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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102)화 (102/161)

102화

카르세스를 향했던 테오스의 시선이 느릿하게 돌아왔다.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델리아가 테오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슬쩍 돌리자, 카르세스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에스테르 공작가를 벗이자, 전우라 생각합니다.”

그러자 테오스의 고개가 다시 카르세스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에스테르 공작가가 건재하길 바랍니다.”

“돌려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확히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카르세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스테르 영애가 가진 힘이 오히려 영애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델리아는 입만 뻥긋거리며 카르세스를 쳐다보았다.

‘지금 전하께서, 아빠한테 내가 그동안 한 짓을 고자질하고 있는 거야?!’

이게 뭐야, 대체! 난 이런 상황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다고!

[워후. 이거 정말 흥미진진한데요? 손바닥에 땀이 다 고였어요!]

손도 없으면서, 무슨…….

[말이 그렇다는 거죠.]

흥, 리그하르트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당혹스러워하는 아델리아와는 달리 리그하르트의 목소리는 어쩐지 흥분되어 있었다.

카르세스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에스테르 공작. 나는 영애가 위험한 상황과 맞닥트리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습니다.”

그러자 테오스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그것은 오러의 문제가 아니라, 영애의 성격상 그냥 넘어가지 못해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카르세스는 아델리아가 자신의 힘만 믿고 나서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운이 좋을 거라고 어찌 보장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하!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

아델리아가 울컥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으나, 금세 카르세스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어쩔 수 없었다는 그 변명이 영애를 죽음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르지.”

“…….”

실상, 위험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기에 아델리아는 입술만 달싹거릴 뿐 반박하지 못했다.

아델리아가 조용해지자, 카르세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로시안트 제국은 숙부와 숙부를 따르는 귀족파의 위세가 높습니다.”

[누님, 황태자의 숙부라면 악시덤이죠?]

‘응…….’

카르세스는 시선을 테이블 위로 내렸다.

“숙부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철저히 깔아뭉개는 습성이 있죠.”

카르세스가 아델리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숙부가 에스테르 영애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어……? 날? 왜? 왜, 날?

아델리아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대공께서 제 딸아이를 왜 주시한단 말입니까?”

궁금했던 것은 테오스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테오스의 물음에 카르세스가 대답했다.

“영애는 디크레드 영지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용병단을 처리한 적이 있습니다.”

“…….”

아이고. 아델리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용병단의 단장이 꽤 실력 좋은 사내입니다. 얼마 전부터 조사를 시작하더니 기어이 누가 한 행동인지 알아낸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악시덤이 눈여겨보던 대장장이를 데려간 일, 티파티에서 대공가의 공녀와 마찰을 일으킨 일 등등.

카르세스는 악시덤이 그리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숙부의 무서운 점이 그것입니다. 아주 은밀하고 조용히 행동한다는 거죠.”

잠깐, 집무실이 고요해졌다.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카르세스가 말했다.

“거기에다 에스테르 영애는 숙부의 사람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누님! 세상에! 저 몰래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시는 거예요! 제가 악시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시면서!]

‘무슨 헛소리야! 너랑 나랑 떨어진 적이 없는데, 내가 너 몰래 무슨 짓을 할 수 있다고!’

[아.]

아델리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전하!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다! 전 대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진저리가 날 만큼 싫어하면 싫어했지!

그러자 테오스가 아델리아를 진정시키며 다시 소파에 앉혔다.

“계속하십시오.”

“에스테르 영애가 숙부의 사람이란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숙부는 영애를 경계해야 하는 인물로 분류해 놓았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경계?”

카르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숙부가 관리하는 투기장을 건드렸거든요.”

저 영애께서 말입니다.

그러자 테오스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

“…….”

아델리아도 놀란 눈을 떴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니, 투기장을 건들긴 했는데, 그건 사실이 맞는데.

‘그 투기장이 악시덤 거였어?’

아닌데, 그건 모티반스 거였잖아…….

[누님, 정말 그 투기장이 모티반스 거라면…….]

‘응. 모티반스가 악시덤 사람이란 소리야.’

[그, 그렇죠?]

와……. 미치겠네.

‘아니, 그럼 애초에 첩자 노릇을 하기 위해 우리 가문의 가신이 되겠다고 찾아온 거란 말이잖아!’

