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그러자 모티반스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아, 아닙니다! 로즈힐 후작 가문에 거래를 맡기겠습니다!”
아델리아가 또 한마디를 더했다.
“로즈힐 후작 가문에서도 카를리나 로즈힐 영애에게요.”
“예? 영애, 요?”
“네!”
어리둥절해하는 모티반스를 보며 아델리아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모티반스가 돌아가고 아델리아와 테오스가 티타임을 가졌다.
‘세상에, 그 광산을 이렇게 손에 넣다니!’
아델리아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모티반스는 그 광산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게 분명했다.
‘백작은 너무 좋은 광산이라 아무에게나 팔 수 없었다고 했지만, 광산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 거야.’
가망이 없는 광산이라는 거.
그러니 그 누구에게 팔 수도 없었고 사겠다고 나서는 이도 없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채굴을 포기했을걸? 거의 방치된 폐광이라 해도 무리가 아닌 광산이지.’
[예? 그런 걸 팔겠다고 온 거라고요?]
‘응, 그렇지.’
우리 에스테르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아델리아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래도 덕분에 희귀 광산을 손에 넣었으니 비긴 거로 하지, 뭐.’
‘아셰트’ 광산은 저들이 아는 것처럼 쓰레기 광산이 아니다.
‘이 광산은 지하 광산이야. 앞으로 캐면서 들어가서는 안 돼. 아래로 파고 들어가야지.’
대략 지하로 20미터는 더 파고 들어가야 비로소 이 광산이 품고 있는 진짜 보물이 드러난다.
‘백작은 보석 광산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광산은 아타뮴 광석이 나오는 광산이야.’
[엇? 아타뮴이라면 플라니트 광석의 상위 광석 아니에요?]
‘맞아. 그래서 채굴 방법도 어렵고 위험도도 굉장히 높아.’
어지간한 경력자들도 위험해서 꺼리는 곳이었다.
아무렇게나 파고 들어갈 수도 없다. 지형에 따라 갱도를 파고 들어가는 방법이 천차만별이었던 탓이다.
[그럼 저 광산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우리 역시 방법이 없는 거 아니에요?]
‘광산에 대해 잘 아는 부족이 있었어.’
지금은 비록 침략자로부터 도륙당해 명맥이 끊어지다시피 되었지만.
‘살아남은 사람을 알지.’
아델리아의 고개가 창밖으로 향했다.
‘잘 지내고 있겠지?’
찾아가겠다고 했으니까 한 번쯤은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광산이 생기는 바람에 그 시일을 더 앞당겨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딸깍—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에 아델리아의 시선이 테오스를 향했다.
테오스는 말없이 차를 마시며 아델리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는, 고집부려서 죄송해요…….”
아델리아가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사과했다. 테오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해할 것 없다. 네가 가지고 싶다는 것 하나 사 주지 못할 아비로 보였느냐.”
아델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단지……. 제가 아빠를 귀찮게 만든 것 같아서요.”
가뜩이나 바쁘신데…….
아델리아가 작게 중얼거리자, 테오스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아델.”
테오스가 마치 데릭처럼 다정하게 아델리아를 불렀다. 아델리아가 시선을 올려 테오스를 쳐다보았다.
‘아델, 이라고 부르셨어.’
좀처럼 애칭으로 불러 주지 않던 사람의 입에서 애칭이 흘러나왔다. 어쩐지 가슴께가 간질거렸다.
“내가 너에게 좋은 아빠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자 아델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빠, 아니에요!”
물론, 테오스를 오해했던 적이 있다. 엄마를 죽게 만든 딸이라서 멀리하는 건가, 그러한 의문도 품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테오스는 그저 표현하지 못할 뿐이라는 걸 아델리아는 알고 있었다.
사람마다 표현의 방식이 다른 법이니까. 지금의 아델리아는 그런 테오스를 이해하기도 했고 그의 진심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자책하는 그의 말에 아델리아는 가슴이 지끈거렸다.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쓸쓸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럼에도, 너는 나를 피하지 않고 꾸준히 다가와 주었지.”
“아빠…….”
“그게 고마우면서도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너도 그토록 노력하는데, 내가 무어라고…….”
고작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자신의 눈치를 보며 할 말을 고르는 모습에 마음이 좋지 못했다.
그런 아이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넬 수 없는 자신의 성격이 원망스러웠다.
‘이레네아가 마지막 순간까지 부탁했던 우리 아이였건만.’
사실은 너를 살리기 위해서 너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는 변명이 얼마나 무책임한 변명이었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
그 어떠한 변명을 하더라도 홀로 내버려 두고 상처 주었던 것을 용서받기란 힘들 것이다.
