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2년 전, 디크레드 영지로 떠나기 전부터 조금씩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그땐 확신할 수 없었는데…….’
[뭔가 걸리는 게 있으신 거예요?]
‘응. 돌아오고 나니 확실히 알겠어.’
이전 생에서도 테오스는 무척이나 바쁜 아빠였다.
자식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짧은 티타임을 가지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서로의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소리지.’
어쩌다 한 번 테오스의 집무실을 들어가도 성인 키보다 높게 쌓인 서류들에 지레 겁먹고 서둘러 빠져나오기 바빴다.
‘그때는 일 년에 아빠 얼굴 보는 것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거든.’
[그 정도면 거의 남 아니에요?]
‘그렇지……?’
아델리아가 쓰게 웃었다.
회귀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관계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달라.’
대화하는 시간도 과거에 비해 제법 늘어났고, 그 덕에 아빠의 상태를 알아차릴 기회도 생겼다.
이번 일처럼.
그래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아빠랑 오빤데, 정작 그 두 사람은 내버려 두고서 주위 상황에만 몰두했던 거 같아.’
아델리아는 저를 안아 주고 바라보던 테오스의 시선을 떠올렸다.
‘미묘하게 어긋났었지.’
보통 사람들이라면 느끼지 못할 그 미세한 차이를 아델리아는 알 수 있었다.
[어긋나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아버님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거예요?]
‘아니면 다행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평소 테오스는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지 않았다.
그는 대화 도중에도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거나, 소파에 마주 앉더라도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이야기를 하곤 했다.
가끔 마주치긴 했지만, 찰나의 순간이어서 무엇이 이상한지 감지하기에는 몹시도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는지 몰라.’
그랬기에 더더욱 확인이 필요했다. 자신의 감이 틀렸다는 확인이.
아델리아의 심각해진 분위기를 알아차린 펠슨이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지금 당장 가 보겠습니다.”
“고마워요, 펠슨 선생.”
***
그리젤 길드 건물.
“어서 와, 기다렸어.”
바라크가 중후한 느낌의 책상에서 일어나 돌아 나왔다.
‘오……. 길드장 느낌이 물씬 난다?’
[저 덩치가 어딜 봐서 열일곱이래요?]
‘리티카야 부족이 원래 저래.’
그래서 한때는 많은 귀족들이 구속구를 동원하면서까지 리티카야 부족 사람들을 노예로 이용하려고 했다.
“이리 와서 앉아.”
“응.”
바라크가 소파에 앉으며 자리를 권했다.
아델리아가 집무실을 훑어보며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러자 바라크의 수하로 보이는 용병 하나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차와 디저트를 내왔다.
아델리아가 그 용병을 흘깃거리며 쿠키 하나를 집어다 입 안에 넣었다.
‘잔뜩 긴장한 걸 보니, 바라크가 기강 하나만큼은 제대로 잡고 있는 모양이야.’
내심 걱정되긴 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혹여나 그리젤 길드 용병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고.
‘괜한 걱정이었어.’
잊고 있었다. 뒷골목의 길드야말로 철저히 실력 위주로 서열이 정해지는 곳이었음을.
[사실 저 덩치에 어떻게 덤벼요? 게다가 전 길드장을 그렇게 죽여 놓은 놈인데.]
나라도 몸 사리겠다. 리그하르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델리아는 쿠키를 마저 먹고 차를 호로록 마시며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예전 길드장이 쓰던 그대로?”
“맞아. 딱히 손볼 곳이 없어서.”
“그래도 찝찝하잖아. 가구라도 좀 바꾸지.”
“됐어.”
“돈이 없어서 그래? 내가 바꿔 줄까?”
그러자 바라크가 피식 웃었다.
“또 무슨 의뢰를 맡기려고 그러는 건데?”
“들켰네?”
아델리아가 히히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마탑주.”
“마탑주?”
“응. 이번에는 마탑주에 대해 알아봐 줘.”
“음.”
바라크가 침음했다.
“왜? 어려워?”
“사실대로 말하자면 어려워. 미리 정보를 구해 놓을 생각으로 사람을 보낸 적이 있는데 전부 소식이 끊겼어.”
“아…….”
아델리아가 턱 끝을 매만지며 골똘히 생각했다.
역시,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나…….
‘그런다고 곧이곧대로 말해 줄까? 그 능글맞은 사람이?’
짧게 한숨을 내쉰 아델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그건 됐고.”
팔짱을 끼고 아델리아를 바라보고 있던 바라크가 되물었다.
“중요한 거 아니었어?”
“중요하긴 해.”
“그럼 내가 직접 알아볼—.”
“아냐! 그런 짓 하지 마.”
“…….”
아델리아가 조금은 큰 소리로 바라크의 말을 막았다.
곤란하다. 지금 바라크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
‘길드장 하나 처리했다고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되지.’
자만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바라크는 아직 휴시안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칫 잘못 접근했다가 휴시안에게 당하고 말 거야.’
능글맞게 웃으며 그 누구보다 생각 없이 사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휴시안은 몹시도 냉정하고 잔인한 녀석이었다.