아, 아아. 아델리아는 뒤통수가 얼얼했다.

‘처음 봤을 때 확, 처리했어야 했는데…….’

아델리아가 어금니를 꽉 다물었다.

모티반스는 괘씸했고, 카르세스에게는 서운했다.

‘비밀로 해 주시기로 한 거 아니었어? 오늘 뭐, 작정하고 오신 거야, 뭐야. 왜 이러시는 거야!’

속으로 울분을 삼키고 있자니, 리그하르트가 눈치 없이 떠들어 댔다.

[이런 건 맨입으로 구경하면 안 되는데! 쿠키라도 씹어 가면서…….]

‘조용히 안 해?!’

그때, 카르세스가 아델리아와 시선을 맞췄다.

아델리아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하고서 그의 보라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금세, 카르세스는 고개를 돌렸다.

‘치. 씨알도 안 먹히네.’

카르세스는 테오스에게 말했다.

“그래서, 제안 하나 할까 합니다.”

테오스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듣고 있습니다. 계속하십시오.”

“에스테르 영애의 안전을 위해 영애를 디크레드 영지로 보냈으면 합니다.”

“전하?!”

아델리아가 놀라 카르세스를 불렀지만, 그는 아랑곳없이 말을 이어 갔다.

“교양 수업을 위해 교사를 구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교사들을 추려 놓았으니, 디크레드 영지에서 수업을 들으며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도록 했으면 합니다.”

물론, 디크레드 영지에서 나와서는 안 된다고. 카르세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테오스가 고심하다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말입니까?”

“아……, 빠?”

그에 아델리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테오스를 쳐다보았다.

‘진짜 날 보내겠다고?!’

테오스는 황제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설마 아델리아에게, ……오러가 발현된 것인가? 아니지?! 그런 게 아니지?!

언젠가는 알려질 일이긴 했다. 성검 역시 평생 숨길 순 없을 것이다.

어떠한 계기로든 세상에 알려질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다. 최대한 숨기고자 했던 것은 오로지 아델리아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황태자의 말대로라면, ……오러와 성검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겠군.’

결국, 보내야 하는구나…….

테오스의 낯빛이 어두워지자, 카르세스가 대답했다.

“정해진 기한은 없습니다. 숙부의 세력을 와해시키고 황제파의 세력을 강하게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카르세스가 아델리아를 바라보았다.

“일 년이 걸릴지, 삼 년이 걸릴지. 그것도 아니면 십 년이 걸리게 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까.”

카르세스의 말에 테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델리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델리아.”

그러자 넋 놓고 있던 아델리아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네…….”

테오스가 아델리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디크레드 영지로 가 주지 않겠느냐.”

분명 의사를 묻는 말이었지만, 아델리아는 알 수 있었다.

‘아빠도……. 이미 결정을 내리셨어.’

아델리아가 시선을 떨구었다.

‘구구절절 맞는 소리라서 아니라고 할 수가 없어.’

그동안 쉬지도 않고 일을 벌여 왔다. 운이 좋아 다치지 않았다는 카르세스의 말이 맞았다.

‘이제 보니 전하는 내가 걱정되어서 아빠한테 모두 털어놓기로 했구나.’

악시덤이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소름 끼쳤다.

잠시 시무룩해졌던 아델리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냐.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몰라.’

[디크레드 영지로 가는 거요?]

‘응.’

데릭과 테오스가 로샤크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저택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만큼 아델리아의 행동에 제약이 많이 걸린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남은 광산들 위치가 우리 영지보다 디크레드 영지와 더 가까우니까, 광산을 찾아가는 일은 더 수월해질 거야.’

디크레드 영지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던 카르세스의 말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궁금했어.’

아! 엄마 이야기도 궁금하고.

[괜찮겠어요? 우리도 전쟁 준비를 해야죠!]

‘그건 서신으로도 가능해. 내가 광석을 캐고 용광로 앞에서 무기를 두드릴 건 아니니까.’

광석은 광산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구해질 것이다. 그리고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가 에스테르 공작저에 있으니, 서신 몇 장으로도 충분히 준비는 가능했다.

‘로샤크 전쟁이 터지기 전에 디크레드 영지에서 나갈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꽤 오랜 시간을 고민하던 아델리아가 무릎 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좋아요. 갈게요!”

간다고요! 디크레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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