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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89)화 (89/161)

89화

[저기예요, 누님!]

허공에 떠 있던 리그하르트가 한 방향을 향해 아델리아를 이끌었다.

아델리아의 목에 걸린 목걸이 줄이 팽팽해졌다.

‘이거야?’

[네! 이거 맞아요!]

리그하르트는 적갈색의 나무 상자 앞에 멈췄다.

아델리아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이거…….’

상자 속 물건을 내려다보는 아델리아의 붉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냥 돌멩이잖아……?’

에이, 이게 뭐야. 아델리아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리그하르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억울하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도, 돌멩이라뇨! 제 반쪽이 맞다고요!]

‘어딜 봐서?’

[애초에 성검의 주재료인 성석은 이런 모양이거든요?!]

‘성석?’

[네!]

성석은 흔한 광석처럼 보였다. 광산 어디쯤 던져 놓으면 아무런 값어치 없어 모두가 그냥 지나칠 법한 그런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리그하르트는 처음부터 성검의 모양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성검으로 다듬어지기 전의 모습은 모르시잖아요.]

‘그 모습이 이 돌멩이다?’

[성석! 성석!]

‘아아, 알았어. 성석.’

어휴, 한숨을 내쉰 리그하르트가 말을 이어 갔다.

[로시안트 제국에 떨어진 성석은 하나였어요.]

‘그럼 이건 뭐야?’

[땅으로 떨어지면서 두 동강이 났거든요.]

‘아, 그래서 반쪽이라고 했던 거야?’

[네. 그런데 반으로 쪼개졌지만, 신력은 저에게 모두 넘어왔어요.]

‘그럼 이건 정말 그냥 돌멩이란 소리잖아?’

돌멩이라는 말에 잠시 발끈했지만, 리그하르트는 다시 마음을 달래며 대답했다.

[시간을 돌아오면서 뭔가 잘못된 건지, 제 신력의 반이 이 돌멩, 아, 아니. 반쪽 성석으로 옮겨갔더라고요.]

‘아……. 알아들었어.’

시간을 돌아온 뒤, 모든 것이 전과 같지는 않았다. 아델리아만 해도 오러가 일찍 발현되었으니까.

아델리아가 상자 속 성석을 덥석 들어 올렸다.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비명을 내질렀다.

[히이이익! 조, 조심하세요! 깨지면 성석에 담긴 힘이 모조리 흩어진다고요!]

‘아, 그래?’

[아, 그래? 가 아니잖아요! 이 꾀죄죄하고 엉망진창으로 생긴 돌멩이가 성석이라고 하니까 못마땅하신 건 거잖아요!]

‘거참, 말이 너무 심하잖아. 네 반쪽한테 꾀죄죄하고 엉망진창으로 생겼다는 말을 하다니.’

[아니! 제가 아니라 누님이 그렇게 생각하신 거 아니냐고요!]

‘아닌데? 난 그런 적 없는데?’

아델리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뻔뻔하게 대답했다.

‘일단 여길 나가자.’

그때였다.

창고 깊숙이 들어갔던 두 신관의 목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졌다.

“그 뒤로 성검은 조용합니까?”

“예, 이상하게도 그날의 난리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조용합니다.”

“성검이 깨어나 영웅을 지목해 줄 거라 기대했더니…….”

“그러게 말입니다.”

요르히 신관이 안타깝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 순간, 요르히가 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러자 베리언 신관이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요르히 신관?”

요르히는 창고의 문과 그 주위를 시선으로 훑었다.

“문이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오고 다른 누군가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예?!”

베리언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들어오면서 안 닫았는데요.”

그러자 요르히가 베리언을 쳐다보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 ……그랬습니까?”

“예. 그랬지요. 사람 놀라게 왜 이러십니까.”

베리언이 타박하자, 요르히가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가시죠.”

“그러시죠.”

다시 두 사람이 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누님, 어쩌죠? 곧 이쪽으로 올 거 같은데.]

리그하르트의 말에 아델리아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문까지 거리는 짧은 내 보폭으로 대략 백 보.’

두 신관과의 거리 역시 비슷했다. 이대로 달려서 문까지 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 신관들에게 침입자가 있었다는 것을 들키게 될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아델리아는 턱 아래에 미리 묶어 두었던 두건을 코끝까지 올렸다.

