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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됐어요, 은퇴라면 몰라도 (112)화 (112/161)

112화

응? 언니?

아델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없는데? 그건 왜?”

아델리아가 되묻자 휴시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단순히 궁금했어.”

그러자 아델리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의혹이 가득한 아델리아의 눈초리에도 휴시안은 물컵을 들어 올리며 담담하게 웃었다.

그러자 아델리아도 물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물을 마시는 도중에도 휴시안을 살피듯 뾰족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갑자기 언니가 있는지는 왜 물어? 뜬금없이.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헹!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생각은 무슨 생각이 있겠어요?! 저 표정을 보세요! 생각이라는 걸 하며 사는 얼굴이 아니잖아요.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놈이라니까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태어난 김에 사는 놈이라니.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아니라니까?’

하지만, 무작정 그를 믿어 주기에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비록 이전 생이었다고는 해도 한때 친분이 있던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 조금은 씁쓸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심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아델리아는 항상 경계하는 마음으로 휴시안을 대했다.

그리고 그 경계심은 꽤 노골적이었는데, 그럼에도 휴시안은 자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지.’

더 의심되게 말이야.

휴시안은 디저트까지 주문을 마치고 흐뭇한 표정으로 아델리아를 쳐다봤다.

“공녀님은 가족이 뭐라고 생각해?”

휴시안의 질문에 아델리아의 눈썹이 슬며시 올라갔다.

“그 질문도 그냥 궁금해서 하는 거야?”

“응.”

아델리아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가족은 내 전부야.”

“공녀님을 디크레드 영지에 가뒀는데도?”

그러자 아델리아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말조심해. 누가 그래, 가뒀다고?”

“아니야? 소문이 그렇던데?”

“아니야.”

뭐, 사실 가둬 둘 만큼 사고를 많이 치긴 했지만.

“여기가 더 안전한 곳이라서 잠시 옮겨 왔을 뿐이야.”

“아, 전쟁 때문에?”

“맞아. 아빠랑 오빠는 전쟁 준비하느라 날 신경을 쓰지 못했을 거야. 차라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할아버지랑 함께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하신 거고. 그건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야.”

그렇구나. 짧게 대답한 휴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공작님 좋아해?”

공작님? 휴시안이 공작님이라 부르는 걸 보면…….

“우리 아빠 말하는 거야?”

“응.”

그러자 아델리아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럼, 공녀님의 오라버니는?”

“뭘 그런 당연한 걸 계속 물어? 가족인데 당연하잖아! 매일매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어! 전부 소중한 사람이거든!”

아델리아는 스푼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말을 이어 갔다.

“난, 내 가족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어.”

“뭐든?”

“응! 무슨 일이든!”

아델리아의 씩씩한 대답에 어쩐지 휴시안의 표정은 더욱 가라앉았다. 휴시안이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쓰게 웃었다.

“그래……. 그런 게 가족이지.”

어쩐지 어두워진 휴시안의 표정에 아델리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그러자 휴시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었다.

“나도 공녀님 같은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여동생?”

[어…….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닌데? 막상 생기면 정말 후회할 텐데? 감당 안 될 텐데?]

리그하르트가 그 순간만큼은 휴시안이 안쓰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휴시안이 말을 이어 갔다.

“응, 여동생. 복잡하고 예민하고 말도 안 듣고 싫어하는 것만 시키는 그런 여동생 말고.”

휴시안의 알 수 없는 말에 아델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나 단순하다고 욕하는 거 같은데?’

그러자 리그하르트가 태세를 전환하며 버럭 소리쳤다.

[그렇죠?! 제삼자인 제가 들어도 욕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나쁜 놈! 어떻게 우리 누님한테 단순하고 생각 없고 게으르다고 할 수 있어!]

본색을 이제야 드러내는구먼!

리그하르트는 자신이 욕을 들은 것처럼 더욱 흥분하며 떠들어 댔다.

‘릭, 휴시안이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어.’

그거, 네 속마음 아니야?

아델리아의 말에 격하게 분노하던 리그하르트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딸그락딸그락.

대화가 끊긴 가운데, 디저트 접시까지 비운 아델리아가 가게 안을 훑어보며 말했다.

“마부 월급만으로는 자주 오기 힘든 곳 같아.”

“응? 아, 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난 내 돈으로 온 적 없거든.”

그러자 아델리아의 눈이 커졌다.

“뭐? 그럼?”

“다들 사 주겠다던데?”

“…….”

휴시안이 또다시 해맑게 웃었다.

‘와……. 저런 말을 저렇게 순진한 얼굴로?’

아델리아는 어이없다는 듯 입술을 뻥긋거렸다.

‘설마설마했는데.’

휴시안 녀석, 여자 등쳐먹고 살고 있었어?! 지난 2년간, 쭉?

