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휴시안은 모든 속성의 마법을 잘 다루었다.
‘그러니까 마탑주가 됐겠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잘 다루었던 속성이 바로.
“앗뜨! 뜨, 뜨거워!”
불이야! 부, 불!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사내가 호들갑은 떨며 가게를 급히 빠져나갔다.
사내 머리 위의 불길을 잠시 바라보던 아델리아가 눈매를 갸름하게 떴다.
‘저 불 속성 마법을 가장 자주, 잘 사용했었지.’
아델리아의 시선이 휴시안을 향해 돌아왔다.
‘그만해……. 진짜 다 태워 버릴 작정인 거야?’
이 악마 같은 놈.
[불이다! 불!]
민머리래요! 대머리래요!
크항항항! 리그하르트는 사내가 사라질 때까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으아아아! 그때, 건물 아래에서 사내의 비명이 들려왔다.
다시 아델리아의 고개가 창밖 건물 아래로 향했다.
그 사내는 여전히 머리에 불이 붙은 채였다. 그렇게 한동안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거리다가, 골목 어귀에 아무렇게나 놓인 양동이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제야 머리에 붙은 불이 꺼졌다.
양동이에서 머리를 꺼낸 사내가 제 머리를 더듬더듬 확인했다.
그리고 사내는 구슬피 흐느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델리아가 고개를 돌려 의심의 눈초리로 휴시안을 응시했다.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숨기려던 게 아니었나?’
숨기려는 줄 알고 모른 척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면 어쩌라는 거야?
아델리아의 시선에 휴시안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래, 공녀님?”
그러자 아델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구겨진 미간 사이를 손가락 끝으로 문질렀다.
“그렇게 힘을 쓰고 다닐 거면 마부라고 거짓말을 하지 말든가.”
“…….”
아델리아의 말에 휴시안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알았어?”
“눈치채라고 막 사용한 거 아니야? 어젯밤 마차부터 조금 전 마법까지.”
아델리아가 톡 쏘듯 말했다.
마력과 오러는 서로 다른 힘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르게 되면 타인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기도 했다.
아델리아가 휴시안의 마력을 느낄 수 있듯이 말이다.
아델리아가 한숨 쉬듯 말했다.
“놀란 척하지 마. 내게 오러가 있다는 것도 눈치챘잖아.”
“…….”
아델리아가 휴시안의 마력을 알아차렸듯이, 휴시안 역시 아델리아의 오러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오러 큐브에 숨겨 두었다 하더라도 마탑주 정도의 실력자라면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악시덤도 얼핏 느끼는 것 같던데, 마탑주라면 말할 것도 없지.’
게다가 애초에 오러 큐브는 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폭주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휴시안이 그제야 하아, 안도하듯 숨을 터트렸다. 뭔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서 말을 이어 나갔다.
“공녀님 앞에서는 거짓말하기 싫었어.”
“2년 동안 조용히 마부 일만 했던 건 왜 그런 건데?”
“언제 아는 척해 주나 지켜보고 있었어.”
“2년이나?”
“나도 공녀님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시간은 있어야 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휴시안이 씩 웃었다. 그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공녀님. 사실, ……내게 2년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야.”
“…….”
“2년이 뭐야. 그냥 내게는 시간 같은 거, ……의미 없어.”
그는 공허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델리아 역시 데릭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마탑주는 자기 나이도 모를걸?
마탑주와 신전의 대신관은 이미 사람의 평균 수명을 훨씬 웃도는 세월을 살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력과 신력이 수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오러도 비슷했다.
마력과 신력만큼은 아니지만, 오러가 강하면 강할수록 외모로는 나이를 판가름하기 힘들어졌다.
실상, 테오스 역시 또래보다는 젊어 보이는 외모였다.
같은 나이의 황제보다 훨씬 어려 보였으니까.
아델리아는 휴시안을 잠깐 응시하다 입을 열었다.
“목적이 뭐야?”
“……목적?”
휴시안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무구한 눈으로 아델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델리아는 더욱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디크레드 영지로 온 목적. 백작저 안으로 들어온 목적. 정체를 숨기고 내 주위를 맴돈 목적.”
휴시안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다 말해.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널 디크레드 영지에서 쫓아낼 거야.”
아델리아의 목소리와 눈빛이 전에 없이 단호했다.
잠시 그런 아델리아와 시선을 맞추고 있던 휴시안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나갈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휴시안의 제안에 아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가게를 나왔다.
휴시안은 가게를 나오는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늘 장난스러워 보이던 표정까지 진지했다.
‘뭐야……. 다 털어놓으라니까 갑자기 왜 분위기를 잡고 저러는 거야?’
가게에서 나와 마차가 있는 곳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아델리아가 그의 뒤통수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자, 리그하르트도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
[역시 음흉한 놈이에요, 누님!]
그러니까 털어놓고 자시고, 더 볼 것도 없으니 그냥 쫓아내죠?! 리그하르트가 역정을 냈다.
그때, 마차 앞에 도착한 휴시안이 마차의 문을 열며 몸을 돌렸다.
“일단 타, 공녀님.”