[그러니까……. 진짜 도둑 같으세요.]

‘넌 욕을 칭찬처럼 하는 재능이 있어.’

[헤헤.]

‘웃지 마. 칭찬 아니니까.’

아델리아는 안주머니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게 뭐예요?]

‘금화.’

[금화는 왜 챙겨 오셨어요?]

‘비상용으로 들고 다녀. 위급할 때 이만한 무기가 없거든.’

[아…….]

리그하르트는 기억해 냈다. 아델리아가 마음만 먹으면 손에 쥔 나뭇가지로도 상대를 제압하던 것을.

특히 단검이나 돌멩이, 저런 금화 같은 것 역시 적을 처리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다.

[설마, 신관들을 주, 죽이시려고요?!]

리그하르트가 놀라 물었다. 그러자 아델리아가 무슨 소릴 하냐며 대답했다.

‘아니, 시선만 돌릴 거야. 내가 빠져나갈 때까지만.’

그리고 아델리아는 금화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신관들이 걸어왔던 길 뒤편으로 빠르게 던졌다.

쉬익—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금화가 창고의 끝부분에 떨어졌다.

쨍그랑—! 금화가 무언가와 부딪힌 모양인지 깨지는 소리도 함께였다.

“이게 무슨 소리죠?!”

베리언이 화들짝 놀라며 요르히의 팔뚝을 붙잡고 물었다. 그러자 요르히가 베리언을 떨쳐 내며 몸을 돌렸다.

“안쪽에서 난 소리인 것 같습니다. 뭐가 떨어진 것 같은데.”

“아까 우리가 자리를 옮겼던 유물 중 하나일까요?”

그러자 요르히가 미간을 긁적거렸다.

“다시 가야겠죠?”

“당연하죠!”

어쩐지 귀찮아하는 요르히를 향해 베리언이 버럭 소리쳤다.

“확인해야죠! 부서졌으면 부서졌다고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셔야 하고요!”

“……그렇죠.”

하아, 요르히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창고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 뒤로 베리언도 따라붙었다.

그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리그하르트가 말했다.

[뭔가 깨진 것 같죠?]

‘…….’

아델리아는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신관 두 명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나중에 다 보상할게요, 어떻게든!’

아델리아는 그들이 조금 더 멀어진 뒤, 즉시 창고를 빠져나왔다.

아델리아는 빠르게 달리다가도 다른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면 그 즉시 몸을 숨겼다.

신전의 굵고 기다란 기둥은 아델리아의 몸을 숨기기에 몹시도 훌륭한 가림막이 되어 주었다.

신전 건물을 빠져나오니, 하늘은 완벽한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무 늦었나 봐.’

[아무래도 신관들을 따돌리고 나와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갇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맞아요, 누님!]

이제 성석의 힘을 흡수하기만 하면 된다고, 리그하르트는 벌써 성석을 집어삼킨 듯 들떠 있었다.

아델리아는 황태자 궁 정원으로 돌아와 수풀 사이에 숨겨 놓았던 가방을 찾았다.

다시 망토와 두건을 집어넣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

[왜 그러세요?]

망토와 두건을 미리 벗고 둘둘 말아서 손에 든 아델리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없어. 가방이 없어!’

[네?!]

분명 여기다 뒀는데!

작은 잎사귀가 풍성한 정원수 아래, 일부러 잔디와 비슷한 색의 가방을 준비해 숨겨 두었는데 그 가방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여기가 맞는데!

아델리아가 둘둘 뭉쳐 놓은 망토를 품에 껴안고서 그 옆 정원수 아래를 살폈다.

‘여기도 없어.’

그리고 그 옆, 또 그 옆.

근처, 같은 종류의 정원수를 모조리 살폈지만, 녹색 가방은 찾을 수 없었다.

[누님. 더 이상 지체하시면 공작이, 아니, 아버님께서 걱정하실 거예요.]

‘알아. 아는데…….’

아델리아가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하긴, 내 정체가 드러날 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어.’

인적이 드문 곳이라 안심했더니, 지나가던 누군가의 눈에 가방이 띄었나 보다.

아델리아가 체념하고 마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몸을 돌린 그 순간.

“이걸 찾나?”

뒤편에서 그녀의 발걸음을 잡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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