‘아이고, 머리야.’

아델리아가 이마를 턱, 짚었다.

그때.

“음식이 다 식었잖아!”

식당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소, 손님. 이건 그러니까 손님께서 주문을 하시고 자리를 비우셔서…….”

콰앙—! 사내가 식탁을 뒤집어엎으며 소리쳤다.

“뭐?! 지금 내 탓을 하는 거야?! 뭐 이런 가게가 다 있어! 야! 사장 나오라 해! 사장!”

커다란 덩치의 사내는 자신의 반쪽밖에 안 되는 종업원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델리아의 고개가 그들을 향해 비스듬히 돌아갔다.

서늘한 냉기를 품은 붉은 눈동자가 사내 하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

“아델리아가 늦네.”

오벨르가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소파에 앉아 뜨개질하고 있던 메릴다가 옅게 웃었다.

“데프 경이 따라갔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그리고 마부 청년도 함께 갔잖아요?”

“걱정이 안 될 리가. 아직 어리지 않소.”

데프는 그렇다 쳐도, 마부가 따라간 일이 무슨 안심할 일이라고.

오벨르가 중얼거리자, 메릴다가 뜨개질하던 것을 멈추고 오벨르를 쳐다보았다.

“우리 아델은 어지간한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예요.”

생각도 깊고요.

“그거야, 뭐…….”

“바깥에서 어떤 소문이 도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건 아델리아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낸 헛소문일 뿐이에요.”

그렇게 차분하고 얌전한 아이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냐고, 메릴다는 안심시키듯 말하곤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

오벨르가 메릴다를 슬쩍 돌아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는 말은 안 하는 게 낫겠군.’

그 문이 그대로 박살이 났었지.

오벨르는 당시 떨어져 나갔던 처참한 문의 상태를 떠올리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디 그뿐이었나.

‘메릴다가 사라졌다는 소리에 드레스가 더러워지고 찢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탔던 아이야.’

단번에 메릴다를 찾아낸 것도 신기했지만, 평범한 귀족 영애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아델리아는 주저 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철창을 부수고 펠로체의 수하들을 때려눕힌 것도 아델리아였다고 했다.

‘보통 그런 아이더러 차분하고 얌전하다고는 하지 않지.’

그러나 오벨르는 그런 아델리아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스러웠다.

‘역시, 내 손녀.’

어쩜, 외모나 하는 행동이 제 어미를 쏙 빼닮았는지. 오벨르는 자신의 딸 이레네아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며 몹시도 흡족해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조금씩 달라졌지…….’

교양 수업을 위해 교사들도 함께 디크레드 영지로 들어왔다. 그 뒤로 검술 훈련은 거의 놓다시피 하고 교양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아델리아는 차분하고 얌전한 귀족 영애가 되어 있었다.

애초에 아델리아는 귀족 영애이니까, 그게 당연한 거지만…….

‘어쩐지 아델리아답지 않다고 할까…….’

분명, 귀족 영애로서 성숙해진 아이를 보며 안도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오벨르가 창밖을 쳐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안타까워해야 할지.”

그러자 메릴다가 대신 대답했다.

“아델리아는 알아서 잘할 거예요. 우리 이레네아의 딸이니까.”

메릴다의 대답에 오벨르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아델리아는 이레네아의 딸이지.”

예전처럼 검밖에 모르는 거침없는 성격이어도 좋았지만…….

‘그래, 이제는 받아들여야지.’

지금처럼 차분하고 얌전한 아델리아도 내 손녀니까.

어쨌든, 자신의 딸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사랑스러운 손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오벨르의 시선이 하늘을 아련히 바라보았다.

***

“네가 사장이야? 이걸 어쩔 거야? 이 자식이 내가 잘못했다는데!”

식당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복장을 보니까 이번에 디크레드로 들어온 상단인 거 같은데.’

[꼴불견이네요, 정말.]

째앵—! 화가 난 사내가 기어이 접시를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아.’

아델리아가 몸을 일으키려던 그 순간.

“어? 공녀님.”

느닷없이 휴시안이 아델리아를 불렀다.

“응?”

“저거 뭐야.”

“뭐가?”

“창밖에 저거.”

휴시안이 창밖을 가리켰다. 그러자 아델리아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그 순간.

“끄아아악—! 부, 불! 불! 뜨거워! 이거, 어떻게 좀 해 봐!! 내 머리! 내 머리 다 탄다! 누가 좀 도와줘!”

으아악!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아델리아의 뒤로 사내의 비명이 들렸다.

놀란 아델리아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머리에 불이 붙은 사내가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헉!’

[와! 탄다! 자알 탄다!]

다들 저렇게 민머리가 되는 거죠. 안 그래요, 누님?

깔깔, 리그하르트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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