‘언젠가, 네가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는 정말 용서받을 수 있을까.’
테오스가 쓰게 웃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의 이런 작은 요구 하나가 얼마나 기쁜지, ……아마 너는 모를 것이다.”
아빠……. 아델리아를 바라보는 테오스의 눈빛이 일렁거렸다.
‘저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몰랐어…….’
이제 어느 정도 테오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았었던 모양이다.
테오스의 아련한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어느새 하늘은 다홍빛 아름다운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
다음 날, 아델리아는 광산 거래를 위해 카를리나의 사무실을 찾았다.
카를리나는 광산 사업을 하면서 로즈힐 가문의 상단도 함께 운영 중이었다.
카를리나가 광산 소유주와 서류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고 테오스는 그 광산을 아델리아 이름으로 사들였다.
대금을 전달받은 모티반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말했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각하!”
그렇지. 후회는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 하겠지. 아델리아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모티반스는 뭔가 찔리는 게 있는 사람처럼 거래가 끝나자마자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테오스 역시 아델리아와 함께 공작저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아빠, 저 카를리나와 조금 더 놀고 싶어요. 안 될까요? 해가 지기 전에 들어갈게요. 네?”
아델리아가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테오스를 올려다보자, 기다란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작게 한숨을 내쉬던 테오스를 향해 카를리나도 거들었다.
“각하, 아델리아는 제가 책임지고 집 앞까지 무사히 데려다주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카를리나까지 나서니 테오스는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테오스 혼자 사무실을 나섰다.
테오스가 나가고, 카를리나와 둘만 남게 되자 아델리아의 표정이 바뀌었다.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씩 웃더니 품속에서 네모반듯하게 접어 놓은 지도를 꺼내어 테이블 위로 펼쳤다.
“이건, 지도 아니에요?”
“맞아요, 카를리나.”
전날 밤, 테오스에게 부탁해서 구한 로시안트 제국의 지도였다.
기밀 사항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은 간략한 지도였지만, 아델리아가 밤새 기억을 더듬으며 지도를 손보았다.
아무것도 없던 산맥 위로 X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표시예요?”
카를리나의 질문에 아델리아가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그걸 말해 주기 전에.”
아델리아가 천진했던 표정을 지우고 진지하다 못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카를리나를 제대로 알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난 카를리나의 꿈과 그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믿어요.”
사실 그녀를 신뢰하는 이유는 더 많았지만, 회귀 전의 일들이기 때문에 꺼내놓을 순 없었다.
“그리고 오빠에게 진심이라는 것도 믿고요.”
“아, 아델!”
카를리나가 당황해 아델리아를 불렀지만, 아델리아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조금 과장하자면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자 두 뺨을 붉힌 카를리나의 눈이 조금 커다래졌다.
가, 가족……?
아델리아가 카를리나를 응시하며 물었다.
“카를리나는요? 날 신뢰할 수 있어요?”
아델리아의 물음에 카를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사실 잘 모르겠어요. 난 아직 혼란스러워요, 아델.”
카를리나가 시선을 조금 아래로 떨구었다.
‘신뢰라……. 난 아델리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싫어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아니었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저 아이가 싫지 않다.
이것은 대략 한 달 만의 변화였다.
공작저에서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대던 여자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졌다.
애교스러운 웃음은 물론이고, 이름을 불러 주는 목소리는 다정하다 못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참석하지 않을 줄 알았던 티파티에 나타난 것도, 곤란한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준 것도,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말리던 자신의 꿈을 응원하겠다며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던 모습까지, 모두.
카를리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카를리나가 조용히 아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믿고 싶었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하던 진심 어린 목소리와 눈빛을, 그리고 저 아이의 변화를.
카를리나는 결심한 듯한 눈동자로 아델리아를 보며 말했다.
“믿어 보고 싶어요. 아델리아, ……당신을.”
카를리나의 대답에 아델리아가 밝게 미소 지었다.
‘사실, 날 신뢰한다고 대답했다면 조금은 실망했을지 몰라.’
당장 눈앞의 큰 거래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아델리아는 카를리나의 대답이 몹시도 만족스러웠다.
아델리아가 말을 이어 갔다.
“나도 그래요, 카를리나. 나도 카를리나를 믿고 싶어요. 그리고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함께 지내면서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쌓아도 되는 거죠.”
카를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카를리나가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아델리아는 카를리나를 따라 웃으며 지도 위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빨간색 표시는 플라니트 광산, 파란색 표시는 아타뮴 광산이에요.”
물론, 소유주가 없는. 그러니까 아직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광산!
“네?”
플라니트? 아타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광산?!
카를리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