아델리아가 주제를 돌리며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대공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했던 건 어떻게 됐어?”
“여기.”
바라크는 협탁 아래 준비해 두었던 서류를 내밀었다.
“벌써?”
“예전 길드장이 무능력하지는 않더라고.”
바라크는 이미 길드가 보유하고 있던 정보들이 많아서 수월했다고 말했다.
“그랬겠지. 길드를 이만큼이나 키워 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아델리아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류를 꺼내었다.
잠시 훑어보던 아델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이건 뭐야? ……실종?”
“응. 각 지방 영지에서 남자아이들이 사라지고 있어. 그 수가 너무 적고 작위가 없는 집안의 아이들이라 크게 논란이 되지 않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는 수도의 남자아이들도 실종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게 대공가와 연결된 거 같다는 거지?”
“맞아. 직접적인 연관은 없는데, 대공가의 가신 가문들을 통해 아이들이 운반되고 있었어.”
“투기장인가……?”
“아니, 투기장은 아닌 것 같아. 투기장의 무대 위에 올릴 생각이었다면 평범한 아이들을 잡아가진 않았을 거야.”
투기장에 끌려가 본 바라크는 잘 알고 있었다. 투기장의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특별하고 눈에 띄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자신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바라크의 말에 아델리아의 미간이 설핏 구겨졌다.
‘투기장이 여러 개 문을 닫게 되어서 얌전히 지내는 줄 알았더니…….’
-숙부의 무서운 점이 그것입니다. 아주 은밀하고 조용히 행동한다는 거죠.
문득 카르세스의 말이 떠올랐다.
‘은밀하고 조용히.’
제국의 영웅이었다는 그럴듯한 방패막이 뒤에 숨어 은밀하게 계획하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지.
아델리아는 또 다른 서류를 들었다.
“이건…….”
“프레이르 공녀 거.”
아델리아가 비올라에 대해 적힌 서류를 꺼내었다. 이 서류에는 향초에 관한 자료가 적혀 있었는데, 그 외에도 익숙한 단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초석…….”
얼마 전, 디크레드 영지의 로이에게서 날아온 전서구의 내용과 일치했다.
<향초 거래가 본격적으로 활발해질 것 같아요. 폴디아퀸을 매입해 가던 상인들이 한동안 향초 매입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비올라가 대량의 향초를 가지고 제국으로 돌아왔다. 이미 다른 대륙에서 인기 있던 상품이었기 때문에, 로시안트 제국에서의 흥행 또한 보장된 상품이었다.
<그런데, 향초를 싣고 왔던 배에서 대량의 초석도 같이 내렸다고 해요. 물론, 그 초석이 대공저로 들어간 것을 본 건 아니지만…….>
로시안트 제국에서 생산되는 초석으로 부족했던 걸까.
‘대체 얼마나 많은 폭탄을 만들려고…….’
끔찍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폭환이 전장 위에서 동시다발로 터진다면?
적군이 사용하든, 아군이 사용하든. 근처에 있던 사람은 적군이고 아군이고 가릴 것 없이 부상을 입고 말 것이다.
‘폭탄은 금지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흑마법과 마찬가지로, 금지된 힘을 원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렇게 초석을 끌어모으는데, 대체 어디에다 쌓아 놓는 거지?
로이의 보고서에도 초석이 들어오긴 했지만,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카를리나도 초석을 사들인 가문들은 알아냈지만, 그 초석을 어디에다 보관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었지.’
길드가 아닌 사업을 운영하는 카를리나로서는 일을 캐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아델리아가 한층 진중해진 표정을 하고서 바라크에게 물었다.
“이 초석이 어디로 운반되었는지 알아내야 해.”
그곳이 곧 자폭환을 제작하는 곳과 이어질 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을 보내 놓긴 했어. 돌아오면 연락할게.”
“응.”
아델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왔던 주머니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쩔그럭, 제법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선수금이야.”
예상했던 의뢰금보다 많은 양의 골드를 보며 바라크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
그러나 아델리아가 그의 말을 싹둑 자르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망토를 고쳐 입으며 말했다.
“용병들을 키우려면 자금이 필요하잖아.”
“…….”
새롭게 길드장이 바뀌면서 출혈이 있었을 것이다. 바라크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투자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줘. 대륙 최고의 길드가 되면 모른 척하지 말라는 뇌물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바라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델리아가 바라크에게 등을 보인 채 걸어 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간다.”
바라크는 작은 악마가 사라진 문틈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
아델리아가 탄 마차는 순조롭게 달려 공작저에 도착했다.
그런데 마차에 내려 자신의 방까지 가는 동안 이상하게 세라가 보이지 않았다.
“세라가 안 보이네?”
그러자 세라 대신 아델리아의 망토를 건네받던 하녀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세라 집에서 연락이 와서 급히 갔습니다, 아가씨.”
응? 아델리아가 걸음을 멈추고 하녀를 돌아보았다.
“세라 집에서? 왜?”
아델리아가 묻자 하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라 동생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왔어요, 아가씨…….”
“……뭐?!”