“……말했잖아. 털어놓지 않으면 쫓아낼 거라고. 내 말이 우스웠어?”
그러자 휴시안이 눈꼬리를 내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가면서 이야기해 줄게. 여긴 듣는 사람도 많고.”
듣는 사람? 아, 데프?
데프가 휴시안을 경계하며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가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해? 마차는 누가 끌고?”
“그야 간단하지. 일단 타. 출발하면 알게 될 테니까.”
“…….”
아델리아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마차에 탔다. 그리고 마차 문을 닫아 준 휴시안이 마부석으로 이동했다.
마차가 천천히 출발하고 그 마차 뒤로 말을 탄 데프가 따라왔다.
마차는 한동안 조용히 번화가를 벗어나 백작저를 향해 달렸다.
‘대체 대화는 어떻게 한다는 거야?’
아델리아가 마부석의 휴시안을 쏘아보다 한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어때? 간단하지?”
[히익!]
난데없이 맞은편에 나타난 휴시안 때문에 리그하르트가 놀라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라 아델리아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왔다.
마부석과 연결된 유리창 너머로 휴시안과 똑같은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니 허수아비 같은 걸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이젠 아예 숨길 생각이 없나 봐.”
“알아봐 주길 바라고 있었는데 굳이?”
“…….”
휴시안이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감탄했다.
“역시 마부석보다는 마차 안이 편해. 그치?”
“이제 말해.”
으음. 휴시안은 한동안 눈동자를 굴리며 꺼낼 말을 고심했다. 그러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공녀님이 악마나 마물인 줄 알았어.”
한참 기다린 대답이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이라, 아델리아가 탄식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개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나, 거울에 비친 공녀님을 봤어.”
거울? 아델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2년 전, 축제에서 말이야. 마탑에서 거울을 광장에 전시했잖아.”
“……아.”
그제야 떠올랐다. 축제가 한창이었던 광장에서 마주쳤던 자신의 과거 모습이.
아델리아가 입을 꾹 다물자, 휴시안이 씩 웃었다.
“기억하나 보네. 그 여기사를.”
“…….”
“보통은 악마나 마물이 비치거든? 멀쩡한 사람이 비친 건 처음이라서 나도 신기했단 말이야? 그런데 거울 맞은편에는 어린아이가 있었어. 후드를 푹 눌러쓴 어린아이가.”
휴시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공녀님 반응을 보니까, 그 거울에 비친 여기사가 누군지 아는 모양인데?”
“몰라.”
아델리아가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휴시안이 의아하다며 물었다.
“모르는데 도망을 가?”
“모르니까 도망갔겠지.”
무섭잖아. 거울 속에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비친다는 거.
“일곱 살짜리 아이가 그걸 멀뚱히 보고 있는 게 더 무섭겠다.”
“아.”
그런가?
휴시안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에도 그의 눈동자는 아델리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아델리아를 관찰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녀의 표정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 내겠다는 듯한.
아델리아가 그의 시선을 그대로 맞받아치듯 응시했다. 그리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짓궂게 웃었다.
“혹시 모르지.”
“…….”
“네 말대로 내가 정말 악마일지도.”
비웃음에 가까웠으나, 어쩌면 자조 섞인 웃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델리아의 대답에 휴시안이 곧장 대답했다.
“아니던데.”
“……뭐가?”
“나도 눈이 있어. 지난 2년간 지켜봤거든.”
그 말에 아델리아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그럼. 너, 진짜 내가 악마나 마물인지 확인하느라 따라온 거였어?”
“뭐, 비슷해.”
“비슷? 뭐랑 뭐가 비슷한데! 계속 애매모호하게 말할래?!”
어휴! 답답해 죽겠네!
그러자 휴시안이 장난스레 웃었다.
“공녀님. 참 이상하지. 난 공녀님 앞에서 거짓말을 못 하겠어. 아니, 하기 싫어. 그런데 계속 그런 걸 물으면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고.”
“거짓말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안 돼. 사실대로 털어놓기엔…….”
“놓기엔?”
“……어른들의 사정이란 게 있거든.”
이게 정말…….
아델리아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마차 안의 날 선 분위기와는 달리, 가짜 휴시안이 이끄는 마차는 평화롭게 흙길 위를 달렸다.
후우……. 아델리아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심호흡을 했다.
“좋아. 그럼 딱 세 가지만 물을게.”
“거짓말은 안 할게. 대답 안 하면 그만이지 뭐.”
“디크레드 영지로 온 목적.”
“공녀님 옆에 있으려고.”
“악마나 마물일까 봐?”
“그건 두 번째 질문이지?”
“……어.”
아델리아가 어쩔 도리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휴시안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다른 걸까 봐.”
“다른 거 뭐?”
“이번 거는 세 번째 질문?”
“알겠으니까, 대답 좀 해!”
아델리아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휴시안이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노코멘트.”
“야아아아아!”
아델리아가 결국 성질을 참지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이 새ㄲ……!”
[누, 누님!]
‘말리지 마! 검 뽑는다! 야! 릭! 변신해! 뭐 해! 당장 변신하라고!’
오늘 내가 마탑주 죽인다! 죽이고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