유주 확인 이후, 그 광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비밀을 지켜 드릴 수 있어요.”

분명, ‘만약’으로 시작한 대화였는데 어느새 대화는 당장 거래를 앞둔 사람들의 대화처럼 진지하고 깊어졌다.

아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에는 소유주의 이름이 필요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 서류에 실명을 적었다가 혹시라도 유출이 된다거나 하면 어떻게 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런 일이 걱정이라면 이니셜을 사용해도 돼요. 광산의 소유주가 확실하다는 것을 제가 확인만 한다면 말이죠.”

이니셜! 아델리아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좋아. 그럼 신분이 드러나는 일은 이니셜로 해결할 수 있겠네.’

[설마, 광산을 먹으러 가시려고요?]

‘웅! 그 광산을 내가 찾아서 카를리나와 거래를 하게 되면, 서로서로 좋은 일 아니겠어?!’

[그냥 광산 위치를 알려 주면 되잖아요?]

‘그럼 내가 돈을 못 벌잖아.’

[아……. 거저먹겠다는 말씀이시죠?]

‘알면서도 이용하지 않으면 바보인 거야.’

아델리아는 전장을 셀 수 없이 누비며 제국의 지도를 외우다시피 했다.

기밀로 다루어지던 지도에는 제국 곳곳에 있는 광산들도 표시되어 있었는데, 발견된 날짜와 소유주의 이름까지 적혀 있었다.

‘광산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사실 아델리아는 광물이나 광산에 관심이 없었다.

성검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무기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장신구를 즐겨 하던 것도 아니고.’

일반적인 귀족 영애로 자라 왔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어쨌든 광산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손에 넣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카를리나가 광산 사업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야기는 달라지지.’

게다가 갑작스레 등장한 자폭환까지. 이제는 일부러라도 광산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아타뮴 광산은 5년 뒤 발견된다.

‘보자, 첫 번째 아타뮴 광산이 북쪽 미네로튼 영지의 로사 산맥에서 발견되었지.’

소유주가 누구였더라.

‘빌델 백작이었던 거 같은데.’

아아, 그랬지. 빌델 아르티아누 백작.

지금은 영지 하나 없는 아르티아누 남작에 머물고 있지만, 그는 5년 뒤 아타뮴 광산을 발견하고 순식간에 악시덤의 총애를 받아 백작위까지 거머쥐게 된다.

‘그러고 보니 아타뮴 광산 소유주도 전부 귀족파잖아.’

보나 마나 거기서 벌어들인 재화로 악시덤을 황제에 올리기 위한 밑 작업을 할 테지.

‘릭, 내가 광산을 가져야만 하는 정당한 이유가 생겼어.’

조금 전에.

[……정당하다고요?]

‘응. 악시덤에게 넘어갈 바에, 내가 가지는 게 낫지. 안 그래?’

[그, 그렇긴 하죠.]

‘그러니까 그 광산들도 전부 내가 가진다!’

[…….]

황제가 죽지 않았으니, 앞으로의 미래는 아델리아가 아는 것과 달리 흘러갈 것이다.

‘미리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재력은 많을수록 좋다. 뒷거래나 사람을 매수하기에도 좋고.

***

카를리나는 저녁 식사까지 함께한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카를리나를 배웅하고 돌아온 아델리아는 창틀에 기대어 앉아 생각했다.

‘카를리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

여자로 태어나 마지막 종착점은 당연히 결혼이라 여기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카를리나는 그 당연한 길을 비웃으며 제 생각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누군가의 강요도 아닌, 자신의 의지로.

‘그런데 왜 과거에는 가주가 되지 못했지?’

테오스와 데릭이 죽고 로즈힐 가문이 제국에서 쫓겨날 때까지. 카를리나는 가업을 이어받거나, 가주가 되지 못했었다.

‘저 정도의 각오와 행동력이라면 충분히 가주가 되었을 텐데.’

아델리아가 고심하고 있자니, 리그하르트가 말했다.

[실패했나 봐요. 그 공녀가 방해했는지도 모르죠. 얼마 전처럼.]

‘아, 그랬을 가능성도 있구나.’

어쩌면 비올라의 방해가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아델리아는 창틀에 턱을 괴며 생각했다.

‘정말 그 핏줄이랑은 안 맞아.’

전생의 원수라도 되나 봐.

초가을의 쌀쌀한 밤이 깊어졌다.

***

“두 명의 하녀가 사라졌습니다. 의심되는 점이 많아 명단에 올려 두고 감시하던 사람이긴 했습니다.”

“보나 마나 숙부의 사람이었겠지.”

카르세스와 루드는 황제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황태자 궁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시종을 최소한으로 두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오늘은 더더욱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카르세스는 복도 끝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들킬 것 같으니 미리 발을 뺀 게 분명하다.”

“예, 전하.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 사라진 것을 보면 의도적으로 꼬리 자르기를 당한 것 같습니다.”

카르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내일인가. 숙부께서 오시는 날이.”

그러자 카르세스의 뒤를 따르던 루드가 안타까움이 가득 깃든 시선으로 카르세스를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전하.”

“그래.”

카르세스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런 그의 담담한 반응에 루드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전하. 차라리 다른 대륙으로 떠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에 카르세스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폐하만 남겨 놓고 달아날 순 없지.”

“하오나 전하…….”

정면을 바라보는 카르세스의 시선이 몹시도 단단했다.

“루드. 난 이 로시안트 제국의 황태자다. 비록 황권이 약하여 내 자리가 위태롭다고는 하지만, 나는 이 제국을, 나아가 제국민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

루드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카르세스는 어린 시절부터 목숨의 위협을 꾸준히 받으며 자랐다.

어느 제국이든 황족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게 다음 황제가 될 황태자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혈육끼리 자리를 놓고 목숨을 빼앗는 경우가 흔한 편이긴 하지만.’

독이 든 음식이며, 밤늦게 들이닥치는 암살자며.

그 모든 것이 황태자의 숨통을 조금씩 조금씩 옥죄였다. 당연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삶이 이어졌다. 나이 어린 황태자에게는 너무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어린 황태자는 버텨 내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의 아버지인 황제를 위하여, 그리고 제국민들을 위하여.

루드가 조용히 입을 다물자, 카르세스가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달아나지 않는다, 루드.”

달아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역시. ……먼저 치는 수밖에.

카르세스가 쓰게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멈춰 서서 창문 너머를 말없이 응시했다.

“…….”

“전하?”

루드가 왜 그러냐며 카르세스를 불렀다. 한참 창문 밖을 바라보던 카르세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저쪽.”

“네?”

저쪽?

루드는 카르세스가 말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르세스의 시선이 닿았던 창문 너머로 은빛 머리카락이 반짝거렸다.

“……어?”

루드가 놀란 눈을 뜨자, 카르세스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은 아니겠지?”

루드는 카르세스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맞는 것, 같습니다, 전하.”

“…….”

잠시 두 사람 사이로 짧은 적막이 찾아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